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 마태오 9,27-31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9,17-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정녕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18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19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20 포악한 자가 없어지고, 빈정대는 자가 사라지며,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모두 잘려 나가겠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야곱 집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더 이상 얼굴이 창백해지는 일이 없으리라.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내 손의 작품인 자녀들을 보게 될 때,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리라. 24 그리고 정신이 혼미한 자들은 슬기를 얻고, 불평하는 자들은 교훈을 배우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 내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구원>
근동지방의 거지들은 끈질기고 집요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짓궂기도 했지만 엄청 성가시게 달라붙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행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심각한 것이었고, 귀찮기에 어쩔 수 없이 빨리 돈 좀 집어주고 그 자리를 벗어나곤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소경 역시 구걸로 연명했던 거지였는데, 줄곧 예수님 일행을 따라 다니면서 구걸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청하는 구걸은 다른 거지들의 구걸과는 질적으로 달랐는데, ‘구원’을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티나 속담에 ‘소경처럼 외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아주 크게 외친다.’ ‘창피하게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는 것입니다. 두 소경은 줄기차게 따라다니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더욱 괴로웠던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고된 여정에 지친 예수님께서 좀 쉬시려고 어느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이 두 소경은 그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와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이 두 소경에게 예수님의 측근들은 화도 엄청 냈을 것입니다. 그러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는 훨씬 완강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에게 다가온 일생일대의 기회, 마지막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녕 한 번 새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한번 눈을 떠서 광명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두 소경의 간절한 염원을 예수님께서 눈여겨보십니다. 무엇보다도 꼭 이루어지리라 믿고 목숨 걸고 달려드는 두 소경의 단순하지만 확고한 신앙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마침내 그들의 오랜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새 삶을 선물로 주십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는 이 두 소경 말고도 수많은 다른 소경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님께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던 소경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그저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냥 지나쳐 버린 소경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 소경은 간절히 원했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진실로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믿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새 삶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오늘 두 소경이 치유되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당신 백성들을 향해 베푸시는 자비와 은총의 표현은 너무나 각별하고, 은혜로운 것이라는 사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 사람을 살려놓고 보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서든 건져내주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병고에 허덕이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서든 병고에서 해방시켜주려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만나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서 생명의 길로 되돌리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분은 정녕 생명의 하느님이셨습니다.
더욱 은혜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총, 자비, 구원은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내 눈앞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청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라보는 눈앞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구원체험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다른 예언자나 지도자들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좀 기다려보십시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예약부터 하십시다. 일주일 후에 만납시다, 라고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 앞에서, 바로 내 안에서 나를 살리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긍정의 힘 냉동 창고에서 일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이 청년이 물건을 냉동 창고에 옮겨 놓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그만 창고 문이 잠겨버렸습니다. 냉동 창고가 안에서는 열 수가 없게 돼 있었고, 동료들도 다 퇴근하여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냉동 창고 안에 갇혀버린 청년은, 결국 다음 날, 얼어서 동사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밤 동안 청년이 바닥을 긁어서 쓴 글에는 ‘춥다 너무 춥다, 나는 냉동 창고에 갇혔으니 곧 얼어 죽을 것이다.’그러나 사람들이 동사한 그 청년을 발견했을 때는 냉동 창고 코드가 빠져 있었고 냉동 창고는 작동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청년은 자신의 생각만으로 얼어 죽어 버린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되고야 만다는 좀 슬픈 이야기이지만 좋은 예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청년 자매에게 전화가 왔는데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잘 됐다고 하면서 잘 사귀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애인을 사귀게 되면 항상 행복과 두려움, 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 자매도 좋기는 한데 두렵다는 것입니다. 또 잃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겠지요. 저는 이 말을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두려워하면 그 두려운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우리나라 유행가에도 이런 가사가 있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슬픈 예감을 하기 때문에 그 예감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하려면 우리 안에서 안 좋은 예감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믿음은,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 안에 이미 그 믿음을 실현시키는 힘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먼 두 사람이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묻자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이 말씀 안에는 믿으면 그 믿는 것을 당신이 실현시켜주시겠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믿는 것이 곧 현실입니다. 따라서 원하기만 하면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전능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빛이 있어라 하니 빛이 생기고 해와 달이 생겨라 하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마태 17,20)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당신의 능력도 우리에게 심어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우릴 사랑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만을 확실히 믿는다면 현재 좀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엔 다 잘 될 거야!’라는 믿음이 솟아날 것입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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