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요한 1,19-28)

2013. 1. 2. 오전 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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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일 수요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오늘날의 터키 카파도캬) 체사레아의 성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부모와 조부모, 누이 마크리나, 동생 니사의 그레고리오 주교와 세바스테아의 베드로 주교가 모두 성인이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 성인은 학문과 덕행에서 특출하였다. 370년 무렵 체사레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의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따르고 있다. 성인은 379년 무렵 선종하였다.
그레고리오 성인 역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학문과 웅변이 뛰어났으며, 이단을 물리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인은 390년 무렵 선종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요한 1,19-28)

말씀의 초대

소아시아 공동체에 이단자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부인하였다. 요한은 이단자들 때문에 신앙의 혼란에 빠진 신자들에게 처음부터 간직해 온 진리의 말씀에 항구하기를 촉구한다(제1독서). 사람들은 요한 세례자야말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일 뿐이요, 메시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복음).

☆☆☆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면 그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곧게 하는 이라고 말한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만한 가치조차 없는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수행하는 사명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복음).

오늘의 묵상

요한 세례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구세주로 추앙받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자신은 주님의 길을 곧게 내도록 백성에게 촉구하는 ‘광야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구세주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요한 세례자는 진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스갯소리 중에 ‘백마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백마를 탄 왕자를 보면서 너무 좋아 환호하고, 사랑의 눈길도 보냅니다. 그런데 왕자를 모신 하얀 말 녀석이 착각을 합니다. 이 모든 환호와 사랑의 눈길을 자기에게 던지는 것으로 말이지요. 이런 백마와 같은 착각에 빠지는 사람이 바로 ‘백마병 환자’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백마병’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주위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한 세례자의 자기 성찰은 우리에게 일러 주는 바가 큽니다. 우리 또한 자신을 잘 성찰하여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

사람들은 흔히 샛별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별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새벽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새벽별은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별이 아니라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별이 하나둘 사라질 때 밤하늘을 지키다가 마침내는 붉은 해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말없이 사라지는 별이 새벽별입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을 6월 24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가장 길었던 낮이 짧아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탄생 시기는 밤이 가장 길었던 동지에서 낮이 점점 길어지는 때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도 자신의 탄생 시기가 갖는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앞서 닦아 놓고 자신은 점점 작아집니다. 많은 사람이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욕심이 생길만도 한데, 오히려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심지어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하며 스스로 낮춥니다.
세상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해에게 말없이 자리를 내어 주는 새벽별 같은 사람, 끝까지 변하지 않고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사람,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며 남에게 공로를 돌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게 바뀔 수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은 불확실한데이터로 남을 비판합니다. 빈약한 자료로 이웃을 판단합니다. 그러면서도 잘 알고 있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상대가 알려진 사람이라면 더욱 심합니다. ‘잘 모른다는 말은 여간해서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알게 된 정보이건만 내색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이 자신을 낮춥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이들은 고개를 듭니다.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못 알아준다고 서운해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알이 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설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숙이고 싶어도 못 숙입니다. 알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평소 단식하며 절제했던 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르면한 발자국물러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송구스러운 분이 없는지요? 그런 분을 알고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리스도로 착각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세례를 베풀고, 죄를 용서하는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하느님의 힘이 전해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가 그리스도로 대접받고 싶어 합니다. 영적 능력이 조금만 있어도 사람들 위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해서 조직을 이루며 분가하는 것이 신흥 종교의 모습입니다
.
그러나 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빠진 것은 그의 세례 때문이었습니다. 요르단 강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죄가 용서된다고 하니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렇게 하니까 죄 사함의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요한을 메시아로 착각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요한의 말과 행동에 힘을 실어 주셨던 것이지요. 강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에게 죄 사함의 느낌을 선물로 주셨던 겁니다
.
요한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착각했더라면 더 이상 성경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의 본래 위치를 제대로 보는 행동입니다. 재물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홀히 대하면 금방 불쾌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한 삶은 축복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요한의 처신과 자신의 태도를 비교하며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는 소리’>

 -양승국신부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더불어 그가 벌인 세례운동은 당시 범국민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다른 거짓예언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 거침없었으며 쌍날칼보다 더 날카로웠습니다. 때로 그 칼끝이 부패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할 때면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뒤가 구린 지도자들과는 달리 세례자 요한은 아무리 뒷조사를 해봐도 티끌 한 점 구린 구석이 없었습니다. 청렴결백했고 그로인해 당당했으며 부패한 권력자들 앞에서 꿇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혹시나 세례자 요한이 오시기로 한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세례를 통한 전 국민적인 정화 운동에 겁을 집어 먹은 유다 최고 의회는 세례자 요한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 세례자 요한을 취조합니다. 취조과정에서 놀랄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조사관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요?”라고 묻지도 않습니다. 그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는데, 세례자 요한은 펄쩍 뛰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메시아가 아닐까, 의혹은 품는 것조차 송구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도 꺼내기 전에, 비교 자체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기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며 서둘러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향한 종으로서의 충실함과 충직함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을 누구요?”라는 거듭된 질문에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게 자신의 신원을 밝힙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너무나 겸손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아의 위엄과 영광에 비하면 자신은 정녕 아무것도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나란 존재는 그저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벌써 모든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하기 시작합니다.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좀 더 각광받고 구세사의 무대 위해 완전히 자리 잡도록 철저하게도 자신을 감춥니다.

선구자로서, 예언자로서, 종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거칠지만 소박하고 꾸밈없고 거짓 없는 세례자 요한의 삶 앞에 갖은 겉꾸밈으로 요란한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참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위해 연기처럼 사라지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 앞에 어떻게 해서든 한번 드러내 보이려고, 있어 보이려고 애를 쓰는 우리들의 가식적인 삶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너의 모습

- 김귀웅 신부- 

연수 중에 만난 안나 씨가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1남 1녀를 두었는데, 딸은 아무 어려움 없이 잘 키웠답니다. 자기가 할 일 성실히 해나가고, 부모 속 썩이는 일 없이 온순하게. 그런데 아들은 사춘기를 무척 힘겹게 지냈답니다.
컴퓨터 오락에 빠져 지내고, 반항하고, 가출하고….
너무 힘겨워 “이렇게 사느니 너랑 나랑 같이 죽어 버리자!”고 말했을 정도였답니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던 아들이 어느덧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갔다 와서는 완전히 달라졌답니다. 의젓하고 대견스러운 모습으로요.
남들 배려할 줄 알고, 자기 희생하는 것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말 한마디도 듬직하게 하더랍니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엄마로서 깜짝깜짝 놀란답니다.
얘가 예전에 속 썩이던 바로 그 아들이 맞는가 싶답니다. 아무 문제 없던 딸과는 비교가 안 되는 커다란 기쁨을 아들을 통해서 누리고 있답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고통인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는 요한의 말처럼 그 사람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숨어 있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내 앞에 서 있는 그 사람 안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모습으로 서 계실 것입니다.

 

빛을 부른 광야의 소리

-원영배 -

4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급히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임종을 미처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얼굴에서 호흡기를 떼고 망연히 서 있는 우리 가족을 호스피스 봉사자가 곁에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사람 몸의 감각 중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청각이니 아버지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함께 기도하자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가족은 슬픔을 누르며 비로소 한 마디씩 아버지께 평안히 가시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간 마지막 순간에도 소리는 남아서 긴 여운을 남긴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세례자 요한은 빛이신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몫에 기꺼이 투신했습니다. 그의 태도는 겸손하면서도 자신보다 더 크신 분을 알고 그분을 알리려는 확신과 자신감이 넘칩니다. 유다인들은 요한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그들의 속된 기대치와 의심 그리고 섣부른 판단 어디에도 그의 신원을 알아 볼 자리가 없다고 요한은 단호하게 밝힙니다.
유다인들은 편견과 통념에 갇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시어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아침을 기다리며 밤새워 깨어 있던 목동들과 멀고 험한 길을 마다 않고 진리의 빛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빛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요한이 오래전 떠났어도 요한이 외친 광야의 소리는 남아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 환희의 광채를 불러옵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날, 영원한 빛을 향해 가시라고 귓전에 들려드렸던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우리 자신도 주님의 빛만을 바라보라고 세상에 외치는 소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 합창은 희망의 메아리가 되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주제를 아는 사람

반영억라파엘신부 

요즘 대통령당선인에 의한 인수위원들이 임명되고 그에 따른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옵니다. 깜짝 인사니 그 사람은 아니라는 등등.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덕이 있는 지도자가 그리운 세상입니다. 인기는 없지만 묵묵히 자기 위치를 지키며 해야 할 일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기 높은 대통령이 아니라도 고집 부리고 ‘말귀 안 통해 어렵다’고 투덜대는 지도자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귀가 안 통하면 통하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지 그 탓을 남에게 돌리고 상대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의사소통은 더욱 어렵게 될 것입니다. 가장이 자식의 부족한 탓만 나무라고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생각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이미 가장으로서의 덕이 없는 것입니다.
최고 지도자부터 그 아래 지도자들까지 자기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분별력 있는 처신을 할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대사제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의 신분을 알고자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였던 같습니다. 그만큼 대중에게 끼친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을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하고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요한은 이미 사람들이 자기를 그리스도로 잘못인식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초점을 둡니다.
요한은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인기가 높아지면 자기를 뽐내고 싶은 마음이 더해질 텐데 요한은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아를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세상이 그에게 온갖 존경과 관심을 표명할 때, 그는 그런 세상을 향해 과감하게“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7)고 고백하였습니다.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분별력 있는 지도자 입니다.
‘나’로 가득한 세상을 하느님의 세상으로 바꾸어 가는 사람, 세상 안에 하느님의 뜻이 가득 차게 하는 사람의 몫을 해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몫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맛들인 사람은 자신의 인기를 과장하고 자기가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가 아니면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떠벌립니다. 잠시 잠깐 백성의 심부름꾼이 된 사람들이 오히려 모든 것을 차지한 양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을 힘들게 합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없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분수를 압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을“하느님의 손에 쥐인 작은 몽당연필” 이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언제나 진실한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보다는 남을 배려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랑하려거든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자랑하고 하느님 앞에 자기 분수를 알고, 주제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 바실리오는 말합니다.“여러분에게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랑과 희망을 하느님께 두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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