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목요일(마태10,7-15)

2011. 7. 7. 오전 7: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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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7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가서 하늘나라가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 10,7-15)


 

 

"As you go, make this proclamation: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Cure the sick, raise the dead,
cleanse the lepers, drive out demons.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말씀의 초대

창세기 후반부는 이스라엘 집안의 형제들이 어떻게 이집트 땅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요셉의 재치 있는 계략과 그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유다는 요셉의 계략에 말려들어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의 처지를 아뢰며 요셉에게 자비를 청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것을 버리고 비울수록 주님의 능력이 더욱 드러남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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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하셔서 지금은 관절이 아파 잘 걷지를 못하시는 마르타 할머니가 계십니다. 제대로 거동은 못 하시지만 늘 말씀 안에 사시며 하루 종일 기도만 하시는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병으로 고통스러워 하시면서도 자식들 집을 이리저리 오가며 지내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늘 천진하며 맑고 밝으십니다. 언젠가 복음 나누기를 하시면서 할머니는 이런 나눔을 들려주셨습니다.
“옛날에는 돈이 한 푼도 없으니까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그저 집에서 밥 한 끼 먹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인 연금이라는 것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생기니까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고, 돈으로 하고 싶은 것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좋았는데, 점점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손주들에게도 돈을 좀 더 주고 싶어졌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산란해지고 평화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 참으로 자유롭게 사시던 할머니에게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영성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주는 예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재물만 모으면 자신의 삶이 안정되고 평화롭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말 타면 종 두고 싶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욕심은 가진 만큼 끝없이 불어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 같지만 사실은 거저 받은 것입니다. 재물도 능력도 건강도 거저 받았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니, 그것들에 몸과 마음을 두려 하지 말고 주님께 의탁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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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은 인제대학교 81학번으로 의사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턴 과정과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끝내자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해 오던 성소의 길에 응답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그는 외국을 오가며 10년을 더 공부한 뒤 마흔한 살의 늦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200명 이상의 환자들을 돌보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무도 가지 않는 오지 마을을 찾아 이동 진료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모여든다고 합니다. 치료도 받고 소식도 듣고 이웃 간에 만남을 이루는 날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
무엇이 그를 이 황량한 땅으로 가게 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정말 그는 아무것도 없이 예수님에 대한 확신 하나로 떠나간 사람입니다.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제가 그들에게 해 주는 것보다 그들이 제게 돌려주는 행복과 가르침이 더 큽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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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순간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뜻밖의 말씀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났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떻게 할는지요? 누구든지 일을 앞두면 준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를 생략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저것 물건을 챙기려던 제자들은 어리둥절하였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소유를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가지면 자동적으로 강해질 것이라 착각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의 눈을 지니면 달라집니다. 소유 자체가 힘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소유를 허락하신 분의 보증이 ‘힘의 실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재물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주님께서 주셨기에 가능합니다.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오래갑니다. 자신의 당연한 몫으로만 생각한다면 하늘의 보호가 사라집니다. 그러기에 악한 기운이 덮치면 서서히 무너지고 맙니다. 부친의 엄청난 재산이 아들 대에서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지만 힘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버팀목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도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어떤 물질과 소유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살도록 세상에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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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잘 하려면 가방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그런데 불필요한 것들을 무겁게 넣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다음에는 간단히 짐을 꾸려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늘 그렇지 못합니다.
오늘날 돈 없이는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무전여행’이란 일종의 모험을 즐기는 취미로 여겨집니다. 어떻든 오늘날 선교를 위한 여행일지라도 가방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침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선교 여행은 결코 휴가 여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만을 최소한으로 챙길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먼저 챙기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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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에게 어느 기자가 “수녀님은 어디서 그런 에너지를 얻습니까?” 하고 질문하였습니다. 수녀님의 답변은 참으로 간단하였습니다. “성체 조배에서 힘을 얻습니다. 매일 성체 앞에 나아가 몇 시간씩 기도하면 제 안에 주님의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도들도 스승이신 예수님에게서 엄청난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병자를 낫게 하고 죽은 이를 살리며, 마귀를 쫓아내고 나병 환자를 치유하는 능력입니다. 특히 나병은 당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이었습니다. 하늘이 내린 벌로 여겼던 것입니다. 본인은 물론 그 가족까지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병이었습니다. 이러한 병까지 치유하는 능력을 지녔으니 사도들의 권위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
사도들의 이러한 능력은 예수님께서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처음부터 자신들이 지닌 능력이라고 착각했다면 어떠하였겠습니까? 상업주의로 흐르거나 자만에 빠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늘 부족한 채로 살라는 말씀도 덧붙이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그래야 스승에게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그 순간 제자들의 능력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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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철저한 무소유는 아니더라도

  --반영억신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10,9-10)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한 무소유를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직 근본에 충실하기를 바라시며 한 눈 팔지 말라는 일깨움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이들도 철저한 무소유를 통해 가진 자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간직해야 합니다.

 

사실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용해야 할 곳에 제대로 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 때문에 하느님을 소홀히 합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다 뭐냐’ 고 합니다. 그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셨으며 물질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처럼 밝은 뉴스를 접하였습니다. 경남 양산의 정상모(69)씨가 정부의 ‘국민 추천제 국민포장’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생계문제로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였지만 운전 조수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고 1991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추석과 설 명절 때마다 홀로 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복지시설, 학교 등에 수백만원 상당의 쌀을 기부하는 등 30년간 지역사회에 봉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5년간 시내 한 초등학교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교통정리 봉사 나눔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04년 그에게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큰 시련이 닥쳐 심장박동기를 달고 다녀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지만, 아낌없는 이웃사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씨는 건강악화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며 생사의 갈림길을 넘기고 나서 주위에서 봉사와 기부를 중단하라는 만류를 뿌리치며 "병을 낫게 해준 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하라는 소명으로 생각한다."라며 꾸준히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질이든 재능이든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분명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야간 경비 일을 하고 있는데 미약하지만 독거노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감곡의 따뜻한 분을 만나서 기뻤습니다.

 

한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수백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의학교육 및 연구기금으로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가 평소에 재물에 집착하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라고 했다.나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을 전달해 드리는 것뿐, 그저 어머니의 소중한 뜻만 잘 실천해 달라.며 땅문서를 병원에 전달하였습니다. 그는 병원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으며 자신의 사연이 알려지거나 미담으로 보도되는 것도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재산문제 때문에 멀쩡한 아버지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 아들에 대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익명의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살맛이 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쌓아놓으면 쌓아 놓을수록 줄 것이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면 줄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줄 수 있어 행복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것 모두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분의 것을 관리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범위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양을 내놓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주십시오. 그리고 결코 물질 때문에 하느님께 소홀히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그리스도의 얼굴이 없는 교회는?
-
박상대 신부 -

많은 제자들 중에서 12명이 특별히 선발되어 사도로 임명되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와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가나안 사람 시몬과 가리옷 사람 유다가 뽑혔다. 사도행전은 추가로 유다를 대체한 마티아(사도 1,16-26), 그리고 바울로와 바르나바(사도 13,2)를 사도로 소개한다. 그들은 학생의 신분과도 같은 제자(弟子)였다가 이제는 전권대사의 의미를 가진 사도(使徒)로 임명되어 파견되는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보았듯이 사도들이 파견되는 장소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도 아니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도 아닌, 오직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길 잃은 양들에게로 국한되었다. 그들에게 가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마태오복음의 독자(讀者)가 우선적으로 유다인, 또는 유다인 계통의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열한 제자들에게 온 세상의 모든 사람과 세상 끝까지를 대상으로 한 복음선포를 지상 최대의 명령으로 주실 것이다.(마태 28,19)

사도들에게 대한 예수의 파견설교(10장)가 계속된다. 제자들이 나가서 해야 할 일은 스승인 예수께서 해오시던 일과 같다. 우선 하늘나라의 도래와 그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그 표지로 구마기적과 치유기적을 행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행하게 될 기적의 능력은 예수께서 거저 주신 것이므로 그들도 거저 베풀어야 한다. 그들은 성과도 얻겠지만 실패도 맛보아야할 것이다.

아울러 예수께서는 아주 엄한 여장규칙(旅裝規則)을 제시하신다. 이 규칙에 의하면 어떠한 여벌의 것은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의 철저한 청빈(淸貧)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의무도 암시하신다.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 자격은 철저히 복음선포에 메여있다.

복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예수의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복음을 수용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비는 평화의 인사는 단순한 예의의 표현이 아니라 복음의 수용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은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성장시기에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교에도 똑같은 의미를 가질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전성기를 맞이한 중세시기 이후 교회 안에서는 오늘 복음이 제시하는 선교규칙(宣敎規則)을 언급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그 원인은 전적으로 교회 안에 있다. 교회는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기는커녕 거저 받은 것을 미끼로 부(富)를 축적하였다.

가난하고 길 잃은 양들을 찾기보다는 있는 자의 편을 들어 그들의 정치와 경제에 크게 관여하였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보여주듯이 신약성서 시대까지 있었던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몰아내며,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는 능력도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무리들에게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발에 묻은 먼지를 터는 일만큼은 잘했다는 것이다. 단죄하고 파문하는 일이 교회의 일상(日常)이 된 셈이다.

현대의 교회 모습도 중세기 이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째, 오늘날 대부분의 복음선포자들에게 구마의 능력도 치유의 능력도 없어 보인다.
둘째, 선교상의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원칙이 자기 합리적인 이유로 거세(去勢)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가톨릭교회의 2,000년 역사를 통틀어 이 원칙을 신중하게 받아들였던 사람은 몇 안 된다.
셋째,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릴 정도까지의 단죄(斷罪)’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선교방법은 선교대상의 문화적 수용과 더불어 타협적으로 이루어지며, 오히려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신자(信者)들과 ‘냉담자(冷淡者)’들에 대한 내부지향적 사목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회이며, 누구로부터 파견된 교회인지?” 교회는 오늘 복음의 선교규칙을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지 않도록 다시금 깨우쳐야 한다.

교회는 오늘 복음에 자신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복음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기보다는 손에서 손으로 전해야 하며, 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려는 기적보다는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가진 바를 서로 나누면서 세상에 정의와 사랑의 기적을 일으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잃게 될 것이다............◆

 

 

거저 주어라

- 강석진 신부-

 

예수님은 복음에서 ,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하시며 ,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이 했던 놀라운 일은 바로 아픈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 일으켜 주고, 나병환자 고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아픈 이들을 고치는 것이외에는 어느 것 하나 할수있는일 이 없을 텐데,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은 그런 일들을 해낸 모양입니다. 놀랍습니다.

하지만 문득 그것이 큰 유혹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 중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겠지요. 어쩌면 그들의 능력을 빙자하여 하느님 이름으로 새로운 종교를 하나 더 만들거나, 교회 분열의 주범이 되거나, 기이한 현상에 현혹되어 교회의 가르침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

그런데 참 좋으신 우리 주님! 그런 능력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능력 너머 분명한 말씀을 함께 그들 마음에 얹어주십니다.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게 어찌 쉽게 될 일이겠습니까? 분명 거저 받은 것은 아는데, 거저 주는 것이 왠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말씀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말씀을 통해서 100, 60, 3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포도나무에서 잘려 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니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마음이 아니면, 그 능력이 바로

유혹이 될 수 있음을 묵상하게 합니다
.

살면서 내 주변에 능력 많은 이들의 놀라운 재능이 부러웠는데, 이제는 그것을 마냥 부러워하기보다 그분들의 재능과 능력이 결국은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이웃에게 알리는데 쓰이길 바라는 기도를 간절히 해야겠습니다
.
나에게 무능을 주신 하느님, 재능 있는 이들의 재능이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쓰일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는 재능과 그 기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의 참맛을 허락해 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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