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9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로마노(8.9)◆

2011. 8. 9. 오전 6: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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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9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마태오 18,1-5.10.12-14)

 

Whoever becomes humble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셈법과 우리의 셈법은 다른 것 같습니다.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신다고 하십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지키려면 길 잃은 양 한 마리쯤은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 우리 계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셈법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넘어섭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시는 목자의 마음을 아는 아흔아홉 마리 양들은 참으로 마음이 든든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어쩌다 내가 대열에서 이탈되어 잃어버린 양이 되어도 나의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어떻게 하든 자신을 찾아오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흔아홉 마리 양들은 더욱 안정감을 갖고 목자를 따를 것입니다. 길을 잃은 양도 목자가 자신을 꼭 찾아 주리시리라 믿기에 그 목자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만일 ‘한 마리쯤’ 하며 길 잃은 양을 내버려 두고 아흔아홉 마리 양이나 잘 관리하겠다고 하는 목자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목자 밑에 있는 양들은 늘 불안합니다. 언젠가 잘못하여 자신이 길을 잃게 되면 그 목자는 자신을 포기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흔아홉 마리 양들은 목자에 대한 불신으로 중심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목’은 양을 치는 착한 목자와 같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목은 본질적으로 가난한 사람, 길 잃은 사람을 교회에서 가장 소중한 자리에 두고 돌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목자 정신을 잃어버리면 결국 아흔아홉 마리마저도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고 사랑해 주는 삶을 살면, 비록 산술적으로는 한 마리이지만 모든 것을 얻고 사는 삶이 됩니다. 교회는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어린이의 마음을 지니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극단적인 말씀까지 하십니다. 어른이 어떻게 철부지 어린이로 되돌아갈 있을는지요? “어머니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요한 3,4) 니코데모는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가 무안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이 되려면 어린이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순진하고 거짓 없고 착하다는 것만 연상합니다.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이라고 모두 순진한 것은 아닙니다. 영악한 아이들도 많습니다. 어린이일수록 질투심이 적나라하고, 쉽게 토라지고 쉽게 다툽니다. 이러한 특성을 닮으라는 말씀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
어린이의 가장 특성은어머니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점입니다. 갓난아기일수록 어머니 없는 세상은 불안 자체입니다. 어른인 우리가 신앙 안에서 익혀야 어린이의 마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 없는 세상은 어머니 없는 어린이의 세상과 같다는 느낌입니다. 느낌을 생활화하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교훈입니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다 자란 어른이 어떻게 어린이가 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른이 어린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 말씀처럼, 어린이처럼 될 수는 있습니다. 어린이의 특성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당부는, 어린이처럼 우리도 하느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어린이가 편안하듯이 그러한 느낌과 감정을 하느님 앞에서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살듯이 우리도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 바쁘고 복잡합니다. 잘 사는 것과 바쁘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바쁜 사람이 반드시 잘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순한 삶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절제하는 훈련을 꾸준히 반복해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

  -반영억신부-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하시고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18,4)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 하여라”(마태18,1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결국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지니라는 말씀입니다. 간난 아기일수록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 합니다. 그렇듯이 우리도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씀은 지금까지의 삶의 양식을 바꿔 새로 태어나라는 요구입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많이 소유한 것이 위대하게 보이고 높이 오른 것이 최고처럼 보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거꾸로 입니다. 애당초부터 가진 것이 없고 명예가 없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줄 아는 사람, 겸손으로 낮아지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말합니다.“어리석은 사람은 자꾸만 더해서 많이 갖고, 현명한 사람은 자꾸만 덜어서 많이 갖습니다.”(이규경). 노자도 성인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고, 자기를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빛나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고, 자기를 뽐내지 않으므로 윗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루카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루가18,17). 우리가 하는 일은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지니고 했느냐, 주님께 의탁하면서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사랑이 담긴 일을 보시고 기뻐합니다. 믿음에 따르는 실행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생각하는 데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에는 어른이 되십시오.”(1고린14,20).

 

주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요란하게 겉치장을 하지 않습니다. 소유나 직위, 직책으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겸손으로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합니다. 남모르는 희생과 봉사를 통하여 기쁨을 차지하고 천국에서 위대한 자가 됩니다. 믿음으로 맡기고, 믿음으로 낮아지는 이는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뉘우침     
-김호균 신부-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힘든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학업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였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너무 힘겨워
공동 공부시간에 규칙을 어기고 침실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를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며 엎드려 있다가 그만 설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취침종이 울리고 동기들이 들어와 불쌍하게 엎드려 자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는
요를 깔아 저를 눕히고는 모기장까지 쳐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설잠을 자고 있는 제 귓속으로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요즘 할매(제 별명) 힘들어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 해. 모기 안 물리고
푹 자게 우리가 잠자리를 봐주자.” 그 말을 들으며 때때로
“저 녀석만 없으면 신부되는 것은 일도 아닌데”라며 미워했던
속 좁은 마음은 이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날 밤 저는 신학교 들어온 이후 가장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하늘 나라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가지면서 말입니다.

 

 

사랑으로 인하여

-남궁영미 수녀-

 누구나 한 번쯤 ‘회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회개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의 하나는 그것이 행동의 잘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고해소에서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사실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고해성사에서 이렇게 표면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두어 잘못을 고백하게 될 때 ‘회개’한다는 것은 다소 의무적이고 불편한 과정이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회개한다는 것이 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회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J. 플랜바흐는 ‘죄란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근본적인 죄에 대한 이런 인식은 그동안 부단히 우리 자신을 힘들게 했던 많은 의무와 행위에 대한 자책에서 우리를 더욱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그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여는 것,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변화·성장시키시도록 아무런 방어 없이 우리를 열고 그분께 내놓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데 어른보다 훨씬 용감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이해받고 용서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이 자신의 행위를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고,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실수나 잘못을 통해 배울 수 있고, 그렇게 배운 것을 삶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때로 깊은 감동을 줍니다.
사랑은 이렇듯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약한 우리의 인간성에 또는 죄로 상처 받은 이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진실한 회개를 하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그 무한한 사랑을 신뢰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그 회개의 삶으로 초대받은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성로마노(8.9)축일
 
로마의 군인이었던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감옥에서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8월 10일)에 의하여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성 로마누스는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성 라우렌티우스가 순교하기 하루 전날에 참수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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