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29일 목요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등불은 등경 위에 (마르4,21-25)
제1독서<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며,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2사무7,18-19.24-29)
나탄이 다윗에게 말씀을 전한 뒤 18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19 주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이 또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24 또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튼튼하게 하시고, 주님, 당신 친히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25 그러니 이제 주 하느님, 당신 종과 그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을 영원히 변치 않게 하시고,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26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위대하게 되고,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 종 다윗의 집안도 당신 앞에서 튼튼해질 것입니다.
27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28 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29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32,1-2.3-5.11.12.13-14(◎루카1,32ㄴ) ◎ 주 하느님은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
○ 주님, 다윗을 기억하소서. 그의 모든 노고를 잊지 마소서. 그가 어찌 주님께 맹세하고, 야곱의 장사 하느님께 서원하였는지 기억하소서. ◎
○ 내 집 천막에 들지 않으리라. 내 방 침상에 오르지 않으리라. 이 눈에 잠도, 눈가에 졸음도 허락하지 않으리라. 내가 주님께 계실 곳을, 야곱의 장사 하느님께 거처를 찾아 드리리라. ◎
○ 주님이 다윗에게 맹세하셨으니, 돌이키지 않으실 약속이로다. “나는 네가 낳은 아들을 너의 왕좌에 앉히리라.” ◎
○ 너의 아들들이 내 계약을, 내가 가르치는 법을 지킨다면, 그들의 아들들도 길이길이, 너의 왕좌에 앉으리라. ◎
○ 주님은 시온을 택하시고, 당신 처소로 삼으셨네. “이곳은 길이 쉴 나의 안식처, 내가 원하였으니 나 여기 머물리라.” ◎
복음<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마르4,21-25)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2사무7,18-19.24-29)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28ㄴ-29)
여기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좋은 일'은 앞 문장과 연관 지으면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하느님의 약속이 진리라는 사실 안에서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 약속의 말씀이 자기 세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에까지 미치는 영원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다윗은 그 말씀이 선하신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약속으로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로 번역딘 '웨앗타'(weatha; now)는 사무엘서 하권 7장 18절 이후부터 계속되어온 기도의 결론적인 내용을 시작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한편 '기꺼이 ~ 해주십시오'로 번역된 '호엘'(hoel)은 사역형으로만 쓰이는 동사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되어 '~하기를 기꺼이하는 마음을 보이소서', '~하기를 기뻐하소서'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복을 내리시어'로 번역된 '우바레크'(ubarek; to bless)는 '호엘'(hoel)과 직접 연결된 말로서, 따로 번역하기 보다는 같이 번역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호엘 우바레크'(hoel ubarek)를 번역하면 '축복하기를 기꺼이하소서', '축복하기를 기뻐하소서' 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간구의 근거를 철저히 하느님의 말씀에 두었기 때문에, 간구하면서도 대담하게 하느님을 향해 '기뻐하소서'라는 명령형의 문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은 하느님께서 말씀을 따라 행하시는 것을 절대적으로 기뻐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담한 간구를 드린 것이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본문은 '왜냐하면'이라는 뜻의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지만, 문맥으로 볼 때 이 부분은 앞 문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앞문장에서 다윗이 주님께 '축복하기를 기꺼워하소서'라고 대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복을 주시기를 기꺼워하소서. 왜냐하면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다윗은 간구의 근거를 철저하게 약속의 말씀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원문에는 여기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앞에 '주님의 축복으로', '주님의 은혜로'로 번역될 수 있는 '우밉비르카테카'(umibbirkatheka; and with your blessing)가 있는데, 새 성경은 이 번역을 뒷 부분에 있는 '당신의 복을'에서 '당신의'로만 번역하고 말았다.
'밉비르카테카'(mibbirkatheka)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민'(min)과 '축복'이라는 뜻의 '뻬라카'(beraka)와 2인칭 어미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것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뜻의 '예보라크'(yeborak)와 함께 번역하면, '당신의 축복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의 축복으로부터 복을 받게 하옵소서'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다윗은 다른 곳에서 축복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계약을 이어가는 간구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창세기 12장 2절, 3절에서도 아브라함에게 내리는 축복의 근원이 주 하느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볼 때 다윗은 자신에게만 어떤 새로운 축복이 내리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구세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느님의 신실한 계약의 줄기에서 다윗 계약을 통하여 주신 하느님의 축복이 다윗의 왕조를 통해 이어져 가기를 간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담한 간구는 하느님께서 이미 그에게 다윗의 왕조를 영원한 왕조로 세우시겠다는 하느님 나라의 놀라운 계획을 다윗 계약으로써 보여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2사무7,12).
이러한 다윗 계약과 다윗의 기도는 왕국 분열 이후 북부 이스라엘 왕조는 계속 바뀌었으나 남부 유다 왕조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축복으로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 땅에 오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오늘은 예수님의 피로 씻겨 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주신다.
(마르4,21-25)
21ㄱ 예수님께서 또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 앞 씨 비유에서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씨-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길로 받으면 믿음이 없는 돌밭이, 그리고 사람의 욕심이 들어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가시밭이 됨을 보았다. 하느님의 길로 받으면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구원, 그 진리의 새 계약으로 받으면 좋은 땅이 됨을 배웠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봅시다.
21ㄴ“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 등불, 어둠을 밝히는 빛을 감추지 말라는 말씀이신데~
(이사9,1) 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그 하늘의 빛을 등경(교회)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보게 하라고 하신다. 사람의 함지 속이나 침상 밑, 곧 인간들이 만들어낸 열심, 노력, 그 빛에 하늘의 구원의 빛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의 말씀이시다.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죽음 그 하늘의 의로움보다 율법(제사와 윤리), 그 사람의 의로움을 내세우지 말라는 말씀이다.
등불- 하늘의 빛이다.
(탈출25,37) 37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 *앞쪽을 밝게 비추도록 등잔대 위에 올려놓아라.
= 앞쪽, 앞날, 앞으로 받게 될 구원의 빛이라는 것이다.
(레위24,2-3)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올리브를 찧어서 짠 순수한 등잔 기름을 가져오도록 명령하여, 늘 등불이 타오르게 하여라. 3 아론에게 말하여, 그것을 만남의 천막 안 증언 궤의 휘장 밖에 차려 놓아,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님 앞에 늘 켜 두게 하여라. 이는 너희가 대대로 지켜야 하는 영원한 규칙이다.
= 빛을 '증언 궤'의 휘장 밖에 차려 놓는다? - '증언 궤'는 하느님의 현존을 뜻한다. 그 밖에서,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빛이라는 것이다. 곧 세상에서 하늘로 이끄는 빛이다. 그 빛은 올리브를 찧어서 짠 순수하고 깨끗한 기름이 태워져 밝혀진다.
올리브는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 하느님의 죽음으로 나오는 기름인 것이고 그분의 죽음으로 나타나는 생명의 빛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빛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늘 켜 있게 대대로 지켜야 하는 영원한 규칙이라 하신 것이다. 그 빛은, 영원히 빛나야 할, 곧 영원한 생명의 빛임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요한8,12) 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시편119,105) 105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어둠인 우리의 영원한 생명, 구원의 빛이시다.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 하느님의 뜻은 인간들에게 숨겨져 있다.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뜻, 속셈을 감추고 있다)
(예레33,2-3) 2 땅을 만드신 주님, 그것을 빚어 든든히 세우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의 이름은 주님이시다. 3 “나를 불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대답해 주고, 네가 몰랐던 *큰일과 숨겨진 일들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에페3,9-10) 9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하늘의 숨겨진 큰 일, 그 신비의 계획은 하느님의 지혜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늘의 대속, 그 큰 일, 신비의 계획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보내신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드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구원의 큰 일, 신비의 그 계획을 다 이루셨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죄를 용서 받아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 예수님으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고, 그 예수님으로 자신들의 뜻, 욕망을 채우려는 그 속셈으로 헛된 열성을 부린다는 것이다.(필리비3,17참조)
그래서 그 속셈, 하느님께서 드러내신다.
(히브4,12-13)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사도는 우리의 속셈, 그 잘못을 구원의 진리이신 십자가의 예수님께 돌아와 셈을, 곧 그분의 죽음이 자신의 죄의 대속임을 깨닫고 그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사드리며 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용서를 청하는, 그 셈을 하여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속셈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뜻이다.(이사43,7참조)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하늘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로 주면 죄의 용서로 구원, 생명을 보태어 받는다. 율법과 인간들의 계명으로 주면, 심판으로 죄와 죽음을 보태어 받는다(로마3,20참조)
어떤 인간도 율법을 계명을 온전히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90%, 99%, 안 된다. 100%라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조금의 어둠도 존재할 수 없는 빛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제의 묵상글 중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시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있듯이 이 세상에서도 당신과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대하여 구별하여 대하십니다.> 하셨는데 - 예수님이 공평하지 않으시다?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지~
(예제33,20) 20 그런데도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하늘)의 피로 씻겨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해진 이들이 가는 곳인데 무슨 차별, 구별이 있겠는가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 그분의 뜻을 모르기에 나오는 묵상 이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작은 사람이라 하신 것은, 자신을 否認한(낮춘) 사람을 의미하며 그가 곧 큰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새로운 길, 새로운 삶, 하늘의 생명을 보태어 받는다.
(히브10,19-20.22)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아멘)
☨ 천주의 성령님! 늘 보호하시어 구원의 말씀을 잃지 않고 지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아멘!!!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마르코 복음 4장은 네 개의 비유, 곧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등불의 비유’,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를 전합니다.
그 주제는 모두 “하느님 나라의 신비”(마르4,11)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 가운데 ‘등불의 비유’입니다.
등불은 하느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활동 안에서 이미 경험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는 “함지 속이나 침상 밑”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아야 하는 등불처럼, 숨겨지거나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등불이 공간을 밝히듯이 하느님 나라는 온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마르13,10 참조). 그러려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등불보다 훨씬 밝고 강한 빛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선포해야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너희는 새겨들어라.” 올바른 경청에 관한 절박한 호소는 ‘되다’와 ‘받다’의 비유를 통하여 설명됩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되다’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받다’는 선물로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뜻합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깨닫고, 그분 말씀을 실천하고 선포할 때 더 풍성한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우리 삶에서 싹을 틔우고 하느님 나라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 3,1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복음(마르4,21~25)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2)
마르코 복음 4장 22절은 선문답처럼 금방 이해가 안되는 내용이다. 한글 새 성경이 원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르'(gar; for)를 번역하지 않아 마르코 복음 4장 22절이 앞 절인 4장 21절과 별개의 문장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가르'(gar; for)를 '왜냐하면'으로 번역하면, 4장 22절은 4장 21절의 종속절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4장 22절의 본문 자체도 부정어 '우'(ou; nothing)와 '메'(me; not)를 두 번 사용하여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 때문에 자구적 의미를 살려 직역하면, '왜냐하면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숨겨진 것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라는 유대인의 속담을 나타내는 것으로 봐야 한다(루카8.17참조). 그래서 본문의 의미를 정리하면, 첫째로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사실이 비유로 설명되는 것은 언젠가 드러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4장 21절에서 등불을 가져 오는 이유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 빛을 밝히기 위한 것처럼,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사실이 비유로 선포되는 이유도 온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이므로, 지금은 미약해 보여도 이 복음은 머지 않아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는 말이다 (마르16,15).
두번째로 이것은 메시야 비밀 사상과도 관련되는데,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마르1,43.44) 이유 역시 메시야가 아니시기 때문이거나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때에 드러내시기 위해서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마르15,2).
세번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을 격려하는 의미가 있다.
일반 무리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천국은 감추어져 있는데 (마르4,10,13), 여기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이미 천국의 씨는 뿌려졌고(마르4,27), 그 씨가 아직은 미약한 단계이지만 곧 자라나(마르4,28) 크게 성장하면, 온 세상에 천국의 비밀은 공개될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4,32; 사도1,8; 5,12~16).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 구절은 마르코 복음 4장 22절 전반절의 '~아니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우 가르'(ou gar; for nothing)에 이어지는 후반절이다.
'감추어진 것은 반드시 빛으로 드러난다'는 뜻으로서 전반절과 동의적 대구를 이루며, 앞의 내용과 같은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반복적 진술이다.
일반적으로 비밀의 강조와 유지는 그것을 영원히 덮어 두는 데에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도 있는데, 그것이 드러날 때 나타날 폭발력과 감동, 충격과 사람들의 반응을 위해 잠정적인 기간동안 비밀을 덮어 두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알리시고자 하는 모든 비밀은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 사건 뒤로 미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마르9,9).
2026년 01월 29일 목요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5).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진 자”와 “가진 것 없는 자”는 과연 무엇을 가지거나 가지지 못한 것일까요?
저는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감정으로서 사랑이 아니라, 나눔과 희생, 봉사와 배려를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을 가진 이는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그 사랑을 더욱 키워 나갑니다.
베풀수록 더 큰 기쁨과 은총을 받고, 희생할수록 더 깊은 평화를 얻게 되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반대로 “가진 것 없는 자”는 사랑 없이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에 갇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기에, 그나마 있던 작은 희망과 선한 마음마저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께서는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4,21) 두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 그 빛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삶이고, 더 큰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 빛이 퍼질 때, 더 많은 이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눔과 배려로 더욱 풍요로워지는 사랑의 신비를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삶입니다.
우리 안에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 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이 흘러넘쳐 이웃에 전해지도록 노력합시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새 노래를 부르자
독서(2사무7,27-29)
27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 기도(祈禱), 말씀이 계셨기에, 그리고 주셨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하시는 은총(恩寵)이다.
28 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2사무7,10)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영원한 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한 곳이다. 곧 하느님께서 창세이전에 예비하셨던 그리스도와 십자가다.
내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 십자가로 지고 살면,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영원한 빛, 평화, 안식, 생명, 구원인 하늘의 복을 받는 것이다. 다윗에게 알려주신 하느님의 약속이다.
29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 말씀을 하셨으니 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기도는 복을 주시기 위해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미 받았음을 ,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믿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의 기도로 하느님의 뜻, 계획이 바뀔 수도 없고, 또 한 이루어지고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분의 계획이 아니신가,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완성하신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육일동안 다 이루시고 주신 안식(7)이다.(창세2,1-3) 그 안식을 이루신 하느님의 말씀, 사랑, 전능하심을 땅(밭)인 우리가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믿느냐? 믿지 않느냐? 가 있을 뿐이다. 받아 들여 믿음으로 가는 하느님 나라다.
(이사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 피조물이 물을 마시면 살아나듯,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먹으면 ‘반드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복음(마르4,20-25)
20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 말씀이 일 하신다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 말로 듣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는님의 뜻으로 받으면(들으면)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하신다.(1테살2,13)
땅은 스스로가 존재할 수 없다. 곧 흙인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 되었기에 말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히브1,3참조) 말씀으로 하느님의 좋은 일,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깨달아야, 믿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땅(無)이 하늘(有)이 되는 복(福)이다. 이 백배의 복을 깨닫지 못해, 땅의 없어질 복을 위해 살고 있으니, 그것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헛된 신앙을 살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거짓 사도(使徒)들의 거짓 가르침 때문이라 하신다.
(마르13,22)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21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 등불을 교회(敎會)의 머리, 주인이신 예수님을, 함지(침상)는 인간의 삶을, 등경은 교회를 뜻한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빛, 의로움을 사람(땅)의 의로움으로 덮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즉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위에 사람의 말(교리)이 있도록, 곧 하늘의 대속, 그 의로움이 숨겨지도록 거짓 가르침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 하느님의 뜻을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 말씀을 깨달아 믿고 나누면 곧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하면, 더 많은 말씀을 깨닫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말씀으로 하늘의 용서를 깨닫게 되면 하늘의 평화, 안식, 생명, 구원을 더 보태어 받게 되는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깨닫지 못하면, 믿지 못하면 이미 약속된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영원한 어둠, 땅(지옥)속에서 갇히게 되는 불행(不幸)인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잘 써야한다. 시간을 내서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배워서 우리 삶 안에 주님의 뜻을 깨닫고 느껴야한다. 세상의 모든 진(眞), 선(善), 미(美)는 하느님의 사랑 흔적임을 봐야한다.
남녀간의 사랑 노래가 하느님과의 사랑, 그 새 노래가 되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자는 것이다.
(묵시14,3) 3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미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에페5,16-17)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17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사울처럼 새로운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 곧 당신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끝까지라도 찾아 엎어 뜨려서 라도 끌고 가신다는 것이다.
야곱처럼 절뚝거리게 해서하도 끌고 가신다는 것이다.(창세32,31참조) 그것이 우리의 고난, 시련 이지만 또한 구원의 희망, 복인 것이다. 내 뜻, 세상의 것을 위한 그 길을 고집한다면 하느님의 교육, 훈련인 시련의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피조물인 인간의 고집이 창조주 하느님의 고집을 어찌 이기겠는가. 그런데 9일기도, 백일기도, 새벽기도, 미사 등으로 고집부리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너무 많다.(마태6,7.32-33 참조)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새로운 길인 새 계약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성령님을 청하고, 구하고, 두드리면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는데(루가11,9-13),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뜻, 소원을 위해청하고, 구하고, 두드리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
진리이신 성령님! 다시 당신을 청하고, 구하고, 두드립니다. 저희 모두를 충만하게 하소서. 그래서 새 노래를 부르는 하늘백성이 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