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4주간 화요일 (요한 10,22-30)

2011. 5. 17. 오후 9: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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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7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My sheep hear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I give them eternal life.
(요한 10,22-30)

 

말씀의 초대

 스테파노의 박해와 죽음 이후 흩어진 신자들이 이방인 선교의 중심지인 안티오키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룬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 교회에 파견하였고,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안티오키아 교회에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충실하라고 신자들을 격려한다(1독서).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은 주님을 목자로 모시는 양이 된다.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복음).

☆☆☆

오늘의 묵상

며칠째 복음에 목자와 양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가 목자이신 예수님의 한 마리 양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지요? 예수님의 양이 되어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다니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푸른 풀밭을 찾아서 온종일 찾아다니다가 이제 날이 저물었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들판에 임시로 마련된 양 우리로 양들을 데리고 들어오십니다. 다른 목자들도 날이 저물자 제 양들을 몰고 양 우리로 돌아옵니다. 들짐승들의 공격과 한밤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이제 모든 양이 모여서 이 밤을 지내야 합니다. 밤이 어둡고 맹수의 공격이 두려운데 가끔씩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양들은 가까이 있는 목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밤이 편안해집니다.
이제 아침이 밝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목자들이 자기 양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양들이 자기 목자를 찾아 나서느라 시끄럽고 분주합니다. 드디어 착한 목자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양 우리 문 앞에 서서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데레사, 루치아, 체칠리아, 베드로, 바오로 ……. 어쩌다 자신의 이름을 빠트리시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드디어 이름이 불립니다. 마치 우등상을 타는 어린이처럼 소리를 내며 예수님 앞으로 폴짝 다가갑니다. 또 오늘 하루 예수님을 따르는 양들에게 푸른 풀밭과 샘터를 찾아 나서는 행복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
사실 이것은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과 함께 풀밭을 찾아다니듯 저마다의 일터에서 열심히 삽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주님의 도우심 속에 잠을 청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루하루를 목자이신 주님께 맡기고 사는 양이라고 생각하면 참 편해집니다. 내일도 모레도 우리를 불러 푸른 풀밭과 샘터로 이끌어 주실 테니까요.

☆☆☆

 

 

유다인 몇몇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이것은 신앙인의 갈구가 아닙니다. 허점을 찾으려는 질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답변도 단순합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받아들이지 않기에 엉뚱하게 질문한다는 지적이십니다.
그런 자들은 오늘도 언쟁을 벌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한쪽만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 예수님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고집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고집은 아름답습니다. 신념으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부정하고 배척을 일삼는 고집은 추해 보입니다. ‘한쪽만 보는 반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적까지 비난하게 만드니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쪽에 속하고 있는지요?
단순한 믿음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습니다. ‘영적 풍요로움내적 가난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절제하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으로 벌써 알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손길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의 체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반영억라파엘신부*-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께서 너는 언제까지 내 속을 태울 작정이냐? 하고 유다인을 향해 하셔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말썽쟁이 자녀를 둔 어버이 마음입니다. 여러가지 표징을 보여주면서 이미 다 말하였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소망이 있는 것처럼 교묘히 말하는 그들을 모를 리 없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결국 입으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지 말고 믿어라. 그리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내가 마음을 닫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는 것뿐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들려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라고 하신 말씀은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어떤 것에 대한 자기의 기대나 생각, 바람, 선입견이 그를 귀먹고 눈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머릿 속에 있는 메시아상이 눈앞의 메시아를 가리웠습니다. 아는 것에서 자유로워야 하겠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먼저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것을 내 안에 담아주지 않는 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숨을 내 놓은 순명에서 온 것입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5,8)

내 뜻을 이루려다 보면 무리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리고 거짓 포장과 술수가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속을 태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하나가 된 주님을 본받아 내 뜻을 접고 주님의 뜻을 헤아려야겠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가슴에 모셔드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듯이 하십시오! 또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는 듯이 기다리십시오(성 이냐시오). 사도들이 말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5,29)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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