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주간 화요일(마태오 15,1-­2.10-­14)

2011. 8. 2. 오전 5:46:18

글자

2011 8 2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너희는 내 말을 잘 들어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오 15,1-­2.10-­14)

 

"Hear and understand.

It is not what enters one's mouth
that defiles that person;

but what comes out of the mouth
is what defiles one."

 

 

미르얌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자 주님께서 모세를 두둔하시며 진노하신다. 이스라엘의 다른 예언자들은 환시나 꿈으로 주님을 만나지만 모세는 주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모세가 이처럼 주님께 중요한 인물임을 보여 주신다(1독서). 우리의 오염된 본성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더럽힐 수 있다. 주님께서는 형식보다 마음을 언제나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에덴 동산에 살고 있던 하와는 과연 아담이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의심하며 질투했을까요? 어처구니없는 말 같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여자는 하와뿐인데 어떻게 질투심이 생기겠느냐고 되물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도 질투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밤마다 아담이 잠들면 아담의 옆구리 갈비뼈 숫자를 세어 보았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갈비뼈 하나를 더 빼서 어디에 여자 하나를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하며 의심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스개 이야기이지만, 우리 인간은 이처럼 그 기원부터 본성에 사로잡혀 살고 있음을 비유하는 이야기라고 보입니다. 우리 본성에는 이렇게 시기와 질투, 온갖 욕망과 분노, 열등의식 등의 부정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질투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스러워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상대방과 비교하면서 열등의식에 빠지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정화되지 못하면 때로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본성 안에 숨어 있는 이러한육의 행실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들마저 오염시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였듯이 인간 본성에 뿌리박은 육의 행실은 늘 성령을 거스르고 사람을 오염시키고 맙니다(갈라 5,14-21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하였는지를 섬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화되지 않은 우리 본성적 욕구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어서 멈추어야 합니다.

 ☆☆☆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며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조상들의 전통까지 들먹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경직된 발언일 따름입니다. 율법에 손 씻는 규정이 들어간 것은 감사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 음식은 생명과 직결되었습니다. 당연히 경건하게 음식을 대했고, 감사와 경건의 표시로 손 씻는 예절이 등장하였습니다. 결코 위생 개념이 앞선 것은 아닙니다. 근본은 감사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얼마나 명쾌한 가르침입니까!
아직도 ‘먹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규정하는 종교는 많습니다. 이는 믿는 이를 어린이로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음식 자체에 무슨 윤리가 적용될는지요? 그러한 생각 자체가 사람을 경직되게 합니다. 그러니 근본으로 돌아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음식을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손만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씻는 행동입니다.
요즈음은 적게 먹기보다 많이 먹어 탈이 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어떤 음식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얼마만큼 음식에 대해 자유스러운지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미의 ‘손을 씻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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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는 일이 소중 합니다

  -반영억 신부-

“손에 낀 장갑을 빠는 일보다 손 씻는 일이 중요하고, 손 씻는 일보다 마음을 닦는 일이 중요합니다.”(이현주). 그러나 알면서도 마음을 닦기보다 장갑 빠는 일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주저 없이 그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근본에 충실하면 그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에 집착하였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용납 되지 않았습니다. 왜 손을 씻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그것이 비위에 거슬린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조상들의 전통과 관습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왜 중요한지를 찾기보다 세세한 규율과 규칙을 엄수하느라 하느님의 중요한 사랑의 계명을 망각하거나 소홀히 하고, 세칙을 엄격히 지킴으로써 자만에 빠지거나 교만해 진다면 근본을 잃은 것입니다. 

좋은 가르침은 말보다는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범과 표양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23,13) 눈먼 인도자들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입니다. 

죄악의 원인은 인간의 외부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의 악한 마음에 있습니다. 죄는 피조물을 악용하거나 남용하는 데서 그리고 인간의 그릇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마음 단속을 잘 해야 합니다. 마음을 닦는 일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릅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성 아우구스띠노)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화장이 잘 안 받는다고 합니다. 내면이 아름답지 못하면 외면으로도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미움과 증오, 분노가 가득하면 결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요즘 꾸며놓은 젊은 사람들이 예쁘기는 해도 매력이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매력은 정신과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화장술로 채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이기양) 손을 씻고 목욕을 하는 것보다 내면을 씻는 것이 더 중요하니만큼 정기적인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기를 희망합니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더 많이 예뻐집니다. 많이 사랑하는 가운데 예쁨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성공과 도덕지수
-
홍성남 신부-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때때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성공하려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성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의 필수적인 요건은 지능지수보다 도덕지수가 아닐까 합니다.

도덕지수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자신의 윤리적 신념에 따라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도덕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며 자신의 충동적인 욕구를 절제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수용하고 존중할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반면 이런 도덕적인 기반이 없는 사람은 성공하기까지 그 과정이 건강치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만의 성공을 위해 달리다 보면 타인의 삶을 위협하기 마련인데 언젠가는 어떤 모습으로든 자기파괴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당시 지도자들인 바리사이를 미더워하지 않으신 것은 바리사이들의 도덕지수가 낮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눈먼 인도자

 

- 이정석 신부

 

어떤 제도나 관습도 그 시대와 문화적 환경에 제약을 받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옛적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이 효도를 다하는 기본이라고 가르쳤고 또 그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가 불효를 강요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효’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효’의 실천 방식에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부모님의 상을 치르고 시묘를 지내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특이한 사람으로 알려질 것입니다.
아무튼 바리사이들은 요즘 ‘잘나간다.’는 선생의 제자들 수준이 겨우 그 정밖에 안 되느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당신 제자들이 유다인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방인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하면서 선생을 책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율사들이 만들어 낸 전통의 괴리를 책망하시고(마태 15,3­9) 군중을 불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때문에 이 논쟁이 시작된 것을 아는지라 근심하며 예수님을 말리려 듭니다. “선생님, 그만 하시죠. 바리사이들이 열 받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한발 더 나아가 바리사이들을 ‘눈먼 이’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마태오복음 23장에서는 이 ‘눈먼 인도자들’을 향한 더욱 신랄한 고발이 나옵니다.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과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내 삶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깨닫지 못할 때입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올바른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눈에 보이는 것이 우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막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휘둘려 자기 자신 안으로 고립되는 것이야말로 경쟁 시대가 낳은 가장 심각한 우상의 유혹입니다. 이것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늘 깨어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 유다 지도자들의 배척과 그들 신앙의 기준
-박상대신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모가 말쑥하면 그 사람이 멋있다 또는 점잖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외모를 중시합니다. 바리사이들 역시 이렇게 사람의 외모를 중시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은 참으로 멀쩡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바리사이들이 잘못된 전통을 세우고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공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전통이 도리어 하느님의 가르침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전통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복음의 1-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이방인과 접촉하면 자신들의 손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만지면 그 음식도 더러워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 결국에는 그 음식을 먹은 사람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식으로 인해 자신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밖에서 부정해진 자신의 손을 씻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10절에서 그들의 가르침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11절에서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반응을 보고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

이에 예수께서는 13절에서 바리사이들을 식물에 비유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께서 심지 않은 나무가 곧 죽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앞으로 바리사이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앞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잘못을 그냥 놔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두 소경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처럼,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 모두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깨달음이 부족한 것을 아시고 16절에서 "너희도 아직 알아듣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17절에서 음식은 배로 들어가 뒤로 버려지는 것이므로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작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19절에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20절에서 이렇게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깨끗한 마음,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보다 술과 담배를 안 하는 일을 더 중시합니다. 술과 담배는 사람의 건강을 해칠 뿐,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술과 담배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지키는 일입니다. 사탄은 이미 하느님 앞에서 모든 힘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여전히 죄라는 강한 무기를 통해 사람을 구속시키려합니다. 사탄은 죄라는 것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오염시킵니다. 사탄은 때로는 죄를 통해, 때로는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위장해서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더럽힙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끗이 지키기 위해 이러한 사탄의 공격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온전히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하느님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풍성히 너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깊이 알고 더욱 더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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