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킨다.
주님 수난 예식
1. 이날과 다음 날에는 오랜 관습에 따라 교회에서 모든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
2. 제대는 십자가도, 촛대도, 제대포도 없이 벗겨 둔다.
3. 사목의 이유로 좀 더 늦게 할 수도 있지만 오후 3시경에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한다. 이 예식은 말씀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 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날 영성체는 예식 중에만 하지만, 병자 영성체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4. 사제와 부제들은 미사 때처럼 붉은색 제의를 갖추어 입고 제단 앞으로 나가 경의를 표한 다음,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는다. 모두 잠시 침묵 가운데에 기도한다.
5. 그다음에 사제는 복사들과 함께 주례석으로 가서 손을 모으고 교우들을 향하여 다음의 기도를 바친다.
기도 (“기도합시다” 없이)
+ 주님,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 교우들을 위하여 당신 피로써 파스카 신비를 마련하셨으니, 자비를 베푸시어 이 교우들을 영원히 보호하시며 거룩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의 모습을 전한다. 그 종은 고통과 멸시를 받으며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간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 말 없이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주님께서는 그를 속죄의 제물로 내어놓았다(제1독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대사제이시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 눈물로 탄원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고난을 받으셨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어졌다.”라고 하시며 숨을 거두신다. 이로써 예수님의 긴 수난의 고통도 끝이 난다. 온 생애를 걸쳐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완성하셨다(복음).
◎ 성실하다 십자나무 가장귀한 나무로다. 아무숲도 이런잎과 이런꽃을 못내리라.
귀한나무 귀한못들 귀한짐이 달렸도다. ○ 나의혀여 영광스러운 이싸움을 찬미하라.
십자가의 승리두고 개선노래 불러다오. 희생되신 구세주의 그승리를 노래하자.
● 성실하다 십자나무 가장귀한 나무로다. 아무숲도 이런잎과 이런꽃을 못내리라.
○ 금한열매 원조들이 유혹받아 먹었을때, 죽을원조 하느님이 불쌍하게 여기시어,
나무에서 받은상처 없앨나무 정하셨네. ● 귀한나무 귀한못들 귀한짐이 달렸도다.
○ 우리들의 구원사업 하느님의 계획대로, 음모많은 반역자들 지혜롭게 이기시고,
원수이긴 그나무로 우리구원 내리셨네. ● 성실하다 십자나무 가장귀한 나무로다.
아무숲도 이런잎과 이런꽃을 못내리라. ○ 성스러운 때가차니 창조주가 오시었네.
성부품을 떠나시어 성자탄생 하시었네. 동정녀의 태중에서 혈육취해 나셨도다.
● 귀한나무 귀한못들 귀한짐이 달렸도다. ○ 좁은구유 침대삼아 어린아기 울었도다.
팔다리를 보에싸서 동정성모 누였도다. 하느님의 손과발을 포대기로 감았도다.
● 성실하다 십자나무 가장귀한 나무로다. 아무숲도 이런잎과 이런꽃을 못내리라.
○ 삼십년의 인생겪고 연세이미 충만하니, 구세주로 십자가에 자유로이 몸을맡겨,
희생되실 어린양이 십자가에 달리셨네. 귀한나무 귀한못들 귀한짐이 달렸도다.
○ 쓸개받아 목축이고 가시못과 창에찔려, 여린몸에 피가흘러 시냇물을 이루더니,
땅과바다 우주창공 깨끗하게 씻었도다. ● 성실하다 십자나무 가장귀한 나무로다.
아무숲도 이런잎과 이런꽃을 못내리라. ○ 귀한나무 여려져라 속을풀고 가지굽혀,
타고났던 거칠음을 부드럽게 만든후에, 부드러운 줄기위에 높은임금 모시어라.
● 귀한나무 귀한못들 귀한짐이 달렸도다. ○ 너만홀로 합당하게 세상희생 모셨으니,
세상파선 피해가는 배를위한 항구로다. 어린양이 흘린피로 너만홀로 물들었다.
● 성실하다 십자나무 가장귀한 나무로다. 아무숲도 이런잎과 이런꽃을 못내리라.
<다음 구절은 절대로 생략할 수 없음>
◎ 거룩하온 성삼에게 영원영광 있으소서. 성부성자 성령에게 같은영광 있으소서.
성삼위의 높은은총 우리구해 주셨도다. 아멘.
그 목소리 들립니다. / 골고타 언덕 십자가에 고통의 신음 소리 / 핏빛 절규가 터져 나옵니다.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골고타 언덕 십자가에 바람 일고 / 그 목소리 흩어져 세상을 떠돌더니 / 2천년 역사를 넘어 여기, / 침묵 속에 잠깁니다.
세상의 실패는 골고타 언덕 조롱과 비웃음이 되고 / 세상의 절망은 십자가에 못 박혀 침묵이 되고 / 세상의 고통은 찢기운 살, 흐르는 피가 되더니 / 비로소 세상은 숨을 쉽니다.
골고타 언덕 그 목소리 / 생명을 건네 주는 펠리칸의 신음이며 / 피의 잔을 건네 주는 손길이기에 / 생명은 고통의 심연에서 차오르고 / 세상은 그 살과 피를 먹고 부활합니다. / 가슴 벅찬 사랑으로 부활합니다.
-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해마다 성금요일이 되면 생각하는 것인데, 부활절 준비를 하느라고 성금요일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활절 성가 연습을 하기에 바쁜 성가대는 성금요일에도 기쁨에 가득 찬 노래를 부르고 있고, 어떤 이는 부활절 달걀을 준비하느라고 바쁘고, 어떤 이는 부활절 축하카드를 쓰느라고 바쁘고, 기타 등등...
그래서 성금요일에도 성당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 즐거워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직 예수님의 죽음의 시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카드가 벌써부터 배달되고 있습니다.)
성금요일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고 엄숙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금육재도 지키고 단식재도 지키긴 하지만, 그런 일들은 그냥 다 형식으로 흐르고, 부활절 준비 때문에 성금요일이 묻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성금요일이 지나고 나면 성토요일이 온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부활절 행사를 토요일 하루에 다 준비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것만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사순절 전체 기간을 너무 무겁게 지낼 필요가 없고 성금요일도 마냥 슬퍼하기만 할 날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활을 너무 당연한 일로만 생각하는 것이나 성금요일을 무슨 통과의례처럼 대충 지나가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도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때가 성금요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너무나도 놀라운 반전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성금요일 하루만이라도 당시의 절망적이었던 제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성금요일뿐만 아니라 부활절의 의미마저도 퇴색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이렇게 잘 짜인 전례처럼 착착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목요일 다음에는 성금요일이고, 하루 지나면 성토요일이고 부활절이고...
지금 회사가 부도나서 쫄딱 망했지만, 조금 지나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더 큰 회사로 성장할 것이고... 지금은 시험에 떨어져서 낙방생이 되어 있지만 조금 더 지나면 더 좋은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하게 될 것이고...
지금은 병에 걸려서 침대에 누워 있지만 조금 지나면 누구보다 더 건강한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고...
아주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시련과 고통을 태연하게 참고 견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인생살이가 편하겠습니까?
그게 바로 교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이고 희망입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렇게 잘 짜인 전례처럼(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처럼)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이지만 내일은 부활절이다, 그러니 믿음을 잃지 말고 희망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입니까?
지금 절망에 빠져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날 희망 없이 누워 있는 병자에게,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할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사람에게 가서 오늘은 성금요일이고 내일은 부활절이다, 그러니 참아라, 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게 자기 자신의 일이 되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무디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부활절만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고통은 너무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성금요일이 지나면 성토요일이 온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에서의 고통과 시련도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혹시 다른 사람의 고통은 성금요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의 고통은 종말의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것들을 반성해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자꾸 바리사이들을 닮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시기를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회개를 하는 것 같은 모습도 그렇고, 금요일에 금육재는 잘 지키지만 그 나머지 요일에는 절제도 극기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도 그렇고, 일 년 주기로 반복되는 전례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를 너무 당연한, 정해진 시나리오나 프로그램처럼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가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그냥 형식으로 흘러버리는 것은 아닐까...
성금요일이 없었다면 부활절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도 없었습니다. 성금요일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면서 성토요일로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죽으셨느냐? 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을 제대로 묵상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도 제대로 묵상할 수 없습니다.
성금요일은 성금요일답게 지내야 합니다.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요한 18,1-19,42)
십자가는 나의 교과서
*반영억 라파엘 감곡주임신부*
십자가는 패배요, 절망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에게는 그 십자가가 희망과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친구로 삼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차마 피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이 넘쳤고 의인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죄인을 위한 죽음이었기에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하고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악의 고리를 끊어야만 하였기에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였습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길이기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길이었기에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십자가를 삶의 교과서로 삼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예수님이 살아있는 책”(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내가 취할 길을 발견하고 가야 할 길에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한국의 두 번째 신부인 최 양업 신부님은 “나의 빈약하고 연약함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만 주님께 바라는 굳센 믿음으로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원컨대 저 십자가의 능력이 내게 힘을 주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오 하느님, 죽어서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어떤 고통도 달게 받겠습니다. 죽음도 서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1,24)하고 콜로사이 공동체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셨고 또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서 그분처럼 사랑을 증거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일상에서 오는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십자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이며, 천당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합니다.”(성 요한 비안네) “여러분이 십자가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십자가는 여러분은 사랑할 것이며, 천상 하느님께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성녀 쥴리 빌리아르)
오늘 십자가 경배를 통하여 사랑의 십자가, 구원의 십자가를 삶의 교과서로 삼을 수 있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하고 기도한 순간들이 헛구호가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