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감당하게 (요한 10,11-18)

2011. 5. 17. 오후 9: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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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6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I am the Good Shepherd"

A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요한 10,11-18)

 

말씀의 초대

 

할례를 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베드로는 하느님께 받은 환시를 전하며, 모든 음식은 깨끗하고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을 가르친다(1독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자기 목숨을 내 놓는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와 양의 관계를 말씀하시어 양들을 위해 당신께서 죽음의 길을 가신다는 것을 예고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고 / 당신 이름 위하여 /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시편 2322).
다윗이 썼다는 시편 가운데 제23편이 오늘 복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기 전 목동이었습니다. 양 떼를 이끌고 광야를 떠돌던 목동 다윗은 한편으로는 맹수에게서 양 떼를 보호하는 용맹한 전사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금을 타고 대자연을 노래하는 음악가요 문학가였습니다
.
다윗은 양들을 돌보며 목자의 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목자는 날이 밝으면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푸른 풀밭과 물가로 이끕니다. 밤이면 양 우리를 지키는 문이 되어 밤을 지새우며 양들을 지켜 줍니다. 이런 목자의 삶을 살면서 다윗은 주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목자였지만 주님 앞에서는 한 마리 양이 되어 목자이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렸고, “주님은 나의 목자!” 하고 고백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느끼는 고독과 온갖 맹수의 위협에서 자신이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듯, 주님께서 바로 목자가 되시어 자신을 이끌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우리는 주님 앞에 서면 한 마리 양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돌보고 지켜 주어야 하는 인생살이의 들판에서는 우리 또한 목자가 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착한 목자의 마음이 되면, 착한 목자이신 주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되어 보아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누군가를 위한 목자가 되어 보아야 주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누구에게나 운명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부부의 만남,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입니다. 모두가 주님께서 연출하신 것이지요. 그러기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건강한 목숨이 될 수 없습니다. 목숨을 운전한다는 것이 운명(運命)이라는 말의 숨은 뜻입니다.
어떻게 이 만남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복음 말씀에 열쇠가 있습니다.
착한 마음입니다. 착한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착하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할 말도 못하고 남에게 당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는지요? 그러나 착한 마음 뒤에는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분께서 작심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착한 마음은
참을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듯 덮어 주는 마음입니다. 성질대로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칙대로 하는 것이 늘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린이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 곁에는,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어린이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만남은 꽃입니다. 꽃이 싱싱하고 아름다우려면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이렇듯
상대를 참아 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선행을 베푸는 일입니다. 만남의 연출자는 주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지금의 만남을 주선하셨다면 앞으로의 만남에도 개입하실 것은 분명합니다. 미래를 그분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감당하게

-*반영억라파엘신부*-

 

“도모시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옆에 집을 짓는데, 길 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집을 짓는 것이 좋은가 하고 의논을 한다면, 그들의 생각이 각각 달라 일치점을 찾을 수 없어 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소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에게 기대거나 이사람, 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10,16) 여기서 “듣는다”는 말은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의 순명을 의미 합니다. 마찬가지로 “안 듣는다.”는 신앙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떤이가 ‘저놈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고 말한다면 귀로 듣는 것만을 뜻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따라 실천함으로서 한 목자에 한 양떼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순명은 강압에 의하여 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치신 것은 목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신 것이지 결코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우리도 자신을 내어 맡기신 주님의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 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요한10,17)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은 십자가 사건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아들은 그렇게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5,8) 참 사랑을 깨우치면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감당하게 됩니다. 

한 집에 살고 있는 개들이 서로 자기 자랑을 하였답니다. ‘우리 주인은 나를 좋아해!.’ ‘아니야 나를 좋아해!.’ 옆에서 듣고 있던 늙은 개가 말했습니다. ‘이봐, 주인이 진짜 좋아하는 것은 나야, 나는 내일 주인 뱃속으로 들어가거든!.’ 사랑합니다.

 

 

 

 
comme au premier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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