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요한 21,1-14)

말씀의 초대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자 사람들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은 몹시 불쾌하게 여기며 사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둔다. 베드로는 신문을 받게 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병든 사람을 고쳐 주었음을 전하며 우리 구원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라는 것을 용감하게 선포한다(제1독서). 시몬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이 옛 일터로 돌아간다. 그날 밤 밤새도록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고 일러 주신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힌다. 제자들은 그분께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깨닫는다(복음).
오늘의 묵상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시몬 베드로가 체념 섞인 말투로 옛 일터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다른 몇몇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따라나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는 제자들이 모두 체념한 듯 뿔뿔이 옛 직업을 찾아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밤새 그물질을 하지만 허탕만 치고 맙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예수님께서 소리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제자들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봅니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를 처음 부르시던 날도 그랬습니다. 그날도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하고 소리치십니다. 그러자 그날도 배가 가라앉을 만큼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께 자신에게서 떠나 주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루카 5,1-11 참조). 그런데 베드로가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주님이십니다.” 하고 소리치자, 베드로는 아무런 주저 없이 겉옷을 두른 채 호수로 그냥 뛰어듭니다. 처음 예수님 앞에 죄를 고백하며 두려움에 떨던 베드로가 지금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주님께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성 생활이란 영적 자유를 향한 여정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예수님의 제자 학교에서 베드로는 어느새 이렇게 두려움이 없는 자유로운 제자로 양성되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의 저 모습을 보고 주님을 배워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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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은 좌절을 겪을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체험합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을 때’ 열등감이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좌절이 ‘먼저’입니다. 좌절하기에 가진 것이 없다고 느낍니다.
복음의 베드로 역시 좌절했습니다. 어쩌면 ‘자포자기’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료들과 고기잡이를 떠납니다. 옛 직업으로 잠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밤새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허탈감만 더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될 무렵, 부활하신 스승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놀랍게도 그분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엄청난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랍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스승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습니다. 간밤의 실패는 은총이었던 셈입니다. 기적을 위한 준비였던 것이지요.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실패가 많았습니다. 삶의 ‘좌절’들입니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열등감을 느꼈는지요? 얼마나 관계를 의심하고, 사람들 만나기를 힘들어했는지요?
부활을 위한 첫 행위는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것은 언제라도 아름다운 시도입니다. 스승님께서도 반드시 ‘말씀’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열등감의 ‘필터’가 빠져나가면, 누구나 ‘밝은 인생’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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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억울함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축복’도 체험합니다. 억울함은 때때로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동반하지만, 축복은 그것을 상쇄하는 삶의 희열을 안겨 줍니다. 그러므로 억울함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면 반드시 축복을 만납니다. 아니, ‘축복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부활의 체험인 것입니다.
우리 삶에 부활은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울함을 당할 때마다 부활은 찾아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분하고 원통한’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부활의 체험은커녕 평소의 기도마저 소홀히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억울함을 겪을 때 ‘부활의 은총’이 곁에서 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의 베드로 사도는 어찌하여 고기잡이에 나섰을까요? 무료해서 간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불안했던 겁니다. 스승님의 죽음에서 허탈함과 억울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마음을 달래러 고기잡이에 나섰습니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밤새 그물질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에 그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자 엄청나게 잡혔습니다. 그제야 그는 스승님 앞에 엎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선을 구워 주시며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어젯밤과는 너무 다른 아침입니다. 부활과 축복의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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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에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발현 사건이 유독 많습니다.
늦게 기록된 복음이기에 누락되었거나 새로 발견된 이야기를 많이 넣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으셨는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 출신입니다. 스승이 떠나자 그는 잠시 옛날 직업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겁니다. 마음을 달래러 동료들을 부추겨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밤새 노력하고도 헛수고로 끝나고 맙니다.
새벽녘에 그들은 낯선 사람을 만납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자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기적 앞에서 그들은 비로소 스승의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스승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놀란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내려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스승은 기적의 고기를 구워 주십니다. 제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분의 애정에 감격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애정을 느낀 것이지요. 한번 제자가 되었으면 영원한 제자입니다. 한번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영원한 자녀입니다. 예수님과 맺은 인연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순명은 눈을 뜨게 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우리 앞길에는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 있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리막길은 쉽고 편하지만 밋밋하고 지루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왕이면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거듭나는 길은 어렵고 힘든 것을 통해서 입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결코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없이 영광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는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했습니다. 이는 마음이 허하여 바람이나 쏘이러 간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열심히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셨고 그래서 마음을 잡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할 수 밖에요.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하며 그들에게 말하였지만 그들은 그분이 예수님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저없이 겉옷을 두르고 물에 뛰어 들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베드로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님께 달려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방금 잡은 고기 몇 마리를 직접 요리하시고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습니다. 제자들 가운데는 “누구십니까?”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고 난 후 입니다. 이른 아침 왠 젊은이가 나타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했는데 어부인 그들이 자기의 자존심을 내세워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알아 뵙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순명을 한 것입니다. 순명은 주님을 알아보는 눈을 뜨게 했고, 많은 고기를 낚는 기적을 낳기도 했습니다. 순명은 이성과 판단의 희생입니다. 어부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희생은 다른 어느 것보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주님을 잃은 것이 더없이 큰 아픔이었지만 주님의 부활을 통해 믿음을 키웠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수 차례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예고했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누구십니까?”하고 묻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은 여전히 나를 위한 분으로 계셨습니다. 내가 눈이 멀었을 뿐입니다. 눈을 뜨면 모두가 은총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알고 기뻐하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