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화요일(마태11,20-24))

2011. 7. 12. 오후 5: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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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12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잘 들어라. 심판날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마태 11, 20-24)

 

 

"Woe to you, Ch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mighty deeds done in your midst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long ago have repented in sackcloth and ashes.
But I tell you,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o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you
.

 

 

말씀의 초대

이집트에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조리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이 내려졌다. 히브리인의 레위 집안에서 태어난 모세가 파라오의 딸에게 구출되어 왕실에서 길러진다. 모세는 성장하자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고, 결국 히브리 사람의 편을 들어 이집트인을 죽이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간다(제1독서).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그 축복을 나누어야 한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주님의 가르침과 은총이 충만히 내린 곳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귀를 막고 회개하지 않는 이 도시의 사람들을 준엄하게 꾸짖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사람들 가운데에는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과 같이 위선을 일삼는 사람들과, 온갖 은혜를 입고도 회개하기는커녕 배신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후자의 경우처럼 숱하게 은혜를 입고도 회개하지 않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에 사는 사람들을 향해 있습니다.
이 도시들은 라삐들의 종교 교육이 성행하던 종교 도시였습니다. 특히 카파르나움은 육로와 수로의 교차점을 이루어 상업이 번창하였던 도시로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에 시몬 베드로의 집을 전교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을 만큼 선택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만과 자기도취에 빠져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막고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난 숱한 기적을 보고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과 배운 것으로 특권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호되게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마치 자신의 ‘인격’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의 인격과 신앙심마저도 자신들보다 낮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벌거벗은 한 ‘존재’로 섰을 때 정말 가난한 이들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서 있을 자신이 있는지요?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는 오히려 비천하고 가련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다고 한들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무엇 하나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있을는지요? 오히려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나누며 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함을 잃으면,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을 가로챈 배신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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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셨던 고을들을 꾸짖으십니다. ‘코라진벳사이다카파르나움입니다.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하늘의 힘입니다. 그런 축복을 받았다면 변화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세 도시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사치와 향락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도시가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 도시보다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카파르나움은 갈릴래아 호수북쪽에 있었습니다. 동쪽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연결되었고, 북쪽은 터키의 하란을 거쳐 니네베에 닿아 있었습니다. 자연, 상인들이 들끓었고 도시는 화려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이스라엘을 감시했습니다. 유다인들도 대규모 학교를 세우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러니 도시는 커져 갔을 것입니다. 물자는 넘쳐 났고 젊은이들은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닿을 리 없습니다. 훗날 카파르나움은 시리아의 침공을 받고 파괴됩니다. 7세기부터는 이슬람 제국에 의해 폐허가 되어 로마 시대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맙니다.

 

 

 

 

 

☆☆☆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에 재산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인색할 때 이 말을 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고도 배은망덕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오히려 하느님께 더욱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남을 돕는 일에 우리는 언제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요?

☆☆☆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모세의 출현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그가 태어날 무렵 히브리의 사내아이는 출생 즉시 죽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부모는 모세를 버릴 수 없어 강에 띄워 놓았는데, 어느 날 궁중의 공주가 이를 발견하고는 곧장 데려갑니다.
극적인 장면입니다. 주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당연히 궁중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지도자로서의 수업을 미리 한 셈입니다. 하느님의 섬세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죽이고, 이로 말미암아 그를 비난하는 이들이 등장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는 등 엄청난 시련의 길을 걷게 됩니다. 축복만 계속되어서는 결코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없는가 봅니다.

 

 

 

 

 

심판을 두려워하랴

  -반영억신부-

심판 날이 다가 온다는 것은 기쁨인 동시에 두려움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가 됩니다. 열심히 노력하였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이에게는 충만한 행복을 누리는 때입니다. 때가 되어 하늘에 계신 그리운 아버지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심판의 날이 두렵습니다. 살아온 지난날이 허물로 누벼놓은 날이요, 마음이 흔들 비쭉 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제키엘서에 보면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 그렇게 하여 죄가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여라.(에제18,30)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걸어온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아니 지금 이 순간에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자칫 잘 살아왔다고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될 때 그 인생이 올가미에 걸려들게 되고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나의 걷고 있는 길을 확인해야 합니다.

 

코라진, 벳싸이다, 가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열심히 활동하신 지역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은총을 거부하였고 결단의 시간을 낭비하였기에 불행합니다. 반면에 티로와 시돈, 소돔은 이방인 도시로써 교만과 사치스러운 부의 표본이 된 곳으로 퇴폐와 음란, 악의 도시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더 큰 구원의 희망이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기적이 그곳에 있었더라면 그들은 분명 회개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은총이 아무리 많아도 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12,14)고 하셨으니 마음을 다잡아 오늘을 충실히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피아노 연주가 끝난 다음에 조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연주 앞에서 조율을 합니다.” 그리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불속에 던지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따라서 알곡이 되어야겠습니다. 사실 먼저 자신을 잘 살핀다면 심판은 기쁨이요, 곧 하늘을 차지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두려워 마십시오. 자신을 갖고 심판을 맞이하십시오.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유비무환!” 사랑합니다.

 

 

 

 

 

 

신앙의 노블레스

-남상근 신부-


많이 받았기 때문에 축복이지만, 많이 받았기 때문에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 혼쭐날 날이 온다고
경고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도시였던 티로와 시돈을, 하느님의 계명에서
어긋나 있던 소돔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고까지 하십니다.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많은 은총을 얻어내고,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갚음을 알아야지요.
뻔뻔하게 ‘받긴 했으나 돌려드릴 것은 없는 삶’이라면, 받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될 것입니다. 먹기는 하였으나 도무지 제 몫을 못하는 이들에게
‘밥값도 못한다’고 지적하지 않습니까? 돌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려드릴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아낌없이 내주셔서
우리를 살리시고 키우시고 거룩하게 하시지 않습니까? 당신의 전부를 받은
이들이 아닙니까? 당연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크게 기대하십니다.
크게 돌려받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무한한 용서를 체험한 이들이 아닙니까?
이유 불문, 조건 불문으로 거듭 용서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당연히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크게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돌려드려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합시다.

 


배은망덕

-노성호 신부-


어느 특정 인물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 고을처럼 구성원 전체가 올바로 살지 못하여 그 고을 이름 자체가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진 ‘코라진’과 베드로·안드레아·필립보의 고향이며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오는 입구 동쪽에 있는 ‘벳사이다’, 그리고 갈릴래아 호수 북쪽 어촌으로 시몬 베드로의 집이 있었던 ‘카파르나움’은 호수 주변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세 곳은 갈릴래아 호숫가를 전도의 활동 무대로 사용하셨던 예수님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그만큼 하느님의 말씀이 많이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카파르나움은 예수께서 공생활 중에 주로 거처하시면서 갈릴래아 및 이스라엘 각지를 순회하신 곳이기도 하다. 정리해 보면 이 세 곳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면서 하느님의 축복도 많이 받은 고장이었다. 그런데 늘 하느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예수님의 종말 심판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티로’와 ‘시돈’ 지방은 현재 레바논 공화국 지중해변에 자리잡고 있는 항구도시이며 퇴폐로 소문난 곳이고, ‘소돔’은 사해 남쪽에 있었던 전설적인 고을로, 남색을 일삼다가 유황불로 타버린 곳으로 유명하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고모라’도 이 고을들과 별 차이 없이 ‘죄’라는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죄악이 만연한 곳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 고을이 티로와 시돈,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불행하다는 평을 받았으니 그들의 행실이 어떠했을지 짐작하려는 것조차 두렵고 떨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있으면 그에 대해 감사하며 선행에 힘쓰고 하느님 마음에 들게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배은망덕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한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듣는 신앙인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낫지 않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축복을 받는 자답게 늘 주님께 마음을 돌리고,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코라진아, 베싸이다야!
-강영구신부-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서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대에게

능소화(凌宵花)의 계절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서도 능소화는 끊임없이 피고 떨어집니다.
햇볕 쨍한 날씨가 되면 좀 더 진한 분홍색으로 자태를 뽐내겠지만 굿은 날씨 때문인지 그렇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능소화(凌宵花)를 양반꽃이라 했다는 군요. 상놈이나 평민의 집에는 이 꽃을 심을 수 없었답니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능소화는 꽃은 화려하지만 향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위험합니다. 꽃가루가 깨진 유리 조각처럼 생겼다는 군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각막을 손상시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능소화(凌宵花)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볼 꽃이지 가까이 할 꽃은 못됩니다.
아름답다고 무턱대고 다가가면 상처받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만 향기롭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기적(奇蹟)은 초자연적 신비스러운 사건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감지(感知)할 수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기적(奇蹟)입니다.
코라진과 베싸이다를 사랑하는 예수께서 수많은 기적(奇蹟)을 두 마을에서 행하십니다.
사랑 받는 것은 무엇이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코라진도 베싸이다도 사랑을 받기만 할 뿐 꽃도 피우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그럴듯할 뿐 코라진도 베싸이다도 뿌리 없는 나무였습니다.
화가 나신 예수께서 사랑 대신에 저주를 퍼붓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당신 삶의 가지 끝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피기를 바랍니다.(一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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