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3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잡혀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하고 걱정하지 마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마태오 10,17-22)
When they hand you over,
do not worry about
how you are to speak
or what you are to say.
You will be given at that moment
what you are to say.
For it will not be you who speak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 최초의 사제가 되시어, 순교로 한국 교회의 기초를 놓아 주시고 모든 성직자의 수호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신앙과 열정을 본받아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요아스는 일곱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린 사람이다. 그가 통치 말년에 하느님을 저버리고 계명을 거스르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경고를 전한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요아스 임금은 즈카르야를 처형한다(제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에 믿음으로 참여하며, 이 희망으로 온갖 환난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불의가 만연해도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마침내 승리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장차 겪게 될 박해와 고난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끝까지 믿고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임을 약속하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 성인은 한국 최초의 사제가 되셨습니다. 겨우 1년 사목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앙이 뿌리를 내릴 때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 성인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든든한지요.
박해 시대에 사제가 된다는 것은 주님처럼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어 우리나라를 위한 제물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예수님처럼 박해자들에게 수없이 매를 맞고 조롱을 당하면서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이사 53,7) 그 모든 고통을 의연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성인은 산제물이 되시어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주님에 대한 희망을 우리 교회에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였지요.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
오늘날은 더 이상 박해도 없고, 순교를 강요받는 시대도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앙생활이 자유롭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롭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복음 정신대로 바르게 산다는 것이 순교만큼이나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온통 세상 것에 맛들이고 중독되어 있어서,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이렇다고 해서 참된 진리의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세상의 온갖 유혹을 이겨 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서 순교의 영성을 지키며 사는 길입니다.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며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이 두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 한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1845년 8월17일에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27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17-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어떤 신자분이 성경을 읽으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성경을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한 줄을 읽고 말씀대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말씀이 마태오 복음 27장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 읽겠다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루카복음 10장 3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중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너무 기가 막혀 삼세번이다 하면서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요한 복음 13장 27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다가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우리 신자분들 중에는 오늘의 운세를 보듯, 점을 치듯 성경을 읽는 분이 계십니다.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되는대로 눈이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것입니다. @@
우리들의 순교
-고준석신부-
오늘은 한국의 첫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신 굳은 신앙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고 본받기 위한 특별한 날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와 강인한 성격과 굳은 신심을 가진 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열여섯의 어린 나이로 조국을 떠나 마카오로 파견되어 필리핀 등 외국을 전전하며 어렵게 공부하였습니다. 신부로 서품되고 귀국하여 8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한강변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삶을 다해서 교우들을 보살피고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면서 듣게 되는 복음에서는 진정한 신앙인은 어떤 박해 앞에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통과 난관 앞에서도 모든 것을 참아낼 힘과 또 박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증거자가 될 지혜를 성령께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평화를 누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김대건 신부님께서도 순교하시기 전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순교성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생명까지도 내어 놓으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를 기억하는 오늘, 신부님의 순교영성을 우리 삶 안에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큰 과제입니다.때로 신부님께서 온몸으로 보여주신 순교영성을 살고 실천한다는 것이 평범한 우리들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순교자들이 살았던 시대와 오늘의 시대는 실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과거 신앙의 선조들처럼 피 흘림의 순교를 요구받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피를 흘리는 피의 순교 대신에 그리스도를 위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백색 순교”와 “녹색순교”가 필요합니다. “백색순교”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온전한 봉헌의 삶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녹색순교”란 고통을 극복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순교 현장은 바로 가정이요, 직장이요,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자리입니다. 신앙은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는 삶으로 내가 머무르는 자리인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안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나를 끊어 버리고, 하루하루의 삶을 봉헌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이 바로 오늘날의 순교라고 하겠습니다.__

열정과 투신
-홍금표 신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제가 되신 성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품을 받으신
후 약 8개월 동안 활동하시다 만 25세에 순교하셨습니다. 1년 1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사제로 살다 가신 이러한 신부님의 생애를 생각할 때
필자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열정’과 ‘투신’입니다. 물론
‘열정’과 ‘투신’이라는 말은 때로는 비인간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지향하는 바가 ‘공동선’이나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선’, 또는 ‘하느님’일 때 이러한 단어들은 참으로 가치 있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러한 가치 있는 단어들을 살지 못할까요? 아마도 자신의
욕망과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
유혹과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게으름 때문일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마지막까지 신부님이 선택한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많은 갈등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독하게 가해지는 육체적 고문이나, 세상의 재물과 권력,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생명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의심도 또 하나의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유혹들은 하나같이 견디기 힘든 것이었고, 조금만
한눈을 판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너무나 무거운 것들이었지만 신부님은
그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적인 신앙과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이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김대건 신부의 믿음, 희망 본받지
-배광하신부-
끝까지 견디는 이
▤자유의 선물
‘황금의 입’이라고 불렸던 ‘요한 크리소스토무스’(349-407) 성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상처를 입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상처를 내는 것이다.” 실로 사도 ‘성 바오로’는 복음 선포를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받습니다. 외적인 모든 역경 속에서도 그는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같이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로마 8, 35)
실로 믿는 우리 신앙인들도 현세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여러 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수많은 성인 성녀들,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삶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느님에게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인‘자유의지’는 세상 그 어떤 고난도 우리를 어쩌지 못하고, 우리가 내적 자유의 중심을 지니고 우뚝 서 있으면 상처 받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엄청난 고난 가운데에서도 그 고난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사도 성 바오로의 삶은 이를 또 다시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의 삶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성인의 삶을 보며 크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자유의 삶입니다. 김대건 성인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은 박해의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든 인간,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인간, 참 신앙인은 진실로 자유로우며 외부로부터의 억압과 고통에 좌우되지 않는 해방의 기쁨을 살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새남터 사형장에서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참된 신앙의 자유를 살았던 김대건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페레올’(1808~1853) 주교는 훗날 김대건 신부를 향하여 다음과 같은 찬사의 글을 썼습니다.
“김 안드레아의 단죄는 그를 위하여는 영광과 명예가 되었고, 그 반면에 사악하고 무지한 재판관들을 위하여는 수치와 불명예가 되었습니다. 무지하고 사악한 재판관들에게 희생된 제물의 영광과 찬미와 명예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점차 커지고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희망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감옥에서 그의 열아홉 번째 편지를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미구에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다른 모든 신부님들께도 인사를 드려 주십시오.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 잘 있게.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 같은 희망을 성 바오로 사도께서도 굳게 믿었기에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 32)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주 현세의 여러 어려움 앞에 이 희망을 저버리고 살곤 합니다. 그리하여 절망을 살았고, 끊임없이 원망과 한탄 속에 자신을 학대하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모든 박해와 상처를 이겨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삶을 묵상하며 믿음 안에 그가 끝까지 지녔던 희망을 또다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신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끝내 저버리지 않으셨던 김대건 신부의 믿음과 희망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다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은 이같이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 내지 않는 사람은 설사 온 세상이 그를 상대로 험한 전쟁을 일으킬지라도 상처받을 수 없다.”
진정 주님 은총 안에 믿음의 중심을 갖고 깨어 사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여러 시련과 고통에 상처 입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삶을 분명히 사셨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또다시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의 말을 남깁니다.
“이런 황황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매일 순교의 삶을 사는 신앙인
-허영엽 신부-
오 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
건 신부는(1821-1846) 하느님을‘임자’로 불렀다. 그는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의 임자이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면 세상에 난 보람이 없다고 신자들에게 가르쳤다.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신앙심과 총명함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1836년 12월 마카오로 떠난다. 인고의 세월을 잘 견디고 18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사제품에 오른다. 김대건 신부는 그해 10월 12일 귀국하여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846년 6월 5일 관헌들에게 체포되었다. 40여 차례의 혹독한 문초를 받고 9월 15일 반역죄로 사형이 선고되어 다음날인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는 사목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했고 죽음으로 자신을 완전하게 봉헌했다. 김대건 신부는 사형 집행 전 큰 소리로마지막설교를했다.“ 나의마지막때가왔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찾으려면 천주를 믿으시
오.”설교가 끝난 후 관리들은 김 신부의 웃옷을 벗기고 두 귀에 화살을 꿰고 얼굴에는 물을 뿌리고 흰 회를 발랐다.
무릎을 꿇리고 밧줄 한 가닥으로 머리칼을 동여매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게 했다. 그때 김대건 신부는 태연하게“자,
이렇게 하면 나의 목을 쉽게 자르겠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던 기백과 용기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하신다. 박해
를 당하고 때로는 부모나 형제로부터 배척을 받고,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반대와 박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하신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박해와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 왜 신앙인은 박해를 당하는가? 세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는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왜냐하면 세상이 추구
하는 행복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 따라서 죄와 어둠의 세력은 빛을 거부하고 두려워한다. 어둠의 행위가 빛 속에서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세상 속에서 신앙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 자체가 미움과 박해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순교는 본래 증거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길이며 동시에 순교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에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옛날처럼 순교를 당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일상적인 신앙
생활이 순교의 삶이 되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로 훌륭한 순교이다. 어쩌면 현대의 삶 속에서 충실하게 증거의 삶을 사는 것이 과거의 순교 못지않게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순교 성인들의 후예답게 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신앙의 빛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참 신앙인이 되도록 한층 더 노력해야 하겠다.
“순교자 김대건 사제와 한국의 순교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