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후회 없이 사랑 하여라(요한 15,12-17)

2011. 5. 27. 오전 6: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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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후회 없이 사랑 하여라-*반영억라파엘신부*-(요한 15,12-17)

2011 5 27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요한 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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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뽑아 안티오키아로 파견하며 함께 편지도 보낸다.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세 율법 준수에 대하여 사도 회의의 결정을 알리고 그들의 짐을 벗겨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친구가 되어 주셨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살도록 초대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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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저 사람을 대신하여 내가 죽겠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울리는 거룩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곳 수용소에는 수감된 사람 한 명이 도망을 가면 같은 방에 있는 열 명이 아사(餓死) 감방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날 아사 감방으로 끌려가는 사람 가운데 부인과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한 사제가 울부짖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입니다.
사제라고 해서 왜 고통과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운명적으로 마주한 사건 앞에 외면하고 싶은 유혹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콜베 신부님의 마음 안에 메아리치는 말씀이 있었을 것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콜베 신부님은 주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시려고, 울부짖는 그 동료를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택하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물 한 방울 마실 수 없는 처참한 아사 감방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을 위로하시며 함께 순교하셨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그저 한 사람을 살리려고 대신 돌아가셨을 뿐입니다. 산술적으로 보면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생명을 얻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살린 이런 희생에는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의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누구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은 아무런 기대도 조건도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누군가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친구가 되어 주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 안에 우리가 찾는 인생의 모든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 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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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종은 소유물이었습니다. 재산이기에 사고팔 수 있었습니다. 목숨까지도 주인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 종을 벗으로 삼는다면 획기적인 일입니다. 종의 위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의 신분은 바뀌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도 바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등 사상이 모든 조직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늘의 기운은 가까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사후 세계의 보장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은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진정 친구를 위해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남은 일은 그분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분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일입니다. 그 친구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운명적으로맡겨진 사람들입니다. 먼저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첫길은 소유의 시각으로 보지 않는 일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어찌 내 것이 될 수 있을는지요? 소유하려 들기에 고통이 함께합니다. 내어놓지 않기에 고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희생 없이는 깨달음도 없습니다. 참는 희생이 있어야 사랑의 울타리는 견실해집니다. 아픔 없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 하여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영원한 청년 작가’라고 불리는 최인호 베드로 형제님이 오셨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쓴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암이 선물한 선물이라고 하시며 싸인을 해서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생을 허락해 주신다면 예수님에 관한 글을 쓰려 했으나 하느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인도 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가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으며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연장으로 쓰임을 받는 몫은 다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증거 되어야 하고 기회는 많지만 실제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말하지만 자신을 죽이는 희생의 사랑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유를 주지 못하고 일방적이며 상대를 속박할 때가 더 많습니다. 사랑을 이유로 붙잡고 집착하며 기대를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상처를 주고받으며 후회합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데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심한 모욕과 침 뱉음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용서하시고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고 선언하시며 당신 친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벗으로 삼으시고 벗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사실 목숨을 내 놓는다는 것은 모두를 바쳤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모두를 내놓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할 기회는 끊임없이 주어지지만 지금 놓치면 그 기회는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 다음에 오는 기회는 또 다른 기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랑하십시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나의 일방적인 방식으로 하지 말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너무 많은 사랑을 요구하여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고 아무런 구속이나 강요가 없이 자유를 주는 사랑으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는 날로 기뻐하고 자유롭도다. 사랑은 짐을 모르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기에.(성녀 젤뚜르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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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가난과 포용력의 관계

-전삼용신부-

 오늘 아침식사를 신부님 한분과 함께 하면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어떤 원로신부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엔 그 분의 결단력과 성품에 대해 좋은 평을 서로 늘어놓았습니다. 그 분은 정말 가난하게 사시고 교회 정신에 맞게 성인처럼 사시는 분입니다. 개인적인 삶으로는 누구도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단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포용력의 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식사하던 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분은 실패한 경험도 없고 당신이 완벽하셔서 다른 사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수긍이 가는 말이다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모습이 저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삶이 모범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살도록 권유하고 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왜 안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 왔습니다. 이는 아마 나와 같은 수준의 사람을 만들어서 나를 이해해주는 누군가를 갖기를 원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같은 사제들을 보면서 많이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엔 제가 생각하기에 좋지 않은 모습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사제가 목자로서 신자들을 잘 이끌면 되지.’라고 생각하여 사제들보다는 신자들에게 먼저 신경을 쓰며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제들보다 신자들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그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제 자신을 돌아보니 저도 혼자서는 잘 살지만 함께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형제적인 모습을 이루는 것에는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최후의 만찬 때에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은 모두가 성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한 사람들도 있었고 좀 더 완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유다와 같은 배신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단을 성인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로 구성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모여 당신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모범을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포용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유다는 그런 면에서는 다른 사도들의 스승이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거짓말쟁이이며 도둑이고 배신자인 유다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가 배신자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모두가 유다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그렇게 참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종이 아닌 친구로 부르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완전하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흠이 많은 인간을 친구로 여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모범은 당신의 생명까지도 벗을 위해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신다는 뜻은 자신을 온전히 비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은 자신을 온전히 남에게 주어서 자신을 비웠기에 누구도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무한한 포용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나로 가득 찰수록 사랑이 줄어들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있으면 부딪혀서 감정이 상하느니 그냥 외면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누구 하나 놓치지 말고 품어줄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 넓은 마음은 또한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사랑의 마음에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상대방을 감싸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비워버린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해봅시다. 당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아끼지 않고 주실 수 있었던 사랑, 그렇게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사랑을 가져야만 우리도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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