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토요일]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 (마르4,35-41)

2026. 1. 28. 오전 10: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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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1일 토요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 (마르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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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사무12,1-7.10-17)

1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3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6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7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거슬러 너의 집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너의 아내들을 데려다 이웃에게 넘겨주리니, 저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12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14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15 그러고 나서 나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큰 병이 들었다.

16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

17 그의 궁 원로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마다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화답송>시편51,12-13.14-15.16-17(12)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소서.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하느님, 제 구원의 하느님, 죽음의 형벌에서 저를 구하소서. 제 혀가 당신 의로움에 환호하오리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복음<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르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사무12,1-7ㄷ.10-17)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0)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서 하권 12장 9절에서 다윗의 범죄의 성격 및 범죄의 내용을 지적하신 후, 사무엘서 하권 12장 10~12절에서는 이같은 흉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다윗에게 임할 엄중한 징계를 예언하신다.

 

그래서 주의를 환기시킬 뿐 아니라 과거와 대조되는 이 시점을 가리키는 '앗타'(atha; '이제'; now)라는 부사를 가지고 시작하면서 그 징계가 엄중한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로 타쑤르'(lo thasur)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로'(lo) + 미완료 구문'으로서 다윗이 이 징계를 영원히 안고 살아야만 할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징계로 죽음이 항상 그 가문 위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다윗의 생존 당시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즉 밧 세바와의 간음으로 낳은 아들이 죽었으며(2사무12,16~23), 다윗의 딸 타마르가 다윗의 장자 암몬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것으로(2사무13,1~22)인해서 타마르의 오라비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였으며(2사무13,23~29), 압살롬은 부친 다윗에게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살해당하는 등 죽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2사무15,1~18; 18,9~15).

 

그러나 '영원히'에 해당하는 '아드 올람'(ad ollam)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윗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는 다윗 당대로만 그치지 않았다.

즉 다윗 사후 그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위 찬탈을 노리다가 동생 솔로몬에 의해 처형되었고(1열왕2,1-11), 솔로몬 사후 통일 왕국이 남북 왕조로 분열되기까지 하였다.

 

그뿐 아니라 남부 유다와 북부 이스라엘 사이에는 분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두 왕국은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다가 결국 바빌론과 아시리아에 의해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느님께서 다윗 가문에 보내신 징계의 칼부림은 다윗 자신이 악을 행하기 위해 사용한 칼에 대한 보응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자신이 심은 죄악의 열매를 거두어야 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징계하시는데 그가 심은 그대로 거두게 하심으로써 악의 씨를 뿌린 대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영원히 잊지 않게 하셨다(갈라6,7).

 

'네가 나를 무시하고 ~ 때문이다'

 

앞의 사무엘서 상권 12장 10절 전반절에 언급된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느님의 공의의 심판의 근거를 설명하는 후반절은, 이유의 접속사 '키'(ki)뿐만 아니라 사무엘서 하권 12장 6절에서 다윗이 부자에게 심판을 선언하는 문장에도 등장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에케브'(eqeb)를 사용하여 심판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다윗은 그 비유 속의 부자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가혹한 일을 행했기 때문에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고, 하느님께서는 다윗이 하느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자신의 입으로 부자에 대해서 엄중한 심판의 선고를 한 다윗은, 동일한 근거에서 내려지는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의 공의로움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사무엘서 하권 12장 9절에서 이미 사용된 '무시하고'라는 표현을 여기서 다시 한번 사용하여('베지타니'; bezithani; because you dispised me),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범죄의 근본 동기가 바로 당신을 무시하는데 있음을 강조하신다.

 

물론 다윗의 범죄는 인간의 윤리 기준에 있어서도 용서할 수 없는 큰 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범죄의 동기가 하느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경멸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했다는 데에 가장 큰 문제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3주간 토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왜 겁을 내느냐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사제인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는 믿음이 약합니다.

우리는 삶 안에서 많은 것으로 말미암아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풍랑에 시달립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으면서도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 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한없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스승님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깨우고 그분께 도움을 청하였던 제자들처럼우리도 가장 절망적인 순간마다 예수님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으며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1독서에서 나탄은 다윗의 죄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나탄 앞에서또 그와 함께 계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자신의 절대 권력으로 죄를 은폐하려는 마음을 무너뜨리고하느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하게 될 때하느님의 은총은 다시 우리 안에서 힘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진실함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첫 발걸음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솔직해지고 진실해질 때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을 은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신비에 대하여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5,20).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게도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이기도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께 부르짖는 기도와 죄 앞에서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은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길이며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늘 말씀이 알려 주는 이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모든 것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을 오늘 주셨다.

 

(마르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 그날- 앞 34절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신 그날, 예수님께서 풀이해 주신 그 말씀으로, 호수 저쪽, 風浪이 이는 호수(세상)를 건널 수 있는 힘, 그 실력이 되었기에 ‘건너가자’ 하신 것이다. 그 힘은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복음 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 풀이 그 말씀(힘)을 모르는 군중은 두고 떠나신 것이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 그런데도 모두가 예수님을 따라온다.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따라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위해 따라온 것이다. 곧 하느님의 뜻을 위한 신앙이 아닌 자신의 뜻,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열심을 부리는 모습이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 돌풍 같은 호수(세상)의 물(힘), 그 물이 배(교회)에 거의 가득 찼다는 것이다.

 

창조 이튿날의 물-

(창세1,6.10.21) 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10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살았다)

 

그리고 그 큰 용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속이는 그 뱀이다.

(묵시12,9) 9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자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 그러니까 윗물은 하늘의 생명을 주는 생명수, 말씀을 뜻하며, 아랫물은 땅(세상)의 바다, 땅의 말을 뜻하는 것으로 곧 뱀의 속이는 말을 먹은, 사람을 죽이는 돌풍 같은 말(물)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말, 법이 그릇되다 하신 것이다. 성령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깨달을 수 있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배(교회) 안으로- 돌풍 같은 세상의 물, 말이 거의 찼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교회) 안에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

 

38ㄱ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 앞 34절의 모든 비유를 따로 풀어 알려 주셨던 그 예수님의 가르침, 말씀(힘)의 믿음이 배(교회) 안에, 제자들 안에 잠자고(죽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두려움이 앞선다.

 

38ㄴ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 먼저 풍랑을 일으키는 바다(뱀)의 말을 꾸짖으신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들에게 따로 풀이해 주었던 그 가르침에 대한 믿음은 어디 갔냐.?’ 물으시는 것이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따로 풀어 주셨던 그 비유의 말씀을 간직하지 못하고(잊고), 옛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 세상의 물, 말에 따라 예수님을 보니, 죄인들을 구원하러 속죄 제물로 오신 창조주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모르게 된 것이다.

보이는 것을 쫓는 헛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히브11,1-3)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루가17,20)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로마8,24)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코린4,18)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 왜 보이는 것을 쫓는 헛된 신앙을 살까?. 아랫물, 곧 바다의 뱀의 거짓말을 듣고 신앙을 살기 때문이다.

 

(마태15,9) 9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갈라2,21)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은혜)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 제사와 윤리의 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이 헛된 것이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십자가의 代贖, 구원의 眞理, 생명의 말씀, 福音이다.

 

(필립2,16)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코린15,2)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자~

(히브11,17-19)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떠나라’고 하셨을 때 떠나던 중, 하란의 문명, 우상 등, 그 화려함에 안주하고 싶어 그곳에 머물렀다. 그때 하느님께서 다시 찾아 가셨다.

(창세12,1-2)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 하란(세상)의 그 헛된 복이 아닌, 하늘의 이름 참 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브람은 그 복을 자식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떠났는데 그의 나이 75세였다. 떠나던 중, 기근이 들자 다시 유혹에 빠진다. 이집트(세상)로 들어가 부인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왕에게 넘기고 자신의 목숨을 건지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창세12,10~이하)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른 후에 또 저지르게 된다. 창세20장) 그때 다시 하느님께서 찾아 가신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사라도 아브라함도 무사히 나오게 된다.

 

그후 기다려도 자식을 주시지 않으시자~

(창세15,3-4)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 다시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그래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자신들의 생각, 지혜로 사라의 여종 하가르 에게서 이스마엘을 낳는다. 아브람의 나이 88세였다. 하느님의 약속, 그 계약을 어긴 아브람을 떠나셨다. 13년 뒤에 다시 찾아오신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불앙하고 두려웠다. 왜? 하느님의 말씀, 약속을 믿지 못하고, 조카 롯과 집안 상속자 엘리에제르, 그리고 육의 힘으로 이스마엘을 낳기까지- 자신의 생각, 지혜로 후손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신 하느님께서 할례의 계약을 세우신다.(남자의 생식기능을 죽이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福(자식)을 다시 약속하신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을 수 없어 웃으며 자신의 육의 힘으로 낳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받아 주실 것을 고집한다.

(창세17,18-19) 18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하고 아뢰자, 19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여라. 나는 그의 뒤에 오는 후손들을 위하여 그와 나의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우겠다.

 

그리고 그 후~

(창세18,10) 10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다.

= 그래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둘 다 계속 헛웃음만 짓는다. 하느님의 약속을 비웃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100세에 약속하신 이사악을 주신다. 이브라함은 그때서야 알았다. 인간의 방법, 힘, 지혜, 능력으로는 하늘의 상속자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서 ‘바쳐라’ 하셨을 때 바칠 수 있는 실력(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히브11, 19)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믿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 믿음이 없던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내신 하느님,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역사를 통해 일 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생명, 구원으로 이끌어 내신다.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속셈으로 온 힘, 열성을 다해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 특히 자신의 죄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한 베드로를 믿음의 순교자로 만들어 내지 않으셨던가.~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를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였다.

 

☨ 천주의 성령님! 믿음없는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멘!!!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복음(마르4,35~41)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39~41)

 

'꾸짖으시고'로 번역된 '에페티메센'(epetimesen; rebuked) 예수님을 주어로 하는 경우 베드로를 향해서(마르8,33), 더러운 영을 향해서(마르1,25; 9,25), 열병에 대해서(루카4,39), 그리고 여기서는 바람을 향해 사용되었다.

 

이 모든 경우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로서 인간과 영계와  질병에 대해서까지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또한 사탄의 권세가 미치는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원 사업을 막으려고 했는데 그를 꾸짖으셨으며, 질병과 부마를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악령들을 꾸짖으셨고,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행보를 막는 풍랑을 꾸짖으셨다.

 

이처럼 '꾸짖는 일'은 예수님의 개인적이거나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습관적으로 표출된 감정 폭발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일들을 효과적으로 이루시기 위해서 행하신, 권위있는 활동의 일종이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교도들처럼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해 희생 제사를 바치며 달래거나 겁을 주는 방법이 아닌, 권위있는 말씀으로 꾸짖는 방법을 이용하셨다.

 

한편, '바람' '호수'는 특별히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었다.

여기서 '바람' '호수' 동시에 등장하는 점이나 마르코 복음 4장 39절 후반절에서 호수더러 잠잠하라고 했는데,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지는 을 보면 그렇다.

 

구약 성경에서 '호수' 또는 '바다' 욥기 38장 8~11절, 예레미야서 5장 22절에서 태고의 혼돈을 나타내며, 시편 69장 2절이하 이사야서 43장 2절에서는 의인이 당하는 시련을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과 당신이 타신 배를 삼키고 그들을 죽이려 하는 호수를 굴복시키신 것은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계략을 깨뜨리셨다는 사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39절 '조용히 하여라'에 해당하는 '페피모소'(pephimoso; be still)의 원형 '피모오'(phimoo)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다', '묵상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명령 분사 '페피모소'(pephimoso)는 그리스 문학의 이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령 제압을 위한 문구로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나 루카가 기록하지 않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예수님 활동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부르짖음을 듣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역사는 오로지 주 하느님께 돌려지는 구약적 배경을 갖는다(시편107,29.30).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41절 '복종하는가?'에 해당하는 '휘파쿠에이'(hypakouei; obey)의 원형은 '휘파쿠오'(hypakouo)인데, 여기서는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으로 쓰였고, 어떤 곳에서는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형인 '휘파쿠우신'(hypakouousin)이 쓰였다.

 

복수로 쓰인 것은 '바람과 호수'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여 풍랑의 원인을 여러가지 자연적인 요소들로 간주했기 때문이고, 단수로 쓰인 것은 풍랑의 원인을 한 위격 또는 원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자연은 본래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달리 흉폭해져서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허락하에 사탄이 자연을 악용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타락한 자연, 사탄의 세력에 의해 조종받는 자연도 이 모든 세상을 재창조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260131일 토요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돌풍이 일어 물이 배 안으로 들이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무심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라고 여쭙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직도라는 말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그만한 믿음을 가질 만도 한데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이냐?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다면 이제 삶도 죽음도 나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믿음에 믿음을 더하면 그것은 용기가 되고, 그 용기는 희망이 됩니다.

끝없이 믿고, 아낌없이 내주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기에,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라고 물으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주저하게 하고, 무엇이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여 용기를 얻고,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에게서 흘러넘치는 그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세상을 향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아직도믿음이 없는 우리와 달리 이미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에는 조건이 없고, 변함도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주님의 사랑 안으로 나아갑시다. 그 사랑이 세상 속으로 흘러넘치게 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3주간 토요일]

 

信仰은 세상을 뛰어 넘는 것.

 

복음(마르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 저녁에, 왜? 하느님의 일, 곧 창조, 구원은 저녁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앞33-34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따로 하느님의 뜻을 풀이해 주신 그날 저녁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 뜻을 들은 이들은 저녁(어둠)에서 아침(빛)으로 반드시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옛 계약에서 새 계약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것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새 창조,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풍랑이 이는 호수를 통과해야만 한다. 곧 풍랑(風浪)이 이는 우리의 인생여정(人生旅程)을 뜻한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 배, 곧 교회 안으로 돌풍 같은 세상의 물이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거위 가득 찾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모습을 보라 하신다. 하느님의 뜻을 위한 교회가 아닌 사람을 위한 교회, 곧 ‘세상화(世上化) 가 된 것은 아닌지 보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말, 가르침이 들어와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거의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라’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의(義), 빛이 아닌 사람의 의(義)를 위한 신앙(信仰)을 사는 것은 아니지 말이다.

 

(마르7,13)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38ㄱ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 말씀을 폐기시켜 하늘의 일을 하실 수가 없으신 형국인 것이다. 죽으신 상태라는 것이다.

 

38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하느님의 뜻을 따로 풀이해 들은 이들에게, 곧 세상 사람들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하신다. 따로 풀이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킵’(기억하여 행하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어제묵상참조)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첫째아직도 내 밖에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이신가- 그러나 

(로마8,9)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코린6,17.20) 17 그러나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둘째고통의 예수님을 열심히 섬기면내 바램을 들어 주시는 주님이신가(십자가의 길기도 등- 그러나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셋째착하게 살면 복 주시고악하게 살면 벌주시는 상선벌악 의 주님으로- 그러나 

(요한12,47)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마태9,13)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契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에페1,8-10)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내가믿는 예수님은~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에페1,20-22)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진리)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내 삶속에서 주인으로 늘 함께 하신다. 내가 듣는 음악 속에서, 산책하는 강 뚝 길에서, 무엇보다도 두렵고 가장 힘들 때~ 늘 나와 함께 하신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녁어둠(율법-제사와 윤리)의 신앙에서 아침빛인 대속새 계약의 신앙으로 뛰어넘어 하느님의 사랑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소서그것이 그리스도로 누리는 용서자유안식평화생명구원입니다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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