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르코 6,45-52)

2013. 1. 9. 오전 5:55:42

글자


 

2013 1 9일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르코 6,45-52)
When they saw him walking on the sea,
they thought it was a ghost and cried out.
They had all seen him and were terrified.
But at once he spoke with them,
“Take courage, it is I, do not be afraid!”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신 분이시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 가운데 온전히 머무르신다. 절정의 사랑을 보여 주신 예수님께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고백하는 믿음 역시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이다(제1독서). 물은 성경 안에서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어둠 속에서 물 위를 걸으시는 모습은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미리 드러내는[공현] 사건이다. 이로써 마르코 복음사가는 빵의 기적이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사명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복음).

☆☆☆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체험한 요한 사도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고 선포한다. 하느님의 이 사랑 안에 머무르면 하느님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두려움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우리에게서 사라진다(제1독서).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배를 젓다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하고 두려워서 비명을 지른다.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기 전까지 두려움은 계속된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멎고 평화가 깃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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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어릴 때의 일입니다. 밤에 잠을 자다가 갑자기 볼일이 마려우면 화장실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 고민했습니다. 화장실이 마당 한쪽 구석에 있어서 겁이 났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어머니를 깨웠습니다. 어머니는 함께 일어나 화장실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고, 때로는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어머니를 깨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저를 보호해 주는 어머니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어머니와 같은 분이십니다. 살다 보면 험난할 때도 있고, 칠흑 같은 어둠의 시기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당장 절박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 연줄 등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 어두운 밤에 화장실을 다녀오도록 용기를 주는 어머니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의 인생길을 보살펴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밤에 호수를 건너다가 풍랑으로 말미암아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노를 젓는 기술이나 호수의 특성에 대한 지식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이 없었으므로 예수님을 보고서도 유령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거센 풍랑을 만났을 때 어느새 우리 곁에 나타나시는 그분을, 그분의 동행을 의식합시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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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산다는 것이 힘이 듭니다. 몰아치는 폭풍우가 두렵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바람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노를 저어 보지만, 자꾸만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풍랑은 더욱 거세지고, 저의 시름은 깊어만 갑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하느님 앞에서 하소연하듯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업의 실패,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함,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갑작스럽게 엄습해 온 질병 등, 어느 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폭풍 같은 일들이 우리 앞에 닥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것처럼 모든 것이 답답하고 두려워집니다. 이렇게 우리 삶이 질식할 것 같은 어둠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인생의 ‘어둔 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복음의 핵심 말씀입니다. 어둠과 폭풍우는 시간과 함께 지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이 말씀을 붙잡고 우리 삶의 어둠과 폭풍우를 견디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말한 영성의 ‘어둔 밤’처럼 이런 시험기를 통하여 우리 삶은 정화되고 더 깊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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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호수 위를 걸어가십니다. 이 모습에 제자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유령이 걸어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물 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분께는 아무것도 아닌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힘을 받으면 누구나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의 힘을 받으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야고보 씨는 술을 마시면 자주 필름이 끊어집니다. 그때마다 가족을 괴롭혔고, 이웃에게 창피를 당했습니다. 몇 번을 끊으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알코올 중독 클리닉을 찾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침내 포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서 ‘103위 성인 호칭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내심 끌렸습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을 정하고 103일을 기도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술을 끊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가족을 괴롭히지 않게 해 달라고 눈물로 청했습니다.
이제 그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마시고 싶을 때는 순교자들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힘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못하는 일을 은총은 하게 합니다. 세상은 할 수 없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는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 

아무나 물 위를 걸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나 위험 속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을 돌이켜 보면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섰던 일, 알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던 일. 이러한 일들을 가만히 돌아보면 모두가 기적이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인 줄 착각합니다. 스승의 능력을 망각한 것이지요. 우리 역시 행복할 때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관계가 꼬여 갈 때에는, 하늘에 불평하고 인연을 원망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착각하는 제자들에게 화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약한 마음을 아셨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화내지 않으십니다. 부족한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죄의식을 너무 많이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언제라도 다시 일어서며 살아야 합니다
.
인생은 물 위를 걷는 행위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잡아 주지 않으시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그분의 힘을 얻어야만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행복의 근본은 믿음에 있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 이건복 신부-

 어느 날 제가 있는 성지의 발전을 위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는 형제님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가 집을 새로 지었는데 밤마다 헛것을 보며 힘들어 한다며 집을 축복해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주 멋있게 잘 지은 집이었고 세속적으로도 좋은 집터라고 합니다. 마음이 넉넉한 집주인이었지만 자신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인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물론 신자가 아니기에 오해하지 않도록 가톨릭에서 하는 집 축복 예식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 뒤 간략하게 집 축복을 해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함께 사십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믿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후에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안부를 물어보았더니, 이제는 아주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 받았습니다. 아직 그분한테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신앙이 있다거나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받아들여 신앙의 힘으로 편안해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제가 자신의 집을 방문해 기도했다는 생각에 용기는 얻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역경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꿈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죽음을 뛰어넘어 살게 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편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보다 더 큰 용기를 주는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과 확신은 우리를 항상 평화롭게 해주는 원천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반영억 라파엘신부

 

몇 년 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습니다. 브라질 국민들은 퇴임하는 그에게 87%의 지지율을 보냈습니다. 세계 각국은 그의 퇴임을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브라질을 세계8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 올렸고 좌우를 모두 끌어안는 포용의 정치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에 다시 출마하면 당선이 확실시됨에도 불구하고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퇴임을 “아름답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퇴임은 어떻습니까? 바닥을 치고 불행하게 떠납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뒷모습이 그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운영의 청사진과 새 정부의 골격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민생정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국민 신뢰를 통해 '정치 불신'을 없애고 선진국 진입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겠다는 목표랍니다. 당선인은 '말만 늘어놓기'보다는 확실한 실천과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잘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일찍이 세례자 요한은 당신의 뒤에 오실 분을 소개하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7)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한다.”(요한3,29)하시며 예언자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을 재촉하여 떠나게 했을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입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과 제자들은 갑자기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제자들의 위치는 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존경받는 자리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환영받을 때 초심을 잃지 않고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떠나게 하셨는데 ‘배’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성직자이든, 수도자이든, 총회장이나 구역장, 반장, 단체장은 봉사의 도구이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 욕심을 내려놓을 때 아름다워집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떠날 채비를 갖춰야 합니다.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당당히 가야합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작별하신 후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습니다. 할 일을 마치고 기도하러가셨습니다. 그 기도는 주님을 지켜주시는 힘입니다. 당신을 파견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도 기도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밝히 드러내 줍니다. 하느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깨어있게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알아듣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에 방해 받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룰 수 있는 산으로 가야합니다. 기도의 장소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녁이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마침 배는 호수 한 가운데에 있고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맞바람은 장애물입니다. 성경에서 ‘바람’은 성령을 상징하니까 맞바람은 ‘악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의심과 두려움을 가져오게 하는 방해꾼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맞바람을 잠재우셨습니다. 맞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우리는 곤경의 바다에서 헤매지 말고 그 한복판에 서계신 주님을 잘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하시며 우리를 곤경에서 구하러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눈이 멀면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 집니다. 모쪼록 거센 맞바람 안에서도 함께 계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세상살이에 바빠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지날 때에도 당신이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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