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마르코 16,15-20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10,8-9
그 무렵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8 “주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따로 가려내셔서, 주님의 계약 궤를 나르게 하시고, 주님 앞에 서서 당신을 섬기며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9 그 때문에 레위인에게는 동족과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다. 그 대신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9,16-19.22-23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20
그때에 15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성소 중의 성소>
오늘 우리는 고국 스페인을 떠나 이역만리 머나먼 동방의 끝 일본에까지 건너와서 강한 선교의지를 불태웠던 16세기 선교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의 생애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을 기억할 때마다 우선 드는 느낌은 "경이로움"입니다. 500여년전 대양을 건너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선박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극동지방까지 다섯 달 이상 걸리던 목숨을 건 선교여행을 수도 없이 계속했던 신부님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께서 반복하셨던 선교여행은 매번 선교여행을 떠날 때마다 생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위험한 여행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선교사들은 선교를 떠나기 직전 유서 비슷한 것을 작성하곤 했답니다.
선교지에 도착하고 나서는 더 큰 문제들 앞에 봉착하기 마련이지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이 낯설고 물 설은 땅, 전혀 다른 언어나 문화, 관습과 음식 앞에서 겪었던 고통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토착종교와의 마찰, 선교지 정부와의 대립이 시작될 때 선교사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하루의 삶조차 제대로 기약할 수 없는 하루살이 같은 삶이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삶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를 두고 칭송이 대단합니다. "선교의 수호자", "사도 바오로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 등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의 위협과 역경을 견뎌내면서 선교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장거리 여행을 감행하였고, 10만 명 이상 되는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킴으로 유명했습니다.
오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의 선교를 향한 강렬한 의지와 그가 거둔 기적과도 같은 결실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 선교 성소는 성소 중의 성소입니다. 해외 성교 성소는 성소 의 꽃입니다. 해외 선교 성소는 성소 여정의 정점입니다.
선교 성소는 성소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성소, 가장 복음적인 성소, 가장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성소,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성소임을 확신합니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 안에 성소 중의 성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이 지니셨던 불같은 선교성소가 활활 타오르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래서 이젠 우리도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그리스도 수난의 부족한 부분 1849년 세관의 검사관으로 일하던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매우 걱정하는 표정으로 집에 들어갔고 조심스레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아내는 오히려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당신이 좋아하는 문학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아마 이 해고가 당신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에요.”그리고 아내는 현금뭉치가 든 작은 가방을 가져와 꺼내 놓으며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혹시나 해서 당신 봉급에서 지금까지 따로 마련해 놓았어요. 당신이 글을 쓸 동안 우리는 이 돈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그 남편의 이름은 나다니엘 호손이고 그가 그렇게 해서 쓴 소설이 그 유명한 ‘주홍글씨’입니다. ‘주홍글씨’나 ‘큰바위 얼굴’과 같은 위대한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것에 어떤 누구도 호손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영광은 아내와 함께 받아야 정당할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무엇을 이루어냈을 때 그것이 누구의 공로인지 정확히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함께 같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도 마찬가지로 부부와 같이 한 몸을 이룹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으로 큰 영광을 받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당신 혼자 하시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함께 협조할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인간의 죄를 위해 모든 보속을 해야 더 완전하겠지만 예수님은 당신 혼자 모든 것을 이루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명확하게 예수님의 보속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 수난의 부족한 부분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골로 1,24)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면 그분의 수난 공로에 동참하는 것이고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기 위해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무엇이 좀 없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행합니다. 예수님은 사실 돌로 빵을 만들고 풀로 물고기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굳이 제자들에게 당신의 기적에 쓰일 무엇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길 원치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당신 모든 일에 참여시킴으로써 당신이 받으실 영광을 우리와 함께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남편으로서 우리에게 당신과 같은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 우리의 내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전교의 수호성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기 위해 수만리를 걸으신 그분의 발과 수많은 사람에게 세례와 고해성사를 준 오른손은 썩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몸이 썩지 않고 승천하신 것처럼, 어쩌면 그분의 수난에 동참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표징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작은 희생들을 바침으로써 그분 수난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가 채우도록 노력합시다. 행복한 사람만이
이 말씀은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선포하지 않은 결과 또는 대가로 불행해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복음 선포를 하지 않음 그 자체로 불행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복음 선포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복음 선포를 하지 않습니까? 선포할 복음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선포할 복음이 없는 사람이 왜 불행합니까? 그것은 복음이 행복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무엇을 줄줄 모르는 사람이 불행한 것과 같습니다.
줄줄 모르는 사람은 줄 것이 없는 사람이거나 줄 것이 있다 하더라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여유란 자기를 채우고도 넘친다고 여기는 마음이지요. 그러니 여유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돈에 여유가 있다 함은 자기 필요를 채우고도 남는다는 뜻이고 시간에 여유가 있다 함은 자기를 위해 해야 할 것 다 하고도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있다는 뜻이고 마음에 여유가 있다 함은 무엇이건 자기에게 부족함이 없고 넘친다고 여기는 것이기에 종합적인 만족이라는 뜻입니다.
여유 없는 마음이 무엇이건 늘 쪼들리는 마음이라면 여유 있는 마음은 무엇이건 언제나 풍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너무 행복한 사람만이 행복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너무 행복한 사람만이 복음을 선포합니다.
쪼들리는 사람은 복음 선포는커녕 아직 자기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시면서 ‘나도 행복하니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하고 말씀하신 것이 대단한 복음 선포가 되었는데 나 너무 행복하니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천주교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보다 복음 선포의 본질이고 오늘 선교의 주보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로의 축일을 지내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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