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화요일(마태13,36-43)

2011. 7. 26. 오전 7:01:10

글자

2011 7 26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를 말하는 것이다.
(마태오 13,36-43)

 

 

"He who sows good seed is the Son of Man,
the field is the world,

the good seed the children of the Kingdom.
The weeds are the children of the Evil One,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주신다. 주님께서는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푸시고 인간의 온갖 죄악과 악행을 용서하시는 분이시다(1독서).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다. 세상 안에서 말과 행동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하늘 나라 자녀들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하십니다. 악의 세력이 가라지를 뿌린 탓입니다. 종말에는 그 모습이 드러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궁금합니다. 누가 좋은 씨의 사람이고 누가 가라지의 모습을 지녔는지 알고 싶어집니다.
복음 말씀은 암시를 남깁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과 의로움을 저버리는 것이 가라지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
죄는 사랑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 남을 죄짓게 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사랑의 마음을 빼앗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에 봉사하려는 마음을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보다 더 어두운 행동이 있을는지요?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이 죄의 본모습입니다
.
모든 인연을 선하게 만들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천사가 됩니다. 누군가에게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면, 이보다 더 밝은 행동이 있을는지요? ‘사랑의 마음을 지니면 좋은 씨의 사람이 되고, 비뚤어진 마음을 지니면 가라지의 모습이 된다고 했습니다
.

☆☆☆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 왠지 두렵습니다. /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 언어의 나무 / <중략> / 제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 위선의 말들을 용서하소서, 주님.
이해인 수녀님의 아름다운 시, ‘말을 위한 기도의 일부입니다. 마치 바람결에 씨앗을 뿌리듯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쏟아 내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내 입에서 나간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루를 돌아볼 때 무엇보다 자기가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면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았는지 곧 알 수 있습니다
.
수녀님의 표현처럼 말은 씨앗과 같아서 사람들 마음 안에 심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 안에 축복의 씨앗을 심어 줄 수도, 가라지를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축복과 사랑의 말은 그 사람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비방과 험담, 경솔하고 위선적인 말들은 온통 가라지 밭을 만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
오늘 복음에서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뿌리고 다니는말의 씨앗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는하늘 나라의 자녀가 되기도 하고악한 자의 자녀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어떤 씨앗을 뿌렸습니까?

 

 인생의 끝에 서면

  -반영억라파엘신부-

이건숙씨의 꼴찌의 간증에 보니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장수비결 

인생은 육십에 시작하는 것이니

칠십에 저승사자가 오면

잠깐 밖에 나갔다고 전해다오.

 

팔십에 저승사자가 오면

아직 이르다고 말해다오.

 

구십에 와서 가자고 하면

뭘 그리 서두르냐고 달래다오.

 

백 살에 와서 가자고 하면

이제 서서히 좋은 시기 봐서

가겠다고 전해다오.

 

인생의 끝에서면 하루라도 더 세상에 머물고 싶어지나 봅니다. 욕심이라고 하기에는 모두가 가진 기대요, 바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2,17)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6,8-9)

 

오늘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주시는데 아주 쉽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며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입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입니다.

 

사실 세상의 종말은 개인적으로 볼 때는 죽음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여정의 수확 때인 죽음의 순간에 남을 죄짓게 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가라지의 상태로 있다면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의인의 상태였다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그 삶은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쉽게 알아들은 만큼 삶의 모습도 맑고 밝아졌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타깝게도 마지막 날에 좋은 씨앗인 하늘나라의 자녀가운데에서도 내적으로는 악한자의 자녀로 밝혀질까 두렵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아 왔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았느냐의 문제가 더 소중함을 생각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성직자?

  쓰레기통 같은 사람

남들이 인상 찌푸리는 것을 껴안는다. 아무 불평 없이.

가운데 자리 마다하고 구석으로 간다. 아무 불만 없이

화려한 것, 화려한 곳만 찾는 성직자가 있다면

그는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정철-

 

저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밭은 세상이다

-황지원 신부-

 

요즘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짜여진 대본에 의해 주고받는 코미디가 아니라, 상황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뿐만 아니라, 독하고

얄미운 사람도 꼭 한 사람 이상씩 함께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거북하고
,
그 사람의 등장이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오히려 인기를 얻고 프로그램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다른 인물들과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저는 그런 캐릭터의 인물이 인기를 얻는 것이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
아마도 사람들은 그런 캐릭터에서 재미를 느끼고 애착을 갖게 되나봅니다
.
세상이라는 밭에 있으면 좋은 씨앗과 가라지를 구분하게 됩니다
.
좋은 씨앗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가라지는 나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으로

쉽게 구분하고 걸러내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이라는 밭에서

내 생각대로 걸러내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 잣대로 거르고 판단할 것이

아니며, 그것은 하느님께 맡겨진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이 밭에는 정말

많은 씨앗이 뿌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몫은 뿌려주신 대로 잘 자라나는

것입니다. 걸러내는 몫이 아니라 서로 잘 키우는 몫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밭의 가라지

- 박후임 목사-

 

농약 중에 가장 독한 약은 , 바로 제초제이다 . (가라지)을 죽이는 약 . 하지만 풀은 죽지 않는다 . 다만 땅 위로 돋아나 있는 풀잎들만 탈 뿐 뿌리까지 죽지는 않는다 . 그래서 해가 바뀌면 또 올라온다 . 일을 잘하는 농부는 풀씨를 받지 않는 농부이다 . 사실 유기농업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풀 때문이다 . 우리에게 밭을 빌려준 할머니께서 신신당부하신다. 절대로 풀씨 받으면 안 된다고. 어르신들이 우리 밭을 보면 풀밭이라며 혀를 끌끌 차신다. 그래도 올해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밭이 조금 깨끗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풀은 약으로도 잡을 수 없지만 부지런하면 잡을 수 있다.

풀이라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풀이 밭에 들어와 있고, 있어야 할 곳이 아니기 때문에 뽑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풀을 맬 때 보면 풀이 있던 흙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 풀뿌리 속에 좋은 벌레들도 많이 살고, 미생물들도 있어 땅을 좋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풀이 밭작물에 영향을 줄 때까지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잡아주어야 한다
.

나는 이 비유 말씀이 이렇게 보인다. 내 마음 밭은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밭, 좋은 씨앗을 뿌리신 이는 그리스도, 내가 잠든 사이(깨어 있지 못한 때) 원수가 가라지를 뿌려놓고 갔다. 하지만 내가 말씀으로, 기도로 깨어있다면 원수가 뿌려놓은 그 가라지조차 은총이 될 수 있다. 가라지를 뽑을 수 있는 힘은 하느님한테서 오며 내가 깨어 있을 때 가능하다
.

주님, 늘 깨어 있어 당신이 심어놓으신 좋은 씨로 열매 맺게 하소서. 행여 부족하여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갈지라도 당신의 은총에 힘입어 가라지를 뽑아낼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아멘

 

효율성과 경쟁력

-서현승 신부-

 

가라지를 솎아내는 일과 그대로 두는 일 중 어느 쪽이 소출을 많이 내는 데
더 유리할까요? 부지런한 농부라면 결론은 뻔합니다. 시간이 지난다 해서
가라지가 밀로 바뀌지 않을 테니, 빨리 뽑아버리는 것이 한 톨이라도
더 많은 곡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발적으로
가라지를 뽑는 수고를 감수하겠다고 나서는 종들을 가로막는 주인이 오히려
이상해 보입니다. 사실 효율성을 따지는 현대 사회에서 예수님의 비유를
그대로 실천하려다간 도태되기 십상입니다. 변화를 뒤쫓기보다 선도해나가야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FTA 협정을
체결하려고 협상 중인 지금, 우리 농업도 하루 빨리 보다 효율적인 경영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저가를 앞세운 캘리포니아산 칼로스쌀이
우리 식탁에서 외면당한 반면, 오히려 농약을 전혀 하지 않아 모양도
형편없는 유기농 쌀이 한 가마에 백여만 원씩에 팔렸다는 소식은 과연
효율성만이 정답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3). 경쟁력 확보를 위해 될성부른
떡잎만 놓아두고 나머지는 재빨리 제거하려는 종들보다, 무녀리 같은 밀 이삭
하나라도 다칠까봐 차라리 적은 수확을 감수하려는 주인의 마음이,
우리 농촌과 각박한 우리 사회를 살리는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하화식 신부-


가라지의 설명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을 수도 있다. 나는 가라지가 아니고 또 내 안에는 그런 가라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별 생각없이 듣고 말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제자들이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주님은 그 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가르쳐 주시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또 어떻게 듣기에 그럴까? 의사 전달하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한다. 나는 분명히 이런 뜻으로 이야기했는데 듣는 사람은 자기 식대로 알아듣거나 어떤 때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할 때도 있다. 참으로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은 진정 마음으로 듣는 것일 텐데….

그럴 때는 자기 중심의 생각에서, 말하는 사람의 중심으로 마음을 옮겨야 한다. 또한 두 귀를 주신 하느님의 창조물 인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잘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 대화 부족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이 급기야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볼 때 정말 잘 듣는 습관을 가져야 하느님의 말씀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지 싶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도 보듯이 주님의 말씀은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고 선택의 자유를 우리에게 주신다. 모든 말씀의 결실을 맺고 안 맺는 것은 우리 각자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하느님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주셨기에 들을 귀를 더욱 곤두세워야 할 때이다. 오늘 하루도 다른 사람을 통해 주시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장동현 신부-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지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살기 바빠 서로를 험하게 대하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악이 판치는 세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의 어지러움을 하나씩
바로 잡아나가는 정의의 사도들이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십여 명의 자매들이 일면식도 없는 광주의 우리 학생들을 위해
삼 년째 장학금을 보내옵니다. 장학금을 보내며 내건 조건은 단 하나.
가난한 아이를 도와주고 크게 이름을 내지 마라는 것입니다.
학생 하나가 왕따를 당해 우리에게 왔습니다. 새 학급의 학생들이 똘똘 뭉쳐
그 학생을 받아들이고 보호해주며 친구가 되어주는데 다들 사회사업가 같았습니다.
왕따를 당해 심하게 위축되어 있던 그 학생이 하도 활개를 쳐서 불러다 자제를
시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내라’(로마 12, 21)라고 권고합니다. 사실 이 세상은 선이 판을 치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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