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수요일(마태오 13,44-46)

2011. 7. 27. 오전 5: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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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27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오 13,44-46)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treasure buried in a field,
which a person finds and hides again,
and out of joy goes and sells
all that he has and buys that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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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의 말씀이 새겨진 증언판을 들고 내려온다. 주님을 만나고 온 모세의 살갗은 빛이 났다. 살갗이 빛나는 것은 모세가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다(1독서). 우리가 사는 세상 한가운데 보물이 있다. 하늘 나라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세상 속에서 삶의 진정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얻는다(복음).

오늘의 묵상

보배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그곳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환경, 내게 운명으로 주어진 처지, 날마다 내게 생기는 일들, 날마다 나를 부르는 일들이 나의 주요 소임과 내게 가능한 실존의 성취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틴 부버가 쓴 『인간의 길』에서 따온 글입니다. 우리 인생의 보물이 있는 곳은 바로 저마다 서 있는 제자리라는 것입니다. 저 멀리에서, 아니면 그 언젠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건 안에 보물이 있다는 뜻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한 번도 똑같이 창조하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나와 똑같은 존재는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이 유일한 존재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자신만의 삶의 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내 삶을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이것이 나에게만 고유하게 주신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쁨뿐 아니라 슬픔 속에도 반드시 자신의 인생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보물이 숨겨 있습니다. 신앙인은 삶에서 날마다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팔아서 그 보물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 안에서 어떤 보물을 발견했습니까? 나의 무엇을 팔아서 그 보물을 사겠습니까?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명을 통해서만 세상 안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분의 사명을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 나라의 떳떳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입니다. 그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바로 우리 가운데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개인적 이기심, 오만과 불손이 눈과 귀를 흐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밭에 숨겨진 보물이시며, 감추어진 좋은 진주이십니다. 우리는 보물과 진주를 끊임없이 바라고 탐하지만, 욕심에 눈이 가려 눈앞에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과 사명을 믿고 받아들이고, 세상에서 그 사명을 수행해 나갈 때만,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신비이신 그분을 알아 뵐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아 하늘 나라의 신비를 이 땅에서 철저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에 비유하십니다. 보물이 묻힌 것을 알면 누구나 그 밭을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값은 따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물의 밭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습니다. 그 해답은 신앙생활 안에 있습니다.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물의 밭’을 알아내는 열쇠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믿음의 길이 기쁜 생활이 될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무엇보다 먼저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실제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 행위가 ‘보물의 밭을 사는 일’입니다.
신앙은 습관이 아닙니다. 매일의 고백이고 다짐입니다. ‘주님, 다시 시작합니다. 또다시 출발하렵니다.’ 이러한 선언이 매일 기도의 핵심입니다. 하루의 첫 행위가 기도라면 신앙은 마침내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가 없으면 믿음은 여전히 밭에 묻힌 보물로 남을 뿐입니다. 두려움의 극복이 소박한 기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 모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오늘의 복음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성과 애정을 쏟으면 누구나 새로운 시각을 얻습니다. 신앙생활은 늘 현실입니다. 삶의 보물이 되어야 할 믿음이 인생의 짐으로 바뀌고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여러 복음에서도 하늘나라에 대해 이런저런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이하늘나라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깊이 제대로 알아듣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곧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상과 하느님 나라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깊게 알아들어야겠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이해 여부는 우리 신앙생활의 근본과 방향을 건드리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늘나라를 두고 밭에 숨겨진 보물이라고 하십니다. 밭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또 보물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터입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 그러곤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다음으로는 하늘나라가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하십니다. 역시 좋은 진주가 상징하는 의미, 상인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곤 값진 진주를 찾자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 그것을 샀다고 하는데, 이 말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울림으로 공명하고 있는지 깊이 머물며 알아들어야겠습니다.

그저 단순한 반성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현 모습을 정확하게 알고 다듬어 나가기 위해, 내게 있어 보물은 무엇이며 진주는 무엇인지 되짚어 봐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팔아 바꿀 만한 가치를 지닌 내 보물과 내 진주는 무엇인지요
? 그게 만약 하늘나라가 아니라면, 내 보물이나 진주는 하늘나라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도 더듬어 봐야겠습니다.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한 기쁨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횡재를 경험해 본 사람은 그 기쁨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찾던 것을 얻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얻으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포기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한다면,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갈릴래아 어부 출신의 사도들처럼 배도, 그물도, 고향도, 가족과 친척도 모두 포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소중함을 아직 깨닫지 못한 까닭입니다. 언제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보물을 찾아라

 -반영억라파엘신부-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애쓰지 않는 사람은 보물을 얻지 못한다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다. 무엇인가 얻으려면 하느님의 은총이 선행되어야 하고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간의 수고와 땀이 없이 얻는 열매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값진 보물의 열매가 아닐 것입니다. 

 

값진 보물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하여 그만한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보다 못한 것들을 처분하고 보물이 빛나도록 해야 보물의 진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보물을 발견하였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노력 없이 버려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보물의 가치를 빛낼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7-8)

 

성녀 엘리사벳씨튼은 고백합니다. “하느님만이 나에게 남은 피난처 이십니다. 저는 다른 모든 피난처들을 잃어버리고 주님에게만 의존하게 되는 데서 오히려 영적인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을 차지하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또 소유한다 할지라도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차지하지 못하면 불행하고,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차지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니 하나를 버려야 더 큰 것을 얻게 되고 버릴 때는 반드시 세상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실 세상 것을 버리고 저 높은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얘깁니다. 다만 실천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수고와 땀으로 하늘나라의 보물을 차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안락의자에 앉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필리보네리)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보물이고 따라서 보물을 얻기 위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됩니다(마태13,46). 애쓰지 않는 사람은 보물을 발견 할 수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의 나라를 성인들이나 차지하는 것으로 어렵게만 생각한다면 아무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마태6,33)을 구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얻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보물은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고 볼 눈이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어떤 것도 다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지 말고(루가9,62) 내 삶의 자리에서 보물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주님, 정녕 당신은 저의 등불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어둠을 밝혀주십니다.”(2사무22,29). 그래서 당신의 보물이 보입니다. “진실한 것이 헛된 것과, 영신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과, 최고의 것이 최저의 것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을 똑같이 맛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 하늘 나라

 

 

-김 맛세오 수사-

 

제가 있는 성거산에는 금을 캐냈다던 광산과 곳곳에 금을 찾기 위해 파헤쳤던 흔적이 여럿 있습니다.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이 여기서 금을 많이 채취해 갔다는 것이 결코 입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광부로 일하면서 캐낸 금을 조금씩 숨겨 모아 제법 갑부가 되었다는 80세 넘은 노인과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어느 분이 금광을 채취하던 주변의 돌을 분석해 보겠노라 돌 비늘을 주워가기까지 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금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황금만능주의로 팽배해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일확천금이 될 만한 구석이 엿보이면 -주식 투자다
아파트 투기다- 부자가 되는 관심사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금은보화가 많이 쌓여도 궁극적인 행복은커녕 오히려 그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이란, 바로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한 사람만이 깨닫고
차지할 수 있는 최상의 무형자산無形資産이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해 보면, 내 삶의 최고의 보물이 하늘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이 귀한 보물을 어떻게 간직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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