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주간 수요일(마태오 15,21-28)

2011. 8. 3. 오전 6:44:32

글자

2011년 8월 3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주님, 그렇기는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오 15,21-28)

 

 "Please, Lord, for even the dogs eat the scraps
that fall from the table of their masters."
Then Jesus said to her in reply,
"O woman, great is your faith!
Let it be done for you as you wish."

 

 

 

말씀의 초대

모세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 앞에 이르러, 사람을 보내 그 땅을 정찰하게 한다. 그러나 그곳을 정찰하고 온 사람들이 그곳 사람들이 너무 강해서 그곳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한다. 약속의 땅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말에 절망하여 통곡한다. 하느님의 약속은 잊고 자신들의 약함에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부인이 마귀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호소하지만 그 청을 거절하신다. 그러나 그 여인의 온전한 믿음과 겸손한 행위를 보시고 그의 딸을 고쳐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통해 무엇이 참된 믿음의 태도인지를 가르쳐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당신께 다가오는 가난한 처지의 여성들, 병자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시는데, 오늘따라 당신께 애원하는 한 여인에게 냉정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것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무시할 때 했던 ‘강아지’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시면서 말입니다.
신비 신학자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지요. “우리가 자기 자신과 처절한 싸움을 하여 ‘완전한 무’(無)에 이를 수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완전한 전부’(全部)이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으려면 스스로 완전히 부서지고 버려져서 온전히 ‘무’(無)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냉정한 모습을 보이신 이유는 가나안 여인을 무시해서도, 그에게 관심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 보여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고백입니다. 정지된 ‘고정 관념’이나 ‘신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 알량한 지식, 자존심 등 자신을 드러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무’(無)가 되어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처럼 “주님, 저는 당신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스스로 부서지고 없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전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세상이 뿌옇게 보입니다. 산도 나무도 모두 흔들거립니다.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합니다. 강풍은 온데간데없고, 하늘은 어느새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럴 때의 자연은 분명 모순 덩어리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청을 넣습니다. 그들이 더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만큼 여인은 애절하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십니다. 그토록 다정하시고, 어떤 환자라도 낫게 하시던 분께서 외면하고 계신 겁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끄덕도 하시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 여인은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십니다. 강풍은 지나갔고, 햇볕이 돌아왔습니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여인은 울먹이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녀의 재치가 예수님을 움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녀의 기다림이 주님의 기적을 모셔 왔던 것입니다. 이방인 여인은 새로운 세상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살았을 것입니다. 기다림의 보상은 언제나 축복입니다.

 

☆☆☆ 

 부모가 자녀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자녀가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선물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섭섭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적을 베풀고 하느님의 능력을 보여 주었으나, 사람들의 관심은 기적에만 쏠렸지 그 기적의 원인인 하느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이방인 여인이 하느님의 능력을 청합니다. 마귀 들려 고통 받는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십사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이 있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매달립니다. 여인의 간청은 집요하였습니다. 끊임없는 청원에 제자들이 스승께 말하였습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제자들까지도 의아해 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지혜롭게 답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스라엘에 먼저 자비를 베풀고도 남는 것이 있다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인의 겸손에 예수님께서 움직이셨습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강아지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표현이 그러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짐짓 이 말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살아가면서 바라고 기대하는 바가 다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 이루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대하고 희망을 하되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시길 바랍니다.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와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 여인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은총은 준비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게 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큰 믿음을 보시고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확고하게 믿으면 그만큼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되고 은총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더불어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라는 외적인 관계보다 철저한 믿음의 사람으로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방인 여인은 주님께 대한 믿음과 자식을 위한 한 없는 사랑, 그리고 끈기 있는 간청으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결국 이루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여자도 믿음으로 병이 나았고(마태9,20-22), 주님은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마태9,29)하시며 눈 먼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믿음을 보시고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2,5)하시며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더군다나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14,12)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람이 큰 만큼 큰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설령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감추셨을 지라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방인 여인이 마치 예수님께서 외면하는 듯 여겼을지라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확고부동한 믿음을 지켰듯이 우리도 어두운 밤이 올수록 더 큰 신뢰를 가지고 믿음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기대하는 바와 간절한 소망이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양승국신부-

 

<겸손한 사람에게만 기적이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일들 가운데 하나가 자녀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 앞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귀염둥이, 보물 중에 보물, 내 인생의 가장 큰 결실인 내 자식에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주면 좋으련만, 중병이나 불치병에 걸린다면, 그래서 꽃봉오리가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처럼 슬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부모의 마음은 말로 표현 못 할 참담한 심정일 것입니다. 죄인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나안 여인이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언제부턴가 악령의 괴롭힘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정말 눈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악령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딸의 심신은 통제가 불가능했습니다. 딸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고, 발작이 시작되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길길이 뛰기도 하고 아무데나 머리를 짓찢기도 하고, 비명과 괴성을 질러대고, 그런 딸의 기괴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대신 악령이 걸렸으면, 딸 안에 있는 악령이 내게로 왔으면, 하는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었겠지요

이런 절박한 심정의 가나안 여인이 오늘 예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여인의 행동을 보십시오. 딸의 치유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딸만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는 자세입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분만이 내가 살길이다, 이분만이 마지막 희망이다, 이분은 꼭 내 소원을 들어주실 분이라는 강한 확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이런 여인의 강한 믿음, 겸손한 태도에 예수님께서도 기꺼이 응답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기적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강한 확신뿐만 아니라 철저한 겸손의 덕이 요구됩니다

겸손은 무엇입니까? 나 자신의 처지를 아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나약함, 나 자신의 한계, 나 자신의 무능함, 나 자신의 무기력함, 죄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족한 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의지할 곳, 마지막으로 매달릴 곳은 하느님뿐이라는 진리를 확신하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만 신앙의 진리가 명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만 하느님 풍요로운 은총이 폭포수처럼 내릴 것입니다.

 

 

 

 

축복의 말     

-최영균 신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방인 여인은 주님의 말씀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강아지로 표현했으니까요. 처음에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간청을 들어달라며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여인 안에 잠자고 있던 신앙을 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지 마라는 비유에서 강아지는 유다인들이 이방인을 무시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고, 그리스 문화권에서도 개는 부끄러움이
없는 여인, 도덕적으로 정결하지 못한 여인을 이를 때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욕처럼 사용하던 단어였기에 좋은 표정, 웃는 얼굴로 말할 수 없는 단어지만
예수님은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따뜻한 미소를 띠며 이 여인에게
말씀을 건네셨을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느님의 축복을
불러옵니다. 여인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좌절을 넘어 딸이 병에서 치유되는
엄청난 은총의 사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 한 번쯤 다른 이들에게
축복의 말을 해주는 하루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구원의 지평 확대

- 이동훈 신부-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의 한판 논쟁이다. 논쟁 주제는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한 것이다. 당시 유다인들은 선택받은 이스라엘인들한테만 구원이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굳어진 믿음을 확인하며 예수님은 여인에게 빵(구원)과 강아지(이방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가나안 여인은 강아지도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결국 예수님은 여인의 기지에 두 손을 드신다. 가나안 여인의 한판승이다.

가나안 여인의 극진한 사랑과 인내와 슬기와 진실한 신앙이 구원의 지평을 이스라엘 백성에서 모든 이방인, 곧 모든 인간한테로 확장시켰다. 현대 세계에서도 이러한 가나안 여인이 필요하다. 구원의 지평을 인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로 확대할 수 있는 가나안 여인이 필요한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길 고대하고”(로마 8,
19 21 참조)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피조물을 돌볼 책임을 뒤로하고, 스스로 창조의 정점이라 여기며 자신만을 위해 다른 피조물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며 착취하고 파괴했다. 그 결과 생태계 파괴로 인해 모든 피조물의 공동의 집인 지구는 곤경에 처해 있다.

곤경에 처한 지구를 살리기 위해 가나안 여인의 극진한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가나안 여인의 인내로 생태적 삶을 추구하면서 오는 불편함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가나안 여인의 슬기로 이미 오염된 자연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가나안 여인의 진실한 신앙으로 이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예수님한테서 얻어야 한다. 그렇게 가나안 여인의 삶을 실천하는 것은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아”(에페 1,
10) 모든 창조물을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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