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30일 금요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마르4,26-34)
제1독서<너는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다>(2사무11,1-4ㄱㄷ.5-10ㄱ.13-17)
1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4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6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8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10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13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16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17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화답송>시편51,3-4.5-6ㄱㄴ.6ㄷㄹ-7.10-11(◎3ㄱ)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제 죄악을 제가 알고 있사오며, 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
○ 판결을 내리셔도 당신은 의로우시고, 심판을 내리셔도 당신은 떳떳하시리이다. 보소서, 저는 죄 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제 어미가 저를 배었나이다. ◎
○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게 하소서. 당신이 부수신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돌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없애 주소서. ◎
복음<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마르4,26-3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2사무11,1-4ㄱㄷ. 5-10ㄱ.13-17)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15)
사무엘서 하권 11장 15절은 사무엘서 하권 11장 14절에서 이미 언급된, 다윗이 아침에 작성한 편지의 내용을 밝히고 있다.
'편지에 ~썼다'에 해당하는 '와이크토브 빳쎄페르'(waikthob basseper)는 앞의 14절에 사용된 '편지를 써서'와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어 사용된다.
이렇게 같은 문구를 반복하여 사용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다윗이 쓴 그 편지의 내용에 주의하게 하면서, 다윗의 의도적인 살인 계획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에 해당하는 '레마르'(lemar)는 '이르기를'이라는 뜻으로서 직접 화법을 이끌어 가는 구문이다.
이 구문은 다윗이 편지에 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그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악하고도 치밀한 계획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독자들에게 그대로 잘 전달되도록 하고 있다.
다윗의 살인 의도로 쓴 편지의 내용은 너무나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명령으로 시작된다. 즉 편지의 서두에 나오는 '(너희가) 배치했다가'로 번역된 '하부'(habu)는 '주다', '내주다', '배치하다'라는 의미를 기진 '야하브'(yahab)의 2인칭 복수 명령형이다.
아무런 배경 설명이나 조건 없이 명령형 동사로 투박하게 시작하는 이러한 문두는 우리야를 꼭 제거하고 말겠다는 다윗의 결연한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사무엘서 하권 11장 7~13절에서 다윗이 우리야 앞에서 자비로운 성군인 척 가장하던 모습을 내어던지고, 야전 사령관 요압에게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야를 죽이라는 명령을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에 해당하는 '웨샤브템 메아하라이우'(weshabthem meaharaiu)라는 다윗의 말은 우리야를 전투의 최전방에 배치하려는 목적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야를 적군의 칼에 죽게 하기 위한 것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새 성경에서 '그만 남겨 두고'에 해당하는 '메아하라이우'(meaharaiu; from him)는 '~의 뒤쪽에'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 '아하르'(ahar)에 분리, 이탈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민'(min)과 3인칭 소유격 단수 접미어 '우'(u)가 결합된 형태로서 '그의 뒤쪽으로부터 분리시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부사구와 함께 사용된 동사 '웨샤브템'(weshabthem; and withdraw; and retire)는 '후퇴하여'에 해당되는데, 다윗이 어떠한 계획을 갖고 있었는지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 우리야 외에 다른 군사들이 후퇴하는 것은 분명히 미래의 시점에 있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웨샤브템'(weshabthem)이라는 완료형을 사용하여 반드시 우리야를 최전방에 홀로 남겨두고 퇴각해야 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그만 홀로 남겨진 우리야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이 계획은 수없이 많은 전쟁에 참여한 백전 노장 다윗이 세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다윗의 간교하고 사악함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한편, 앞의 명령인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라는 말만으로도 우리야를 죽이려는 다윗의 뜻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는데, 다윗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는 내용을 첨가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실수없이 우리야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칼에 맞아'에 해당하는 '웨닉카'(wenika)는 '때리다', '치다', '죽다'라는 의미를 지닌 '나카'(naka)의 수동태 완료형으로서 '그가 맞게 하라' 또는 '그가 죽임을 당하게 하라'고 번역할 수 있으며, '죽게 하여라'에 해당하는 '와메트'(wameth; and die)는 '죽다', '죽이다', '사형을 실행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무트'(muth)의 능동태 완료형으로서 '그리고 그가 죽게 하라'로 번역할 수 있다.
두 동사가 미래의 일을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모두 완료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다윗의 적극적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오늘 복음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합니다.
씨는 사람이 뿌리지만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트고 자라서 저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완성됩니다.
그렇다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시작과 완성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가 작고 하찮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놀랍고 풍요로운 결과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인다는 말씀은 온 백성이 하느님 나라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 본 사람은 작은 씨앗 안에 깃든 가능성과 생명의 신비를 잘 압니다.
우리의 믿음이 지금은 부족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씨앗인 우리를 싹트게 하시고, 가지를 뻗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뿌리신 소중한 씨앗입니다.
흔들리는 믿음을 가진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 눈에는 큰 나무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소중합니다.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25-2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옛 계약(구약)을 새 계약(신약)이 먹었음을,
곧 법(심판, 죄)을 진리(용서)가 덮었음을 보여 주신다.
(마르4,26-34)
2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 씨는 말씀, 밤에 잠을 자고 낮에 일어나 삶을 사는 것이 하루이다. 그러나 낮을 사는 이는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낮, 빛, 그 생명력, 그 능력의 소중함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먼저 하느님의 창조~
(창세1,5) 5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 밤을 겪어 낮을 사는 것이 인생의 역사이다. 곧 모든 피조물은 밤이라는 어둠의 시간이 있어야 낮의 빛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는,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하느님께서 밤에 일을 하시고 낮을 주신 것이다.
어둠을 통해 빛을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알게하는 율법, 구약의 씨로 또 하늘의 대속으로 받는 용서, 그 신약의 진리로 말씀을 뿌려 놓으신 것이다. 곧 어두운 땅속에서 썩어진 그 진리의 씨가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 씨 - 후손,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의 썩어짐이 빛, 생명을 얻는 밤에 있었던 진실이다.
(마태12,40)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깨닫고 믿는 신앙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로마10,17)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 하느님께서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이다.(그 씨,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 땅, 씨가 없는 빈 땅 스스로 열매를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씨가 들어가 썩어 줄기가 나고 이삭,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창조인 사흗날의 씨의 죽음이다.
(창세1,11-13)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 씨의 희생, 그 씨의 스스로의 죽음으로 땅이 맺었다고 해 주신 것이다. 사랑으로~~그 씨, 그리스도라 했다.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한.... 씨(제라 -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흗날의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그런데 땅 자신이 맺었다고 착각한다면 영원한 죽음으로 남는다,
그러니 땅이, 사람이, 창조 그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되새기는 기도로 자신의 그 없음의 실체를 깨닫고 자신이 열매를 맺었다고 착각했던, 그래서 구원을 이루겠다고 스스로 열심을 부렸던 그 자기 의로움의 헛됨을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으로 예수님의 대속, 그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 곧 깨달음으로 자라나 용서로 구원을 받는 것, 빈 땅인 우리가 열매를 거저(저절로)맺는 것이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 그 自己否認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거저 의롭게 된, 곧 그 주님의 피로 죄가 씻겨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해진 그 사람만 수확, 구원하신다. 그것이 하느님의 계약, 구원의 약속이니까.~
(히브10,22-23)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23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하느님)이십니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요한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구원의 眞理인 큰 나무의 가지다.
(시편79,2) 2 당신 종들의 주검을 하늘의 *새들에게 먹이로 내주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의 살을 들짐승들에게 주었습니다.
= 하느님의 종들의 주검을 먹는 하늘의 새이다.
(루가8,5)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진리의 씨,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버리는 새다. 그러니까 죽음을 큰 나무의 가지, 그 진리가 품은 것이다. 밤, 어두움, 죄를 품으시는 하느님의 씨(말씀)의 큰 나무의 가지다. 곧 신약이 구약을 먹었다는 것이다.
(히브10,9)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 그 첫 번째 율법(제사와 윤리)의 그 자기 의로움에 돌아가 머물면 죽음이니, 두 번째 것 십자가의 대속, 그 주님의 의로움으로 생명을 얻으라 하신다.
(히브10,39)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 문자, 비유를 따로 풀이해 주신 그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지금, 성령께서~
(에페3,5)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1요한2,27)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성령)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지키고)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천주의 성령님!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아멘 *^ㅇ^*
연중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4,26~34)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6~27)
마르코 복음 4장 26~29절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말씀이다. 이 비유 말씀을 마르코 복음 4장 2~20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과 비교해 보면,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
첫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짐을 강조하고 있다면,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복음 또는 하느님 나라가 지니는 역동성과 은밀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나 하느님을 상징했지만,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에서는 인간 자체, 특히 복음 전파자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비유가 공통점도 있다. 본문에 나오는 '씨'와 마르코 복음 4장 3절의 '씨'가 말씀을 상징한다는 점이고, 두 비유가 모두 하느님 나라를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한편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마르코 복음에만 나오는 특수 자료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비유는 이미 소개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4,2~20)와 중복됨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강조점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심화,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강조점은 사람의 마음 또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의미하는 '밭'에 있다. 그래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과는 달리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따라서 좋은 땅, 곧 밭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그러나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에서 이러한 밭의 중요성이나 심지어 농사짓는 농부의 중요성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씨앗이 발아하여 싹이 나고, 자라고, 이삭이 나오고 열매를 맺는 전 과정에서 오로지 강조되는 것이 '씨앗의 생명력'이다.
여기서 농부는 이러한 전 생장의 과정에 대해 전혀 무지한 자로 부각된다.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 익은 열매에 대해 추수의 은혜와 감격만을 누릴 뿐이다.
끝으로, 열매를 맺기 위한 중요한 변수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는 '사람의 마음 내지는 영혼의 상태'였다면, 반면에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에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씨앗 자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열매를 맺고 하느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그 씨앗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이 계셔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마르코 복음 4장 27절에서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는 '시간이 흘러가는 데 따라'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하루가 아침에 시작해서 밤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질 무렵에 시작되어 다음 날 해질 무렵에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묘사하면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창세1,5)라고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27절의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는 말씀은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번역하면 좋다.
'알지'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의 원형 '오이다'(oida)는 완료형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알다', '감지하다'등의 의미를 가지며, 시제는 완료이나 알고 있는 시점은 현재이다.
부정어 '오크'(ouk; not)과 더불어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밭에 뿌려진 씨앗이 자라는 과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씨를 직접 뿌린 농부가 알지 못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씨앗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또는 어떻게 발생하는지 지식적으로 알거나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답은 마르코 복음 4장 28절 전반절이 말하는 '저절로', '스스로'이다.
따라서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씨를 뿌리고 난 뒤에 그 씨 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잘 자라기를 바라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그 시작과 과정, 그리고 완성에 있어서 인간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때에 따라 점진적으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씨 뿌리는 농부로 대표되는 인간은 하느님 나라를 자라게 하는 힘이나 그 나라가 완성되는 때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식물이 끊임없이 자라난다는 것만큼 확실한 사실은 없으며, 또한 추수의 시기가 도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농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처럼 믿는 이들 역시,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완성에 대해 본질적으로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그 기대와 확신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2026년 01월 30일 금요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농부가 일할 때도, 잠든 사이에도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자라납니다.
콩나물을 키워 본 사람은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날마다 물을 주며 묵묵히 기다리면, 일주일쯤 지나 빛을 가린 검은 천 아래에 어느덧 훌쩍 자란 콩나물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생명은 조용히 자라납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믿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기도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콩나물시루에 성실히 물을 주면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꾸준히 인내하며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하느님께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마르 4,31)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싹을 틔우고 자라나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4,32)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우리의 노력이 적어 보이더라도 주님의 은총으로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비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나 기도가 당장은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하느님과 함께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조용히, 그러나 성실하게 믿음을 키워 갑시다.
성숙한 신앙은 소란스럽거나 번잡하지 않습니다. 인내와 성실 안에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해질 것입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3주간 금요일]
밤낮으로 일하시는 하느님
복음(마르4,26-34)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 오늘은 복음의 끝 33-34절을 먼저 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의 말로 주신 비유를 제자들에게는 따로 풀이해 주신 하느님의 뜻을 성령께 의탁해 깨닫기 위해서다. ‘성령이여 타오르소서!’
2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 하느님의 영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탈출13,21) 21 주님(야훼)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 구름, 불- 하느님의 영, 성령을 뜻하며 *기둥(스타오로스)은 계약을 뜻한다. 성부께서 구원의 계획, 계약을 세우시고 성자께서 그 계약을 대속으로 이루셨고, 성령께서 성자의 대속을 적용하시어 계약을 완성하신다.(로마8,1-3 히브10,15~참조) 그것이 구원의 진리인 것이다.(요한14,6)
그러니까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신다는 것이다. 곧 밤-저녁, 어둠인 시련, 고난의 때에도, 낮-아침, 밝은 기쁨의 때에도 말씀이 늘 함께 하시며 구원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으로 이루시는 창조의 완성이다.
(창세1장 13절)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날이 지났다.”
*날-(욤-진리를 주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은 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곧 ‘씨가 죽었기 때문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씨는 물이 없으면 싹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비를 내려 주심으로 땅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 씨-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눈에, 마음에 감추어져 있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그 작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 ‘씨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이다. 곧 작고, 어리석어 보이는 말씀이 살린다는 것이다. 구원의 힘, 지혜의 말씀이다.
(1코린1,18.21-25)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앞 28절로 돌아가 봅시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 땅, 곧 우리의 신앙의 단계를 뜻한다. *줄기- 하느님께 받은 씨,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는 단계다. *이삭- 말씀을 열심히 행하는 단계다.
그러나 *낟알- 그 인간 행위의 의로움은 구원의 무력함을 깨닫는 자기 부인(否認)의 삶으로(로마3,20 갈라3,10 에페2,8-9) 구원의 힘, 능력인 하늘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로 영원한 거룩, 의로운 자, 진리가 되었음을 믿는 것,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우리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 사랑에 감사의 찬미, 영광을 드리는 것, 그것이 낟알, 곧 구원의 열매를 맺는 완성의 단계이다.
(1코린3,6-7)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1코린7,19) 19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만이 중요합니다.
= 지키다. 히브리어 “킵, 밖으로 흘리지 않고 마음에 지키다” 제사와 윤리를 열심히 행하는 그 지킴이 아니다. 그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피의 새 계약을 진리로 마음에 지키는 것, 믿는 것이다. 곧 거짓말, 거짓 가르침에 빼앗기지 않고, 밖으로 흘리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 ‘킵(지키다)’이다.
그래야 이웃에게 새로운 길인 새 계약, 그 기쁜 소식, 복음을 이웃에게 전(傳)해 이웃이 구원의 열매를 맺도록, 살리는 이웃사랑을 할 수가 있다.
오늘 독서에서 권력의 힘을 뿌리치지 못해 다윗 왕의 죄악에 동참하여 의인 한 사람을 죽인 영원히 죽어야 할 그 죄인들을 살리는 일이다.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도 몰랐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통해 알게 하신다. 그래서 잘못을 깨닫고 드린 기도가 시편51편이다.(오늘 화답송)
(시편51,6) 6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에 악한 짓을 제가 하였기에 *판결을 내리시더라도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심판을 내리시더라도 당신께서는 결백 하시리 이다.
= 자신을 죄인으로 판결하시어 죽음의 심판을 내리셔도 하느님께서는 의롭다는 것이다. 자신은 지옥에 간다 해도 당연한 것이다. 다윗의 진정한 회개(悔改)다.
그 같은 죄인들을 찾아 살리시기 위해, 곧 회개시키기 위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새로운 길, 새 계약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1코린11,25)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기억하여 행하라, 킵”이다. 그리스도의 피의 새 계약, 구원의 말씀으로 먹고, 마시고, 마음에 간직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밤낮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숨으로 숨쉬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말씀을 모르기에, 죄를 대속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으로 숨 쉬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