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토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루카 20,27-40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살아있음, 눈물겨운 환희>
장수(長壽)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동 시대 사람들이 다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홀로 300살까지 살았다고 가정해보시죠.
나이가 300살 정도 되면 그 분은 사람이 아니라 유령일 것입니다. 숨만 붙어있다 뿐이지, 사람으로서의 형상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에너지가 완전히 다 빠져나간 미이라 같은 존재, 하루 온종일 누워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식물인간일 것입니다.
동고동락했던 사람은 다 떠나고, 이제 손자의 손자, 그 손자의 또 손자들과 살아야만 하는 고독하기 그지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끼치는 민폐는 또 얼마나 큰 것이겠습니까?
눈만 뜨면 기자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도대체 저 인간은 언제 죽을 것인가, 잔뜩 기대하면서 해외토픽이나 기네스북에 실으려고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쯤 되면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것입니다. 적당히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은 자연의 순리이고, 서로를 위해서 좋은 일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 아직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소규모 피정이 있어서 잠시 바닷가를 다녀왔습니다. 내려갈 때 일부러 바다를 낀 한적한 국도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한적한 국도를 타며 주변 경관을 살펴보니 이미 가을이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도로변에는 밤새 떨어진 낙엽들로 가득합니다. 잎사귀들을 떠나보낸 늦가을 나무들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무성했던 나뭇잎들을 떠나보낸 자리에 늦가을의 청명한 하늘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최근에 새로 생긴 큰 방조제 2개를 만나게 되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차를 갓길에 주차시켜놓고 방조제 위로 올라갔더니,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잔잔한 서해바다 위로 무수한 철새들이 군무를 추고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아래 펼쳐지는 ‘특별 쇼’를 오랫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절경 위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환희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이로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개똥밭을 굴러도 살아있는 것이 낫다. 죽은 정승보다 살아있는 강아지가 더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단 살아있어야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목숨이 붙어있어야 회개할 수도 있고, 새 출발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어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습관처럼 눈을 뜨기에 당연한 일이려니 하고 생각하지만, 오늘 아침에만 해도 다시 눈뜨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비록 고달프다 하더라도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일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눈부신 환희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아직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표시입니다. 이아침 우리가 다시 눈을 떴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다는 표시입니다.
오늘이란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아직도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비를 거두지 않으셨다는 표현입니다.
우리 평생의 과제는 삶이 눈물겹게 소중한 것임을 아는 노력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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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체칠리아 성녀의 순교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5세기에 쓰여진 “순교성녀의 행전”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쓰여진 것이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체칠리아는 로마에서도 유명한 귀족 가문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부유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정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발레리안이라 불리는 젊은 이방인 귀족에게 결혼을 시켜버렸습니다.
혼인 하던 날 체칠리아는 남편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께 말씀드릴 비밀이 있어요. 저에게는 저를 지켜보고 있는 하느님의 천사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셔야 해요. 만약 당신이 결혼한 입장에서 저를 범하시면, 그 천사는 화를 내고 당신은 고통을 받게 될 거에요. 하지만 당신이 저의 동정을 지켜주신다면 그 천사는 저를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도 사랑하실 거예요.”
“그 천사를 나에게 보여 주시오. 만약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내가 삼가겠소.”
성녀는 만약 세례를 받고 빛나는 새 옷을 입는다면 천사를 보게 되리라고 말해줍니다. 당시는 카타곰바(지하묘지)에서 몰래 신앙인들이 모여 모임을 가졌는데 발레리안도 체칠리아가 말해 준 대로 그 곳을 찾아가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방에서 기도하는 체칠리아가 이상한 빛에 감싸여 있고 그 옆에 천사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발레리안은 그 광경을 보고 무릎을 꿇었고 천사는 이 순결한 두 부부에게 장미와 백합으로 된 화관을 씌워줍니다.
체칠리아는 발레리안의 동생도 세례를 받게 만듭니다. 두 형제는 순교하는 천주교인들을 몰래 매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다가 결국 발각되어 순교하고 맙니다.
그들의 재산을 노린 로마정부는 두 형제의 유해를 매장했다는 이유로 체칠리아도 순교시키려 합니다. 배교를 강요하는 총독의 위협에 체칠리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저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총독은 화가 나서 자신이 삶과 죽음에 대한 권한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이 죽음을 줄 수는 있어도 생명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체칠리아는 목에 세 번의 칼을 맞았지만 목이 반쯤 잘린 채 삼일 동안 살아 있다가 그 모습 그대로 죽어 카타콤바에 묻혔고 시신은 지금도 썩지 않고 로마의 체칠리아 성당 제대 밑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오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일곱 형제의 아내가 되었던 여인을 예로 들면서 부활이 있다면 그 여자는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죽은 이후에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결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혼인하여 한 몸을 이룸으로써 하느님의 새로운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혼인이 모든 삶의 목표이기 때문에 천국에선 더 이상 결혼은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모세가 본 ‘불붙은 떨기나무’를 예로 들어주십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곧 하느님과 인간과의 혼인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불은 신성을, 나무는 인성을 상징하며 불은 나무를 태우지 않고 둘은 영원히 한 몸을 이룹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하느님의 존재와 모세오경은 믿었던지라 예수님께서 인용한 출애굽에 나오는 이 예는 그들의 입을 막기에 충분한 논거였습니다.
순결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한 준비입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순결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부부끼리도 순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동정을 바치는 것보다 순결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혼자 산다고 다 순결 한 것도 아닙니다. 순결은 죄 없이 깨끗함을 나타냅니다.
어쨌든 어떤 누구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구원도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임을 잊지 말고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그 분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묵상>
바리사이들은 부활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믿었던 부활은 현실이 그대로 지속되는 부활이었습니다. 부자인 사람은 그대로 부자가 되고, 자식 많은 사람은 저세상에서도 수많은 자녀들을 거느리는 부활이었습니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은 기가 꺾이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실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현실의 최강자인 로마에 복종했고 그 그늘에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부활 사상을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억지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인과 혼인했다면 저세상에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신명기 25장에 나오는 내용을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레비라트(Levirat) 법〔嫂姻法〕으로 알려진 유목 사회의 독특한 법입니다. 형제가 혼인하여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으면 형제 중 한 사람이 형수나 또는 제수를 아내로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을 낳을 경우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후손으로 삼아 혈통을 잇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생활은 이 세상에 속할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세상의 일은 오직 하느님께만 유보되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의 삶입니다. 현실에서 평화와 기쁨으로 살지 못한다면 저세상에서도 평화와 기쁨은 요원한 것이 됩니다.
<그 두 예언자는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1,4-12
나 요한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여기 나의 두 증인이 있다.”] 4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5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