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요한 20,1-2. 11-18)

2011. 7. 22. 오전 6:25:54

글자

 

 

2011 7 22일 금요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요한 20,1-2,11-18)

 

Jesus said to her, "Mary!"
She turned and said to him in Hebrew,
"Rabbouni," which means Teacher.

 

 

루카 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를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로 소개한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한다. 그만큼 강했던 악의 세력을 떨쳐 내신 분이란 표현이다. 성녀는 이후 철저하게 예수님을 추종했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함께 체험했던 분이다. 성령 강림 후 성모님과 함께 에페소에서 살다가 그곳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성녀의 출신지가 갈릴래아의 휴양 도시 막달라였기에 마리아 막달레나로 부르고 있다. ‘막달라의 여자 마리아라는 뜻이다.

 

말씀의 초대

아가의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밤새도록 찾는 애절한 여인의 사랑을 전한다. 아가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드러내는 영성적 의미를 갖고 있다(1독서). 마리아 막달레나는사랑이 넘치는 봉사’, ‘변함없는 사랑의 여인으로 묘사될 만큼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간절했다.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막달레나는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전한 여인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보듯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만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의 본래 이름은 그때 당시 너무나 흔했던마리아인데, 그의 출신 지명을 붙여마리아 막달레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가 누구인지 역사 속에서 정확한 신원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석가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 막달레나를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에 나온 여인들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매춘부였다가 예수님을 만나 회개한 여인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간음하다 잡힌 여자(요한 7,53), 일곱 마귀가 들린 여인(루카 8,2), 베타니아에서 예수님께 순 나르드 향유를 부은 여인(요한 12,3) , 복음 속의 다양한 여인을 대변합니다. 분명한 것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세상 온갖 것에 시달리며 순탄치 못한 삶을 산 여인, 죄로 얼룩진 상처와 아픔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 주님을 만나, 주님께 은혜를 입었고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슬픔, 기쁨, 연민, 사랑, 감사, 회개 등 온갖 종류의 눈물을 다 흘린눈물의 여인으로 대표됩니다.
오늘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의 빈 무덤 앞에서 또다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오늘 마리아가 주님을 향한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마지막 눈물이 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묵시 21,4 참조).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부활의 세계에서, 우리도 언젠가 마리아 막달레나의 얼굴이 되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없이 돌아가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도 능력을 감추시고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무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습니다. 놀란 막달레나는 시신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즉시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립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보고입니다. 돌아가셨다고만 생각했지 부활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대반전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대반전의 여인입니다. 루카 복음에는 그녀를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만큼 강력한 악의 세력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완벽하게 본모습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서는 하셨던 것입니다.
이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온몸으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십자가의 길도 함께 걸었고 죽음의 순간에도 그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부활 사건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여인이 됩니다. 철저하게 사랑했기에 철저하게 사랑받았던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입니다.

 

‘아가’의 주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남녀 간의 애정으로 노래한 것이 아가이다. 여인은 사랑하는 애인을 찾아 나선다. 그녀는 성읍을 돌아다니며 광장과 거리에서 사랑하는 이를 찾고 있다. 스승 예수님을 찾고 있는 막달레나의 모습과 같다(제1독서). 무덤을 찾아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 그러나 알아보지 못한다. 너무나 뜻밖이었기에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예수님을 알아본다. 사랑이 담긴 목소리를 듣자 곧바로 알아본 것이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냈는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인지요? 아니면 막달레나의 슬픔 때문인지요? 아무튼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시신을 옮긴 장소를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바뀝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자 금세 알아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아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눈으로 확인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들려주시는 은총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부르셨을 것입니다. 사랑이 밴 목소리였기에 막달레나는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사랑이 밴 목소리로 부르면 누구나 응답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목소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사건’은 그분께서 부르시는 목소리입니다.
꾸중이 아니라 애정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막달레나처럼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모든 사건에 담긴 예수님의 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사냥감을 발견한 개는 끝까지 그것을 쫓아간답니다. 그러나 사냥감을 보지 못한 개는 다른 개가 달리는 것을 보고 뛰다가 곧 멈춘답니다. 자기가 달리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끝까지 찾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가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구하면 얻고, 찾으면 발견하게 된다고 일찍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녀는 열심히 찾음으로써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없이는 끝까지 찾을 수도 없고, 사랑이 없는 마음으로 찾는 일은 허사일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만이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중가요의 가사에도 있지 않습니까.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는 안 들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그 목표를 보았습니까? 끝까지 달릴 수 있습니까? 주님을 찾는 마음에 사랑이 있습니까?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절망의 눈물을 멈춰라

  -반영억 라파엘 신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예기치 않은 이별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꿈이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공허해지기도 합니다. 결국은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으로 다시 이룰 수 없는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에 사로잡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면서 생이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가족으로부터의 버림과 이웃들의 멸시와 조롱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눈길을 보내시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마리아는 본모습을 찾았습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런데 그 은인이 죽임을 당하고 시신마저 사라졌으니 절망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장례를 치르고 아직도 어두울 때에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녘이 밝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런 상황 안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묻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20,15) “누구를 찾느냐?” 라는 질문은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찾고 있었기에 ‘누구를 찾느냐?’ 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았지만 하나같이 무엇을 얻기 위해서 몰려왔습니다. 안드레아, 베드로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줄 정치적 메시아를 찾아서 왔고, 일반 군중들은 먹을거리를 찾아서 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엇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마리아가 무엇을 얻으려고 왔다면 “무엇을 찾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질문을 받을 수 있을 런지요?

 마리아는 절망의 눈물을 거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고, 시신을 매장할 때도 거기 있었고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났습니다. 다른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지 않으시고 마리아에게 나타나시어 당신 부활을 알리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수난의 처음부터 죽음의 끝까지 함께한 충실성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수난의

시기에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주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끝까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부르시며 당신을 알려주셨습니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제 “라뿌니!”, “스승님!”하고 불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스스로 먼저 당신을 알려 주기 전에는 아무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이 말씀은 결국 “마리아야,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듯이 너희도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느님의 딸이다. 나는 이것을 전하러 세상에 왔고, 너희도 하느님께 올라갈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분명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천상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처지에서도 절망의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됩니다. 흔들림 없이 주님을 찾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는 이들이여, 이 땅 위에 살지만 천국을 그리워합시다.”(성 베르나르도) 사랑합니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오상선신부-

오늘 축일을 지내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제가 주님을 만났습니다!"고 말한다.
주님을 만나뵈어야 우리는 확신을 갖고 주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그분을 어떻게 만나뵈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제가 주님을 만나뵈었다!" 고 증언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서 그 비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 방법은 간단하다.
만나려면 그분을 찾아야 한다.  간절히 찾기만 하면 된다.
아가서의 여인처럼 사랑하는 내 님 못보셨나요 하며 찾아헤메야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분이 너무도 보고싶고 그리워서 여인의 몸으로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다.
그 정도로 그분을 만나뵙고 싶었다.
그리워서 못 견딜 정도였다.
그렇게 간절히 그분을 찾아 헤메기만 하면 그분은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아무리 찾아도 그분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그분을 찾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분을 만날 수가 없다.
마리아 막달레나마저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지 않았던가!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분이 나를, 내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말씀 안에서,
성체 성사 안에서,
형제 자매들 안에서,
세상 사건들 안에서
그분은 나를, 내 이름을 부르신다. 그리고 소명을 주신다.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라는 소명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주셨던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분을 만나뵈올 수 있다.
이것이 하느님체험이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다.
그때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하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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