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19주간 금요일 (마태19,3-12)

2011. 8. 12. 오후 2: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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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2일 금요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오 19,3-12)

For this reason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joined to his wife,

and the two shall become one flesh?
So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flesh.
Therefore,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man must not separate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상 아브라함에서부터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임을 밝히신다(제1독서). 혼인은 신성하고 주님께서 맺어 주시는 거룩한 만남이다. 혼인으로 둘이 한 몸이 되는 신비는 부부가 온전히 사랑함으로써 이루어진다(복음). 

☆☆☆

오늘의 묵상

언젠가 혼인을 눈앞에 둔 한 쌍의 청춘 남녀가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 한평생 살아갈 미래 청사진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들은 얼마 뒤에는 어떤 차를 사고, 자녀는 언제쯤 낳고, 수년 뒤에는 집을 사고 또 돈은 얼마를 모아 노후에는 여행을 다니면서 살겠다는 제법 구체적인 계획을 나열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의 꿈과 계획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지니고 살며 삶에서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세속적인 목표만 있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목표와 가치관이 없으면 영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혼인은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가벼운 계약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그에 합당한 소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혼인 예식 때 하느님과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인격을 걸고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서로가 한 몸이 되라는 혼인의 신비는 그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한집에 산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약한 점과 부족한 점을 채워 주고 품어 주라고 주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참된 가치관을 가지고 주어진 운명을 지고 한 분이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이런 혼인의 부르심에 끝까지 충실한 부부는 세상에서 출세와 성공을 한 그 어떤 누구보다도 소중한 것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헤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이혼입니다. 쉽게 갈라서는 부부가 어디 있을는지요? 하지만 이혼은 상처입니다. 두 사람은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아픔을 남깁니다. 살면서 이혼의 충동을 느끼지 않는 부부는 없습니다. 극복했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혼도 결국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바리사이들의 항의성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완고했기 때문이라고 답하십니다. 모세의 예외 규정역시 마음이 문제였다는 가르침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이 사실을 혼인 생활의 기초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혼인해서 함께 살면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지 않습니다. 몸이 함께 있다고마음도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혼란케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해의 늪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붙잡아 주셨기에 이혼의 결정적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자연은 낮은 모습으로 움직이기에 여유와 아름다움을 간직합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질서대로 살아간다면 결국은 행복을 깨닫게 됩니다. 겸손한 부부가 행복한 부부입니다

 

 

 

 

서로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반영억신부-

남성은 결혼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여성은 경제적 안정을 얻으려 한다고 합니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 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결혼을 통해 보완하고 싶은 것으로 남성의 54.6%정신적 안정 및 풍요를 꼽았고 12.1%가사에 도움이라고 답했습니다. 반면에 여성들은 47.2%경제적 안정을 꼽았고 정신적 안정 및 풍요가 25%, 사회적 지위가8.3%로 나타났습니다.

 

남성의 지향과 여성의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살겠다며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초 호화 결혼식을 올린 부부도, 잉꼬부부로 알려진 부부도 쉽게 헤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많은 경우 성격 차 때문에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며 각자의 길을 갑니다.

 

성격이야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상대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이 다를 진대 어찌 성격이 똑같겠습니까? 쌍둥이로 태어난 사람도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가운데 더 깊은 사랑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너무도 쉽게 너와 내가 다른 것을 네가 틀렸어로 밀어 부치고 맙니다. 그래서 마침내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하며 등을 돌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마태19,6). 혼인을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헤어질 수 없지만 단순히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혼을 쉽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하느님과 일가친척 앞에서 서약을 하였습니다. 남녀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이지,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서로는 동반자이면서 서로 사랑 받고 존경 받아야 할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에서부터 인간의 신랑이시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입니다.(예레31,3)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관계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의롭고 착한 사람을 소크라테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결혼만은 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의 아내 크산디페는 세기의 악처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물론 집안 살림에는 관심도 없는 남편을 좋아할 아내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남편에게 바가지는 예사이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태산 같은 인내심으로 이겨 나갔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마구 욕을 해 대다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화가 풀리지 아니하자 걸레를 빤 물을 남편의 머리에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뇌성벽력이 대단하더니 종래는 비가 오고야 마는군 하였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부부간에 크고 작은 고민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참고 견디면 성공하는 것이요, 인내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 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내 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에페5,33). 결혼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인데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됩니다. 만일 헤어졌거든 결혼하지 말고 혼자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남편과 다시 화해해야 합니다. 또 남편은 자기 아내를 버리면 안됩니다(1고린7,10-11).

 

서로간의 관계 안에서도 신의를 지키고 부족함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던히 참아주고 변화를 기다려주는 넉넉함이 우리를 풍요케 할 것입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로 항해를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한다.(러시아 속담)고 했습니다. 결혼해서 일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나 풍랑이 몰아치는 험한 바다보다도 더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 순간 기도하며 애쓰지 않으면 서로의 다른 점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합니다.

  

인간의 본모습

- 안소근 수녀-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고,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실현하고자 하셨습니다. 율법의 짐에 눌려 있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다고 하지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충실하게 지킨다는 것은 사실 율법의 모든 규정들을 지키는 것보다도 더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한 예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혼인 관계를 인간의 손으로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 곧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이 죄로 물들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고하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보시니 좋았다.” 고 하신 그때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법의 규정을 어기지 않는 데 머물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그분의 계획에 전적으로 일치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은 그런 본보기를 보여주십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 대신 목숨을 주라고 명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이겠지요.
내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마음이 완고합니까? 하느님은 나에게 어느 선까지 요구하십니까?

 

한 몸

-임문철 신부-


젊은 시절에 국보급 투수라는 선동렬 선수에게 흠뻑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 선수의 공 하나 하나에 손에 땀을 쥐고 응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본으로 진출해 예전만큼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저의 응원은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제가 그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좋은 부분만
받아들이고 싫은 부분은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좋은 부분만
받아들인다면 열렬한 팬이 될지는 몰라도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성체로 나에게 오시어 나와 한 몸을 이루시는 그분은, 나의 선함과 아름다움뿐
아니라 나의 추악함과 더러움, 약함과 모자람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저 태양이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빛을 주듯이, 주님의 사랑은 모든 이에게
머물고, 나를 흠뻑 적시어 이 모습 그대로 안기게 해주십니다.
부부는 서로간의 친밀한 일치를 통해 이 사랑의 증인이 되도록 불리운 사람이며, 하늘 나라 때문에 독신이 되기를 원한 저는 신자들과의 친밀한 일치를 통해
이 사랑의 증인이 되도록 불리운 사람입니다.

 


 

 

식사와 별미

-윤원진 신부-

 보좌신부인 저는 함께 사는 주임신부님이 멋있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드시는 음식을 따라 먹어보기도 하고, 어설프지만 신부님의 말투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함께 식사를 하다가 그분이 매운 고추를 맛있게 잡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삭하고 씹으시며 땀을 뻘뻘 흘리시고는 이거 제대로 된
고추네!” 하시는 모습이 멋져보여서, 저도 은근슬쩍 고추에 손을 대었더니 저를
보시며 그거 맵다라고 하십니다. 괜스레 나도 먹을 수 있다라는 용맹심에
한입 베어 물었다가 끝내는 삼키지 못하고 도로 뱉어버렸습니다. 먹지 않아도
되었던 그 고추, 하지만 주임신부님이 맛나게 드시는 모습에 저도 먹을 수
있으리라 믿었나 봅니다. 저에게는 독하게 매운 고추이지만
주임신부님에게는 맛깔스러운 음식이었습니다.
그 맛이 고통이었다면 어떻게 그리 맛있게 드실 수 있겠습니까.
흔히들 사람들이 성직자에게 어떻게 결혼하지 않고 사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 사는 그 맛을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별미임을
알 것입니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받아들여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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