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요한 15,9-11)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2011. 5. 26. 오전 5: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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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26일 목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If you keep my commandments,  you will remain in my love,
just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remain in his love.

(요한 15,9-11)

 포도나무

 

 

말씀의 초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할례 문제에 대하여 사도들과 원로들이 논의할 때,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그는 성령께서 모든 이를 인정해 주셨고 아무런 차별이 없게 하셨음을 밝히며, 할례 받지 않은 비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머무르시듯이, 우리도 예수님 안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복음).

오늘의 묵상

“가지가 열매를 맺는가? 아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가? 흙이 없는데 태양이 없는데 물이 없는데 농부가 일하지 않는데 나무가 스스로 과실을 맺는가? 아니다. 그러면 흙이 열매를 맺는가? 아니다. 태양이 열매를 맺는가? 아니다. 물이 열매를 맺는가? 아니다. 농부가 열매를 맺는가? 아니다. 손발이 일을 하는가? 아니다. 일을 하는 것은 손발이 아니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일을 하는가? 흙이 없는데 태양이 없는데 물이 없는데 일거리가 없는데 사람이 저 혼자 일을 하는가? 아니다. …… 흙도 아니면서 태양도 아니면서 물도 아니면서 농부도 아니면서 흙도 되고 태양도 되고 물도 되고 농부도 되는 그 ‘어떤 이’를 가리켜 우리는 할 수 없이 ‘하느님’이라 부른다.”
‘이 아무개’가 쓴 책, 『길에서 주운 생각들』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도 제 스스로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열매를 맺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섭리 안에 머물러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도 이럴진대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꽃들의 향기, 밤하늘의 별들, 아름다운 새소리가 없는데, 세상을 느끼는 눈과 코와 귀가 없는데, 온몸을 타고 도는 더운 피가 없는데, 푸른 하늘을 숨 쉬는 호흡이 없는데, 이웃이 없는데 …… 우리 손발도 아니면서, 눈과 코와 귀도 아니면서, 심장도 호흡도 아니면서, 이웃도 아니면서, 우리 손발이 되고 오관이 되고 심장이 되고 호흡이 되고 이웃이 되는, 우리의 주님! 그분의 섭리 안에 머무르지 않는데, 그분 정원의 한 그루 나무가 되지 않는데, 우리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살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용서입니다. 끊임없는 베푸심입니다. 그러니 겁주는 하느님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면서 겁을 주고 있다면 이상한 관계입니다. 주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사랑은 많은 것을 묻지 않습니다. 서로 잘 살기를 바라는 관계입니다. 늘 기쁨으로 만나기를 바라는 사이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어두웠기에신앙생활도 어두웠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관계를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에는 꽃밭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막과 가시밭도 있습니다. 교만과 방심 때문에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실패와 좌절을 느끼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을는지요?
주님은 포도나무며, 우리는 가지입니다. 잘 못사는 것처럼 느껴져도, ‘나무에 달린가지임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늘 기쁨을 주십니다. 그 기쁨을 깨닫기 시작하면 삶의 행복도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반영억라파엘신부*-

무슨 일을 하든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하면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면 보람과 기쁨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명령이나 의무에 의해 한다면 진정한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내리는 분의 뜻을 알기 위해 또 그분과 하나가 되기 위해 지킨다면 그 의미가 풍요로워집니다. 사실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많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부족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하고 또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머물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들을 위한 당신의 사랑이 선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였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사랑은 제자들을 위한 사랑의 기초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들 예수님께서 받으셨고 예수님의 사랑을 제자들이 받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제자들 서로 간에 사랑을 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이웃 사람에게로 사랑의 손길을 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13,35)

우리 옛 속담에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게 된다는 듯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은 내리사랑 안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도 같은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품 안에는 아홉 자식이 있을 곳이 있지만, 아홉 자식의 어느 집에도 아버지가 있을 곳은 없다.”는 격언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 안에 머물라고 당부하는 것은 당신의 기쁨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고 그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충만한 기쁨을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혹 계명을 억지로 지키는 사람은 헛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계명을 지키십시오. 마음 속 깊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도 그를 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채비가 갖추어져 있는 만큼 그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디아도쿠스주교)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 받는 존재가 됩니다.(작은 거인들에서) 망설이지 말고 사랑을 위한 사랑을 함으로써 주님의 계명을 기쁘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개그맨 신부님>

      필립보 네리 신부님,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삶을 사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다른 무엇에 앞서 대단한 ‘개그맨’이었습니다. 유머감각이 탁월하셔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의 배를 쥐게 만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기뻤으면 필립보 네리 신부님의 ‘절친’ 교황 레오 11세께서는 어떤 날 4-5시간 동안 그의 방에서 담소를 나누었으며, 필립보 네리 신부님의 사무실을 가리켜 ‘이곳은 나의 낙원’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늘 호탕한 웃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삶의 기쁨을 선사하던 대단한 ‘훈남’이셨습니다. 얼마나 원만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지니셨던지, 평생토록 그분의 주변은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그야말로 ‘폭풍인기’를 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기쁨, 세상의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한 차원 높은 기쁨, 결국 영적인 기쁨, 하느님 안의 기쁨을 추구하였습니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한 차원 더 높은 성화의 언덕으로 이끌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좋아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결국 그는 오라토리오회를 창설하여 동료들과 함께 기쁨 속에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렇게 필립보 네리 신부님의 한평생 삶을 관통한 주제어는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잘 믿지 못하시겠지만 우리 인간 각자는 하느님 입장에서 볼 때 기쁨의 원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기쁨으로 충만한 생활입니다.

     이처럼 기쁨은 여러 그리스도교 덕행 가운데 아주 향기로운 덕행입니다. 기쁨은 가장 두드러진 성성의 한 표현입니다. 울적한 성인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충실한 영성생활의 결과는 기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상의 기쁨을 주님 안에서의 기쁨, 영적인 기쁨으로 승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각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인 기쁨을 만끽하지 않고 살았던 것에 대해 마지막 날에 하느님 앞에서 셈을 바쳐야 합니다.”(탈무드)

     “세상을 두고 기뻐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죄 안에서 기뻐하지 말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허영의 꽃을 두고 기뻐하지 말고 영원의 희망 안에서 기뻐하십시오.”(성 아우구스티누스)

     “슬퍼하는 성인은 불쌍한 성인입니다.”(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피 4장 4-6절)(R)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머묾의 미학

-오상선신부-

 

"너희는 내 사랑안에 머물러라!"

내가 머무는 곳,
내 마음이 머무는 곳,
그것이 선이다.
좋기 때문에 머문다.
좋지 않으면 절대로 머물지 않는다.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

누구와의 만남이 있을 때
그와 오래 머물고 싶다면
그것은 선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무엇에 몰입해 있다면
그것은 선이다.
내가 그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에게 머물러 있고
어디에 머물러 있고
무엇에 머물러 있느냐가 문제다.

그 대상이 누구며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그것이 참으로 나를 진복으로 이끄는 것인지에 대한 식별이 필요하다.

오늘 주님은
"내 안에,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너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내가 참으로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내가 참으로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된다.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사랑 안에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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