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18주간 월요일 (마태14,22-36)

2011. 8. 1. 오전 5:53:06

글자
 
 

2011년 8 1일 월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오 14,22-36)

Immediately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caught him,
and said to him,
"O you of little faith,
why did you doubt?"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에 불만을 터뜨리고 만나를 지겨워하며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한다. 이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노여워하시자 모세는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께 하소연한다.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모세의 어려움을 볼 수 있다(1독서).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자 배에 있던 제자들이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하며 소리친다. 호수 위에서 거센 바람에 시달리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신다. 제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면 언제라도 다가오시는 주님이심을 보여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호수 한가운데서 작은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은 거센 바람이 불어 대자 몹시 불안해합니다. 어부 출신인 베드로는 양편에서 불어 대는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 자신들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마저 배에 함께 계시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다가옵니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더 큰 두려움에 싸여유령이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귀가 번쩍 뜨입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닫고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예수님만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도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어느 순간 베드로가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걸을 때는 몰랐는데, 거센 바람이 부는 호수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곧 베드로는 물에 빠집니다. 예수님께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베드로를 건져 올리시고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칩니다
.
오늘 복음은 분명합니다. 우리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만 시선을 두고 있을 때는 풍랑을 뚫고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두던 시선을 놓치고 자기에게 닥친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물에 빠집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과 위기가 닥칠 때 삶의 문제만 바라보면 결국 더욱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어려울수록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풍랑은 잦아들고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주님께 시선을 두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가십니다. 제자들은 놀라 유령이라고 소리칩니다. “귀신이다.” 하고 외친 것이지요. 그들은 무엇인가 두려웠던 겁니다. 겁먹고 있었기에, 유령이 보이고 귀신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는데 무엇이 두려웠을까요?
완벽하게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던 것이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불안했습니다. 어정쩡한 삶이었습니다
.
베드로는 정말 스승님이신지 확인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그의 청은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가 무사히 걸어오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베드로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왜 의심하였느냐?” 스승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의심했던 것이 죄스러웠던 것이지요. 두려워하면 의심하게 됩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그분께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못 걷습니다. 능력이 없는 탓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힘을 지니면 걸을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힘들고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힘을 청해야 합니다. 의심을 버리고 애절하게 청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

 

새벽녘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어 제자들 쪽으로 가시자 제자들은 놀란 나머지 “유령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기적의 음식을 먹은 것이 어저께의 일이었음에도 제자들은 아직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는 확인을 시도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당돌한 제안이었건만 스승은 기꺼이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곧 빠져 들고 맙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베드로의 이 외침은 자신의 잘못을 실토하는 고백입니다. 스승의 질책은 참으로 따뜻하였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베드로와 그를 바라보는 스승의 인자한 눈길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물 위를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자 겁을 먹고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의심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면,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교훈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힘을 지니는 것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의심을 버리고 믿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반영억신부-

벌써 8월의 첫 날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비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복숭아뿐 아니라 농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신자들의 가정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맑은 햇살을 그리워하며 하늘의 처분을 기다릴 뿐입니다.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탄 배가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고 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가셨습니다(마태14,24-25). 역풍에 시달리는 위기 상황에서 주님이 함께 하셨지만 제자들은 그를 유령으로 보았습니다. 시련이 닥칠 때 그 어려움에만 매달리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도 인생 여정에서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은 언제든지 올 수 있고 그 때야말로 믿음이 증거 될 때입니다. 그러나 곤경에 빠져 눈이 멀면 다른 어느 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내 코가 석자라서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을 잃고 마는 것이죠. 그러나 이때 곤경의 한가운데 서 계시는 구원자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하십니다. 사실 시련의 때는 동시에 은총의 때이기도 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하시는 분이 우리의 하느님 이십니다.

 

사실 유령을 만난다는 것은 그만한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마태14,29).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 볼 때는 물 위를 걸었지만 거센 바람을 보았을 때는 물에 빠졌습니다. 결국 아무리 험한 상황이라 해도 그 속에 숨어계신 예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험한 바다를 보면 예수님을 볼 수 없고, 믿음을 가지면, 거센 바람도 성난 물결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마음껏 누려야 하겠습니다. “어둠 속에 있어도 믿음과 희망 안에 사십시오.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은 당신을 지켜 주시니 말입니다. 걱정일랑 하느님께 떠맡기십시오. 당신은 그분의 것 이고 그분은 당신을 잊지 않으십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그러므로 “오로지 믿기만 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분의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기적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기적을 보았다고 해서 믿음이 성숙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하나의 표징일 뿐, 믿음의 대상은 아닙니다. 기적을 통해서 믿음이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완고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데서 옵니다. “오너라.”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냥 걸으십시오!! 사랑합니다.

 

주님의 손

-최영균 신부-

살아가다 보면 삶의 여정에서 심한 역풍을 만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우리 힘이 참으로 보잘것없음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보내시고 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산 위에서 제자들이 걱정스러워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힘겨워하는 모습,
한걸음에 달려 내려가 도와줄 수도 있으셨겠지만 주님은 오히려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바람에 지치고, 풍랑에 지친 제자들이 잠들어 있던 그 새벽, 주님께서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인생의 여정을 아주 짧게 보여주는 한편의 짧은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의 풍랑에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 이 슬픔과 아픔을 전적으로 치유하고 궁극적인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이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존재로 느껴질 때도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시며 당신의 손을 내밀어 우리를 일으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힘들다고 느껴지실 때 하늘을 한번 보십시오.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주실 것입니다.

유령이다!(마태 14,22-33)

- 유 광수신부- 

예수님께서는 밤 사경에 호수 위를 걸으시고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게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유령이다!"하였다. 그들은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예수님게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아침에서 저녁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이 일에서 저 일로,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미 성숙함에서 성숙으로, 어설픈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즉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이 우리네의 일상생활이요, 인생여정이다. 그러나 그 배가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도달하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 인생의 선장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 대신 내 배의 노를 저어줄 수 없고 또 남의 배를 타고 나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선장은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목적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알아야 한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못하면 엉뚱한 항구에 도달하게 된다. 인생이라는 망망 대해에 배를 타고 저 건너편으로 가노라면 순풍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기치 못한 거센 바람을 만나기도 한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커다란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다. 복음은 이것을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적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실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주님이 나와 함께 있지 않으시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도대체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지금 내가 이렇게 큰 어려움을 만나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주님은 나의 고통을 알고 계시는가?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가 가시듯이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아니 한번도 우리를 포기한 적이 없으시고 우리한테서 떠나신 적이 없다. 제자들이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다가가시는 분은 예수님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유령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제자들에게 다가 오시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유령이다!" 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 하지 마라."라고 격려해주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는 외마디 속에는 항상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의 소리가 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말씀이 있고 "나다."라고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시는 표지가 있다. 그것을 보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고 그 표지를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반드시 주님의 음성과 모습이 있다. 예수님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많은 유령들이 있는 법이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보지 못하고 "유령"으로 보이게 하는 많은 허상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지그,a 제자들의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복음은 제자들의 이런 어려운 상황을 "밤 사경에"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밤사경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지금 제자들의 입장이 아주 캄캄한 상황이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이 "유령이다!" 라고 두려움에 휩싸여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주님께 신뢰하는 청들 들였다. "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이 "오너라"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 그 결과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다시 주님을 찾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질렀다. 고맙게도 예수님은 다시 곧 손을 내미시어 그를 붙잡으시고, " 이 믿음이 약한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따끔하게 나무라셨다.

결국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은 믿음이 약하였기 때문이요, 믿음이 약하다는 말은 의심하였다는 것이다. 그럼 의심이란 무엇인가? 의심이란 확신과 불신 사이에 있는 것이다. 즉 절대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불신 사이에 있는 것이 의심이다. 그러니까 의심이란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울어진 것이 아닌 이쪽에도 조금 걸치고 저쪽에도 조금 걸쳐 있는 상태이다. 의심이란 이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어질 수도 있고 저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질 수도 있는 중간 상태이다. 그러니까 의심은 잘하면 절대적인 믿음으로 기울어 질 수도 있고 잘못하면 절대적인 불신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는 어중간한 상태이다. 우리가 이런 의심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 저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이 길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아닌지, 하느님의 듯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자문하게 될 때가 이것은 아직 확실하지 못한 의심 중에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의심이 들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예수님은 우리가 의심이 들 때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런 의심이 들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들려 주시고 당신의 현존을 볼 수 있는 표지를 보여 주신다.

제자들이 "유령이다!"라고 두려워 소리를 지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소리를 들려 주셨고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베드로가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하고 청하였듯이 예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너라."하였을 때 베드로는 아무 의심없이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즉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신뢰하였을 때 물위를 걸어갈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또 다시 물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거센 바람을 보고서 의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신뢰하고 믿음의 행동을 옮겼을 때에는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여정이었지만 거센 바람이 불었을 때 예수님을 보지 않고 또 예수님의 소리를 신뢰하지 않고 거센 바람을 보았을 때에는 물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에 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배를 타고 이 편에서 저 편으로 건너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많은 어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걸어갈 때에는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하고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도 일어나지만 큰 어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거센 바람을 볼 땡에는" 점 점 더 큰 깊은 수렁에로 점 점 큰 불신으로 빠져들게 된다. 의심이 든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의심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숙시켜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아니면 우리의 불신만을 더욱 더 크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의심이 들 때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확신과 불신 절대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불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심 중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는 소리를 아마도 수없이 경험한 후에야 비로서 확고한 믿음으로 성숙될 수 있으리라.

 인생의 동반자

- 이동훈 신부-

오늘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이다. 올해 맞이하는 비안네 축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올해 619(예수성심 대축일)부터 1년간사제의 해로 선포하시면서그리스도의 양떼를 섬기는 목자의 참된 모범인 아르스의 본당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50주년임을 상기시켰다.

비안네는 주민이 230여 명에 지나지 않는 프랑스의 아르스라는 아주 작은 시골에 부임했다. 당시 얼마 되지 않는 교우들 대다수는 세상사에 쫓기면서 신앙엔 무관심하며, 영적으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비안네는 40여 년을 사목하면서 대단한 변화를 이루어 냈다. ‘성체의 성인’, ‘고해소의 성인’, ‘본당신부들의 수호성인등으로 불리는 비안네는 모든 사제의 귀감이다. 그러나 비안네 신부도 처음부터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정규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라틴어 이해 부족으로 여러 번 낙제해 사제가 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비안네 신부는 부임하던 첫날 성당 안에 계신 예수 성심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예수성심께 봉헌했다.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다 따라하겠으니 친히 본당 신부님이 되어 주셔서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 일도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주님께 의탁한 것이다. 주님께 의탁하고 시키시는 대로 따르기로 마음먹은 비안네 신부를 통해 하느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본당신부 일을 대신 해주신 것이다.

어부였던 베드로에게도 폭풍이 몰아치는 호수에서 배를 모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여길 만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을 다잡아 물 위를 걷다가도, 거센 바람을 보고는 그만 두려움에 휩싸여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주셨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들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풍랑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준다. 바다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의 손을 잡고, 그분과 함께 있으면 살 수 있다. 비안네 사제와 베드로의 삶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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