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길 진리 생명(요한 14,1-12)

2011. 5. 22. 오전 6: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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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22일 부활 제5주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4,1-12)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If you know me, then you will also know my Father

 

 

 말씀의 초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공동체 안에 불평등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열두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의 봉사에 전념하고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명을 뽑아 식탁 봉사자의 직무를 맡긴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모퉁이의 머릿돌이시다. 머릿돌을 중심으로 신자들은 살아 있는 돌이 되어 거룩한 영적 성전을 이룬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우리 삶의 목적이신 그분 안에서만이 우리는 삶의 탄식도 허무함도 괴로움도 이겨 낼 수 있다(복음).

 

☆☆☆

 오늘의 묵상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딸한테 같은 말을 묻고 또 묻고 계속 물었습니다. 딸이 참다가 화가 나서 아버지께 큰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딸한테 말합니다. “딸아, 나는 네가 어릴 적에 ‘아빠, 이게 뭐야?’ 하고 백 번을 물으면, 백 번을 대답해 주면서도 매우 행복했단다. 그런데 내가 고작 몇 번 물었는데 그렇게도 화를 내야만 하니?”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마치 아버지가 어린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씀을 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저 동문서답만 하는 답답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에게 먼저 이런 인내로운 당신의 사랑과 관심을 행동으로 가르치시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똑같이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도 되풀이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귀를 닫고 있어서 답답하기만 한 우리에게 어린아이를 가르치시듯 당신께서 누구신지를 수없이 일러 주십니다. 예수님의 인내와 배려, 이런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사랑은 이렇게 기다려 주고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딸을 키울 때처럼, 예수님의 이런 모습부터 먼저 배워야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도 알 것 같습니다.

★★★

 

올바르게 살고 싶은 것은 인류의 염원입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이 나타나 진리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엉뚱한 길이 더 많았습니다. 역사에는 가짜 이야기가 수두룩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님의 발언은 이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진리와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으니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길을 걷듯이 믿음의 길을 당당히 걸으면 됩니다. 단순한 이 행위를 우리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하느님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하느님은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
그러니 그분은 세상의 중심입니다. 삶이 허전하고 무의미해진다면 그분께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깨달음의 은총을 주십사고 청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주시지 않을 리 없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허영엽신부-

 초등학교 근처 인적이 뜸한 곳에 작은 움막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방물장수 할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에 말수도 적은 할아버지를 무서워했고 함께 산다는 딸을 아무도 본적이 없어 여러 가지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움막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근처에 가지도 않았지요.

 

어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가 움막에서 나오시는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엄마, 여긴 웬일이야?

나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지만 빨랫거리를 손에 어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주 움막에 들러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딸을 목욕시켜주고 빨래도 해주셨던 것입니다. 얼마 움막집 딸이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차분하게 임종대세를 주신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혀 장례를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성당 신자들이 와서 연도도 바쳤습니다. 며칠 장례가 끝나고 할아버지가 우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딸이 몹쓸 병에 걸려 수십 년을 방안에서만 지냈는데 아주머니 덕택에 마지막 가는 길에 호강했습니다.

어머니는 별말 없이 그냥 미소만 지으셨습니다. 나중에 할아버지도 세례를 받고 주변 사람들도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네의 친구들도 이상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께서 스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참된 삶인지를 깨닫게 주십니다. 기쁨과 자유, 평화와 행복을 한껏 누리면서 사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성실히 걸어갈 우리는 진리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누릴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올바르고 안전한 길을 알아야 합니다. 길을 안다면 이미 성공적인 삶을 시작한 셈이지요.

 

 “나는 길이다. 다행히 예수님께서 스스로 길이라고 하시며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십니다. 주님의 길은 한마디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길을 열심히 가면 자연히 진리와 생명에 도달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을 알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보고 있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길을 충실히 가는 신앙인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은 바로 주님을 드러내는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올바른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이들이 우리를 통해 주님의 진리와 생명에 도달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길’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절 지나가는 걸인이라도 끼니를 챙겨주셨던 어머니에게서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항상 묵주를 손에 쥐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__

  


돈 없고, 배운 게 없어도 행복한 집

-박용식 신부-

 

어버이날인 8일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기 용인시에서 지병을 앓던 60대 노부부가 자식에게 짐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 숨졌습니다.
 병수발을 해온 아들 부부에게 '미안하다. 고마웠다'는 유서를 남긴걸 보면 그 동안 삶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니 노인들 불행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됩니다
.
 노인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5일 어린이날 어느 신문에 실린 글을 보니 우리나라 어린이들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3곳 중 꼴찌였습니다. 그 꼴찌가 조금 뒤떨어진 꼴찌가 아니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꼴찌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놀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마땅치 않습니다
.
 청소년들도 불행합니다. 그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디를 가도 잔소리와 감독의 눈초리뿐 설 땅이 많지 않습니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만 모아 놓은 최고 대학인 카이스트 학생들이 줄줄이 자살을 합니다. 하물며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인간적 관계를 포기하고 살인적 성적 경쟁에 내몰린 잘못된 교육의 결과일 것입니다
.

 가지지 못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 능력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많이 갖지 못하고 힘이 없다고 무시당합니다. 그들이 편안히 거처할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많이 배운 사람들, 많이 가진 사람들, 힘이 있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은 행복할까요? 그들은 어딜 가나 사랑받고 존경받고 대접받아 마음이 편할까요
?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지상 최고 권력을 누렸던 전직 대통령도 불행의 극치인 자살을 선택했고 재벌, 시장, 군수, 잘 나가는 정치인, 청소년들 우상인 연예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잘났건 못났건, 많이 가졌건 못 가졌건 편안한 곳에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는 그런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
 이런 불행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세상에는 편안히 있을 곳이 없어 불행하지만 하느님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니 정말로 큰 힘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못하고, 아는 게 많아도 행복하지 못하고, 똑똑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집에만 가면 돈이 적어도, 아는 게 적어도, 똑똑하지 못해도 편안하게 거처할 곳이 많다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 집에 거처할 곳이 많음을 여러 번 보여 주셨습니다가진 것 많고 아는 것 많은, 똑똑하고 잘 난 사람들이나 예의바르고 신앙심 깊은 사람들만 예수님께 나아 간 것이 아닙니다.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죄인이나 못난 사람, 남에게 피해나 주는 사람,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도 예수님께 나아가서 함께 머물렀습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처럼 모든 사람에게 편히 거처할 곳을 마련해주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가톨릭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 집에 거처할 곳이 많음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받아들이셨듯이, 가톨릭교회는 모든 사람을 다 받아들이는 교회, 모든 사람에게 편안히 있을 곳을 만들어주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사회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도 이곳에만 오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성당이어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가진 게 적고 아는 게 적고 힘이 없다고 무시당하지만 성당에 오면 존경받고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성당에 와서까지 상처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성당이어야 합니다
.
 세상에는 편안하게 설 자리가 없지만 성당에는 편안히 거처할 자리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바로 그런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14,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생명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도 알려주시고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 주님을 차지하는 은혜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가 34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를 부르겠습니다.

진정, 주님은 내가 걸어가는 삶의 길입니까? 하느님 아버지께 다다르는 천상복락의 방법을 예수님 안에서 찾는가? 생각해 볼일입니다. 주님이 걸으신 길, 십자가의 길, 그 희생의 길이 남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니라 바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던 예수님,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길이 나의 길임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고 하십니다. 아버지와의 만남을 이루는 방법은 예수님을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개자이십니다. 

주님은 진리 같은 분, 진리와 비슷한 분이 아니라 진리 자체 이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고(요한17,17)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요한1,14)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도 진리입니다. 믿습니까? 예.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진리라고 하면서 왜 따르지 않아요? 아마도 지금 당장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른 것이 더 매력적이고 마음을 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거짓이라면 그것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영원합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진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 변할 것 같으면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깨우치는 진리, 사람이 알아야 하는 진리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알려주는 계시자로서 진리이십니다.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차지하면 곧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써 받아들여 실현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요한복음17,3절에서는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곧 그 삶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로서 생명이십니다. 사실 영생은 예수님과 함께 지금 여기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영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길을 다니다 보면 공사장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보통 푯말이 붙게 됩니다.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런데 흔히 보게 되는 이 푯말 밑에는 낙서가 씌여집니다. 뭐라고 쓸까요? 잘 알면서 왜 그래. 

불편을 주는 것 알면서 왜 그러냐고요

     인생여정에서 잘 알지만 생각처럼 안 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야말로 선한 결심을 해도 작심삼일이고 마음이 흔들비쭉입니다.

어떤 이는 성격의 문제로 인하여, 인간관계의 문제로 인하여 그리고 질병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술, 도박 등 잘못된 습관으로 인하여 고민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좋은 것 같은데 속을 보면 누구나 자기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을 한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로 좌절하고 낙담하며 슬퍼하고 힘에 겨워합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런 문제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며 우리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됩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면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은총이 됩니다. 

자신의 지혜와 삶의 방법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주님을 믿고 믿는 대로 행하게 되면 주님의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됩니다.(요한 14,12)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여정은 모두 공사 중입니다. 잘 알지만 안 되는 것들을 고치는 중입니다. 아무쪼록 그 공사가 마무리 될 때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하나 되어 아버지 집에 거처할 수 있는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을 통하여 진리요, 생명을 만나길 기도하며

     최민순 신부님의 ‘오늘 나의 길에서’라는 글로 마감합니다.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주님께 의탁하며 드리는 기도

                                  -최민순 신부

주님!
오늘의 저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제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님과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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