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6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29-33)
In the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courage,
I have conquered the world
세상을 이기는 힘 -반영억 라파엘 신부-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것이 승리라고 좋아하였지만 예수님께는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 그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이 오히려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은 그것을 쉽게 알아듣지 못하였고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겪기까지 그리고 부활하시어 제자들과 동행하시고 일깨워 주시기까지 그들의 믿음은 다져지지 못하였습니다. 굳센 믿음을 지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저절로 믿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할 때 믿음을 견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쁨과 슬픔에 관해 말씀하시며 세상의 환난을 겪어내기를 기원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고통과 환난을 겪겠지만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당부를 하신 것입니다. 결국은 주님께서 승리할 것이고 그 승리는 제자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승리를 받아들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곁에 있었던 제자들도 믿음이 온전히 영글기까지 오랜 시간과 시련의시간이 필요하였는데 하물며 우리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세상을 이기는 힘은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사도10,38) 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줄 것입니다.”(필리3,21) 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굴복시키고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는 능력의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주님을 애타게 부르고 마침내 그분 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현존을 깨닫기도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생각하고 찾으십니다. 마음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골에 가문이 오래된 가정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높은 벼슬을 하였으나 자손이 번창 하지 못하여 한 농부가 그 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농부는 오래된 가구며 유물을 다 팔아 버리고 병풍 하나만 남겨 놓았습니다. 그것도 엿장수가 자꾸 팔아버리라고 조르는 바람에 십 만원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나중에 그것이 시가 오백만 원을 웃도는 병풍임을 알고 후회하며 가슴을 쳤답니다. 그 농부가 좀 더 지혜로워 그 병풍의 가치를 알았더라면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죄였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이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죄가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방법> 혹시 본인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 100% 만족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내 지난 삶을 돌아보며 너무 흡족해서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그런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대체로 불만족 속에 살아갑니다. 늘 뭔가 좀 아쉽고 늘 뭔가 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 때문에 발전이 있고 진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이런저런 실망과 좌절, 실패와 낙담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살아갈수록 ‘나 자신’이란 존재, 어찌 그리 부족한지요. 그래서 실망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토록 ‘결핍 투성이’인 우리들이 모여 있는 우리 공동체 역시 자주 실망을 안겨줍니다. 세상의 덧없음, 세상의 혼란스러움, 세상의 변화무쌍함, 세상의 악 역시 나를 힘겹게 합니다.
한번 번듯하게 살아보고자, 한번 제대로 살아보고자 기를 쓰고 발버둥치지만 세상에 나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시대를 잘 못 타고 났나 봅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는 들어가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성취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 딱히 내세울 것 하나 없습니다. 그저 지루하고 때로 비루한 일상만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돌아감에 절망감은 더욱 커져갑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내게 무거운 짐 덩어리일 뿐입니다. 고통만 안겨주는 거추장스런 대상일 뿐입니다.
이런 제자들 앞에, 이런 오늘의 우리들 앞에 다가오신 예수님, 그분이 던지신 한 말씀은 너무나 큰 힘을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시는데, 과연 어떻게 세상을 이기셨을까요?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셨을까요?
힘을 통해서였을까요? 창이나 칼을 통해서였을까요? 권모술수를 통해서였을까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극진히 사랑함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랑하면 관심을 갖게 되고 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관심을 갖고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관심갖고 들여다보니 약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죄와 악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싹텄습니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 바라보니 측은지심이 생겼고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미움이 대상이 아니라 측은지심의 대상,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의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이 거치셨던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을 같은 방법으로 거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때로 미워하지만 결국 용서하고, 때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한 걸음 더 물러서서 바라보고, 결국 측은지심과 연민의 마음으로 세상을 끌어안고 세상을 포용하는 그런 노력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준석신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예수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잘 이해가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안에서도 주님의 현존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도 그러한 순간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비유를 통하지않고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들이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깨달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실로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때’가 닥치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려두고 달아났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참 신앙생활이 꿀처럼 달 때에는 주님을 곁에 모시지만 정작 어려움이 닥치고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없게 될 때면 그분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낙담하지는 맙시다. 주님께 다시 돌아온 제자들이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살았듯이 우리도 주님께로 다시 돌아와 ‘세상을 이기신’ 그분과 함께 승리자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스승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참된 승리 -김찬선신부-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을 이기셨다고 하십니다.

낙담 끝에 오는 희망
그런데 사실은 세상에 진 것이 아닙니까?
제자들은 뿔뿔이 다 흩어지고 당신은 죽임을 당하실 것이니 세상에 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당신이 세상을 이겼다고 하십니까?
옛날 어른들의 말에 “진 것이 이긴 것이야!”하는데 그 뜻일까요?
그런 뜻이 있기는 있습니다.
이기려고 들지 않은 것이 이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조금 다른 뜻일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승리자가 되라고 유혹을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적을 행함으로써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큰 업적을 쌓음으로써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 하늘로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에 만족하여 하느님께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상을 이겼다고 하심은 세상의 승리자가 되라는 세상의 이런 유혹들에 한 번도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넘어가지 않고 늘 아버지와 함께 하시며
끝까지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셨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승리일 것입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가 에페소로 갔더니 그곳에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오로는 그들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주고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리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제자들에게 어떤 슬픔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분이심을 기억하며 어려움과 고난을 견뎌 내도록 격려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한국은 과거 전쟁과 가난 때문에 많은 어린이가 외국으로 입양되어 나갔습니다. 생활 수준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진 오늘날에도 한국은 여전히 국내 입양 문화가 정착하지 못해서 많은 어린이가 다른 나라에 입양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을 떠나게 된 어린이들이 자라 무작정 고국을 찾거나 부모를 찾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입양아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런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는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정체성의 문제는 혈육이나 문화의 문제보다 더 깊은 데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뿌리가 진정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체성의 근원적인 혼란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뿌리를 내리는 믿음이 없을 때 우리 인간은 부초처럼 떠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물이나 권력이나 세상의 헛된 것을 붙잡고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세상 것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잃게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긴 고별 담화 가운데 일부입니다. 고별 담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처럼 당신께 믿음을 두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 세상을 이기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최종 승자는 주님께 온전히 믿음을 두고 산 사람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실망을 내다보십니다. 당신의 죽음 때문에 좌절하며 돌아서는 모습입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스승님의 담담한 목소리입니다. 그 말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제자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이 되었더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힘을 주십니다. 세상을 이겨 내신 당신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실망을 안고 성당을 떠나갑니다. 좋아서 입교했고 세례까지 받았는데, 무엇인가 ‘걸림돌’이 되어 발길을 돌립니다. 생각해 보면 ‘신앙과는 무관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신자들과 맺는 ‘관계’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에게서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믿음의 자신감’을 앗아 간 것입니다.
복음 말씀에서 ‘신앙의 힘’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에너지 자체이십니다. 그분께 다가가면 그만큼 삶의 어둠과 연약함은 사라집니다. 그분의 힘이 오시면 ‘단박에’ 밝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신앙도 없습니다.
☆☆☆
한 농부가 우연히 ‘매’ 알을 주웠습니다. 집으로 가져가 닭장에 있는 계란 사이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알에서 ‘새끼 매’가 태어났습니다. 이 새끼 매는 점점 자라더니 ‘어정쩡한 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동거지는 닭과 꼭 같았습니다. 닭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고 가끔 파닥거리며 뛰어오르지만 얼마 못 날고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닭처럼 땅에 떨어진 낟알이나 곤충을 잡아먹었습니다.
어느 날 이 ‘어정쩡한 매’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진짜 매’를 발견했습니다. 유유히 날고 있는 모습이 부러운 듯, 옆에 있는 수탉에게 묻습니다. “저게 무슨 새냐?” 수탉은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으로 답합니다. “저건 바로 매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새지.” “정말 대단해! 나도 매처럼 날고 싶어.” 수탉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꿈 깨! 우리 닭은 매하고는 근본적으로 달라.”
꿈을 포기한다면 ‘어정쩡한 매’는 끝가지 닭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날아다니는 연습’을 한다면 머지않아 ‘진짜 매’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스승님을 닮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그들 앞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박해와 시련을 견디어 내야 스승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싫어 ‘제자리걸음’만 한다면 깨달음은 까마득하게 됩니다.
★★★
요한 복음의 주제는 ‘빛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서 오셨기에 ‘어둠의 세상’은 ‘빛의 세상’으로 바뀔 수 있었다고 요한 복음은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빛뿐입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이라도 새벽이 오면 사라지고 맙니다.
어둠은 악의 요소입니다. 그리고 빛은 선의 요소입니다. 누구라도 세상을 살다 보면 악의 요소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인생에 어둠을 남깁니다. 무엇으로 몰아낼 수 있을는지요? 빛의 생활밖에 없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선행’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업이 어둠일 수 있습니다. 자라 온 환경이 어둠일 수 있습니다. 맺고 있는 관계가 어둠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업이나 관계를 단박에 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는지요? 복음 말씀에서 답을 찾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습니다. 빛이신 그분께 다가가면 그만큼 어두움은 사라집니다. 그분의 힘이 내 안에 머물면 그만큼 나는 밝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