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주일(농민 주일)(마태오 13,24-43)

2011. 7. 17. 오전 7:58:18

글자

2011 7 17일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마태오 13,24-43)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95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정하였다. 이날 교회는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고,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갖게 살도록 이끌어 준다. 각 교구에서는 농민 주일을 맞아 기념 미사와 갖가지 행사를 하며,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과 창조 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며 농민 주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씨앗 가운데 가장 작지만, 자라면 공중에 새들이 깃들일 만큼 커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 한가운데 하느님 나라는 씨앗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이를 발견하고 키워 나가면 우리가 사는 자리에 하느님 나라가 열립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가정이든 직장이든 우리가 살아야 할 공동체가 있습니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든 싫든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일보다도 사람과 맺어 가는 관계 때문에 어려워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천국도 만들고 지옥도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를 비유하시려면 으리으리한 황금 궁전이나 찬란한 도성을 상상하도록 해 주셔야 했을 텐데, 보일락 말락 한 아주 작은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왜 이런 겨자씨에 비유하셨는지요?
우리가 아무리 황금 궁전을 짓고 살아도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과 관계가 나쁘면 그곳이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관계를 사랑으로 아름답게 이루어 가는 것이 곧 하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 안에 심긴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물 주고 키워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장점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안에는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씨앗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야말로 겨자씨만 한 작은 장점이라도 찾아내어 그것을 붙잡고 물 주고 가꾸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덧 그 사람에게서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움트고 자라서 공중에 새들이 깃들일 만큼 커집니다. 관계가 열리고 하늘 나라가 됩니다.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하늘 나라를 만들어 가는 방법입니다. 관계 안에서 천국과 지옥은 사실 남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주인은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싹이 돋고 보니 가라지도 있었습니다. 가라지는 밭에 나는 잡초입니다. 이상한 생각에 종들이 질문합니다.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주인은 짧게 답합니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원수는 악의 세력입니다. 그들이 밭에 가라지가 생겨나게 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 삶을 둘러봐도 공평하지 못한 면이 많습니다. 특별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불안감이 떠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주인의 이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주인은 악의 세력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안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은 그들이 뿌려 놓은 가라지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종들의 이 말에 주인은 기다리라고 합니다. 종들은 순간을 보지만 주인은 멀리 내다봅니다. 주인의 인내입니다. 그러니 종말까지 선과 악은 공존합니다. 어둠의 요소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인은 처음부터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이 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원수는 자꾸 가라지가 생겨나게 하지만, 그래도 좋은 씨가 더 많은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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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반영억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은 인내하시는 모습입니다. 가라지를 뽑아버리지 않으시고 추수 때까지 밀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은 곧 심판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시간 인내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개미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일개미는 집을 짓거나 먹이를 날라 모으는 개미 입니다. 여왕개미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자기 체중의 25배가 넘는 물체들을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날개와 생식기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개미라고 다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1/3은 일개미답게 부지런히 일한다고 합니다.

1/3은 누가 시켜야 일을 하고, 통제를 하지 않으면 빈둥빈둥 놀며, 나머지 1/3은 생긴 것만 일개미지 일할 생각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논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개미사회는 1/3의 부지런한 일개미 덕분에 큰 탈 없이 유지되고 있답니다.

 

어느 날 학자들이 부지런한 일개미1/3만 따로 분리해서 독립된 집단을 만들었는데 그 집단을 관찰하니까 다시 1/3은 부지런히 일하고 1/3은 마지 못해 일하고 1/3은 언제나 논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게으른 개미 1/3을 모아 놓았더니 그 중의 1/3은 또 부지런한 개미가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람들의 공동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1/3의 부지런한 사람들 덕에 잘 유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사람끼리 모아놓으면 또 일개미의 법칙이 시작됩니다.

 

우리성당 주변을 구역으로 나눠 환경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구역은 가구수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구역은 가구수도 많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데도 기대 이하입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미루고 나 하나쯤이야! 하고 빠지니까 정작 일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집단이든지 그 집단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저 관망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존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다 양심적이고 올바르고 모범적인가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쉬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곳으로 가시는 분도 계시고..그러나 거기 가 보면 또 거기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은 있습니다. 뭐 피하려다 더 큰 골치덩이를 만납니다. 산 너머 산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맘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무슨 일을 하면 재미있다고 합니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보면 결국 일개미의 법칙이 나타납니다.

내가 커지지 않는 한 불평불만의 요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웃과의 관계에서 마음으로 불편함이 있다면 먼저 내 마음단속을 해야 합니다.

 

MBTI라는 성격검사 유형이 있는데 검사의 결과물을 가지고 같은 성향끼리 모여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내가 싫어하고 못마땅해하던 사람들이 모두 나의 그룹에 모여있기 대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볼 대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험담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만 모아 놓으면 오히려 다시 그 마음 맞는 사람들 중에 맞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인생여정입니다.

 

살다 보면 착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잘 안되고 악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잘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못된 사람을 왜 그냥 두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선한 사람으로 비유되는 밀과 악한 사람으로 비유되는 가라지에 대해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하십니다.

 

 왜 그냥 두실까요? 1).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남이 잘못했으면 즉각 벌을 내리기를 바라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참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할 것입니다. 그래도 거두어 낼까요? 뽑아버릴까요? 여러분이나 저나 잘못을 했을 때 즉시 벌을 내리셨다면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회개의 기회, 은총의기 회를 주실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2). 의인들에게는 단련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금도 불에 달궈야 순금이 됩니다. 시련과 역경을 통해 단련되고 강해지게 됩니다. 악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좋은 길로 인도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하늘에 보화를 쌓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로를 쌓을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얌체 같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감사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를 다듬어 주는 복덩이 입니다. , 옆에 계신 분에게 당신은 복덩이 입니다.하고 말씀해 주세요.

 

3). 악인에게도 어느 정도의 선은 다 있습니다. 아니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기에 선한 모습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과거 없는 성인 없고, 미래 없는 죄인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화의 비결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공로가 많은 것처럼 실수와 잘못, 과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곳간에 쌓이기를 원하시기에 기다려 주십니다. 오늘 심판보다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율곡선생도 선한 것이거든 그 의리를 다하고, 악한 것이거든 그 싹을 자르라.하셨습니다. 뿌리를 뽑으라고 하지 않고 싹을 자르라.하신 것은 선과 악의 뿌리가 얽혀있어서 이것을 뽑으면 저것이 함께 뽑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좋은 것 속에 나쁜 것들이 들어있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어김없는 구별이루어져 좋은 것이 곳간에, 즉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보이지 않게 시작하여 거창해집니다. 그러나 세상 것은 거창하게 시작하여 흐지부지됩니다. 비록 우리가 행하는 선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그 일을 끝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가라지와 추수 때까지 함께할 수 있음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공로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모함하고, 빈정거리고, 험담하며 사사건건 반대합니까? 그래서 미워죽겠습니까? 속상하고, 분하고, 야속합니까? 그 사람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거두어 낼까요? 뽑아버릴까요?

 

그래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악의세력에 휘둘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악을 미워하고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악의세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은총 안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가라지'

-김경모신부-

 

오늘의 복음 말씀을 접하면서 제일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창세기 18장의 주님과 아브라함의 대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음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주님 말씀의 의도를 알아채고 주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도시 안에 의인 쉰 명이 있다면 그래도 쓸어 버리시겠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이라도 그곳을 용서 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때에 주님께서 대답 하셨습니다. “그 성읍 안에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이렇게 쉰 명에서 시작한 주님과의 흥정은 열 명까지 낮춰졌지만소돔은 그들의 잘못 때문에 하느님의 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소돔에는 인구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백 명, 천 명, 아니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많은 사람 중에 의인이 단 열 명도 없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 하고 있습니까?

언젠가 한 피정 모임에서 모두에게 눈을 감게 하고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에 세상을 하직 한다면 ‘나는 죄 없다’ ‘나는 꼭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겠다’ ‘나는 영원한 생명 누릴 수 있겠다’라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주세요” 라고 했을 때 그 많은 사람 중에 손을 든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에 온 분들 대부분은 성당에서 많은 봉사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고 성당에서 직책도 갖고 계신 분들이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실히 사시는 분들인데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두 사람은 꼭 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본인이요, 또 한 분은 하느님 이십니다. 우리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다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조차, 피를 나눈 형제들까지도 다 속일 수 있어도 말입니다. “나 자신”은 오늘의 복음의 말씀 중에 나오는 “밀”인지 “가라지”인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사회적인 체면, 자존심, 무지 등에 의하여 자신을 속이고 하느님을 속이면서 자신이 마치 “밀” 즉, 좋은 사람인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한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다고 가라지가 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양심을 막고, 손바닥으로 진리의 말씀을 뿌리친다고 해서 내 죄의 허물이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행태를 저지른다면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책임까지도 져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스스로 해롭게 하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라도 자신의 허물을 하느님 앞에 인정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여 자신의 구원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라 하겠다. (마태 13,30)

 

 

Cockle(가라지, 잡초)

 

 


가라지는 (특별히 교회 안에) 사악한 침략을 상징한다. 이는 가라지가 밭과 곡식을 망치며 번져가기 때문이다. 마태 13:24-30  예수님의 가라지의 비유

경작지 ·도로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로 목본식물까지도 포함시킨다. 농업에서는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식물 이외의 것을 잡초라고 하며, 경작지 이외에서 자라는 것은 야초(野草)라고 한다. 잡초는 작물(作物)에 비하여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할 뿐 아니라 종자의 수명도 길다. 잡초는 작물이 차지할 땅과 공간을 점령하고 양분과 수분을 빼앗는다. 그리고 작물보다 큰 것은 일광을 차단하여 작물의 광합성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작물을 웃자라게 하고 지온을 저하시키며, 통풍을 저해하는 등으로 작물의 생장을 방해한다. 잡초가 우거진 곳은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가 되므로 이를 전파시키는 근원이 된다. 잡초 종자가 작물의 종자에 섞일 때는 작물의 품질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이를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제초비(除草費)는 생산가를 높인다. 한국은 온대지방으로서 오랫동안 농업을 한 결과 많은 잡초가 전파되어 왔다. 잡초는 논잡초와 농지잡초 등으로 나눌 수 있고, 또 피해 정도에 따라서 강해초(强害草) ·해초 ·약해초(弱害草) 등으로 나누기도 하며, 생육기간이 길고 짧음에 따라 1년초 ·2년초 ·다년초 등으로 구분한다. 논밭의 강해초로서 물피 ·물달개비 ·쇠털골 ·밭뚝외풀 ·방동사니 ·알방동사니 ·바람하늘지기 ·마디꽃 등 30여 종이 있으며, 밭에서 자라는 강해초는 바랭이 ·뚝새풀 ·돌피 ·강아지풀 ·쇠비름 ·반하 ·갈퀴덩굴 ·명아주 등 60여 종이 있다. 밭에서 자라는 잡초는 아메리카와 유럽 등과의 공통종이 많으며 근래에 들어온 종류가 많은 데 비하여 논밭의 잡초는 근년에 들어온 것이 적다. 새로운 잡초가 많이 발견되는 곳은 목장 주변과 군작전지역 등을 들 수 있는데, 목초의 도입과 작전물자(作戰物資)에 붙어온 잡초 등이 있으며 특히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근래에는 새로운 제초제의 개발과 기계제초술의 발전 등으로 제초비가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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