<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루카 21,20-28

2008. 11. 27. 오전 7:11:59

글자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루카 21,20-28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루카 복음은 기원후 75-9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70년 8월 29일 함락됩니다. 루카 복음은 성전이 불탄 뒤에 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전 파괴를 역사적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이 모두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던 셈입니다.
당시 유다 지방에 살던 이들은 먼 곳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도 빨리 빠져나가고, 시골에 있던 이들은 올라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로마의 장군 ‘티투스’가 8만의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 포위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러했기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이 불행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쟁은 늘 있어 왔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신무기로 무장된 군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대치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징조’는 언제나 현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종말이 시작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종말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로마 제국은 사라졌고, 이스라엘도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도,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죽음을 통해 그들은 ‘종말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개인의 죽음이 일차적인 종말입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그대로 종말에 대한 준비가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 하면 모르는 분이 없으실 것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수상이자 명정치가였습니다. 문학적 소질도 탁월하여 수많은 어록을 남겼으며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생존 당시 처칠 수상은 많은 의사들의 연구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아주 고령인 65세에 수상에 취임한 그는 당시 시국이 시국인 만큼(2차 세계대전)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는 술을 즐겼습니다. 즐길 정도가 아니라 도를 넘어섰습니다. 그 독한 스카치위스키를 밤이면 밤마다 물마시듯이 마셨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실에 바늘 가듯이 술 마시면 땡기는 것이 있지요. 담배인데, 그냥 담배가 아니라 제일 독한 시거를 늘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계속되는 보고, 회의, 결재, 시찰...그에게는 운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비만이었습니다. 

    이런 처칠 수상이었지만, 그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아주 건강했다고 합니다. 그런 건강을 바탕으로 90세 넘게까지 장수했습니다.

    그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 특유의 유머, 불굴의 의지 등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길어져만 가는 전쟁으로 지쳐가는 국민들에게 한 짧은 연설은 그의 낙천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Never, never, never give up!)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클레멘타인과의 사이에서 오고갔던 ‘전설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둘은 80이 넘은 나이에도 사춘기 소년소녀처럼 살았습니다. 당시 둘 사이에 오고갔던 편지 내용입니다.       “처칠, 당신은 제 안의 태양이예요!”

    “클레멘타인, 당신을 만난 것은 내 생애 가장 큰 행운이라오. 당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내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복음의 주제는 주님의 날입니다. 그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동산일까요? 은행계좌일까요? 유산일까요? 아파트일까요?

    사랑,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사랑만이 전부입니다. 결국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했던 사랑의 몸짓들,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이웃들 안에 현존해계시는 하느님을 향해 바쳤던 사랑의 표현들, 바로 그것입니다.

    왜들 그렇게 미워합니까? 왜들 그렇게 싸웁니까? 왜들 그렇게 아웅다웅합니까?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가톨릭성가 65번 / 예루살렘 복되고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연중 제 34 주간 목요일 - 친구인 죽음

   어제 어떤 분이 ‘이젠 살고 싶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참으로 살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죽음에 가까이 갑니다. 암벽을 등반한다든가 번지점프를 하면서 살아있다는 쾌감을 느낍니다. 죽음 옆에서 삶을 더 느낄 수 있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조되는 것 옆에 있으면 그것 때문에 자신을 더 잘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참으로 여자가 될 때는 남자와 가까워질 때이고 인간이 참으로 인간이 될 때도 하느님과 가까워질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죽음과 함께 가야 합니다. 1986년 1월, 6천만 미국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첼린저호는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그 우주선의 비행사들이 남겼던 마지막 대화가 공개되었습니다.  

남자: 무슨 일이지? 오, 맙소사. 안 돼. 오 안 돼.

여자: 오! 이런.(비명소리) 너무 뜨거워(신음 소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말하지마. 오 지금 하세요.

여자: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은 안 돼요. 여기서 죽을 순 없어요.

남자: 당신의 팔이... 안 돼.

여자: 전 의식을 잃어가고 있어요.

남자: 우리는 아직은 죽지 않아.

남자: 할 수만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신음소리)

남자: 그녀가... 그녀가... 죽...

남자: 공기가 없어

남/여자: (신음소리) 오 안 돼.

남자: 그녀가 의식을 잃었어.

남자: 그녀에게 행운이 있기를

남자: 오 하느님! 우리가 죽어가고 있어요. (비명소리)

여자: 안녕(신음하면서) 사랑해요.

남자: 마음을 편하게 가져봐! 긴장을 풀라고!

남자: 어딘가에 비상 착륙을 할 수 있을 거야!

남자: 그래. 맞아 .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남자: 비상 착륙을 시도해봐.

남자: 오, 그건 불가능해.

남자: 손을 내밀어봐.

남자: 거기에 있어? 깨어 있느냐고? 난... 난...

남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남자: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남자: 괜찮아?

남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 시며... 내가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 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인도하심이로다... 내가 주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 (침묵). 

첼린저호 조종사들이 죽음 직전에 나누었던 대화는 죽음과 함께 사는 삶이 얼마나 우리를 살게 하는지 잘 느끼게 해 줍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찾고 사랑을 찾았습니다.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살아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그 전에 이만큼 절실하게 기도하고 사랑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참으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거의 매일 종말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복음들을 읽다보면 종말이 매우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 마음을 북돋아줍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종말은 그렇게 기다리던 우리의 ‘신랑’과 만나는 기쁜 날입니다. 죄인들만이 두려워 떨어야 하는 날입니다. 오히려 죽음을 옆에 끼고 친구처럼 지내야합니다. 그래야 참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무일도 끝기도에 항상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주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지금 당장 죽어도 좋은 잠자리, 이것은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는 증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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