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 주간 화요일 (마태 8,23-27)

2011. 6. 28. 오전 6:58:53

글자
 

 

  연중 13 주간 화요일 (마태 8,23-27)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
(마태오 8,23-27)

"Lord, save us! We are perishing!"

"Why are you terrified, O you of little faith?"

말씀의 초대

인간의 온갖 타락과 교만이 최고에 이른 소돔과 고모라에 하느님의 징벌이 닥친다. 그러나 젊은이로 나타난 주님의 천사들을 매우 잘 대접한 롯과 그 가족은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재앙을 모면할 수 있었다(제1독서). 호수에 큰 풍랑이 일고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자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신다. 풍랑에 시달리는 배는 교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초대 교회 공동체가 당할 온갖 위협과 어려움을 예고하시면서 주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지도록 제자들을 단련시키시는 장면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우리나라 첫 번째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님께서 부제 때 잠시 귀국했다가, 조선에 페레올 주교님을 모셔 오시려고 중국 상하이로 다시 떠나실 때입니다. 신자들과 함께 작은 배 한 척을 사서 항해하다가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납니다. 일행은 배가 뒤집힐 듯 흔들리고 방향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밤낮으로 사흘을 시달립니다. 나중에는 방향키까지 부러져 돛대를 키 대신 사용했지만 이마저 부러지고 맙니다.
그 절망과 공포의 순간에 김대건 신부님께서 성모 마리아의 상본을 내보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겁내지 마십시오. 성모 마리아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이 말씀에 그들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풍랑에 시달리던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운명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맡겼습니다. 다음 날부터 바람이 잦아들고 비가 멈추었습니다. 그날 이후 김대건 신부님 일행은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아무 탈 없이 상하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지요.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하느님께서 김대건 신부님을 부르셨는데 당신의 사명을 이루시기 전에 그냥 바다가 삼켜 버리게 하실 리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공중에서 내린 비와 눈도 그 목적이 있듯, 우리도 주님께서 쓰실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에서 만난 풍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풍랑보다 더 큰 문제는 믿음이 없는 우리 마음입니다.

☆☆☆

 제자들은 풍랑이 두려웠습니다.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그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사 풍랑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저 정도라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들은 초조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누군가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예수님을 흔듭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라앉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생각입니다. 바람을 다스리는 분과 함께 있음을 잊은 것입니다. 기적의 주님을 모셨으면서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르기에두려워합니다. ‘모르기에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매일 듣는 어두운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매일 만나는 불안한 소식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 역시 초조해하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께서도 매일 아침 모든 정보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깨닫는다면 믿음은 행복으로 바뀝니다.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1975
년에 작고한 시인 김현승의 노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배를 할퀴던 파도가 금세 잠잠해집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 역시 조용해집니다. 놀란 제자들은 스승님의 권능 앞에서 할 말을 잊습니다. ‘주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주무시고 계십니까? 빨리 일어나십시오.’ 조금 전의 호들갑이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제자들은 삶과 죽음의 주인 앞에서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을 때늦게 후회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떠밀리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역시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은 아닌지요? 유익하고 편안한 소식에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감사드리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좌우하신다.’는 신앙의 기본 역시 인정합니다.
그러나 역경과 시련을 만나면 기도하는 마음부터 잃어버립니다. 때로는 믿음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게 뭐야?’ 하는 유혹입니다. 그러고는 세상 판단에 편승하려 듭니다. 물질적 가치관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잠재우셨던 분이십니다. 진정한 믿음으로 다가가면 어떠한 바람도 잠재워 주실 분이십니다. 건강한 신앙인은 시련 속에서도 감사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는 가운데에서도 주무시는 주님의 태평스러움은 가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것을 탓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지난날의 상처를 곱씹거나, 닥치지도 않을 미래의 일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 98%나 된다고 합니다. 정작 우리가 직면해야 할 걱정은 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내일 걱정을 내일에 맡기고 우리의 모든 걱정을 하느님께 맡긴다면, 우리도 주님처럼 풍랑 속에서도 평화롭게 잠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날을 주님과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걱정일랑  주님께 떠맡기고 

 -반영억신부-

믿음은 세상을 충만케 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알기 위해서라도 먼저 믿으면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보게 될 뿐 아니라 그분의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굳센 믿음을 간직하십시오. 믿음이 큰 만큼 하느님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한 배를 탔는데 어떤 이는 잠을 자고 있고 어떤 이는 겁에 질려 허둥거립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있었기에 무서울 것이 없으며 절박한 생존의 난국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께는 위기는 아예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을 깨운 것을 보면 아직 그들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품 안에 있으면 아무 걱정할 것이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믿기는 하지만 철저히 믿지 못했던 제자들입니다. 아마 우리도 같은 위험에 처했더라면 모든 희망을 잃게 절망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둥대던 제자들은 권위를 가지고 선포한 주님의 가르침에 놀랐고, 풍랑과 파도를 지배하는 주님의 능력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무서움의 차원을 넘어서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하며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접하면서 커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서 따른다기보다 따름으로써 성장합니다.

 혹 어려움에 직면할 때 아직도 허둥대고 있다면 믿음의 부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25.3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걱정일랑 주님께 떠맡기고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어찌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 그러므로 믿으십시오!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십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마치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이고 역사가 하느님의 선물인 것처럼 말입니다.”(까롤로 까레또) 믿음 안에서 능력의 주님을 만나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452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 김현정-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거센 풍랑 속에서 제자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얼마 전 본당 주일미사 중 세례식이 있었다. 주님 안에서 평화를 꿈꾸며 주님께 의탁한 신자분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본당 신부님이 강론 중에 하신 말씀도 마음에 남았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고난을 다 없애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주님이 약속하시는 평화는 여러분이 세상의 고난 속에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는 은혜를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는시험 준비하고 있을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족이 아플 때, 그럴 때마다 성모님께 기도드리면 다 들어주신다.” 하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다. 지금도 전화 드릴 때마다 너희 잘되라고 당신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는지 아느냐고 하신다. 어린 마음에 난 그 말이 참 싫었다. 너무나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할머니에게그런 이기적인 기도는 좀 그만 하시라.’ 고 버릇없이 굴기까지 했다. 내가 아쉬운 게 있으니 그 아쉬움을 해결해 달라고 성모님께 떼쓰는 것처럼 느껴져서 부끄러웠다. 나보다 낮은 곳에서 나보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에게 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했다
.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기도는 시험에서 1등 하게 해 달라고, 아픈 곳이 싹 낫게 해 달라며 주님께 매달리고, 안 들어주시면 배신감 느끼고 원망하게 되는 그런 기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고난이 나를, 가족을, 이웃을 흔들어 힘들게 해도 주님 은혜로 내 마음을 굳게 붙잡아 달라고, 어떤 고난에서도 티끌만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잃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였을것이다. 그럼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도해도 되겠다. 주님, 평화를 주세요
.
아멘

 

 

믿음의 길

- 정명숙 수녀-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풍랑이 이는 바람과 호수를 잠잠케 하시자  두려움과 경탄에 찬 외침을 품어냅니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마저 그분과 함께 동고동락하지만 여전히 주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계속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배워갑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께 대한 체험이 매번 새롭습니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
신앙의 길은 살면서 배웁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한꺼번에 안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일상의 삶에서 찾고 찾아 만난 주님 앞에선 언제나 놀라움과 기쁨에 찬 경탄이 터집니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 이 경탄이야말로 우리를 참된 기쁨의 근원에로 이끕니다. 주님이야말로 우리의 참된 기쁨의 근원이시고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게 합니다. 이 믿음의 길은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가 데리고 가는 데로 가듯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에 내어맡기는”(K.라너) 것입니다.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시편 23,4).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