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오 6,24-34)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you besides.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당신의 힘은 오히려 인간의 ‘약함’에서 드러난다고 말씀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약점이 그리스도의 힘이 머무르는 장소라고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일하신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라고 말씀하신다. 삼라만상이 다 주님의 섭리와 보살핌 안에 있듯이 하느님의 귀한 존재인 우리도 하느님의 보살핌 속에 있다. 주님께서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고 주님께 의탁하며 살기를 바라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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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재물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찾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능력’을 찾고 있습니다. 재물에 ‘주님의 능력’이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착각을 깨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의식주에 관한 두려움을 접어야 주님의 능력에 눈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어렵습니다. 우리 삶의 태반이 의식주에 얽힌 고민인데 어떻게 털어 낼 수 있을는지요?
고민을 하되 신앙인답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걱정한다고 없는 쌀과 의복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는 고민부터 먼저 합니다. 걱정으로 삶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필요할 때에는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미리 애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의로움은 그분의 애정입니다. 들풀을 입히시고 하늘의 새를 먹이시는 그분의 선하심입니다. 그 의로움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내일 일을 너무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걱정으로 자신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반영억신부-
일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실 모두가 근심걱정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따라서 걱정해 봤자 소용없는 것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편저자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4-5)하였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사람은 쓸데 없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걱정 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는 주님께 의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근심을 끌어안고 삽니다.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루카복음에 보면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주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위치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면 쓸데 없는 일로 바쁘지 않을 것이요, 또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과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의복의 걱정에 앞서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공중의 새나 들판의 꽃들 조차도 하느님의 안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근심걱정을 송두리째 맡겨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이러한 물음은 인간적인 걱정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고 섭리에 맡기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내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나와 함께 하십니다. 믿는 만큼 행복이 클 것입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달래라. 그리고 근심을 네게서 멀리 던져 버려라. 정녕 근심은 많은 사람을 망쳐 놓고 그 안에는 아무 득도 없다.”(집회3,23)
사랑합니다.
근심과 걱정을 이기는 힘
-김훈일 신부-
매년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욱더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의 가치관과 가정과 사회입니다.
자살, 이혼, 윤락, 청소년 범죄 등 가치관의 상실로 인해서 삶을 실패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늘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새도 보살피거늘 더 소중한 우리는 얼마나 보살펴 주시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인생에 시련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강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만 바라보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하신 하느님께서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세상 시련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둘째,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유가 많은 곳에 근심이 많아지는 법입니다. 걱정과 근심은 나눔을 통해서 없어집니다. 쌓아만 두려고 하고 남이 쌓아둔 것을 탐내는 삶이 우리를 황폐하게 합니다. 셋째, 무엇을 하든지 하느님의 나라와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주님께 기도합니까?
나의 욕구가 채워지기를 위해 기도합니까? 성경이 말하는 참기도의 뜻은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랑하다
-깈찬선신부-
“그러므로 내일 걱정을 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은 내일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래 살았다고 다 내일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걱정해도 아무 소용없음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걱정 않습니다.
그러나 미리 걱정해도 아무 소용없기에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진정 깨달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심은 오늘을 살라 하심이기에 오늘을 산다는 것의 그 뜻을 알고 그래서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야 진정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늘을 산다는 것의 그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을 산다는 것은 지금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지금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지금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지금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지금 살아있음을 감사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을 산다는 것은 오늘 할 일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랑합니다. 지금 감사합니다. 지금 용서합니다.
지금 화해합니다. 지금 기도합니다.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지금의 내 옆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의 하느님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