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루가 1,57-66.80 )

2011. 6. 24. 오전 6:00:22

글자

 

2011년 624일 금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
(
루가 1,57-66.80 )

He asked for a tablet and wrote,“John is his name,”
and all were amazed.
Immediately his mouth was opened,
his tongue freed,
and he spoke blessing God.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태에서부터 이사야를 부르시고 이름을 지어 주셨다. 예언자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일으키신다(제1독서).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신약의 시대를 여는 선구자이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주님의 길을 성실히 준비한다(제2독서). 엘리사벳은 요한을 낳는다. 비록 즈카르야의 친척 가운데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이 없지만 주님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요한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즈카르야는 입이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구원의 역사를 열어 가신다는 뜻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옛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이름이 단순히 그 사람의 호칭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사를 포함하는, 고유한 존재의 특성을 표현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비록 사람의 육신은 죽어 사라지지만 그 사람의 인격과 삶 속에 하나가 된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우리는 어릴 때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으로 평생 동안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통교합니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가 이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축복과 생명이 되는 이름은 그 사람의 세 글자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이름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중요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 즈카르야는 주님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자애로우시다’는 뜻을 갖습니다. 요한은 당시 흔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름 뜻 그대로 예수님보다 앞서 보내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여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드러냈습니다. 요한이라는 수많은 이름들이 역사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하느님께서 불러 주신 그 이름을 충실히 살았던 세례자 요한만이 하느님 마음에 새겨진 영원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부모를 통해 저마다에게 고유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듯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주님 마음 안에 새겨지게 될 구원의 이름은 이 부르심에 끝까지 응답하며 주님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신다.’라는 뜻입니다. 그 의미대로 세례자 요한은 수많은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께 인도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들이 “당신은 엘리야이시오?” 하고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또 “그러면 오실 그분이시오?” 하고 물어도 마찬가지로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신원을 묻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대답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그러면서 그는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6-27)라고 자신을 낮춥니다.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고 준비하는 주님의 종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주님과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을 낮출 줄 압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숱한 유혹을 다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 속에 머무를 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그 삶에서 ‘믿음의 향기’가 납니다. 세례자 요한은 한평생 그 믿음의 향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그 향기를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은혜로움을 보여 주신다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메시아의 길을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예비하셨습니다. 이 시간 세례자 요한의 삶에 대해 묵상 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어머니 엘리사벳은 물론 모든 친지와 이웃들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모든 새 생명의 탄생이 기쁨이기도 하지만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여겨지던 여인에게서 그것도 돌계집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늙은 여인에게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쁨을 가지고 이웃들과 친척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짓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름을 짓게 됩니다. 그 이름이 요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성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우리 표현대로 하면 돌림자를 따야 하는데 돌림자를 따지 않고 엉뚱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친척들은 조상의 이름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아기의 부모는 하느님께서 주신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사실 이 이름을 정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즈카르야, 엘리자벳 부부는 열심히 경건하게 지내는 사람이었는데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이 관례에 따라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하게 되는데 즈가르야가 분향할 사람으로 뽑혔습니다. 분향하고 있는 동안에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 하느님께서 네 간구를 들어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터이니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주님 보시기에 큰 인물이 되겠기 때문이다.(루카1,13-15)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저는 늙은이 입니다.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런 일을 믿으라는 말입니까?(루카1,18)하고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간구를 들어주었다고 했는데도 그 말을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 표징을 구했습니다. 이 불신 때문에 그는 천사의 말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인간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은총을 말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결국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름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였을 때 입이 열렸습니다. 좀 더 일찍 철이 났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로우심을 보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의 의미를 새겨들어야 합니다. 사실 요한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로움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이지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 곧 오신다고 말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세례에로 인도되었고 그의 능력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혹 메시아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관심을 돌리게 하였고 심지어는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몇 추종자들을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도록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메시아 예수님께 대한 그의 태도는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다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그는 겸손의 사람입니다. 

요즘세상은 줄서기를 잘해야 하고 자기에게 줄을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인기가 오르면 오를수록 그 초점을 예수님께로 향하였습니다. 주님은 바로 오늘도 요한과 같은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로움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보다 앞서 온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요한을 지적하시면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위대한 인물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말씀다음에 덧붙인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미소한 자라도 그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정체성을 확실히 안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분수를 알고 주제파악을 확실히 하여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각자 자기의 위치를 알고 거기에 알맞은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느님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위기와 기회

-정명숙 수녀-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자신의 전존재를 통해 터져나오는 감사와 찬미를 하느님께 드리는 한 인간의 모습을 만납니다. 그 기쁨의 찬미는 마치 온 세상 구석구석 퍼져나가 모든 우주 만물을 하느님께로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즈카르야는 사제 직무를 수행하러 성전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나온 후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죽음과도 같은 어둠의 순간을 보냅니다
.
무엇이 즈카리야의 입을 막고 혀를 묶어 놓았을까요? 사제로서 그 누구보다  하느님 뜻대로 살아왔고 신앙인으로서 누구보다 바르게 살아왔는데
….
우리도 살면서 즈카리야처럼 신앙의 위기를 겪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하느님, 하느님을 자기 뜻에 맞추려는, 하느님 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신앙의 길에서 돌아서는 정화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겠다는데 믿지 않았습니다. ?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하느님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참된 하느님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믿을 때 즈카르야처럼 비로소 혀가 풀리고 입이 열려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그 찬미는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현상을

경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이루신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 김현정-

 

요한은 성경에서주님보다 먼저 올 사람’,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 17) 라고 예언했다. 유다 백성이 오매불망 기다리던메시아는 아니지만 요한은 주님이 오시기 전 백성들이 주님을 알아보고 맞이할 만한 상태가 되도록 준비시켜야 하는 예언자의 사명을 받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성적순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주인공 아니면 1 등인 사회. 그러나 그 뒤에 있는 이들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연 없는 주인공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택할 때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주인공이 되는 것과 거리가 먼 삶을 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내가 교육대학에 가겠다고 했을 때 단번에실망이다. 꿈이 그 정도밖에 안 되냐? 너는 조금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어 할 줄 알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

요즘 교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아이들 키우다 안 되면 선생이나 시키지, ’, ‘초등학생 가르치는 거 나도 하겠다.’ 심지어교사 밥통 철밥통이란 말까지 한다. 일일이 붙잡고 설득할 수도 없어 나는 언제부턴가 밖에선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
나는 오직 내 일을 사랑한다. 아버지의 실망도 사람들의 편견도 상관하지 않고 교사의 소명에 충실할 일이다. 한마디로 교사는 세례자 요한을 본받아야 한다. 교사는 주인공이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그 주인공들이 훗날 하느님 나라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도우미다. 그만큼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 남궁영미 수녀-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변화하도록 이끌어 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또 예수님의 길을 닦는 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 세례자 요한의 삶과 역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의 여러 문제 중 우리 삶의 태도와 습관의 변화가 가장 절실한 부분은 생태계가 파괴된 현실일 것입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앙과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은 우리를 향한 생태계의 경고로 느껴집니다. 올 초 많은 사람이 영화 <아바타>와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보며 생태계 파괴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문명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린 우리 삶의 소중한 것들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삶은 그런 생태적 감수성을 잃고 그저 편리함과 소비와 낭비를 좇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
또 이미 시작된 4대강 사업의 심각성에 대해 염려하면서도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그리운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 각자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는지도 모릅니다
.

자극이 오면 반응을 하다가 다시 그 자극에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봅니다. 진정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우리 삶이 다르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모든 삶의 시작은 나부터입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모임에, 미사에 참여하면서도 일상의 나에게 작은 변화가 없다면 결국 그 반대조차 대안 없는 명분의 싸움이 되고 말 것입니다
.
몇 년 전 타계하신 권정생 선생의 말씀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승용차를 버려야 이라크 파병도 막을 수 있다.’
는 그 말씀을요. 핵폐기장을 짓지 않으려면한 집에 한 등 켜기, 겨울에 18도 이상 난방 안하기등 처절한 실천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어느 분의 말씀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재의 에너지 소비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재의 쓰레기 배출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재의 물 사용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재의 편리함과 소비양식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내 지역, 내 동네만은 안 돼
!’라고 이야기하거나 단지 대의명분만을 부르짖는 것은 극단적 이기주의와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싸움은 이렇듯 안팎의 이중 싸움이고 그래야만 세상은 올바르게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런 싸움을 시작하라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겸손의 영성

-김민수 신부-

 

내가 커지면/ 주님이 오실 자리가 없어지고  내가 아우성치면/ 주님의 작은 음성 들을 수 없으니
작아져 비로소 향기로 남은/ 그 사람처럼/ 나도 자꾸 낮아져 거친 들판에 작은 들꽃으로/ 피어 있고 싶습니다.”
어느 시인이 세례자 요한을 묵상하며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의 영성을 실천한 분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두고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하며”(요한 3,30)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루카 3,16)고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밝힙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제자들이 그분을 따라가도록 인도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영성은 소화 데레사 성녀의모래알 영성무화의 영성으로 꽃을 피웁니다. 성녀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바닷가에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모래알로 비유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아무것도 없는 무의 존재로 고백합니다. 성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웠기에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기쁨과 환희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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