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기 위하여(요한 3,1-8)

2011. 5. 2. 오전 7:13:18

글자
 
 

2011년 5 2일 월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는 295년 무렵 이집트의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신앙심이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사제가 되었고, 알렉산데르 주교의 비서직을 맡아 주교를 수행해 니케아 공의회(325)에 참석하였다. 뒷날 주교가 되어 아리우스 이단과 싸우다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을 뿐 아니라 몇 차례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정통 신앙을 옹호하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 3,1-8)

  

 

 

말씀의 초대

 초대 교회 공동체는 베드로를 비롯하여 사도들과 신자들이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더욱더 담대하게 주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1독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곧 누구든지 새로 나려면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복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묵상

 대부분의 과일나무들이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데, 특별히 포도나무는 다음 해를 위해 반드시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일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옛 가지들이 길게 자라기만 하고 열매는 잘 열리지 않기에, 불필요한 마른 옛 가지를 잘라 내야 거기에서 새순이 돋고 포도가 싱싱하게 잘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나무 가지를 잘라 주지 않으면 무성한 잎사귀 때문에 열매에 갈 영양분과 일사량이 줄어들어 포도송이가 잘 영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한새로 태어난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요? 예수님께서는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포도송이가 새롭게 열매를 맺듯 새순을 돋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도 마르고 썩은 옛 가지를 잘라 내야 합니다. 본성에 뿌리를 둔 온갖 집착과 욕망의 가지들을 잘라 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순이 돋고 새 열매가 맺습니다. 집착과 악습은 몸에 붙은 가지 같아서 잘라 낼 때 아픕니다
.
시적인 표현이겠지만, 포도나무도 가지를 잘라 내면 눈물을 흘린다고 했지요. 옛 가지를 잘라 낸 자리에서,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 새순이 돋을 때쯤,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우리도 새로 나려면 이런 눈물겨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로 나야 한다고 하시니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이겨 내야지요.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 새순을 돋게 하시고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니까요!

 

 

복음의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시 태어나야한다는 말씀조차 이상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어린이 같은 질문입니다. ‘새로운 영적 출발로 보면 간단한 일인데,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식만으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론에 밝은 것과 신심이 깊은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도 지식에 매달리고 교리를 따집니다. ‘마음공부가 언제나 먼저입니다. 영혼이 풍성해야 신심은 자라납니다. 주님께서도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이끄심을 첫자리에두라는 말씀입니다
.
그러니 어떤 처지에 있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아는 것을 덮고, 주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생활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새 출발에 이론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첫발을 딛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기도가 소중합니다. 어정쩡한 마음에는 영적 성장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
오랫동안 해 온 신앙생활인데도, 유치한 믿음은 여전히 많습니다. 니코데모처럼 따지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찾아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이끄심을 믿고 그분께 맡기라는 가르침입니다.

  

 “어느 날, 임원 회의에서 부산 공장의 폐수 시설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본 폐수 처리 분야 최고의 기술을 가진 곳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그곳은 과거 우리의 합작 회사이자 집적 회로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종합 전자 회사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곳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부산 공장 문제를 의논하였다. 그는 이러한 질문부터 던졌다. ‘폐수 처리 시설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폐수 처리를 하려고요.’ 뒷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이 이렇게 대답하자 회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처리할 폐수가 없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폐수 처리 시설도 필요 없죠.’ ‘그렇습니다. 오늘 저의 결론은 바로 그겁니다. 폐수 처리 시설을 만드는 데 고심하지 말고 차라리 폐수를 줄이십시오’”(손욱, 『변화의 중심에 서라』).
이 이야기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관점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러한 관점의 변화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기업체의 사장은 폐수 시설을 증설할 계획을 포기하고 폐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문제의 초점을 전환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겪는 인생 문제들도 사실은 이와 같은 방식의 해결이 필요합니다. 이를 오늘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위로부터,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니코데모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입니다. 최고 의회는 이스라엘의 입법과 사법을 통괄하는 최고 기관으로 산헤드린이라 합니다. 그런 위치에 있었지만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조차 엉뚱하게 받아들입니다.
지식과 이론이 그대로 영적 성숙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영적으로는 여전히 어린이로 살고 있는지요? 신앙은 행동이지 이론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끄심을 만나고 체험해야 성숙한 삶이 가능해집니다
.
영적 이끄심을 체험하면 타인을 편안하게 합니다. 위로부터 이끄심을 받기에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우아한 외침을 내세우더라도 사람을 괴롭힌다면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니코데모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먼저 고생과 실패를 겪게 하십니다. 때로는 강한 좌절을 느끼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이끄심입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라고 하셨습니다. 은총 역시 주님을 따르는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그 사람은 이론으로 무장된 사람이 아닙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새로 나기 위하여

-강영구신부-

예수님, 새로 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니고데모는 새로 난다는 것을 어머니 배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남은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라 하셨음으로, 다시 태어남은 육적인 태어남이 아니라 영적인 거듭남을 뜻합니다.  

저는 이 땅에 태어나고자 의도한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도 저와 같은 아들을 낳겠다고 작정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부모님을 통하여 한 생명을 점지해 주셨기에 저는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저의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저는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생명은 하느님의 큰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생명도 선물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의 생명은 전적으로 저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대로 새로 나는 사람만 하느님 나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 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 새 생명으로 거듭나서 열매를 맺게 되듯이(요한12,24-25), 스스로 죽는 사람만 거듭 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주장, 생각과 뜻을 고집하면 거듭 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뜻을 따르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고 죽어야 합니다. 새로 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죽고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세례를 통해서 당신과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로마6,3-4). 그러나 이 생명은 아직 열매 맺지 못했습니다. 끊임없는 거듭남을 통해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오늘도 죽게 하소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반영억 라파엘 신부*

무엇을 배우는 사람은 가능한 유명한 사람으로부터 지도를 받기 원합니다. 그래야 효과 있게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야 기초가 바로 섭니다. 그러나 유명한 사람도 좋지만 성실하고 눈높이를 맞춰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골프를 배우는데 코치의 지도를 받을 때는 제대로 합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가르쳐 준다고 하여 그것을 따라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한편 오래도록 연습한 사람의 수고와 땀을 인정하지 못하고 단 번에 그들보다 더 나은 골퍼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욕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더 큰 것을 잃게 됩니다. 건강을 위한 운동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김연아를 '피겨퀸'이라 합니다. 그도 훌륭한 코치를 두고 있습니다. 연습에 연습을 더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에도 좋은 선생을 만나기 바라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사의 스승을 모시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음을 감사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3,3)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요한3,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위로부터 태어나야 하는데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영으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영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인간적인 삶의 틀에 매여 있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과 섭리에 맡기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 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지 않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로마8,5-8) 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과 인간논리의 능력을 뛰어넘는 성령께 의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으로 태어난 사람의 삶은 바람이 제 불고 싶은 데로 불듯이(요한 3,8) 더 이상 틀에 박힌 삶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 드는 자유로움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매순간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 사랑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