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금요일(마태6,19-23)

2011. 6. 17. 오후 4:45:16

글자

 

2011 6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 6,19-23)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also will your heart be.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자신의 출신과 신분을 드러내고 선교를 하면서 경험한 온갖 위험과 고통을 나열한다.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자신을 자랑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코린토에서 활동하는 ‘거짓 사도들’을 신자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교회를 그들에게서 보호하려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가르치신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의, 사랑, 진실, 선행 등과 같은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폼페이의 최후’라는 이름으로 고대 도시의 유물을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폼페이는 79년에 활화산 베수비오 산의 폭발로 화산재가 덮쳐 인간의 역사에서 사라진 곳입니다. 한순간에 멈추어 버린 도시가 타임캡슐처럼 우리 시대에 이르러 발굴되어 그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화산재로 식사를 하다가 최후를 맞은 가족도 있고, 아기를 감싸 안고 죽음을 맞이한 여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생생한 당시 모습들 가운데 양손에 보석을 한 움큼 움켜쥐고 그대로 화산재를 쓰고 굳은 사람의 모습이 특별히 눈에 띕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재물을 놓지 못하고 움켜쥔 미련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면 어떨지요? 그리고 죽음 앞에서 자신은 무엇을 움켜잡고 싶은지요? 자신이 집착하며 살던 재물도 사람도 아무것도 죽음과 함께 데려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왔던 자신의 한 생애만이 오로지 내 것이 되어 하느님께 안고 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온 시간들이 내 인생의 보물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우리 인생의 보물인 것입니다.
비신자들마저도 죽음의 순간을 마주하여 가장 후회하는 것이 ‘좀 더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탐욕과 허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사는 동안 어느새 생의 마지막 자리에 와 닿은 것입니다. 폼페이 최후의 어느 모습처럼, 한 움큼의 보석만을 움켜쥐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보물은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과 함께 0(zero)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이 거룩하고 아름답게 만든 시간만이 영원한 나의 것이 됩니다. 그 시간이라는 보물은 움켜잡아서 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내어 줄 때 나의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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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적 인간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재물을 섬길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을 섬기자니 눈앞의 재물이 탐나고, 재물을 섬기자니 양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하느님보다는 재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재물은 눈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다 쌓아 두지 말고, 하느님과 재물 가운데 양자택일하여 하느님만 주인으로 섬길 것을 명령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바로 그 가치관이 각 사람의 존재 방식, 생활 방식과 인생관을 결정하지요. 그렇다면 지금 나 자신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입니까? 재물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나눔과 섬김과 형제애를 발휘하시고, 정의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고 살리십니다. 그러나 재산을 축적하는 일에 눈이 멀면 어떤 형태나 경로로든지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착취하거나 노예화하고, 또 더러는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렇게 얻어 낸 재산은 결국 우리의 인생이 다하는 날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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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 나오는 ‘하늘에 쌓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공로입니다. 주님을 위해 애쓴 일들입니다. 사람들은 못 봐도 주님께서는 보시는 일입니다. 참고 인내하며 절제했던 것들이지요. 사람을 의식하고 일하면 피곤합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교회 일을 하면 더욱 피곤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일하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교회 일을 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쌓는 보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맑은 눈은 그 속에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하늘이 주는 기쁨입니다. 하늘의 보화가 땅의 기쁨으로 바뀐 것이지요. 어린이는 눈이 맑습니다. 부모의 사랑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인 우리도 어린이처럼 살면 맑은 눈이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도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눈은 맑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보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보십니다. 화려한 겉모습을 뚫고 속내를 보십니다. 세상 편견을 넘어 참모습을 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눈빛을 닮아야겠습니다. 그분처럼 보기 시작하면 그런 눈빛이 됩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눈빛이 됩니다. 두려움을 주는 눈빛은 주님을 닮은 눈빛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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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가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땅은 아프리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19세기 초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이 한탕을 노리며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벼락부자의 꿈을 꾸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결코 만만한 대륙이 아니었습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장애물 앞에 많은 사람이 죽어 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몇몇은 살아 돌아왔습니다. 어린이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온 이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존하는 가장 큰 다이아몬드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어마어마한 돈을 제시하며 그것을 구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여 가지고 온 이들은 팔지 않았습니다. 숱한 동료들의 삶이 서려 있는 보석이었기에 돈과 바꿀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그 다이아몬드를 나라에 기증하였고, 그래서 지금까지 영국의 박물관에 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험난한 땅을 찾았던 그들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깨달은 결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 무엇이겠는지 우리 각자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의 마음은

  -반영억신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2,7-8) 

세상의 사람들은 감히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지배하고 소유하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서로를 섬기면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부모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그리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몫이 있고 그것을 인정해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기려 하면 반드시 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낮아지는 곳에서는 협력자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하신 후 특별히 열 두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뽑힌 이들을 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죄인으로 멸시 받던 세리 마태오, 혁명당원 시몬, 배반자가 된 유다, 베드로예수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미래를 열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새 희망을 안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허물을 보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자기를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용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때때로 기적을 베풀고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능력을 드러냈을 때,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소신 있게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도 시작한 일이 선하다면 흔들림 없이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28)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모든 멍에와 짐을 예수님께 돌려드리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살펴보십시오.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말씀은 보물을 하느님 뜻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음 두는 곳으로 몸이 가게 마련입니다. ‘마음을 산에 두면 산으로 몸이 가고, 마음을 바다에 두면 바다로 몸이 갑니다. 마음을 선한 곳에 두면 선한 곳으로 몸이 갑니다. 마음을 나쁜 곳에 두면 나쁜 곳으로 몸이 갑니다.’ 몸은 마음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성한 눈은 맑은 눈입니다. 마음이 맑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흔들림이 없이 마음을 주님께 향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어떻게 지금 여기서 `하늘`을 발견할까?

-엄재중-

 

오늘 예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의 명확한 대비를 통해 땅을 버리고 하늘을 선택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땅과 하늘이 말 그대로의 땅과 하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땅이란 ‘자신을 위한’ 어떤 의지와 행위 일체를 말하는 것이고, 하늘은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 안에서 하늘과 땅을 명확히 식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로 땅을 위한 일을 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늘을 위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처신하며 때로는 이를 타인 앞에서 내세우기까지 한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려면 먼저 그 하늘이 어디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눈을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신다. 몸의 등불인 눈은 우리에게 하늘과 땅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은 많이 피곤하다. 세상사가 그리 명확하고 단순하지 않다. 현대 세계는 예전보다 엄청나게 복잡해지고 불투명해졌다. 이런 세상에서 하늘과 땅을 명확히 식별하기란 어렵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이 땅의 논리가 아닌 복음 정신으로 보도록 자신의 눈을 단련시켜야 한다. 복음 정신에 충만하지 않은 눈은 쉽사리 하늘과 땅을 혼동할 수 있고 그리로 가는 길을 자주 놓치기에 늘 경계심을 갖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보려면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 3,3)고 하셨다. 이 대전환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보물이 있는 곳(마태6,19-23)

- 유 광수신부-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그것을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흠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그것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모하며 흠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나 자신을 위하여 쌓아 둘 보물은 어떤 보물일까? 과연 나에게 보물이 있는가?
하늘에 쌓아둘 보물이란 어떤 보물인가? 내가 보물을 쌓아 두어야할 하늘이란 어디인가?

보물이란 가장 귀한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요, 가지고 있으면 넉넉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요,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말한다.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나 자신이 부유해진다. 즉 나를 부유하게 만든다. 과연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이 보물이란 어떤 것일까?" 에서부터 우리의 묵상을 시작하자.
예수님은 5장을 시작하시면서 참된 행복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이들! 그들이 위로를 받으리니, 행복하여라, 온유한 이들! 그들이 땅을 차지하리니.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 그들이 흡족해지리니.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이들! 그들이 자비를 입으리니.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이들! 그들이 하느님을 뵈오리니.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이들!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니.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이 참된 행복에 대한 가르침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더 할 수 없는 값진 보물들이다. 가장 귀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할 보물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 그것도 일시적으로가 아닌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보물은 이 세상에 있는 금, 은 다이몬드가 아닌 바로 진복팔단이다. 여덟가지 참된 행복에 대한 가르침은 하나 하나 모두 진주보다 더 갚진 보물이다. 따라서 이 보물들은 우리가 보고 그냥 지나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야할 보물들이다.

 그럼 보물을 쌓아야 할 하늘이란 어디인가?
하늘이란 우리 마음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보물인 참된 행복은 땅이 아닌 우리 마음 속에 쌓아야 한다.
"쌓다."라는 말은 그 보물이 내 안에 들어와서 자리 잡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다. 참된 행복의 가르침은 분명히 값진 보물이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도 내 손에 직접 쥐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듯이 참된 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그냥 흘려 버린다면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땅에 버려져있는 보물과 같다.
참된 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하나 하나 실천하는 것이 곧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내가 가난한 마음이라는 보물을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가난이라는 등불에서 비추어져 나가는 빛이 내 눈에서 발산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 가난이라는 보물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 마음속에 자비라는 보물을 쌓아두고 있다면 내 눈에서 자비라는 등불이 켜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눈을 보고 자비의 눈이 어떤 눈인가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내 마음속에 평화라는 보물을 품고 있다면 내 눈에서 평화의 등불이 켜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평화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의로움이라는 보물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실천하고 있다면 내 눈에서 의로움의 등불이 켜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의로움의 빛을 받고 의로워지려고 할 것이다. 내 마음에 온유의 보물을 쌓아두고 있다면 내 눈에서 온유함의 등불이 켜질 것이다. 그러면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온유해 질 것이다. 과연 나는 내 마음속에 어떤 보물을 쌓아두고 있는가? 내 눈에는 어떤 등불이 켜져 있는가?

 우리가 마음에 보물을 쌓기 위해서 먼저 해야하는 것은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하는 그 귀한 보물이 바로 진복팔단이라는 것을 알아 보는 것이다. 즉 무엇이 보물인지를 알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참된 행복이야 말로 가장 귀중한 보물이라고 알아 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고 다이몬드나 진주도 아니고 명예나 권력도 아닌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발견한 이 보물을 마음에 쌓아야 한다. 아무리 값진 보물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듯이 우리가 발견한 이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쌓아야 한다. 내 마음에 쌓는다는 것은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즉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또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진복팔단의 보물이 내 마음 안에 가득 쌓일 때 우리는 참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보물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보물이면서도 알아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이 불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보물을 쌓지 않고 좀과 녹이 쓰는 땅의 보물들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땅에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진복팔단이 진정한 보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기에 마음을 두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땅에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완덕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즉 예수님이 "너희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고 말씀하신 대로 완덕을 추구하는 삶이다. 완덕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진복팔단의 보물이 눈에 보이고 그 보물의 진가를 알아 본다.

참된 행복에 대한 가르침이 보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보물을 마음에 쌓는 사람은 더욱 행복한 사람이다. 더 나아가서 그 보물의 빛을 발산하는 사람은 성인이다. 온 몸이 행복의 빛으로 환해질 것이다.
하루 하루 그냥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하느님이 주신 하루 하루는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주신 시간이요,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모습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여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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