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4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요한 14,27-31ㄱ)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it to you.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or afraid

말씀의 초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적대 행위를 보이며 몰려와 바오로 일행을 돌로 치며 선교 활동을 막는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이 지방에 그들은 다시 들어가 교회 공동체 사람들에게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며, 힘을 북돋아 준다. 그 어떤 박해도 그들의 선교 열정을 막지 못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신다. 이 평화는 세상의 거짓 평화와 다르다. 이 평화는 주님께 온전한 믿음을 두고 세상에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누릴 수 있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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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선종하시면서 남기신 말씀이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우리 인간이 삶에서 죽음으로 그 경계를 넘어설 때 가장 두렵고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어떻게 교황님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폴란드 출신으로 아우슈비츠와 전쟁의 처참한 상황을 경험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늘 세상의 평화가 삶의 화두셨습니다. 종교 간의 갈등, 군비 경쟁과 전쟁, 착취, 빈곤, 기아, 환경 파괴 등 평화를 위협하는 세상의 모든 문제 앞에서 교황님은 선종하시는 그날까지도 편안하실 날이 없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그토록 평화를 갈망하셨던 그분은 어쩌면 죽음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맛보고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평화’라는 낱말을 만나면 그토록 평화를 갈망하시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특별히 기억납니다.
교회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세상이 해석하는 평화와 다릅니다. 세상은 남들보다 더 강하고, 더 가지고 있어야 자신의 평화가 깨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평화는 세상과 타협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악과 탐욕에 저항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부와 힘을 추구할 때 화해와 나눔, 가난의 가치를 선포하는 데서 오는 평화입니다. 세상이 온통 “예!” 하고 환호해도, 거짓 평화 앞에서 교회는 “아니요!” 하고 말하는 데서 얻어지는 평화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는 데서 오는 평화, 이것이 교회가 추구하는 평화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다른,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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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알찬 열매입니다. 잎과 줄기가 사람들의 노력이라면, 뿌리는 무엇일는지요? 바로 ‘인내’입니다.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땅속에서 끊임없이 물과 양분을 빨아올리는 작업이 뿌리의 역할입니다. 평화는 그런 뿌리의 희생이 만들어 낸 결실인 것이지요.
사막에도 풀이 있습니다. ‘포아풀’의 일종인데, 키는 5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뿌리가 ‘600미터’까지 뻗어 있는 풀도 있다고 합니다. 물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수백 미터의 모래밭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화는 포아풀과 같습니다.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자꾸만 들어가야 합니다. 겉에 드러나면 ‘더 이상’ 뿌리가 아닌 것이지요.
세상의 평화는 대립과 공존을 전제로 합니다. 팽팽한 긴장을 평화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첨단 무기로 무장합니다. 공멸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찌 평화라 할 수 있을는지요? 기쁨 없는 평화를 그분께서 주실 리 없습니다.
5센티미터가 넘지 않는 키의 싹을 틔우려고 600미터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보이는 평화 뒤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그만큼 크다는 암시입니다. 우리 또한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립은 답이 아닙니다. 그분을 모셔야 ‘기쁨의 가정’이 됩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먼저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활 5주간 화요일(요한14,27-31)
평화를 갈망하라
지난 밤에는 성당에 불청객이 들었습니다. 네 명의 젊은이가 돈 통을 노렸습니다. 성 목요일과 똑같은 동선으로 움직인 것을 보면 아마도 같은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한 명이 더 늘어 네 명이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니 눈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하느님께서 보신다는 사실을 잊었고, CCTV에 찍히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습니다. 그들 안에 평화가 있을까요? 마음이 맑으면 잠자리가 편안합니다. 그들이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세계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전쟁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를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자기 국가의 안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방비를 증가 시킵니다.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평화를 방해하는 물리적인 환경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먼저 마음의 평온가운데 머물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평화를 간직하지 못한 내가 어떻게 남에게 평화를 줄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평화는 외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요한14,27)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는 것은 바로 평화가 ‘밖’으로부터 오는 평화가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4,6-7)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1,20) 그러니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참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시지만 제자들이나 우리가 곧장 평화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먼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고 주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해야겠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5,1)
사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 것입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만큼 내 자신이 맑아져야 하고 고요해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이사32,17)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