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5일 월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루가 1,39-56)

2011. 8. 14. 오후 4:16:14

글자
2011년 8월 15일 월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루가 1,39-56)

  "Blessed are you among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your womb.
 

 

 

말씀의 초대

 묵시록은 성모님의 예표하는 여인의 모습을 전한다. 그 여인은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쓰고 있다. 그 여인의 관에 있는 열두 개의 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신약에서 교회를 구성하는 열두 사도를 가리킨다(제1독서).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죽음과 파멸이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로 구원이 왔다. 죽을 운명인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되었다(제2독서).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서둘러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간다. 엘리사벳은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하고 외친다. 이 말씀은 교회에서 온 백성이 드리는 아름다운 찬미의 기도가 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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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부릅니다. 어머니가 없다면 인류가 존속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하느님의 손길과 같은 것입니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머니가 있기에 인류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모태로 나를 품어 주고 젖을 먹인 어머니를 통해 더 깊은 친밀감과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인으로서는 주름지고 볼품없는 얼굴을 한 참으로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어머니로 서 있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인생의 스승이 됩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견줄 수 없이 소중하고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어머니는 하느님의 손길이 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펴 주시고 길러 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육친의 어머니를 넘어 어머니 성모님께서 계십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님의 손길은 교회를 돌보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가까이, 마치 우리 육친의 어머니를 부르듯, “어머니!” 하고 부르면 금방 우리 앞에 서 계시는 어머니이십니다.
날마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 묵주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기도 시간은 우리 마음속에 따뜻한 성모님의 마음을 새기는 순간이고, 이미 지상에서 성모님을 영적으로 깊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언젠가 홀로 받아들여야 할 죽음의 자리에서 우리는 “엄마!” 하고 어머니를 부르며 그 외롭고 둔탁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평소 하던 묵주 기도를 바치며 성모님의 품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승천하시어 당신의 아드님과 하나 되셨던 하늘의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우리도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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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께서 승천하신 날입니다. 마리아께서는 곧바로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아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마리아께서 구세주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되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해입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삶을 잘 모르고 그분의 승천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할 때, 처녀인 자신의 처지를 포기하고 ‘주님의 여종’임을 솔직히 고백하십니다. 이로써 마리아께서는 이제 개별적 인간 마리아가 아니라, 주님의 여종으로서 철저하게 주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가십니다.
처녀인 마리아께서 주님의 거룩하신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로 불리게 되신 것은 주님의 은총이기도 하지만, 성모님의 신앙 고백적인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곧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축복의 표지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자신의 온 생애를 오로지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위하여 바치셨습니다. 그러한 성모님을 주님께서는 곧바로 하느님 나라로 들어 올려 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성모님과 같은 삶을 산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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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는 모든 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습니다. 행복을 원하면서도행복에 대한 믿음이 적은 탓입니다. 그러기에 가족의 평화를 청하면서도 그렇게 된다는확신에는 약합니다. 모든 것에 앞서서 주님께서도 우리의 행복을 원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지 못하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어야 행복해집니다. 생각이 마음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는 시각이 인생을 바꾸는 것이지요.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찬양하면서 자신의 삶에도 변화가 왔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핵심은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에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모든 것의 원인이 주님이심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묵묵히 예수님을 추종하며 사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승천하시기에 마땅한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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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승천은 성모님께서 곧바로 천국에 가셨음을 의미합니다. 마리아께서는 그만한 삶을 사신 분이시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성모님의 생애를 평탄한 생애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요셉 성인과 아기 예수님께서 함께 사셨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으셨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가장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셨으니 고통도 고뇌도 없고, 마음 상하는 일이나 말썽도 없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성가정을 단순하게 아무런 문제도 없고 다툼도 없는 가정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강한 개성과 고집을 지닌 분들이 사셨기에 어쩌면 남모르는 아픔이 더 많으셨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분들은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며 사셨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가정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성모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산 사람에게 내려지는 축복의 예표입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살면 주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성모님께서 함께 계신 초대 교회에는 하느님의 힘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곁에도 수많은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성모님을 닮아 또 다른 마리아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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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 승천은 당신을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내맡기신 성모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참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이 세상 삶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은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곧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거룩하게 되셨고, 그 목표인 구원에 이르게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성모 승천은 마리아를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근원적 구원은 모든 사람의 구원이요, 그 충만함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 승천은 우리가 사도 신경을 통하여 고백하는육신의 부활영원한 삶의 신앙을 거듭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곧 우리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믿으셨기에 복되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은 참으로 행복한 만남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가슴에 담고 사는 이들의 만남이었기에 기쁨이 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루가11,28)이었기에 행복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었기에”(루가1,45) 더욱 복됩니다.  비천한 여종 마리아는 목숨을 걸고 순명함으로써 복된 여인이 되었고, 젊은 날에 아이를 배지 못하는 돌계집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를 입었습니다. 그야말로 이러 저러한 일들이 마음을 뒤흔들어도 주님 자비의 손길을 믿으며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이 큰 은총입니다.

“성모님의 일생은 사람의 기림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다만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맞기만을 원하셨습니다”-성 암브로시오-

“그 아드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갖가지 모욕을 당하며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을 때 다른 모든 이의 믿음은 흔들렸지만 성모님께서는 그분이 하느님이셨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성 알폰소리구리오-

“믿음의 여인 성모님은 우리 마음을 성자 예수님께 바치기를 원하시고 예수님 성심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계십니다.”-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그러므로“정성된 마음으로 성모님께 구하는 자는 버림을 받거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구원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성녀 가타리나-

“직접 기도하는 것보다 성모님께 맡기면 훨씬 더 풍부한 구원의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성 루도비꼬- 

그러므로 “성모님을 통하여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모님을 통하여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  당신을 믿고 섬기는 이들에게 대한 성모님의 사랑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강합니다. 성모님의 뒤를 따른다면 방황하지 않을 것이고 성모님의 손을 잡고 있는 한 어떤 유혹에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성 베르나르도-

마리아를 통하여 모든 것을 예수님께로!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마리아께로!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이 우시는 것을 보고 들으시면서도 그분이 천국의 즐거움 자체이심을 믿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마리아처럼 생각하고 그분이 바라신 것을 바라고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바를 행하고 그분이 지향하시는 바를 지향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 있기 위해서는 먼저 마리아님 안에 있으라는 뜻입니다”

-알베리오네-

예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 가까이 계셨던 성모님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성모님 축일에 그분의 믿음의 본을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정령 믿으셨기에 복된 분입니다. 우리도 믿었기에 복된 사람 되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2010.8.15 성모승천 대축일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cafe.daum.net/rara63  신을 벗어라>

 

 성모 승천 대축일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하느님의 자비" 

[서공석 신부 강론- 2011년 8월 15일] 루가 1, 39-56.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듯이, 성모님도 그 생애의 마지막에 하늘로 올림을 받았다는 믿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승천이라는 표현은 하늘과 땅과 지옥, 세 층으로 된 우주라고 생각하던 시대에 통용되던 표현입니다.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오늘 우리는 그렇게 상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성모님이 그 생애 종말에 하느님에게로 가셨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은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4세부터 전설로 교회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겪었다는 믿음이 만든 전설입니다.

   
▲ Le Concile de la Vierge 15c
신약성서는 성모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으로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주님이라 믿던 초기 신앙인들이 그들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고를 들은 마리아는 즉시 길을 떠나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아기도 그 방문에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요한을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파견된 인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탄생 소식을 요한이 제일 먼저 들어야 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여인이 만나는 장면에는 기쁨과 축복과 찬양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기쁨이고, 축복이며 찬양할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는 예루살렘 그리스도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서 그 집회에서 부르던 것입니다. 그 노래는 구약성서에서 발췌한 문장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루가복음서를 집필한 사람이 그것을 채집하여 마리아가 부른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의 자비가 세상 사람들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권세 부리는 이와 부요한 이가 있고, 비천한 이와 굶주리는 이가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는 노래입니다. 그 자비 안에서는 인간이 만든 차별, 우월감, 권세, 독선, 비굴함 등이 모두 없어지고,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한 구원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초기신앙인들이 갖게 된 믿음을 기록한 문서입니다. 성모님에 대한 언급들에는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언급들 중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예수가 정신 나갔다는 소문을 듣고, 그 어머니와 집안 식구들이 놀라서 그를 찾아 나선 이야기일 것입니다(마르 3, 21-35).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놀라게 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젊은 나이로 십자가에 처형되었을 때, 그 어머니가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으리라는 사실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 마리아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들은 성모님에 대한 역사적 사실 보도가 아닙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일에 늘 깊이 참여합니다. 이 사실 때문에 복음서들은 마리아를 신앙인의 모범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예수의 탄생 예고를 듣고,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2, 38)라고 말하는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가나 촌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에게 물을 술로 바꿀 것을 암시하는 마리아(요한 2, 1-12)는 술이 떨어진 잔치와 같이 따분한 유대교를 보고, 예수님에게 희망을 둔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곁에 선 당신의 모친 마리아를 당신 제자와 모자(母子)의 인연을 맺어 준 이야기(요한 19, 25-27)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신앙인들은 그분 제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예수님과의 유대를 유지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이렇게 보면 성모님에 대한 복음서 이야기들은 신앙인이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오늘의 축일은 마리아가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듯이, 신앙인의 모범이신 마리아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하느님 안에 누린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이 축일을 제정 공포한 것은 1950년 11월 1일입니다. 1945년에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5년이 지난 때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가 곳곳에 아직 널려 있습니다. 20세기에 일어난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많은 생명이 무참하게 살상되고,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죽이고 파괴하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모두가 철저히 실감하였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리스도 신앙인들끼리 서로 죽이며, 삶의 터전을 초토(焦土)화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선포되는 땅에서 서로 미워하고, 죽이며, 파괴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독일인들이 600만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하였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최대로 훼손되었고, 인류의 미래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삶의 현장에서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말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미워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미래는 하느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천명해야 했습니다. 성모승천 대축일은 우리 인간의 운명이 하느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자각하게 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 많은 한국인들이 징병 혹은 징용으로 타향에 끌려가 죽었습니다. 정신대(挺身隊)라는 비극도 있었습니다. 그 후에 생긴 한국의 남북 분단은 수백만의 인구가 이산(離散)가족이 되어 아픔을 안고 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육이오 전쟁은 이 땅에서 수백만의 생명을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지금도 천안함이 폭침되고, 연평도가 포격을 당하였습니다. 이북의 동포들은 굶주리고, 강제 수용소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이북은 핵무기로써 세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정치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갈등을 겪으면서 찢어져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서나 인간의 자유는 증오와 혼란으로 쉽게 흐릅니다.

오늘 들은 ‘마리아의 노래’는 자비의 노래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노래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어떤 형태로든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사람다운 일을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녀 되어 사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자비가 우리 실천의 잣대가 되어야 하고, 그 자비가 우리 외침의 색깔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고린 13, 1) ◆

서공석 / 신부, 부산교구. 1964년 파리에서 서품받았으며,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깨진 항아리가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

-홍승모신부-

 

오늘은 한국천주교회가 수호자로 모시고 있는 성모님 승천 대축일이며 또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이한 날이기도 합니다. 이 뜻 깊은 날을 맞이해 성모님 은총과 축복이 모든 교우들의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 서문은 주님 잉태 기별을 받은 순간부터 마리아가 경험한 신앙체험으로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찬송하는 이유가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마리아는 고통스런 종의 처지를 돌보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
 

 이제 마리아는 과거의 삶을 딛고 일어나 미래의 희망을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49).
 마리아는 자신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행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지게 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마음을 넘어서, 주님의 모든 백성과 구원의 역사를 함께 조명하고 있습니다. 주님 은총을 깨닫게 된 마리아는 지금 주님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을 사랑해 주셨는지, 그 신비를 밝힙니다
.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우리는 여기서 마리아가 깨달은 주님 마음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마음이란 거룩하신 분으로만 여겨져,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주님께서 당신 자녀들의 고통스런 처지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고통스럽고 낮은 모습으로 사셨지만, 주님께서 그분을 들어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모 승천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
 

 요한 23세 교황님의 「영혼의 일기」에 이런 기도가 적혀있습니다.
 ", 주님. 제가 물을 담아두지 못하는 깨진 항아리가 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현세의 좋은 것들을 즐기느라 눈이 멀지 않게 하시고, 가난한 이들, 병자들과 고아들의 절박한 외침이 제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
 깨진 항아리는 내면의 삶과 외면의 삶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깨진 항아리는 마음이 갈라져 자신의 실제 모습을 허황되게 평가해 진실에 눈멀게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과 행동만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러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물을 담지 못하는 깨진 항아리가 된다면, 자신의 실제 모습을 외면하게 돼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눈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의 마음이 둘로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증언합니다
.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6-7).
 항아리나 질그릇은 모두 깨지기 쉬운 것들입니다. 곧 우리의 영적 내면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세상의 유혹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깨지기 쉬운 항아리나 질그릇 속에 주님을 식별하는 빛을 주신 것입니다. 그 빛은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하는 주님의 놀라운 힘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서지기 쉬운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주십니다. 성모님도 똑 같은 희망을 주십니다
.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님께 간구하여 그 응답을 얻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모님이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갖고도 주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응답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신앙은 수동적 응답이 아니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하신 성모님처럼 능동적 응답이 필요한 것입니다. 삶에 어려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성모님께 기도하면 기대 이상의 것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우리들의 어머니가 돼어려움과 시련에서 우리들을 보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뜻깊은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님께 기도드려봅니다.
 

 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 우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항상 우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여!
  

 

 

순종한 여인의 마지막은 영광

-손용환신부-

 

티치아노(Tiziano, 1488-1576)는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이끈 화가입니다. 그는 1516년에 산타 마리아 데이 프라리 성당의 제단화를 의뢰받았습니다. 그는 2년여에 걸쳐 생기 넘치는 색과 빛으로 〈성모 승천〉을 그렸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1518 5 19일에 제막되었고, 그 결과 베네치아 최고의 화가로 등극했습니다. 비평가 루도비코 돌체(Ludovico Dolce, 1508-1568)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이 있고, 라파엘로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있으며, 자연의 진정한 색채가 있습니다.”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1228-1298)가 쓴 〈황금전설〉에는 마리아의 마지막 지상생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무치는 마음이 마리아의 흉중을 사로잡습니다. 먼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 생각 때문입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천사를 목격했습니다. 천사는 손에 들고 있던 종려나무 가지를 마리아에게 건네줍니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사탄이 당신의 영혼에 근접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소망이 그것이었습니다. 그 소망대로 요한을 비롯하여 제자들이 구름을 타고 마리아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마리아는 죽었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몸과 영혼이 천사의 보호를 받으며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

티치아노는 그 광경을 관례적 표현방식으로 그렸습니다. 아래에는 열린 무덤과 제자들이 있고, 중앙에는 떠오르는 성모 마리아가 있으며, 위에는 열린 하늘이 있어 모든 천사들과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금색과 붉은색으로 그린 충만한 화면은 티치아노만이 그릴 수 있는 색채의 향연입니다. 바로 이 화려한 색채를 통해 그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

성모 마리아는 화려하고 밝은 금빛에 둘러싸여 승천하십니다. 크게 펼친 두 팔과 상기된 얼굴 표정은 승천의 기쁨을 대변합니다. 특히 성모의 베일과 옷은 아름다운 율동미를 보이며, 상승하는 순간의 역동성을 실감나게 해줍니다. 그분은 가난한 마음을 상징하는 청록색 베일과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고 하늘로 오릅니다. 가난한 마음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결합할 때, 천국 문이 열림을 말해주듯이 말입니다
.

아기 천사들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도우면서 송가를 부릅니다. 축복 속에서 마리아의 얼굴은 천상을 상징하는 원형의 중심에 있습니다. 천상에서는 하느님께서 두 팔을 벌려 마리아를 받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사랑스런 눈빛으로 마리아를 응시하십니다. 천상은 모두 금빛 광휘에 싸여 있습니다. 금빛은 하느님의 영광을 더욱 빛내고 있습니다. 하느님 곁에서 대천사가 하늘의 여왕이 되실 마리아를 위해 왕관을 준비합니다. 하느님께 순종한 여인의 마지막이 영광인 게 모든 이에게 위안이 됩니다
.

그림 하단은 지상인데 열두 사도가 보입니다. 이들의 몸짓은 성모 마리아를 우러르며, 그분은 따르겠다는 약속처럼 보입니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한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슬퍼하듯 옷깃을 여미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분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토마스는 손가락으로 그분을 가리키며 승천을 확인합니다. 어떤 사도는 두 팔을 크게 벌려 몸을 그분께로 향하고, 어떤 사도는 겉옷을 벗어젖히며 마리아의 뒤를 따르려고 합니다. 어떤 사도는 가슴에 두 손을 모으며 승천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어떤 사도는 자기를 위해 빌어달라며 그분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이것으로 제자들도 천국을 그리며 주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그림은 기쁨과 환희에 찬 순간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고 차분한 명상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천국을 그리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정진석 추기경-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광복 65주년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또한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루빨리 남북이 화해하고 용서하며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할 있도록 성모님의 전구와 느님의 은총을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예수님 구원사 업의 완벽한 협조자가 되셨던 성모님의 승천을 기뻐하며 무한한 희망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아 하느님 영광 안에 드셨듯이 우리도 장차 하늘에 올라 하느님 영광 안에 있다는 희망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그분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온전히 따르는 신앙의 모범을 보인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오래전부터 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해왔습니다. 2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님은 1838 12,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한국교회의보성인으로 정해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셨고 1841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의 승인을 계기로 한국교회의 성모신심은 더욱 활성화됐습니다. 또한 성모 승천 대축일에 조국이 광복되는 기쁨을 맞으면서 한국교회의 수호성인 성모 마리아에대한 신심은 더욱 각별해졌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은 우리를 하느님께 필요한 은총을 전구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평화만큼 소중하고 절실한 가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대립과 긴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부자와 빈자, 세대와 지역 사이에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분열과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마찰의 원인으로 소통의 부재를 꼽습니다. 정부의 대규모 국책 사업 몇몇 사안들은 지금도 찬성과 반대의 극단으로 나뉘어 갈등과 분열로 치닫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적인 찬성과 반대가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분명한 것은 해결점이 개인 또는 특정 단체의 이해관계에 치우쳐서는

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어렵습니까?

사회 공동체의 소통을 가로막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더불어 살아야 이웃과 형제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원인이 있습니다. 서로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함께 사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평화는 요원한 것이 됩니다. 결국 평화를 만드는 것은 사랑과 정의라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소리에 기울이고 소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서민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 갈등을 극복하고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발전하게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미움과 갈등과 절망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와 희망을 이루는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세상에 평화를 이룸으로써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9).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가정과 사회에 평화를 이루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갑시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점점 밝아지고 행복한 사회가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갈등과 다툼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완전히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아 겨레에 평화의 인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주님께 드리는 감사     

-상지종신부-

 

나를 완전하게 만드시어 내 안에 나를 홀로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의 보잘것없음과 부족함 때문에 당신을 향해 나를 열게 하셨음에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 가짐으로써 주어지는 곧 사라질 행복이 아니라, 더 사람다워짐으로써

얻게 되는 참행복을 알려 주셨기에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
더 높은 곳을 좇는,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이 아니라
,
낮은 곳에서 벗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평화로운 삶을 주셨기에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
모든 이와 함께하는 생기 넘치는 어울림을 방해하는 교만한 인간적 지식이
아니라, 삶의 참의미와 길을 밝혀 주는 지혜로 끊임없이 채워 주시니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
물질적 소유에 얽매어 삶을 메마르게 하지 않으며, 나눔으로써만 채워지는
삶의 참맛을 깨닫게 해 주시니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이 감사가 내일도 모레도 이어져, 내 자그마한 삶 전체를 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당신의 아름답고 선한 뜻을 언제 어디서나 내 안에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청합니다. 아멘!

 

<특혜가 아니었던 성모님의 승천>

  오늘 아들 예수님을 따라 영광스럽게 하늘로 승천하신 성모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세주의 어머님으로 간택된 성모님이셨기에, 그분은 승천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애써 잉태하고 힘겹게 낳고 기르신 성모님께 이 정도 선물은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성모님의 승천은 메시아의 어머니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특혜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Never!’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끊임없는 자기 비움, 처절한 자신과의 투쟁, 각고의 노력, 쉼 없는 기도, 그 결실이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모님의 승천’인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은총과 도움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성모님께서 걸으셨던 신앙여정은 험난하다 못해 혹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에게 있어 구세주의 어머니로서의 누리셨던 기쁨과 행복도 컸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통당하는 메시아를 아들로 둔 어머니로서 감내해야 고통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아들 예수님과 함께 했던 30년간의 나자렛에서의 생활, 늘 조심스런 생활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의 통보를 받고 난 후 성모님의 개인적 삶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매일 매 순간 그저 노심초사하면서, 숱한 상처를 싸매면서, 속으로 삭이면서 그렇게 살아온 한 평생이 성모님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순간,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과 함께 고통의 극점에 서게 됩니다. 피범벅이 된 아들은 홀로 높이높이 십자가 위에 매달렸습니다.

     아들이 지금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성모님의 찢어지는 가슴을 기억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리워진 아들의 차가운 시신을 끌어안고 그저 대성통곡만을 터트리는 성모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보십시오. 우리의 성모님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으시고 다 겪으셨습니다.

 극도의 슬픔, 형체도 없이 부서져 버리는 것 같은 상실감,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당신 자신의 철저한 무기력함...그러나 그 모든 고통을 꿋꿋이 견뎌낸 성모님에게 마침내 하나의 큰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래, 마자,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지.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상처 입은 세상을 위해,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할 만민의 구세주였지!’ 그 순간, 성모님은 당신의 신앙 여정에서 또 다른 ‘큰 걸음’을 내딛습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순간부터 성덕으로 충만하신 성모님이셨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란 성화의 장 안에서 갖은 희로애락을 겪으신 분이 성모님이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십자가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시면서 조금씩 성화의 길로 나아가신 성모님, 그리고 마침내 영광스럽게 승천하신 분이 성모님이십니다.

     코린토 전서 15장 53절 이하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런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 독침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린 대사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의 복사판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비록 나약한 인간이지만 썩는 몸에 썩지 않는 것을 입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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