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들은 살 것이다” (요한 4,43-54)

2013. 3. 11. 오후 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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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1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예수께서 “집에 돌아가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 하시니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요한 4,43-54)
  

 Jesus said to him,

"You may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believed

what Jesus said to him and left.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창조를 약속하신다. 그때에는 불행한 죽음이나 고통이 사라지고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카나에서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신다.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신 것이다. 이는 왕실 관리가 높은 지위에도 겸손하게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의 거절에도 끝까지 자비를 청하는 믿음을 보여 주었기에 가능했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우리가 하느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이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테르툴리아누스 교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을 이기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담긴 기도는 하느님을 움직이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인 왕실 관리와 예수님의 만남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왕실 관리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지체 높은 사람입니다. 그 반면, 예수님께서는 볼품없는 목수의 아들이실 뿐입니다. 그럼에도 왕실 관리는 예수님을 만나러 카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내려가지 않고 올라갔으며, 예수님을 보고 올라오시라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시라고 한 것은 왕실 관리 스스로 자신이 높지 않고 예수님께서 높은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청을 다음과 같이 거절하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단호한 거절에도 다음과 같이 간청합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청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 아이를 살려 주셨습니다. 곧 그의 믿음 깊은 기도가 예수님을 움직이시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하게 바치는 기도는 주님을 움직이시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항구하고 겸손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

 

 우리가 가장 많이 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사랑일 것입니다. 그런데사랑이라는 말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면 막연해집니다. 사랑에 대한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왔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곧 생각’()에 헤아릴’()을 써서상대방을 생각하고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풀이가 복음적 사랑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이런 예수님의사량’(思量)에서 나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고 헤아리는 연민의 마음에서 기적의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런 사랑은 우리 믿음의 응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받고자 하는 믿음의 크기만큼 그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들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왕실 관리의 모습이 좋은 예입니다. 왕실 관리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단 한마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는, 두말없이믿고서왔던 길을 돌아갑니다. 그의 단순하고 확고한 믿음이 아들을 살렸습니다.
믿음은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 크고 비어 있을수록 하느님의 사랑의 은총은 쉽게 작용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오히려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사량’(思量)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


<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 요한 4,43-54

 

구원을 부른 고통
반영억신부
왕실의 한 관리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앓아 누웠습니다.
그러자 그 관리는 예수님께 쫓아가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주님,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4,48-49). 하며 사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거라. 네 아이는 살아날 것이다는 예수님의 응답을 얻어냈고 그 시간에 아이는 나았습니다. 


왕실의 관리가 예수님께 사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들 때문입니다. 아들의 고통이 관리를 사정하게 했고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면박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네 아이는 살아날 것이다 는 말씀에 두 말 없이 믿음을 걸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살아났고 온 집안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고통이 하나의 시련이었지만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왕실의 관리의 믿음이 만나서 아이는 살아났고 온 집안이 믿게 되었습니다(요한4,53).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주십니다(야고5,10).

믿음 없이 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제서 밤을 지새가며 기도하고 부산을 떠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매달리면 주님께서 그 마음을 헤아려 주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채워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실의 관리가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가시길 원했지만 예수님은 한마디 말씀으로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낫게 해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지혜16,12).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4,12-13).

그러므로 내 방식으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심을 믿고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 하십시오(로마12,12). 아무것도 걱정 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필리피4,6-7). 

고통은 결코 죄의 벌이 아닙니다. 한편으로 하느님의 섭리요, 은총의 기회입니다. 또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부활의 기쁨으로 끝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꼈을 때는 이제 다가올 부활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모두가 다 귀한 것입니다. 고통 이라할지라도....이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자 하시는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아듣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더욱 튼튼하여지고 아름다워지길 빕니다. 우리는 믿음의 특권에서 오는 고난의 특권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곧 영광의 특권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었다

- 김상태신부-

 어느 날 신자 한 분이 수도원으로 영적 상담을 하러 오셨다. 상담을 마치고 나는 그분한테 좀 더 자주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분은 이런저런 일로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등한히 했다. 그분이 얼마 전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다. 검사 결과 고혈압과 당뇨 증상이 발견되어 의사는 식이요법과 운동을 권유했다. 그분은 그날 저녁부터 당장 음식을 절제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분은 의사가 육체의 병에 대해 의학적 수치와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한 것은 믿었지만, 사제가 영적 병의 치유를 위해 권유한 말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서 하신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라는 말씀만 믿고 카파르나움으로 돌아갔다. 그 관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결과를 보지 않고도 믿었다. 그는 믿음을 통해 아들의 병을 치유받았을 뿐 아니라 온 집안이 믿고 구원을 얻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다. 우리는 육체의 병을 고치는 의사의 말은 믿고 따르면서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사랑 때문에

- 황인수 신부-

 

제 고향 마을에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스무 살 무렵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늘 잊지 못하는 그분은 산속에 있는 아들 무덤에 가 앉아 계시는 일이 많습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도 있지만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자식의 생명이 곧 나의 생명과 같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병으로 죽게 된 아들 때문에 예수님께 와서 함께 가 주십사 간청하는 카나의 고관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누구나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지요. 가끔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여자 친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그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엄마가 아이에게 생명을 준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지요. 친구들의 얼굴에는 조금씩 주름살이 늘어가고 점점 더 나이 드는 티가 나는 데 비해 아이들은 점점 더 예뻐지고 생기 있게 자랍니다. 자식이 생명을 피워갈수록 부모는 기쁩니다. 그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생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부모는 하느님께 달려갑니다. 우리 생명의 참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카나의 고관을 예수님께 달려오게 만든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고 예수님이 그 고관의 아들을 살려주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나를 구해 주셨고 지금도 돌보아 주시는 그분께 의탁합니다. 아멘.

 

복음에 등장하는 왕실 관리는 아마 헤로데의 친척이었을 것입니다. 당시로는 귀한 신분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세속의 기준에 얽매일 분이 아니십니다. 지위가 높든 낮든누구나 소중히 맞아 주십니다. 당신을 해치려는 자들에게도 따뜻함으로 다가간 분이십니다.
왕실 관리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아들이 죽어 가니, ‘어서 가시어낫게 해 주십사고 간청합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짐짓 그를 시험해보십니다. 그러나 관리는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변함없는 믿음을 드러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입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자세는 은총까지 좌우합니다. 관리는 말씀을 받아들이며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종들을 만나지요. 그러고는 아들이 나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놀랍게도 그 시간은 주님께서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셨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은 사람입니다. 그분께 나아가면 자신의 아들이 살아날 것을 굳게 믿은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순수한 믿음이 아들을 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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