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금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 루가 19,45-48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5-48
그때에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상인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들은 잡화상이 아닙니다. 제사 때 쓰일 물건과 제물로 바칠 동물들을 팔고 있던 이들입니다. 이런 물건과 동물들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것을 가져왔더라도 검사관이 ‘흠 있다고 하면’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사제들에게 미리 검사를 받아 합격한 물건과 동물들을 팔고 있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거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상인들은 내놓고 장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조직을 흔드신 겁니다. 흠 없는 제물을 위한 ‘유통 시스템’을 부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에 관계된 이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악한 조직이 하느님의 ‘카리스마’를 없애려 시도한 것이지요.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누구나 성전에서는 경건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드리고 주님의 힘과 은총을 청하는 곳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이 목적이 선명하지 않으면 잘못 가기 쉽습니다. 주님께서 장사하는 이들을 몰아내셨듯이, 성전 안에서만큼은 세상 걱정과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잘 들리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한 할머니와 오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노인성 난청이 와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기에 때로 글로 쓰기도 하고, 때로 손짓으로 말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증세가 워낙 중해서 보청기를 착용해도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별 효과도 없다고, 그리고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기에 그저 불편함을 참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셔서 제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제 마음을 몹시 흔들어놓았습니다.
잘 안 들려서 불편한 것, 일상적인 의사소통 잘 안 되는 것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노라고,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미사 때 마다 신부님들이 하시는 그 좋은 강론말씀을 제대로 못 들으니 얼마나 마음이 괴로운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성체모시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낙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귀가 잘 들릴 때, 건강할 때, 좋은 말씀 듣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기도도 건강할 때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소리조차도 짱짱하게 들려오는 ‘성능 좋은’ 귀를 지니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 좋은 귀로 매일 선포되는 그 좋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건강하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모릅니다.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령성월을 맞아 존경하는 원로수사님을 초청해 ‘죽음’을 주제로 한 피정강의를 들었습니다. 꽤 오랜 기간의 병고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던 수사님이셨기에,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소중했습니다.
수사님께서 강의 말미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통증이 심해지면, 정신도 집중하기 힘들어지고 그에 따라서 기도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도 건강할 때 열심히 바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 건강할 때 부디 기도 많이 하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성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성전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묵상하고, 되새기고, 기도하는 집인데, 당시 예수님께서 들른 성전은 소란한 시장터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제물을 미리 미리 준비해오면 좋을텐데, 겨우 성전 마당에 와서 제물을 준비하려다보니, 성전 앞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제물로 바칠 짐승을 파는 상인들,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사람들, 환전상들, 고리대금업자들, 야바위꾼들, 소매치기들 등으로 우글거렸습니다.
거룩해야할 성전, 조용히 기도 안에 하느님과 일치해야할 성전이 각종 매매행위로 더럽혀진 것을 보신 예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 뻔뻔스런 상인들을 내쫓으십니다.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우리 신앙인 개인 각자 각자도 어떤 의미에서 성전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마음도 성전 정화대상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기초로 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나만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심으로 가득 찬 우리 마음 역시 성전정화의 대상입니다.
거룩한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질투심, 시기심, 교만, 음행, 사악함, 거짓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은 우선적인 성전정화의 대상입니다.
그토록 좋은 말씀이 선포됨에도 불구하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우리의 불성실한 모습 역시 성전정화의 대상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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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 성전정화
어제 한 수녀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들조차도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수녀님은 요즘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 밖에서 문을 열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고 하면서 그 분을 더 깊이 받아들여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분을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러나 저는 먼저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손님을 모시는데 더러운 방에 모실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수녀님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세상에 오셨고 더러운 구유에 놓인 것처럼 죄가 있는 곳이라도 오실 수 있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저는 세상이나 구유나 그것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유일하게 더러운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뭐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의 가장 기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모님의 예를 들어 주었습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원죄도 없이 깨끗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정상적으로 세상에 오실 방법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받아들이기 전에 성모님처럼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먼저 성찰해야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할 때 항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합니다. 왜 하늘에만 계시고 땅에는 계시지 않을까요? 땅은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로 그 죄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 하늘은 깨끗함을 땅은 더러움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하면서도 우리는 매 번 주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 마음을 하늘처럼 깨끗하게 하려는 마음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다 내어 쫓으십니다. 그러면서 성전이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나의 집’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느님이 사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기도의 집’, 즉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장사꾼들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나 창녀들처럼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할 정도로 교회에서는 좋지 못한 직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짓과 속임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믿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거짓말이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것과, 노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것과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라 합니다. 장사를 하면서 거짓말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겠죠.
마찬가지로 당시 성전 장사꾼들은 사제들과 성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과 엮여 있으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쫓아내니 그와 관계된 이들도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전 지도자들이 이 일로 예수님을 죽이려 마음을 굳히게 된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성모님께서 ‘평생동정’이시어야 하는 이유도 원죄만 없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실 때까지 부부관계를 피함으로써 하느님의 순결한 신부로 남아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첫 조상이 죄를 지으면서 부부관계 안에서도 죄가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녀를 출산하려는 의도로 부부간의 사랑 안에서 행해지는 관계는 죄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죄가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육체적인 즐거움을 느끼려는 잘못된 의도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내 어미가 죄 중에 나를 배었고 죄 중에 나를 나았나이다.”(시편 51,7)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은 죄로 더러워진 마음을 씻기 위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피로 죄를 씻으니 생명의 물, 즉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선 물과 피가 나온 것이 아니라 먼저 피(너희 죄를 위하여 흘릴 나의 피)가 나오고 그 다음 물(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의 물, 성령님)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워진 성전을 보시며 생전 쓰시지 않는 폭력을 쓰십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당신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소원하시는데 우리가 예수님 대신 죄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인 것입니다. 이 분노의 표출은 지옥의 불로 계속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도록 청하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성령을 받아들이고 성령과 함께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이 빨리 우리에게 오시도록 청하게 됩니다.
“성령과 신부(성모님, 교회)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우리들)도 "오소서!" 하고 외치십시오.” (계시 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