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 (마르4,1-20)

2026. 1. 27. 오전 7: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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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일 수요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 (마르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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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네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2사무7,4-17)

4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7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하겠다.

15 그러나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7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화답송>시편89,4-5.27-28.29-30(29)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라.

나는 내가 뽑은 이와 계약을 맺고, 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하였노라.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나도 그를 맏아들로, 세상의 임금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리라.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 그와 맺은 내 계약 변함이 없으리라. 그의 후손들을 길이길이, 그의 왕좌를 하늘의 날수만큼 이어 주리라.

 

복음<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르4,1-20)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2사무7,4-17)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6)

 

사무엘서 하권 7장 6절 이하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출애굽 이후부터 계속하여 천막과 성막에 머무르셨으므로 당장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기셨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현재 돌로 지어질 성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천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시기 이전부터 영원히 지어질 성전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무엘서 하권 7장 12절, 13절에 나오는 다윗의 몸에서 날 후손은 비단 솔로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엘서 하권 7장 12절, 13절에 나오는 성전은 '영원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윗의 몸에서 날 후손은 솔로몬의 차원을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 성전도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메시야 왕국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하느님께서 반대하신 것은  이 땅 위에 성전을 지을 자는 그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이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또 한가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다윗이 성전을 지을 수 없는 이유가 그가 전쟁에 너무 매여 있었으며,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1역대22,8; 28,3).

 

이것을 볼 때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일차적으로 부정한 자가 깨끗한 나라를 세울 수 없다는 하느님의 정한 이치에 따른 것이라고 하겠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세워질 그 성전을 염두에 두시고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곳을 명령하실 때에 쉽게 거두어 없앨 수 있는 천막으로 된 성막을 만들도록 명하셨다.

 

눈에 보이는 것을 쫓는 인간의 욕망은 보다 멋있는 가시적인 성전을 만들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져 가는 연약함을 아시고 하느님께서는 일단 가시적인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 하시지만, 다윗과 달리 피로 물들지 않았던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결국 인간이 짓는 성전은 영원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무너져야 한다는 사실을 사무엘서 하권 7장 12절,13절에서 영원한 성전을 언급하시면서 암시해 주신다.

 

'천막과 성막 안에서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하느님께서는 역사적 사실을 들어 지금 시점에서 성전 건축이 불필요함을 밝히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출애굽 이후 계속 천막에 머무시며 일하셨으므로 굳이 성전이 필요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옮겨 다녔다'로 번역된 '와에헤예 미트할레크'(waeheye mithhallek)에서 '와에헤예'(waeheye)는 접속사 '와우'(wau; and)와 '~이다'라는 뜻의 '하야'(haya) 동사의 미완료형 1인칭이 결합된 것이며, '미트할레크'(mithhallek)는 '걸어다니다'라는 뜻의 '할라크'(hallak)동사의 재귀형 분사로서 '이리저리 다니다', '옮겨 다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하야'(haya) 동사는 분사의 진행 상황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쓰인 것이므로 '와에헤예 미트할레크'(waeheye mithhallek) '그리고 내가 지속적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돌아다녔다' 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레위기 26장 11절에서 "나는 너희 가운데에 나의 거처를 정하고"라고 하셨는데, 레위기 26장 12절에서 "나는 너희와 함께 살아가면서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어느 한 곳에 제한되어 임재해 계시는 분이 아니심을 분명히 하셨다.

 

한편 '천막과 성막 안에서만 있으면서'로 번역된 '뻬오헬 우베미쉬칸' (beohel ubemishikan) 중언법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뻬오헬'(beohel) '천막과'(in a tent)로, '우베미쉬칸'(ubemishikan)은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and in a tabernacle)로 번역되었다.

 

중언법으로 보면, '성막'으로 번역된 '거처'라는 뜻의 '미쉬칸'(mishikan)을 형용사적으로 번역할 수 있으므로 '뻬오헬 우베미쉬칸'(beohel ubemishikan)은 '머무시는 천막'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중언법으로 보지 않을 경우에는 "나는 이스라엘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에서 천막으로, 성막에서 성막으로 옮겨 다니며 지내왔다." (1역대 17,5)에 나오는 '천막에서 천막으로, 성막에서 성막으로' 의미가 된다.

 

이 경우에는 '옮겨다니며 지내왔다'는 뜻도 있으며, 시편 78장 60절을 볼 때에 인간이 세운 천막에 영속적으로 계시지 않고 그곳을 '버리셨다', '떠나셨다'는 뉘앙스도 가진다.

 

따라서 본문을 의역하면 '내가 천막과 성막(거처)을 옮기면서 두루 행하였다' 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낸 이후로 오늘까지 그들을 줄곧 인도해 왔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그 여정에서 이스라엘 자신들이 하느님의 천막을 짊어지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천막 안이 아니라 이스라엘 위에 계셔서 그들을 여기까지 이끌고 오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사무엘서 하권 7장 5절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본다면, 다윗이 지금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주님께서 머무실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실상은 하느님께서 오히려 다윗을 위하여 다윗의 집을 건축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집이 견고하게 세워지는 솔로몬의 때까지 성전 짓는 것을 보류하신 것이다.

 

 

 

 


[연중 제3주간 수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좋은 땅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비유에서 길돌밭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은 모두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은 뒤에 그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간직하느냐에 따라 길돌밭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으로 구분됩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어떤 이는 서른 배어떤 이는 예순 배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좋은 땅을 가진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마태오 복음서는 받아들이다의 의미를 깨닫는다로 이해하였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13,23).

그 반면 루카 복음서는 받아들이다를 간직하다로 이해하였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8,15).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깨달으며마음에 간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55,11).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만 끝내지 마십시오.

말씀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그 깨달음을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힘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삶을 변화시켜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구원의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복음 말씀을 한 구절씩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복음의 한 구절을 여러분의 주머니에 넣거나 지갑에 넣어 둡시다.

어떤 구절이든 관계없습니다그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꺼내 보는 것이죠.

이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 열어 두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프란치스코, 2021.2.28.).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 비유

성경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용서입니다사람의 눈으로 보면 심판입니다. 

 

(마르4,1-20)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들어 보아라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어떤 것은 예순 배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저 바깥사람들 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ㄱ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느님의뜻 그 길이 아닌 사람들의 뜻 그 길입니다.

 

15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 들으면다시 죄의 덮으심을 위한 대속 그 하느님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의 사람의 말로 들으면 심판이 따를 것이니구원의 씨말씀에 의한 구원을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긴다 하십니다하느님의 말씀 그 계명을 사람의 계명으로 속여먹고 하고 또 말하게 하는 그 뱀(사탄)의 거짓말 때문에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1데살2,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하느님의 뜻그 분의 길로 받아 구원의 활동그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예수님을복음을 처음 만났을 때 기쁩니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뿌리깨달음이 없으면~입니다대속의 기쁜 소식그 복음그 진리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시련과 박해에 넘어집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랬습니다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기뻐~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러나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시련이 오자 주님을 의심하게 됩니다.(마태11,2-6참조요한은 분명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 선포했습니다그러나 그 자신이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게 되자온갖 기적과 치유를 일으키시는 그 능력의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실 기미가 없자 의심하게 됩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 예수님’ 그 죄를 없애시기 위해 그 죄에 속죄 제물로 당신의 목숨을 바치려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려는 예수님입니다그 예수님을 하늘의 진리로 깨닫지 못했기에자신의 뜻을 모른체들어주시지 않는 예수님을 의심하게 되는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생수가 나오지 않는 행위의 신앙그 돌 신앙 때문입니다깨달음으로 나오는 생명수를 위한 참 신앙으로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듣지 않고 사람의 귀 그 뜻으로 들은 또다른 사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창세3,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자신의 뜻그 욕망대로 살고 싶어 뱀의 유혹을 먹은 아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사람의 수고 희생의 의로움 등 그가 맺는 그 모든 것은 가시덤불로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사57, 12 내가 너의 의로움과 너의 행실들을 밝혀내리니 그것들은 너에게 소용이 없으리라.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라 하십니다말씀의 일하심말씀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무시해 버리는 그 행위의 신앙 때문입니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어떤 이는 서른 배어떤 이는 예순 배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어떤 땅이 좋은 땅일까요하느님의 뜻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땅입니다그것이 좋은 거름으로 다져진채워진 땅입니다그 거름을 받아들이는 땅좋은 땅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비유에서 봅니다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려라하셨을 때~

루가13,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냥 두시지요(아피엠-용서)- 용서 하시지요하십니다왜요그 대신 거름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재배자 이신 예수님 당신 대속의 죽음썪어짐그 거름으로 열매를 맺겠으니 그냥 두시지요용서 하시지요하신 것입니다그러면 당연히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거름그 예수님의 죽음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결론입니다성경을내 뜻을 위한 사람의 길사람의 말로 받는 것버리고 하느님의 길그분의 뜻인 구원의 말씀으로 듣고받아들이면그 말씀으로 내가 좋은 땅이 되는 것이지요.

 

♡ 아멘 -*^^*- 

 

 

 

 

 연중 제3주간 수요일 복음(마르4,1~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20)

 

마르코 복음 4장 3~8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는 '씨'를 나타내는 직접적인 단어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마르코 복음 4장 3절에도 '씨 뿌리다'라는 동사만 나오며, '씨'라는 명사는 없다.

이것은 '씨 뿌리는 사람' 같은 자루에서 나온 '씨'의 '동질성'(homogeneity)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씨 뿌리는 사람'이 '예수님'을 상징하고, 뿌려진 '씨'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천국의 말씀'을 상징한다면(마르4,14; 마태13,19), 같은 선포자이신 예수님께서 전한 동일한 말씀들이 어떤 이에게는 열매를 맺고, 어떤 이에게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점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씨'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나라 농사법과 팔레스티나의 농사법이 다르다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이 비유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우리는 먼저 밭을 경작하고 좋은 땅에 씨를 뿌리지만, 팔레스티나에서는 씨를 먼저 뿌려놓고 밭을 고른다. 그러니까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는 씨가 있는 것이다.

 

우선 새들이 씨를 먹어버린 일차적인 이유 씨가 길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씨가 열매를 맺기는 커녕 바로 먹혀버린 일차적인 책임은 마르코 복음 4장 15절에서 '새들'이 상징하는 '사탄'에게 있다고 하기보다는, 길의 밭이 상징하는 굳어진 인간의 마음에 있다.

 

그리고 '흙지 많지 않은 돌밭'(마르4,5)에서 '있지 않은'에 해당하는 '우크 에이켄' (ouk eichen; it did not have) 미완료 과거 시제이므로, 흙이 거의 없는 돌밭 같은 불모지의 상태 이전부터 계속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마르코 복음 4장 5절을 해설하는 마르코 복음 4장 16절에는 '많은'을 의미하는 '폴렌'(polen; much)이라는 단어가 없이 '돌밭' 해당하는 '페트로데스' (petrodes; stony ground; rocky place)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흙이 거의 없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 4장 6절에서 돌밭에 떨어진 씨가 죽은 이유가 나오는데, '뿌리가 없어서'이다.

돌과 바위투성이 땅에서 물은 금방 흘러 가버리거나 말라서 습기가 없었고, 아울러 돌과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릴 수도 없어서 죽은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4장 7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마르코 복음 4장 4절에 기록된 '길에 떨어진 씨'는 발아도 못하고 새들에게 먹혀 버렸고, 마르코 복음 4장 5절에 기록된 '돌밭에 떨어진 씨'는 겨우 뿌리만 내린 채 말라 죽은데 비해, 마르코 복음 4장 6절에 기록된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어느 정도까지는 자랐다.

 

그래서 길보다는 돌밭이, 돌밭보다는 가시덤불이 더 나은 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가르쳐준다.

왜냐하면 씨 뿌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밭이란 열매를 맺는 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코 복음 4장 7절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라는 표현은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밭에 대한 결론이면서, 동시에 앞에 이미 언급된 두 밭에 대한 결론이다.

 

마르코 복음 4장 10절에서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당신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뿐만 아니라 이미 선포된 여러 가지 비유들의 뜻을 묻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마르코 복음 4장 11~12절에서 인용된 이사야서 6장 9~10절의 말씀이 '저 바깥 사람들'에게 선포되고 있다.

 

'저 바깥 사람들' 오직 기적과 치유에만 목적을 두고 찾아왔다가, 정작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시자 아무런 미련없이 돌아선 일종의 '불신과 배교의 무리'이다.

 

그러기에 마르코 복음 4장 12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구원의 길을 봉쇄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그릇된 목적으로 나아갔다가 사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면 쉽게 돌아서 버리는 '불신과 배교의 무리'를 그 사랑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구원의 길을 원천 봉쇄하실만큼 미워하신다는 것이다(마태7,6; 히브6,5.6).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라는 문제도 아니고, 어느 정도까지 자랐는가도 아니며, 또한 얼마나 많은 신앙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도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열매를 원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뿌려진 말씀의 씨가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서 열매를 맺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를 좋은 신앙인으로 여기시는 것이다(마르4,28; 마태7,20).

 

마르코 복음 4장 20절에서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받아들여'에 해당하는 '파라데콘타이'(paradechontai; receive; accept)의 원형 '파라데코마이' (paradechomai)로서 '인정하다'(사도16,21; 1티모5,19), '환영하다' (사도15,4; 히브12,6)라는 뜻이다.

 복음을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성을 인정하고 깊이 받아들여야함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받아들임은, 마르코 복음 4장 16절에 나오는 것처럼, 돌밭이 순간적인 기쁨에 도취되어 받는 것과는 달리, 생명을 잃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소유와 내주'로서의 받아들임을 말한다.

 

마르코 복음 4장 16절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에서 사용된 '받는다'에 해당하는 '람바노'(lambano) 일시적 소유물을 취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기에, 마르코 복음 4장 20절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환영하는'의 의미를 지닌 '파라데코마이'(paradechomai)와는 다른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은 마치 우리 자신이 소유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 쉽게 망각하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명처럼 여기고 결코 버리지 않는 사람만이 '좋은 땅'이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이다.

 

 

 

20260128일 수요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T.아퀴나스)] (이철구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씨앗은 말씀이고, 밭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뿌려진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땅이 필요하듯,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 마음도 준비된 좋은 땅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길, 돌밭, 가시덤불 속, 좋은 땅을 비유로 드십니다.

그리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마르 4,8).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옥한 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땅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밭을 갈고 잡초를 뽑으며 돌을 골라내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안에 머무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삶으로 실천할 때, 그 씨앗은 우리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땅인가?”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오늘 하느님의 뜻을 담아 하늘의 존재가 되라 하신다.

 

(마르4,1-12)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 예수님과 하나 되지 못한 분리된 모습이다. 그들과 하나 되고자, 곧 구원하시고자 오늘 구원의 말씀을 주신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 성경,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수준에 맞추어 문자, 곧 비유로 주셨다. 그 문자, 비유 안에 실체를 오늘 깨달아야 한다. 3-9절의 그 비유를 14-20절에서 풀어주신다. 그 비유와 풀이를 함께 묵상하려한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 14절에서 씨를 말씀으로 주신다. 길-직역하면 길가, 길옆(파라 호오도스)이다. 하늘의 뜻, 그분의 길에서 벗어나 땅의 뜻, 길로 받았다는 것이다. 길가(파라 호오도스)에서 파생된 말이 범죄(파라 토마이), 곧 길에서 벗어난 것이 잘못된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15절~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난 씨, 말씀은 새, 곧 사탄의 먹이가 된다. 하신 것이다.

 

(시편140,6) 6 거만한 자들이 덫을 숨겨 두고 그물처럼 줄을 펼쳐 놓았으며 저를 잡으려 길 옆에 올가미를 놓았습니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 ‘하느님처럼’ 의 마음이 ‘돌밭’이다.(창세3,5참조) 대속, 덮으심 그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선악으로 받은 그 교만의 마음 밭이다. 17절에서 말씀을 기쁘게 받지만 뿌리(깨달음, 믿음), 곧 생명(구원)의 진리, 깨달음(믿음)이 없어서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걸려 넘어지는 사람을 말씀하신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말씀을 받은, 그 벗어난 길의 결과가 가시덤불이다.(창세3,18참조) 19절에서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에 여러 가지 욕심(욕망)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 말씀의 숨, 말씀의 힘인 생명, 구원을 막아 버린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 씨(제라-후손)는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갈라3,16참조) 그 씨, 말씀을 사실 그대로하느님의 길로,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구원, 그 새 계약, 진리의 말씀으로 받는 것, 좋은 땅이다,

 

(히브10,12-18)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4 (십자가의)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6 (십자가)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심판)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믿는)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이 모든 말씀 사실 그대로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는 용서, 구원, 그 영원하신 사랑, 전능하신 힘, 그분을 받아 들여 그분으로 좋은 땅이 되는 것이다. 하늘의 존재를 담으면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고, 땅(세상)의 것을 담으면 땅(지옥)의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은혜)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사람의 귀(자신의 뜻)로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들어라 하시는 것이다.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 본문 1절의 배(교회)안, 주님과 분리된 그 사람들과 다른 예수님 둘레에 있는 이들, 그리고 제자들- 교회의 모습이다.

 

11 예수님께서 그들(교회)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미스테리온-비밀)를 깨달을 수 있지만 교회 밖 사람들은 그 신비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왜?- 주님과 한 몸이 된 교회는 주님의 지혜이신 진리의 성령께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세상(땅)의 지혜로는 깨닫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하늘의 신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 들을 귀로 들어야 한다. 사람의 눈(지혜)으로 보면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의 귀로 들으면 깨닫지 못하니, 그 사람의 길로 용서받는 일이 없게, 곧 용서 받았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하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구원)의 길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다.

 

(히브9,22) 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지고,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씨(제라-후손)는 후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뜻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요한5,39)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전부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이야기이다.

 

저-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난 그 죄인 아담을 위해 어린양이 죽어 남긴 가죽, 곧 죽어야 할 아담 대신 죽으신 어린양 예수님을 구원의 옷으로 입혀 주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입는 것이다. 그렇게 한 몸이 되어 하느님께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묵시19,7-8)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아마포 옷, 우리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옷이며, 그 대사제께서 죄의 대속으로 죽으신 그 죽음의 옷(수의, 壽衣)이다.(요한119,40참조) 그 옷을 입는(깨닫고, 믿고 받는)것이 신자들의 *의로운 행위이다.

 

(요한6,29)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히브10,11-12)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기념, 의식, 거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그리스도의 피로 받는 구원, 그 새 계약을 믿는(담는), 것이 좋은 땅이다.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뜻, 그분의 길을 벗어나 헛된 길을 가지 않도록 부족한 저희와 늘 함께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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