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목요일*(마태오 6,7-15)

2011. 6. 16. 오전 5: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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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16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오 6,7-15)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마치 코린토 교회를 그리스도와 약혼한 자기 딸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사도는 자신이 보여 준 삶의 모든 봉사와 희생은 신자들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기도는 빈말을 되풀이하거나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며 주님의 뜻을 살피고, 주님께 하루하루 의탁하면서 주님께 용서와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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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열심인 신자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바치는 기도가 있지요.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이면 누구나 주님의 기도는 외우고 있고 언제든지 편하게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오늘 복음에서 보듯,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직접 가르쳐 주셔서 우리에게 전해졌기에 초대 교회부터 참으로 소중한 기도로 여겨졌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은 주님의 기도 안에 복음의 핵심이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묵상하면서 이 기도를 바치면 날마다 다른 느낌으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오늘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말씀에 마음이 꽂힙니다. 평생 먹고도 남을 양식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 살아갈 양식입니다. 오로지 하루하루를 하느님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욕심 없는 가난한 마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보았던 사진 속 가난한 노(老) 사제의 한 장면도 떠오릅니다. 식탁 위 빵 한 조각 차려 놓고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아는 소박한 행복이 마음속에서 배어 나옵니다.
이처럼 주님의 기도만 올바르게 잘 바쳐도 우리는 복음의 깊은 의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이기에 주님의 마음에 깊이 가 닿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부르는 순간 이미 주님께서는 사랑스러운 당신 자녀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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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무슨 유혹일는지요?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유혹입니다. 일용한 양식을 주시건만 믿지 않으려는 유혹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혹입니다.
우리는 수없이 주님의 기도를 바쳐 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유혹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진지하게 묵상해 봐야 합니다. 애절하게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도에 담긴 예수님의 가르침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용서는 일상의 양식과 연관됩니다. 먹는 것만이 양식은 아닙니다. ‘왜 사는지?’에 대한 깨달음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잘못을 받아들이면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이든 가족의 잘못이든 인정하고 이해하면분명 새로운 힘이 주어집니다. 은총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자녀들이 잘 살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우리가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삶이 힘들 때 큰 소리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십시오. 마음에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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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한쪽만 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교육은 양쪽을 다 보도록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편견을 심어 주고 떠난 사람들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이 대목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편견은 유혹이며, 아집 또한 유혹입니다. 편견은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려는 유혹입니다. 지도자들이 쉽게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이러한 유혹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시선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넓은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편견을 벗어 버리면, 세상이 얼마나 밝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따듯한지 금방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심장과 심장의 만남

  -반영억신부-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간단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저의 심장으로부터 예수님의 심장에로, 저의 심장으로부터 마리아의 심장에로, 저의 심장으로부터 성인들의 심장에로 기도합니다.” (마더데레사) 기도는 이렇게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 기도는 입으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러니 빈말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고 하시며 친히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청하기도 전에 알고 계시니만큼 우격다짐으로 떼를 쓰지 말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듣게 해 주십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데서 시작합니다. 마음을 열면 그분은 사랑과 기쁨, 희망과 평화로 채워주십니다.

 

살아가면서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기도해 주겠다.’,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의미를 안다면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하고 믿음으로 열매를 희망해야 합니다. 일생이 짧든 길든, 무엇인가에 성공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기도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머리로 하기보다는 사랑으로 합니다. 그리고 의지의 실천으로 합니다.

 

교부 푀멘은 말합니다. “‘기도 중에 졸고 있는 형제를 보거든 깨어 기도하도록 꼬집어 주어야 됩니까?’라고 제자가 여쭙자 ‘어느 형제가 조는 것을 보게 되면 나는 내 무릎을 베고 쉬게 해 주겠습니다.’ 라고 사부는 말할 것입니다.” 기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즐겨하는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 핵심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요, 아버지의 뜻 역시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시작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몸속에 피가 없다면 생명이 없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다면 달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없다면 영혼은 죽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도 합니다. 숨을 멈추지 않는 날들로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용서

-이준석 신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에서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스승이 가르쳐준 기도를 함께 바치면

그것은 곧 나는 누구 누구의 제자요라고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

바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공공연한 선포와도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행하던 기도와 비교할 때 주님의 기도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기도들에서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

용서라는 덕목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악인에 대한 심판과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에 대한 징벌을

청하기도 했던 그 당시 기도들의 일반적인 경향을 놓고 볼 때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라는

기도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럼 마음을 열고 내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할 준비를 해보시겠습니까?

 

 

언젠가는

- 임순연 수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먼저 아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의 뜻은 우리 생활에서 꿈을 통해, 사람을 통해, 상황을 통해 드러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땅의 모습은 평화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처럼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드러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새터민지원센터를 운영한 지도 1 10개월이 되어갑니다. 정신적·육체적·경제적·문화적 어려움에 고립 되어가는 새터민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가장 어려운 점은신뢰형성입니다. 혈연·지연·학연 없이 남한의 어느 지역에 입주하면서부터 생기는 새터민들의 어려움은 반복되는 실수와 배움으로 조금씩 익숙해져 가지만, 마음속에 있는 불신은 눈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좀처럼 측정하기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그들을 말없이 믿음으로써 믿음을 알려주는 방법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모르고 하느님께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전해 주면서 저의 신앙 또한 깊어지고 넓어지는 은총을 경험합니다. 나의 욕심이나 계획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지향을 두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서 하루를 이어갈 때 땅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됨을 언젠가 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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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아버지의 배려

-김선오 신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칼을 달라고 청하면 정상적인 부모라면 쉽게 칼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떼를 써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는
절대로 칼을 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성장해서 안전하게 칼을 사용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부모는 칼을 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어떤 것을 달라고 하거나 해달라고 청합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이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반드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언제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신지 당장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것을 깨닫게 되는 날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이 무엇을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주실 시기는 아버지가
결정합니다. 그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배려이고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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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곧 하느님의 뜻대로 다스려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펼쳐질 수 있는 곳은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내맡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죽음 앞에서조차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내맡기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또 예수님에게서 당신의 뜻을 펼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두 분을 본받는 우리의 신앙으로 마침내 하느님 나라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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