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루카 1,26-38
<나는 네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9-15.20
[사람이 열매를 먹은 뒤], 9 주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가장 기분 좋은 초대>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아주 기분 좋은 초대를 받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초대를 받았을 때 가장 기쁘셨습니까?
아마 이런 초대를 받으면 누구나가 다 좋아하시겠지요? 기쁜 마음으로 “예, 꼭 가겠습니다!”라고 응답할 것입니다.
“친구, 동동주를 좀 만들어보았는데, 맛이 기가 막히네. 고향 소꿉친구들도 몇 명 오기로 했는데, 자네도 꼭 와야겠네.”
“고객님, 이번 저희 백화점 감사행사에서 고객님께서 1등으로 당첨되셨습니다. 상품은 초대형김치 냉장고입니다. 꼭 오셔서 상품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제게 가장 좋은 초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지난 가을, 한창 바쁠 때 이런 초대가 오는 바람에 가지 못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좀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물 반 고기반입니다. 팔뚝만한 것들이 던졌다 하면 1초 만에 올라옵니다. 당장 출발하세요.”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그 유명한 장면, 마리아의 'Fiat'(예!)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엄청난 초대이고, 끔찍할 정도로 부담이 되는 초대이고, 그렇게 하겠노라는 응답으로 인해 다가올 고초가 만만치 않음이 분명한 초대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예!”
마리아의 위대한 Fiat(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앞에 참으로 큰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의 Fiat은 우리의 Fiat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의 ‘예’는 많은 경우 선택적인 ‘예’입니다. ‘예’라고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앞뒤좌우를 살펴봅니다. 손익계산을 먼저 따집니다. 이 ‘예’를 통해서 내가 유리할 것인지, 불리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이런 Fiat은 진정한 Fiat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들이 다하는 Fiat이니까요.
진정한 Fiat은 바로 성모님의 Fiat입니다. 고통스러운 길, 정말 가기 싫은 가시밭길이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 주님을 위한 길이기에 기꺼이 길 떠나는 Fiat이야말로 진정한 Fiat입니다.
다가오는 삶의 모든 국면들이나 사건들, 사람들을 거부하지 않고 관대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기꺼이 직면하는 자세가 진정한 Fiat의 자세입니다.
정말 이해하지 못할 일, 억울하기 그지없는 사건들 앞에서도 침묵가운데 그 사건을 하느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에 간직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의도를 파악하는 자세야말로 참 Fiat의 자세입니다.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우리 한국교회의 큰 축일이자 저희 살레시오회의 가장 큰 축일입니다. 바로 오늘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께서 당신 사업의 첫 삽을 뜨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마리아의 큰 신앙, 깊은 신앙, 순수하고 지고한 신앙을 묵상하게 됩니다.
마리아께서는 아무런 토 하나 달지 않으시고 그대로 하느님 측의 제의를 수용하십니다. 물론 한 산골소녀에게는 너무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약속이었습니다.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꿈꾸며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당시 나이 아직 10대인 산골소녀였습니다. 마리아에게 있어 천사의 가브리엘의 예언은 한 마디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습니다.
천사의 탄생예고 앞에 마리아의 심리적인 상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천사의 예고 앞에서 마리아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을 것입니다.
‘이 난감한 사실을 약혼자 요셉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요셉이 이 사실을 믿을 것인가? 요셉이 과연 끝까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혹시라도 요셉이 이 일 때문에 내게 앙심을 품고 딴 생각을 한다면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천사의 제안을 수락할 경우 마리아 앞에 펼쳐질 상황은 암담하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나자렛의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들의 입방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한 가냘픈 소녀가 불러오는 배를 주체 못하고, 또 그것에 대해 똑 부러지게 변명 할 수도 없게 될 상황, 그것이 바로 마리아 앞에 펼쳐질 미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용감하게도 ‘예’라고 대답합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됨으로 인해 그녀에게 다가올 갖은 시련들을 정확하게 예견하면서도 기꺼이 ‘예’라고 응답합니다.
마리아는 오직 하느님께만 신뢰를 두었습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자신의 전 존재를 걸었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평생에 걸친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이제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 새로운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됩니다. 이제 마리아는 그 안에 메시아가 끊임없이 살아 계시는 계약의 궤가 됩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창조 이전에 뽑힌 사람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마리아인가? 마리아도 물었습니다. 왜 접니까?
마리아는 특별한 분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뽑히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려면 특별한 분이셔야 합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떤 면에서 특별하십니까?
하와로부터 오늘까지 마리아처럼 예뿐 여인이 없기 때문입니까?
하와로부터 오늘까지 마리아처럼 성품이 훌륭한 여인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마리아가 진정 특별한 이유는 미모나 성품 때문이 아닙니다.
마치 전국에서 미모도 뛰어나고 성품도 훌륭한 규수들을 불러 그중 가장 뛰어난 규수를 왕비로 간택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분이 인간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인간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 구원자로 보내시는 것이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분도 마땅한 여자가 있으면 그분을 어머니 삼고, 마땅한 여인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수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기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천지 창조 이전부터 있었듯이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분도 창조 이전부터 계획된 것입니다.
창조 이전부터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되실 분으로 뽑히신 분입니다.
이런 면에서 마리아는 특별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실은 마리아만 천지 창조 이전부터 뽑힌 사람이 아닙니다.
역할이 다를 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 다 창조 이전부터 뽑힌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우리는 태어났고 부르심을 받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재를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그리스도 찬가에서 이것을 심오하게 갈파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리아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이들 중에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분으로 선택된 분입니다.
오늘의 축일은 이것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입니다.
원죄 없으신 성모 잉태 축일 - 순종은 믿음이고 사랑이고 깨끗함이다
무더운 어느 날, 중앙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날씨는 무덥고 바람 한 점 없어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선교사 부부는 그때 커다란 나무그늘에서 필립이라는 어린 소년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필립아. 아빠가 시키는 대로 배를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라.” 필립은 그 말에 즉시 순종하며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이리 빨리 기어와라.” 그러자 소년은 자기 손과 발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빨리 기었습니다. 그가 아버지가 서 있는 곳의 절반쯤 왔을 때에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좋아. 이제 일어서서 뛰어와라.” 필립은 재빨리 일어나서 아버지께 달려갔습니다.
“필립아. 뒤로 돌아 나무를 한 번 쳐다보아라.” 그는 돌아서서 자기가 놀던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가 돌아보니 그가 놀고 있던 나뭇가지에는 커다란 뱀이 가느다란 긴 혀를 내밀고는 달려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평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요구에 “왜?”라는 토를 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무엇을 시키든 아들은 그저 따를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나쁜 것을 시킬 리가 없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 순종은 상대를 향한 믿음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선 아담과 하와가 죄에 떨어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하지말라’는 것은 금지된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왜 그건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리고는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하느님께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아담은 하와가 건네는 열매에 이젠 그것을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도 망각한 채 그냥 먹어버리고 맙니다.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지만 더 쉽게 죄에 빠졌던 것은 아담입니다. 첫 두 조상의 죄는 육체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영혼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죄에 오염되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기에 그 육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죄가 ‘원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여러 번 ‘육체를 따라 살면 죽음이 오고 영을 따라 살면 생명이 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인간이 죄에 떨어질 것을 아셨기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 줄 것을 계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 계획은 이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기 전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사제가 미사 때 성혈이 든 잔을 들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나의 피니라.” 라고 말합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성자께서 육체를 취하시어 인간의 죗값을 치르려는 계획이 하느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에게 육체를 줄 어머니가 있어야하는데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라면 이미 육체가 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뽑으신 것처럼 세상 창조 이전에 당신 아들에게 육체를 주시기 위해 죄에 물들지 않게 보존되어진 한 여자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바로 마리아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제 육체를 준비해 놓았으니 세상에 내려가 죗값을 치르는 고통을 당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한 몸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예, 성서에 저에 대해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 제가 갑니다.'"” (히브 10,5-7) 이는 아담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버지께 불순종 했던 것을 보속하기 위한 두 번째 아담의 완전한 순종입니다. 그 분은 하느님인 당신이 왜 인간을 대신해 사람이 되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하라니 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으로 아담의 불순종이 씻겼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죄는 씻깁니다. 그러나 만약 마리아가 성자께 당신의 몸을 주기를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 창조 때부터 계획되어 온 모든 구원 계획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라도 인간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자유는 하느님도 건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원죄가 없으셔서 지성이 완전히 열려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 당해야 하는 고통을 이미 온전히 아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사람이 되어서 당해야 하는 고통을 다 알면서도 ‘예!’ 했던 것처럼, 성모님께도 모든 고통을 보여주시고 그래도 육체를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 고통을 보여주시지도 않고 육체를 청하셨다면 그것은 일종의 사기가 되기 때문에 그 초대는 옳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종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그를 완전히 사랑해 한 몸이 된 두 번째 하와가 되는 어머니의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성모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두 번째 하와도 첫 번째 하와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기워 갚습니다.
첫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불신이고 무관심이고 죄이고 ‘더러움’이었다면, 이 두 분의 순종이 바로 믿음이고 사랑이고 죄를 없앰이고 ‘깨끗함’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깨끗함은 이 순종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겸손한 순종’을 가장 중요한 덕으로 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으로 죄가 왔고 겸손으로 죄가 씻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신교 신자들이 어떻게 한 인간이 원죄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성경에 쓰인 말씀을 통해서 말해주면 됩니다. 성모송 앞부분의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만 외워주면 끝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그들은 죄 때문에 성령님의 은총을 잃게 되었다는 것과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주님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천사의 인사를 보십시오. 성모님은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하시고 하느님과 함께 계십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은총을 나타냅니다. 원죄가 있고서야 어떻게 천사가 이런 인사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나름대로 한국 교회의 수호자 성모님의 ‘원죄 없으심’에 대해 설명해 보았습니다.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결국 우리 신앙의 모델이 누구인지도 명확해 졌으리라 기대합니다.
가톨릭성가 261번 / 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