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수요일(마태10,1-7)

2011. 7. 6. 오전 7:40:15

글자

2011 7 6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
(마태오 10,1-7)

 

Jesus summoned his Twelve disciples
and gave them authority
over unclean spirits to drive them out
and to cure every disease
and every illness.

 

 

 

말씀의 초대

가나안을 비롯하여 온 땅에 기근이 퍼지자, 온 세상 사람이 곡식을 사려고 요셉에게 몰려든다.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넘긴 이스라엘 집안 요셉의 형들도 이집트로 양식을 사러 온다. 요셉이 어떻게 기근에서 이스라엘 집안을 구원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을 위해 파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하고 계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시며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사람들을 고쳐 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 길 잃은 양이란 당시 사회의 기득권과 정통성에서 벗어나 변방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가난한 이들, 창녀, 세리, 목동, 고리대금업자 등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 죄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병든 이들, 바로 이들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가라고 하셨던 길 잃은 양들입니다.
우리 시대의 ‘길 잃은 양’은 누구일까요? 우리가 종종 본당에서 말하듯 단순히 비신자나 냉담 교우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말 못할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죄인 취급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 에이즈 환자들, 동성애자들, 인종적 차별을 받는 이주 노동자들, 성 폭행과 폭력으로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 범죄로 전과자가 된 사람들, 가정이 무너진 사람들, 조당에 걸려 교회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우리 시대의 ‘길 잃은 양’입니다.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법은 성(聖)과 속(俗), 선한 사람과 죄인을 경계 지으려고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뜻에 맞갖은 삶을 살도록 하는 윤리적 질서를 위해 마련되었지만 그 법의 뿌리는 하느님 사랑에 있습니다. 사회적 편견과 법의 잣대보다는 사랑의 시선이 더 근본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양들’에게 제자들을 파견하신 이유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악한 영에 대한 권한을 주십니다. 사람들에게서 악한 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도 고쳐 주게 하셨습니다. 그들 역시 어두운 기운에 눌려 있는 이들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천상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면 누구에게나 이 권한을 주십니다. 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하늘의 힘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제자답게살아가면 하늘의 기운은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밝게 생각하고 밝게 행동하는 능력입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진 예수님의 권한이 살아나는 것이지요.
열두 제자는 예수님을 만났기에 삶이 바뀌었습니다. 스승님께 받은 권한으로 사람들에게서 악한 기운을 몰아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연 그들의 생활도 밝아져 갔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행적을 우리 역시 모방해야 합니다.
기도 끝에 늘 마음의 평화를 주시라고 청해 보십시오. 마음이 평화스러우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마음이 평화스러우면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밝게 살려는 이에게는 반드시 당신의 기운을 보내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회적인 신분의 출신입니다. 으뜸 제자인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는 어부 출신이요, 제베대오의 아들로 소개되는 야고보와 요한 역시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들을 부르시어 당신의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는 닮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뛰어난 스승은 자신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전수받을 제자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당시 사람들이 거부하는 인물까지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마태오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로마에 빌붙어 동족을 괴롭힌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싫어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실제로 로마의 관리들은 제국에 협조하지 않는 유지들을 세리를 내세워 괴롭혔습니다
.
시몬은 열혈당원 출신입니다. 그들은 로마 세력에 폭행을 일삼는 무력 집단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에서 시몬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
이들 제자들이 지녔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함입니다. 단순해야만 진리에 빨리 다가갈 수 있다고 스승 예수님께서 생각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수품 때의 약속을 기억하라

  -반영억신부-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능력을 주시어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안배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16)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삼았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불러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자매의 부르심에 대한 묵상글을 적어봅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부르셨는데 

파아란 잔디 위에서도

잔잔한 호숫가에서도

때로는 떠오르는 아침 태양과 저무는 낙조의 여울 속에서도

그분은 밤낮없이 부르고 손짓하셨는데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노도와 같은 파도 속에서도

당신의 손길 속으로 부르시고 이끌어 주셨는데도

나는 외면하고 뒤돌아서며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분은 조금도 섭섭해 하거나 노여워하지도 않으셨으며

끊임없이 기다려 주셨고

내가 방황의 끝자락에서 지치고

좌절과 절망 속에 일어설 수 없어 누워 있을 때에

그분은 살며시 내 손을 잡아 주시며

나다, 일어나거라. 나와 함께 가자. 하고 나를 일으켜 주신 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그 한 말씀으로

내 온 생애의 모든 어둠과 죄를 용서해 주신 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사랑이라는 한 말씀으로 죽음의 긴 터널에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신 내 사랑 주님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기억하시고 부르셨지만 알아듣고 대답한 것은 언제인지 모릅니다. 매 순간이 응답의 기회이거늘 놓치고 살았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사제수품 때 약속한 바를 새롭게 기억하라는 고해신부님의 말씀과 보속에 감사하며 주님께서 불러주신 뜻을 헤아리는 하루를 봉헌합니다. 예수님 품안이 아니라면 도저히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 세리 마태오와 열혈당원 시몬이 섞여 열두제자를 부르신 그분께서 오늘도 분명 나를 부르십니다. 배반할 나의 모습을 품으시며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사랑합니다.

 

 

 

 

 

 

 

 

열두 사도

-홍금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열두 제자의 명단을 봅니다. 여기서 특징적인 점은
이들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천대받던
갈릴래아 출신들이고, 직업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은 땅의 백성이라 하여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던 직업이었고,
직업상 죄인인 세리와 열혈당원이었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구체적인 직업조차 거론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하느님은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실 때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협력자들이 매우 하찮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의 주인공 모세와
신약의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모세는 목자인데 목자는 세리와 더불어
직업상 죄인에 속하던 사람이었고,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도 작고 평범한
보통 여인을 뜻함). 성경에 어린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대개
제자들을 지칭합니다. 어린이의 특징은 부모에 대한 의존성입니다.
어린이의 특징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얻어먹는 사람이라는 것,
다시 말한다면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바로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러기에 12명의 제자단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예수님께 대한
의존성’, 이것이 제자 됨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모든 것

- 강석진 신부-

 

오늘 복음에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손수 뽑으셨다는 것과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 중에유다!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운 기억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비밀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 저자가 열두 제자 이름을 굳이 복음서 안에 넣으려고 했다면 예수님을 팔아넘긴유다의 이름을 넣는 데 좀 더 신중을 기하든지, 혹은 유다 이름을 빼고 좀 그럴싸하게마티아의 이름을 넣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굳이유다의 이름을 넣은 것일까요? 복음서 저자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예수님께서 열둘을 뽑으신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걸까요?

오늘 복음 서두를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제자들에게 더러 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그 권한을 가지고 살아갔던 제자들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한테서 환영을 받으며 살았을것입니다. 인간이기에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어떤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람에게 유혹이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열두 사도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면,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역시 예외는 아니었겠지요. 유다도 예수님께 더러운 영을 쫓는 권한과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는 능력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과연 사람을 살리는 데 쓰느냐, 혹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됨을 우리는 압니다. 심지어 그것이 재물이나 돈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능력을 살얼음 걷듯 조심스럽게 간직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능력 때문에 결국스스로를죽음으로몰고 가게만들수 있음을열두제자의 이름, 유다의 이름을 통해서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의탁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자그마한 것이라도, 나의 능력은 하느님한테서 받았기에 궁극적으로 타인을 살리는데 쓰일 수 있는 그런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당신과 똑같은 권능을

-강신숙 수녀-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당신과 똑같은 권능을 주십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파견이란 ‘어떤 임무를 맡겨 어느 곳에 보낸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라는 임무를 받아 파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철저히 예수님의 뜻을 이해해야만 파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파견받기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마치 미국이 이라크 침공 이후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으나 많은 국민들이 파병을 반대한 것처럼 말입니다. 실로 명분 없는 전쟁을 위한 파병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이 살해되기도 하는 등 위험을 겪으면서 한국은 결코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의 뜻을 이해하는 파병이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깊이 깨닫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악에서 구하시고 질병을 치유해 주시고 자유로움을 되찾아 주시는 예수님의 행위가 곧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함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에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길 잃은 양은 누구입니까? 바로 멀리서 찾지 말고 내 주위, 내 이웃을 먼저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내 가족을 돌아보고, 내 주변을 살펴봅시다. 혹시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는지, 마음 상한 부분이 있는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사랑으로 내 가족과 주변을 건강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오늘 나를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뜻일 것입니다.


 

사랑스런 동생들

-노성호신부-


누구의 반대나 걱정도 듣지 않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사제가 되기를 결심했던 나는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신학교에 입학했다. 문제는 하나뿐인 동생이 대학 진로를 앞두고 선전포고(?)를 하듯이 “형 따라서 신학교 가겠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한집안에 사제 한 명 만들기도 힘든데 둘씩이나 왜 이러는지 걱정도 많이 되었고, 자식 교육에 남다른 조예를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의 뜻도 있어서 집안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큰 일은 동생과 어울렸던 친한 친구들 셋이 갑자기 무슨 벼락이라도 맞았는지 한꺼번에 신학교를 지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한테는 성격도 각양각색이고 재능도 각각 다른 사랑스런 동생들이었는데 갑작스런 진로 결정으로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기특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녀석은 누나만 넷 있는 집안의 막내둥이 외아들이었고, 한 명은 독자(獨子), 내 동생과 나머지 한 녀석은 형만 한 명씩 있었는데 둘 다 당시 신학생이었다.

열두 사도를 뽑으셨을 때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와 동생들을 하나하나 부르시면서 당신 제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당시를 회상해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여러 가지 묵상을 하도록 나를 초대하시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는 사제가 되었고, 내 동생과 누나들만 있는 막둥이 외아들 녀석은 7월에 부제품을 받는다. 다른 형제가 없는 외아들은 사정상 내년 이맘때 부제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형제는 우리와 다른 삶의 모습으로 다시 뽑아주셨다. 형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동생은 천국에서 별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면서 우리 모두를 지켜봐 주도록 택하셨다.

예수께서 우리 6명을 뽑으신 시기나 모습, 그리고 선택받은 우리의 모습은 다양했지만 그분께서는 우리한테도 이렇게 분부하셨을 것이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그래서 지금 우리 여섯 사람은 그 분부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해 나가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꾼은 적다(마태 9,35-1`0,1.6-8)

-유 광수신부-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말씀하신다. 수확할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이미 모든 곡식은 영글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처음부터 씨를 뿌리고 모를 내는 일꾼이 아니라 이미 주인이 다 해 놓으셨고 다만 수확할 것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수확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일꾼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일꾼은 처음부터 자기가 무엇을 시작해서 어떤 결실을 맺게 하고 그 결실을 거둬서 주인님께 갖다 바치는 일꾼이 아니다. 씨를 뿌려서 수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일은 이미 예수님이 다 해놓으셨다. 일꾼이 해야할 일은 예수님이 이미 다 해놓으신 것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항상 예수님이 시작하신다. 또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다. 아버지는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고 그 일을 할 일꾼으로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기까지 순명하시면서 인류 구원의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바로 목전에 두고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이라는 구원사업을 완수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누군가가 예수님이 완성해 놓은 구원 사업을 계승해서 일 할 일꾼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완성해 놓으신 인류 구원의 일을 계속할 열 두 사도들을 뽑으셨고,
교육시키셨고, 파견하셨다. 제자들은 인류 구원을 위해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에 의해 완성시켜 놓은 구원의 열매를 거두워 들이는 일만 하면 된다. 열두 제자들에 의해 이 일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이어져야 하고 또 열 두 사도들에 이어서 계속해서 그 일을 할 일꾼이 필요한 것이다. 이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는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방법에 의해 수확을 거두워 드려야 한다.

그 일에 불리움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예수님이 하신 방법대로 수확을 거두워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꾼은 많지만 각자 자기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워 드리려고만 하지 예수님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워 드리는 일꾼은 많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예수님의 일꾼들이지만 정말 믿을만할 일꾼은 많지 않다. 수확할 것을 거두워 드리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것만 챙기기 위해 일을 하려는 경향이 많다.

 

수확할 일꾼이란 어떤 일꾼인가?

첫째, 무엇보다 군중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엾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모성애를 느끼는 마음이다. 마치 자식이 병들어 아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마음에 더 큰 고통을 느끼는 마음이다. 목자 없이 헤메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목자를 찾아 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다.
둘째,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모든 고을과 마을들을 두루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수확을 거둘 일꾼은 자기 말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려면 하늘 나라의 복음을 알아야 한다. 복음을 먼저 읽고 묵상한 사람만이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
셋째, 모든 아픔과 질병을 고쳐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늘 나라의 복음만 선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 내어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모든 질병을 고쳐 줄 수 있는가? 목자 없는 양들이기 때문에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해서 병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고쳐 주려면 무엇보다 양들이 먹고 마실 것을 주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단지 말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면서 먹고 마실 것을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은 사제 수도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한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해야할 사람들이고 그 일을 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꾼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찾으시는 추수할 일꾼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처음으로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은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 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3, 14-15) 즉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게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엾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지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야 수확할 힘을 길러내고, 수확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는 것이요,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성무 일도서에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고 싶어서 이 내 눈은 밤새도록 떠 있나이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이시며, 나의 구원이 되셨나이다. 그분은 나의 하느님이시니 어찌 찬양하지 않겠으며, 나의 선조의 하느님이시니 어찌 우러러 영광 드리지 않으랴."(시편 118 과 출애굽 15,2)고 찬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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