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6,30-35)
오늘 예수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그분 전체를 먹는 것이다. 그분의 유아기를 먹고, 유년기를 먹고, 청년기를 먹고, 공생활의 온갖 고뇌와 고통, 기쁨, 인생의 비바람을 먹고, 그리고 십자가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먹는 것이다. 그분 생의 완전한 일체이셨던 그 어머니 마리아께서도 내 몸과 영의 한 자락이 되시는 것이다. 이 거룩한 먹음의 행위를 나는 매일 치르고 있으니 내 안에 온 세상과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어느 수녀님의 묵상 글입니다. 수도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꼬박 세 끼 밥을 먹는 것, 날마다 성체를 모시며 사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을 묵상하며, 이 모든 먹는 행위 안에서 자연의 섭리와 하나 되고 주님과 하나 된다는 깨달음을 고백한 것이지요.
우리는 매일 미사에서 성체를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작은 빵 조각에 담긴 비와 바람과 햇볕과 농부의 수고가 주님의 몸이 되어 우리 안에 오는 것입니다. 온 우주가 주님의 몸으로 수렴된 성체를 통하여 우리 자신도 우주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의 몸이 다시 비와 바람과 햇볕과 농부의 땀방울로 흩어져, 온 우주와 인류로 확산됩니다. 온 우주가 한 조각의 빵을 통하여 주님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만유일체(萬有一體)가 ‘주님의 빵’이 되어 호흡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하신 이 말씀, 얼마나 엄청난 말씀인지요!
그 맛이 감미로워
~*반영억라파엘신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세례식 미사에서 성체와 성혈을 모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일 뒤 한 분이 “신부님, 미사 때 사용하는 포도주는 무엇이 다릅니까?”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십니까?” 했더니 “첫 영성체를 할 때 그 맛이 너무 감미로워서 미사 때 사용한다는 마주앙을 사다 마셔봤는데 그 때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그런 생각을 다 하였을까? 생각해 보지만 분명 술이 아니라 ‘주님의 피’이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허물을 용서 받고 새롭게 태어나서 첫 영성체를 하였으니 그 감동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떤 감각적인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마음의 뜨거운 감동과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5)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두를 채워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친히 생명의 빵으로 음식이 되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너무 높은 분으로 계시면 우리가 감히 접근하기가 어렵고 일회적으로 오시면 잊어버릴 수가 있기에 늘 우리와 함께하심을 기억하도록 성체성사를 통해서 안배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분으로 계십니다. 그러니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멀리 찾지 마십시오. 어디 계시냐? 고 묻는 바로 여러분 앞에 사랑으로 계십니다.
성 비오10세는 “영성체는 천국으로 가는데 가장 빠른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가장 쉽고 안전하고 빠른 길은 성체를 모시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미사에 참례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천상 영복의 즐거운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도록 해 주시며 천상행복을 주시는 주님을 모시는 일에 더 열심 해야겠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병중에 영성체를 한 감동을 “작은 성체 조각을 영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것조차 삼키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모시게 된 기쁨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첫 영성체 날처럼 울었습니다.” 하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뜨거운 마음으로 생명의 빵을 모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