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요한 3,22-30)

2013. 1. 12. 오전 6:45:57

글자



2013
1 12일 주님 공현 후 토요일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 3,22-30


 
말씀의 초대
요한은 그의 서간을 마무리하며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기도하여 참생명을 얻기를 권고한다. 단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죄를 지은 형제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다가오는 것에 비유하였다. 하느님의 백성이 신부요,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는 신랑이다. 요한의 이러한 증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새로운 메시아로서 혼인 잔치의 시대를 여셨다는 사실이 드러나게[공현] 된 것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세례자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어느 주교의 강론 가운데 한마디가 기억납니다. “저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자신은 더욱 작아지도록, 예수님께서는 더욱 커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생활을 10년, 20년, 30년, 이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예수님께서 더욱 커지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요한 세례자는 그러한 의미에서 참된 신앙인의 모범이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작아지고, 예수님께서 커져 가시는 것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기쁘다고 합니다. 그는 진정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긴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인공이 되시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면서,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주면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가 바로 오늘 복음에서 보여 준 요한의 마음가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리 때문에 ‘어정쩡한 삶’을 살고 있는지요? ‘저 자리는 내가 가야 한다.’ ‘저곳은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다.’ 하지만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과정을 극복했습니다. 그러기에 ‘그곳’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비운 요한은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실제로 ‘모든 자리’는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였기에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큰사람입니다. 조금만 낮추면 ‘큰 그릇’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 그것을 외면합니다. 겸손을 잃기에 ‘주어진 은총’도 잃습니다. 결과는 자리에 ‘연연하는’ 옹졸함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추한 자아로 늙어 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소유는 그분께서 주셨기에 있습니다. 지식도, 건강도, 행복도 주셨기에 있습니다. 이를 안다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자세가 넓은 마음입니다. 큰 그릇의 사람입니다. ‘왜 내가 이래야 하나?’ 한탄만 한다면 삶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달이 더욱 밝으려면 

반영억 라파엘 신부

“달이 더욱 밝으려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만큼 흐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증거되어야 할 예수님 앞에서 증거하는 자로서 한 없이 작아졌습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등장으로 자기의 할 임무를 다 하였기에 예수님과 함께 나누는 자기의 기쁨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빗대어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비유합니다. 신랑 친구의 역할은 당시 혼인 잔치가 잘 이루어지도록 이것 저것 챙기며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주인공이 아니라 잔치 뒤편에서 묵묵히 보조하는 역할입니다. 그 일에 충실한 사람이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등장에 질투를 하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자신이 물러설 때가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물러선다는 것은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스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 때를 잘 아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못해 추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끝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이즘 안에서 회개의 세례는 공식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요한은 세례를 통해 많은 사람을 회개의 길로 이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몰려들었고, 그로 인해 얻은 명성은 요한의 제자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을 부추겨 주었습니다’(박병규).
이때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나타난 예수라는 인물에게 몰려가고 있으니 요한의 제자들은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스승인 요한에 대한 애착은 예수라는 참된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안에서 요한은 자기의 있어야 할 자리와 역할을 잊지 않았고 신랑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요즘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는 방법과 시기를 놓고 고민중이랍니다. 무궁화대훈장은 대한민국 최고 훈장으로, 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 전·현직 우방국 원수 및 배우자에게 수여한답니다.
국무회의에서 심의하고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기 때문에, 대체로 그동안 대통령은 취임 직후 자신이 직접 수여를 결정하고 훈장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백성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 스스로에게 훈장을 주고 떠나려 한다니 그런 지도자가 우리나라를 대표했다는 것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거기다 현직 대통령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자신의 친형을 비롯하여 권력형 비리자와 측근. 친인척을 대상으로 특별사면을 검토한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잘 아는 지도자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례자 요한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가 완성되는 순간에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신림동, 장충동>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자 세례자 요한은 "마지막 증언", 다시 말해서 "고별사"를 남기고 인류구원사의 전면에서 사라집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러한 고별사를 하게 된 배경이 있는데, 소위 "세례 원조 논쟁" 때문이었습니다.


신림동에 가면 떡볶이 집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장충동에 가면 돼지 족발집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밀집되어 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상당수의 음식점 주인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가 "내가 원조"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인 심리 근저에는 원조에 대한 집착이랄까 애착심이 깔려있는 듯 합니다.


세례자 요한 시대 당시 "세례!" 하면 요한이었습니다. 당연히 세례의 원조는 요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까지 그냥 요한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운동, 갱신운동, 자정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러한 운동은 당시 유다 백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론 세리와 창녀들까지 요한에게 찾아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활동을 개시하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가만히 보자 하니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슬슬 속이 끓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꼭지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스승 세례자 요한은 요즘 손님이 없어서 파리를 날리고 있는 반면 예수님네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질투심과 분노로 가득 찬 나머지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한때 잘 나가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세례자 요한과 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안드레아를 비롯한 중요 인사들마저 세례자 요한 당 사무국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예수님 당으로 입당하는 판국이었습니다.

찬밥 신세가 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갑자기 쇠락해져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여기에 대해서 속수무책인 스승의 태도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세례자 요한은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던집니다.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존경하는 송봉모 신부님의 해석에 의하면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쇠락도 예수님의 흥성함도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지녔다면 그것은 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원조, 영원하고 참된 원조는 오직 한분 주님뿐이십니다.

우리가 찾아갈 때 마다 단 한 번도 손해 보지 않게 하시는 분, 찾아갈 때 마다 맛 갈지고 정성어린 음식, 영양가 만점인 음식을 주시는 주님,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런 표현까지 쓰면서 주님이야말로 원조중의 원조, 마지막 원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고 계시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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