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8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12-20)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ot walk in darkness
말씀의 초대
신앙이 깊고 아름다운 여인인 수산나를 재판관인 두 원로가 음욕을 품고 탐하려 하였다. 이런 욕심이 실패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수산나를 사형에 처하게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니엘 예언자를 통해 진실을 밝히시고 수산나를 구해 내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의 빛으로 계시하신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이를 믿지 않았고 오히려 증거를 요구하며 적개심을 품는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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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하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비추십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밝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광합성 작용’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광합성 작용이란 식물이 엽록소에서 양분을 만드는 작용입니다. 뿌리를 통해 빨아들인 물과 잎에서 받아들인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하여, 빛을 받아 양분과 산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분은 성장에 쓰이고 남는 것은 뿌리나 열매, 줄기 등에 저장됩니다. 산소는 숨구멍을 통해 배출되어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곧 식물은 빛을 통해 땅속에 있는 물과 사람들이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영양분과 숨 쉬게 도와주는 산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도 우리 안에서 광합성 작용을 일으키십니다. 곧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 안의 인성적인 요소(물)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게 되는 부정적인 요소들(이산화탄소)이 우리를 살리는 영양분으로, 다른 이들을 살리는 사랑의 힘(산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은 빛을 받으면서 하늘을 향해 성장하게 됩니다. 태양 빛이 많은 열대 지방일수록 식물은 높고 크게 성장합니다. 그 반면, 태양 빛이 적은 곳의 식물은 가늘게 성장할 따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서 우리는 하늘 나라를 향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 저희를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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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주제는 ‘빛이신 예수님’입니다. 그 빛을 받으면 삶의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무엇이 우리의 생활을 우울하게 하는지요? 먼저 밝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밝은 사람은 멀리서부터 ‘밝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가 등장하면 주변이 환해집니다. 말을 안 해도 사람들은 편안한 기분이 됩니다.
반대로, 나타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피하려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집니다. 그를 생각하면 왠지 기분이 흐려집니다. 되도록 그의 곁에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에게만 있는 현실이 아닙니다. 동료들 가운데에도, 아랫사람들 가운데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자신은 어느 편에 속하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합니다. 빛의 사람은 타인에게 빛을 줍니다. 남에게서 빛을 빼앗고 있다면 어찌 ‘빛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는지요? 죄를 짓는 직업은 없습니다. 그건 모두 ‘세상의 판단’일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건, 빛을 주고 있다면 빛의 자녀인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주님께서는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빛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삶을 ‘밝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은 조금씩 사라집니다. 완벽한 사람은 오히려 부족한 듯이 보이는 법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밝은 사람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칭찬받기를 바랄 때
-김귀웅 신부-
“주님, 저로 하여금 이웃의 칭찬에 늘 주의하게 하시어 그것을 즐기는 일이 없게 하소서. 어느 칭찬의 말에도, 비판의 말에도 얼굴을 간사하게 내밀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람으로 의연히 서 있게 하소서. 주님, 이웃의 칭찬이 저를 조금도 높여주는 것이 아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칭찬으로 헛되이 들뜨는 일 없이 하느님이 주시는 평온함 속에서 조용히 미소 짓게 하소서. 주님, 저로 하여금 들판의 꽃 하나가 되게 하소서. 들꽃들은 사람들의 칭찬을 위해 피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누가 꺾으면 더욱 진하게 향기를 풍기는 들꽃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무도 몰래 다만 하느님의 칭찬을 받으며 영원의 바닷가에 닿게 하소서.” <칭찬받기를 바랄 때>라는 김영수 시인의 글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도 당당하게 울려 퍼집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우리 스스로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하느님 눈치만 볼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아무 상관 없이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아닌, 다만 하느님 칭찬만 받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 구인회-
오늘 복음 말씀은 기쁨과 희망을 안겨준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제아무리 성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어도 바로 내일 일어날 일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어둠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이어가는 불쌍한 우리를 세상의 빛이신 주님께서 부르시며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나를 따르라. 너희는 어둠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신다. 얼마나 큰 은혜인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이 가시는 대로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생명의 빛에 이를 수 있다니 이 아니 기쁠 수 있는가.
우리는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한번 일이 잘 풀리면 주님께 감사하기보다 스스로를 과신하고 마치 제 공로인 듯 오만해지며 굽힐 줄 모르고 완고해진다. 그러나 도가 넘칠 때면 결국 허를 찔려 상처를 입고 꺾이고 마는, 그래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확인하는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러다 보면 자신감을 잃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쉬워진다. 또 한편 아예 사람들 틈에 끼는 것조차 꺼리기도 하여 무인도에 홀로 사는 이처럼 고립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를 생명의 빛으로 이끄시는 분이다. 한눈 팔다 이정표가 되어주는 주님을 잃고, 어둠에 갇혀 길을 잃은 때도 동요하지 말자. 우왕좌왕하며 무조건 더듬어 움직이면 균형을 잃고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인내를 가지고 어둠과 침묵의 의미를 묵상하며, 주님께서 불러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때를 기다려 보자.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반영억신부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혀줍니다. 죄와 악으로부터의 어둠을 비추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빛을 따라가면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은 빛을 피합니다. 결국 스스로 죽음의 심판을 받고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육적인 욕망을 채우려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라는 것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현혹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논리나 가치에 해박한 지식으로 종교를 ‘비과학적’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 것에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절대자 하느님은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만을 쳐다보는 한계성 때문에 결국 하느님 아버지도 그 아들 예수님도 알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무지합니다.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세상 것에만 매여 있으면 세상 것밖에 다른 것이 보일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고’알고 계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왔고, 아버지 하느님께로 갈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아버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 세상에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상의 것을 이 세상에 옮겨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 천상것을 보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잠시 세상 것에서 한 발 물러서서 하늘의 신비를 바라보면 모두를 얻을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셨기에 우리의 생각을 바꿔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에 마음을 두면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일이 잘되고 못되고는 우리의 결단과 실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생명을 가지고 기다리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내 것을 고집하거나 세상 것만을 쳐다보는 일은 없기를 희망합니다.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하오니 저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인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세상에 살면서도 여기서부터 천상의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