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루카 2,41-51)

2011. 7. 2. 오전 6: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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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루카 2,41-51)

2011 7 2일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루카 2,41-51)

 

“Why were you look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in my Father’s house?”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said to them.
He went down with them and came to Nazareth,
and was obedient to them;
and his mother kept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은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에 대한 남다른 신심을 가졌던 17세기 요한 외드 성인에게서 비롯하였다.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은 예수 성심 공경과 함께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1942년 성모님께서 파티마에 발현하신 지 25주년을 맞이하여 교회와 인류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하였다. 처음에는 8월 22일이 기념일이었는데, 현재는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로 옮겨 지내고 있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정원에 새순이 돋아나듯 그들 안에 하느님의 의로움이 솟아나 모든 민족들의 찬미가 울려 퍼지게 되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사셨다.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성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애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성모 성심을 공경하는 이유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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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워 본 사람은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이 마음을 졸여야 하는지, 또 가슴 철렁한 일은 얼마나 많은지를 알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잠깐이라도 아이를 잃어 본 부모들은 어린 예수님을 잃어버린 성모님과 요셉의 마음이 금방 와 닿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성경』에 그리 많이 나오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잠깐씩이지만 복음에서 볼 수 있는 성모님의 모습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탄생 예고를 받은 그 순간부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참으로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들에게 한 번도 “왜?” 하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마음속에 꼭꼭 간직하며’ 사셨습니다. 성모님의 이런 믿음과 모성이 있었기에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땅의 부모들도 임신하는 순간부터 자식의 운명과 한 몸이 됩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지만, 그 기쁨은 자식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평생 안고 살아감으로써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렇게 자식은 부모에게 ‘보물단지’이기도 하지만 ‘애물’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자식일지라도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셨듯이 침묵 속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자식 때문에 아파하고 있는 부모들은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주님께 먼저 의탁하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자식을 내 안으로 끌어안으면 애물이 되지만 주님께 맡기면 보물단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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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범이 되십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성모님을 통하여 시작되었고, 성모님께서는 이 사업에 협력자가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시어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고, 말씀대로 생활로써 실천하셨습니다. 마리아께서 거룩하신 어머니〔聖母〕로 불리게 되신 것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시고, 그대로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아 깨끗하고 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례 받은 모든 신자는 온전히 주님을 믿고, 그분의 뜻에 충실하고, 그분만이 어지러운 세상에 참행복과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온몸으로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모든 신앙인의 거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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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씨는 신혼 초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남편의 잦은 외박에 신경이 예민해졌던 겁니다. 직장 때문인 줄은 알고 있지만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느 날 무심코 성당에 갔다가 마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서 엄청 화를 냅니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겁니까?’ 남편이 오지 않는 날이면 늘 그렇게 성모상에 화풀이를 했습니다. 설마, 성모님께서 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소리를 듣습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던 성모상에서 참아라!” 하는 소리들 들은 것입니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며 살아 계시는 성모님을 그 순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찌 그 한 사람뿐일는지요? 성모님을 통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이기에 입을 닫고 있을 뿐입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상대를 탓하지 않는 어머니의 목소리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몇 안 되는 성경 구절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이렇듯 열려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성모님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믿는 이들이 희망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모님께 나아가 평화를 안고 돌아갔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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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그러나 소년 예수님의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미안하다는 말도 상냥한 어투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는 그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듣는데 그분들이 못 알아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행동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년 예수님은 왜 부모가 찾는 줄 알면서도 성전에 남아 토론을 벌였을까요?
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개성이 강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뜻을 공통분모로 하여 서로 일치하며 살았습니다. 서로가 충돌할 때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뜻을 접었습니다. 그러기에 성가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가족 안에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럴 때 질책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는 자세가 앞서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성가정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닐는지요.

 

성모성심 기념일(루카2,41-51)

 

어머니의 마음

  -반영억신부-

어린 시절 운동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왜소하게 보이지만 초등학교 때에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키가 큰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마라톤도 하고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합을 앞두고는 늦게까지 연습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연습 후에는 찐빵과 만두가 준비되어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시합에 이겨라 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합 날 입고 간 팬티에는 어김없이 헝겊 한 조각이 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갓난아기 때 입었던 저고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부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겨라고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꼭 이길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었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큰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기념합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신 후 그 지상 삶의 여정과 죽음에까지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그분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시며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다리신 어머니의 마음, 아들 구세주 그리스도의 협력자로 일생을 봉헌하시고 아들의 십자가 밑에 서계셨던 어머니, 주검을 품에 안으셔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부모는 길 잃은 예수님을 찾아 사흘이나 헤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찾아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루카2,48-50) 사실 요셉이 아버지인데 또 아버지가 따로 있다니 정말 뚱딴지소리 였습니다. 따라서 그 신비로운 진실을 알아듣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때를 기다리며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순종의 생활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 지금은 잘 알아들을 수 없으나 아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한결같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을 찾아 헤맨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또한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한 어머니의 큰 품에서 아들은 커갔습니다. 루가복음 사가는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2,5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느님과 동료 인간들의 총애를 받았고 그분은 자라면서 사회 안에서 당신의 자리를 잡아나가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들에 의해 어머니의 마음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어머니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 한창현 신부-

 

본당신부를 처음 하는 저에게는 이곳에서 하는 모든 사목활동이 처음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이곳은 관광지라서 도시에서 보좌신부로 지내면서 보고 경험한 것으로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배우는 자세로 임하다 보니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요즘은 본당 살림에 도움이 되고자 특산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는 것은 명이나물 작업입니다. 그런데 작업을 할 때 본당 교우들이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실 이곳 여성 중에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경우가 적습니다. 대부분 일을 합니다. 봄에는 나물을 채취하고 여름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나 민박을 하며 가을 오징어잡이 철이 되면 그것을 다듬는 일을 합니다. 무척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
그래서 본당에서 무엇인가를 할 때 초반에는 여러 가지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떤 문제나 고민해야하는 일이 생기면 저는 성모님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곰곰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해결해 나갑니다. 마치 성모님께서 당신 뜻에 따라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내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한 번 더 되새기고 육신의 행동을 취하신 것처럼 그렇게 따라해 봅니다
.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뜻하는 바가 다 있습니다. 내가 즉시 아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알 수 없어도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마음은 바로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그러한 성모님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조명언 마태오 신부

보이지 않는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를 아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돌멩이 하나를 던져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돌이 물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물의 양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만약 돌을 던졌는데 소리가 한참 만에 들린다면 우물이 꽤 깊은 것이겠지요. 또한 돌이 떨어진 소리를 통해서 깊은 물속에 떨어졌는지, 얕은 물속에 떨어졌는지, 물이 말랐는지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우물 속이라 할지라도 돌멩이 하나를 던져 보면 그 깊이와 물의 양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깊이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내게 던지는 말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내게 듣기 싫은 말을 했는데 그 말에 곧바로 흥분하고 흔들린다면 그것은 분명 내 마음의 깊이가 얕고 사랑의 마음이 풍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분명 내 마음이 깊고 풍성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마음이 깊고 그 안이 사랑으로 풍성함을 가지고 있다면 뭐가 좋을까요? 만약 우물이 깊지 않고 물도 없다면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물이 얕으면 그만큼 물이 시원하지 않으며, 물이 없으면 사람들이 이 우물을 찾을 이유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물이 깊고 풍성한 물이 있다면, 언제나 시원한 물을 얻을 수 있어 사람들이 늘 모이게 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역시 깊고 풍성함으로 가득하다면 사람들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려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 모두 이렇게 깊고 풍성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지요. 그래서 어제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낸데 이어서,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깊고 풍성한 마음을 우리 역시 간직해야 함을 교회는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 상태는 예수님과 성모님에 비해서 어떠할까요? 깊고 풍성한 마음보다는 얕고 초라한 마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감정이 좌우되는 그래서 주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을 잃어버렸을 때의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따라서 부모를 제대로 쫓아오지 않는 자녀를 향해 혼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이 말에 화를 내실 만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그 말에 대해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시지 않습니다. 성모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이렇게 깊고 풍성한 마음. 그 마음을 우리 역시 간직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도스토옙스키).

 주님 찾기

그리스도인, 성모님의 자녀

-이준석 신부-

 

성모님의 마음에는 의문투성이였습니다. 당신 아드님께 발생하는 범상치 않은일들을 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 탄생의 말씀을 들으셨을 때에도 성모님은 그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다만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그 초대에 순응하신 것입니다
.
오늘 복음에서도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성모님께서는 이해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많습니다. 특별히 뜻하지 않은
시련의 순간에 우리는 자주 의문을 제기하고 하느님께 따지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
하느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약속을 믿고 침묵 가운데 그 모든 일들을 조용히
마음속에 간직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그분께서 보여주신 가르침입니다.
그분도 우리처럼 이해하기 힘든 순간을 여러 차례 겪으셨기에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십니다. 그러니 삶의 시련과 의문의 순간에 어머니께 도움을 청하고 그분의 성심에 의탁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입니다.

 

하나 되기

- 임순연 수녀-

 

저는 이 복음을 읽으며 예수님의 부모님의 마음, 특히 어머니의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오래전 입회하겠다는 저의 말에 섭섭해하시면서도 말리지 못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입회할 당시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부모님은 지금은 마리아와 요셉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부모님의 변화를 보면서 저는 입회한 후 지금까지 수도자로 살면서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가?’ 를 자문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만 가장 큰 변화는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공동체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나누는 기쁨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웃음을 되찾은 것입니다. 입회 전 사진 속의 저는 몹시 굳은 표정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웃는 것이 어색하고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이 낯설어서 사진 찍는 것 자체를 싫어했는데, 지금은 가끔 웃는 것이 보기 좋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웃는 것이 힘들지 않고 좋습니다. 웃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자연스러워졌기에 웃을 일도 생기고 작은 일에도 웃음이 피어납니다,

 

 

 

 

-김훈일 신부-

 

가끔씩 부주의로 가진 것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중요하고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당장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곳에서 찾는 것이 상식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잃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계셔야 할 성전을 생각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많은 걱정과
근심으로 방황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사건은 두 가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첫 번째는 성전에 계신 주님은 만났는데 성전 밖의 주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외면적인 만남은 이루었지만 내면적인 만남은 실패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전에서 미사는 분명히 드렸는데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미사 중에 살아 계신 주님도 만나지 못했으니 하물며 성전 밖, 즉 교회 밖에서의 삶이야 어떠하겠습니까? 불황 속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습니까? 열정과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까? 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렸습니까
용서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다는 감정을 잃어버렸습니까? 가족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면 얼른 일어나 주님을 찾으러 가십시오.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으면 이 모든 것을 다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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