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화요일] “탈리타 쿰!” (마르5,21-43)

2026. 2. 2. 오전 9: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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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3일 화요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탈리타 쿰!” (마르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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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2사무18,9-10.14ㄴㄷ.24-25ㄱㄴ.30-19,3)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10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25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30 달려온 그에게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 그가 물러나 섰다.

31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32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2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3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 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화답송>시편86,1-2.3-4.5-6(1) 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가련하고 불쌍한 이 몸이옵니다. 제 영혼 지켜 주소서. 당신께 충실한 이 몸,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리오니, 주님, 이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 주님, 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애원하는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복음<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마르5,21-43)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22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사무18,9-10.14ㄴㄷ.24-25ㄱㄴ.30ㅡ19,3)

 

저자는 전쟁에 관한 기술은 단지 세 절(2사무18,6-8)만을 할애하고, 압살롬의 죽음과 그의 매장,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대화는 아홉절(2사무18,9-17)이나 할애하여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만큼 다윗의 슬픔 고뇌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다윗은 이미 12장에서 자신의 범죄로 인한 하느님의 일차적 심판 즉 밧 세바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13장에서부터 본장에 이르기까지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은 계속되었다.

 

즉 암논의 이복 누이 다말의 강간, 압살롬의 암논 살인과 반역사건으로 인하여 다윗은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한 것이다. 

물론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12,10)는 심판의 예언에서 시사하듯이, 그것으로 하느님의 심판이 완전히 끝난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13-18장에 기록된 것과 같은 극단적인 살인, 반역, 강간과 같은 일들이 그의 목전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는 않는다.

 

물론 20장에서 세바의 발란 사건이 보도되지만, 이번 장으로 다윗 일생의 가장 치욕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순간이 막바지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압살롬의 죽음으로 일련의 사건을 마무리하게 된 다윗은 과연 매를 다 맞은 아이처럼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일찌기 밧 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첫 아이가 죽었을 때, '일어나' 하느님을 경배했던 다윗은 (2사무12,20), 이번에도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한 압살롬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 들이고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겠는가?

이에 저자는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의 아픔과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다윗이 고통속에서 형편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 하였다.

 

즉 다윗은 일련의 사건들을 마무리하고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으나, 그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다윗이 지은 죄의 결과이다.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9ㄷ)

 

'로슈' (roshu)는 '머리카락' (머리털)로 번역되었는데, 문자적으로는 '그의 머리' (his head)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새총처럼 갈라진 가지에 압살롬의 머리가 끼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머리털로 보아 압살롬의 머리털이 향엽나무(상수리나무)의 무성한 가지에 걸린 것이라면, 그의 자랑이었던 것이 오히려 그에게 수치를 가져다 주고,  그의 최후를 재촉하는 촉매가 된 것이다.

 

"온 이스라엘에서 압살롬만큼 잘 생기고,그만큼 칭찬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는 머리가 무거워지면 해마다 연말에 머리카락을 자르곤 하였는데,  그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서 그것을 달아 보면,  왕궁 저울로 이백 세켈이나 나갔다." (14,26)

 

'노새'로 번역된 '합페레드' (haphered)는 숫나귀와 암말을 이종교배함으로써 태어난 잡종 동물이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이종교배를 엄격히 금하고 있으므로(레위19,19), 이스라엘 내에 있는 노새는 이스라엘 주변 이방 나라로부터 수입해 온 것이다.(1열왕10,25)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왕족들이 노새를 타고 다녔다.(13,29 :1열왕1,33) 압살롬은 스스로 왕임을 칭하는 자로서, 여행할 때나 전쟁할 때는 몰론이고 항상 노새를 타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압살롬의 교만을 보여주는 노새는, 한편으로는 압살롬의 비극적인 죽음을 더 부각시켜준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에서 "놓여지게 되다" 라는 사역형 수동태 동사 "나탄" (nathan)이 사용되어, 이 모든 일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는 한 병사의 발언은 그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다윗의 군대에 속해 있는 모든 군사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대화에서 나타난 다윗 군대의 입장은,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하라고 한 명령(2사무18,5)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를 보아서 저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다루어 주시오" (5)

 

적장의 목숨이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2사무17,2.3)  이 전투에서 군사들이 적장에게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는 부담을 안고 전투에 임하는 것은 사실 승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였다는 것은  전쟁의 승리 하느님에 의한 것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또한 동시에 이 모든 군대가 이러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다윗이 얼마나 애타게 압살롬을 위했는지와 더불어 얼마나 간곡하게 그에 대한 선처를 명령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매달려 있다" 에 해당되는 '탈루이' (thalui)는 특히 교수형에 처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탈라' (thala : 창세40,19)의 수동태 분사이다.

이는 압살롬의 상태가 마치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처럼 보였음을 나타내며, 동시에 이 단어는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신명21,23)라는 말씀에서 표현된 단어로, 압살롬이 하느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한번 더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14)

 

'표창'(작은 창)으로 번역된 '쉐바팀' (shebatim)의 원형 '쉐베트' (shebeth)는 '나뭇가지', '막대기', 왕의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지팡이를 가리키는 '홀',사람을 때리는 '매' 등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쉐베트' 의 복수형 '쉐바팀' 은 작은 막대기 밑을 날카롭게 만들어서 사람을 해할 수 있도록 한, 무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요합은 압살롬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창을 세 개씩이나 가지고, 아직 나무에 달려 있는 압살롬에게로 달려 갔던 것이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위기에 처한 압살롬에게 압살롬의 심장을 향해,그가 가지고 간 작은 표창 3개 중 두개 이상을 던졌다. 이것은 그만큼 요압이 압살롬을 확실히 죽이기를 원했음을 보여준다.

'타카으' (thaqah)라는 '던지다' 의 의미를 가진 동사에 3인칭 복수 목적격 접미어가 붙어 있어서,'그는 그것들을 던졌다' 라는 뜻이다.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32ㄱ)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의 소식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압살롬의 안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이것은 다윗의 마음이 아들 압살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32ㄴ)

 

우회적인 표현이긴 했지만,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이 마침내 에티오피아 사람에 의해 다윗에게 전달된다.

그의 표현에는, 압살롬이 하느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범죄자란 사실이 분명하게 전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은 다윗에게 전쟁의 승리를 잠재울 만큼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19,1ㄱ)

 

본문은 사람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데, 마음이 심히 어지럽고 떨리며 번뇌에 가득 찬 상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통곡은 죽은 자를 위한 애곡이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19,1ㄴ)

 

본 절에서 무려 세 번이나 쓰인 '압살롬'과 무려 다섯 번이나 쓰인 '내 아들'이란 표현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대변해 준다.

 

다윗이 슬퍼한 것은, 우선 반인륜적이고 패역무도한 반역을 행했다 하더라도, 압살롬은 자신의 아들이었기에, 그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로서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주어졌다는 사실로 인한 자책에서, 가슴을 찢으며 통곡했던 것이다.

 

 

 

2024년 01월 30일 화요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모든 이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들의 행동을 저마다 다른 단어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군중의 손길에는 밀쳐 대다는 표현을 쓴 반면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라는 믿음이 있던 하혈하는 여인의 손길에는

손을 대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기적을 체험합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기적은 아니었습니다.

딸아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여인의 믿음이 일으킨 기적입니다.

한편 딸이 죽어 있는 회당장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비웃는 사람들이 아닌믿음을 가진 이들 앞에서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십니다.

탈리타 쿰!”

믿음이 있는 곳에 구원이 있습니다.

믿음이 담긴 기도는 하혈하던 여인의 손처럼 예수님께 손을 대어 구원을 체험하게 하여 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믿음이 담긴 기도의 손길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회당장 딸의 손을 붙잡아 죽음에서 일으켜 주신 것처럼우리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기도는 예수님을 밀쳐 대던 군중의 손길과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는 마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던 사람들처럼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비웃음의 대상으로 여길 뿐입니다여러분의 기도는 어떠한가요?

오늘 하루는 우리가 예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에 믿음을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딸아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말씀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 환상이 아닌 부활을 실천하는 믿음 ♣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회당장 야이로가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죽어가는 딸의 병을 고쳐 다시 살게 달라고 간청합니다(5,22-23). 

그분께서 회당장과 함께 나서시는데, 하혈하던 여자가 군중에 섞여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이 여자는 열두 해 동안이나 병치레를 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성전에 들어가지도 유대인들의 축제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지냈을 것입니다. 

 

절망을 먹고 살던 그녀는 병을 고치고 싶은 간절한 심정에서 율법위반이나 수치스러움에 괘념치 않고 예수께 매달렸습니다. 

그 여자는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5,27-29). 

그녀는 예수님께서 모든 부정함을 없애주시리라 확신했기에, 부정한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부정해진다(레위 15,19)는 율법까지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온전한 여성성의 회복을 넘어 인간 존엄의 터로 되돌아오려는 절절한 믿음의 몸부림이 예수님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소외된 그 여자를 “딸아”라고 애정어린 호칭으로 부르며 치유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진 많은 사람 가운데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진 그 여자만이 치유를 받았습니다(5,30-31).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는 사이 회당장의 딸은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분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5,36) 하시며, 절망과 슬픔에 사로잡힌 회당장을 하느님의 권위로 격려하시고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리고는 “일어나라!” 하고 말씀하시어 그 소녀를 소생시키셨습니다(5,41-4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확고한 믿음으로 어린 딸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려는 회당장에게 생명의 숨결을 돌려주셨습니다.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던 하혈병에 걸린 여인 또한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여성성을 회복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은 희망을 낳고, 희망은 어둠과 절망을 이길 힘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하시고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당신의 연민을 보여주셨고 메시아적 신원을 드러내셨습니다(프루덴티우스). 

따라서 사랑이신 분을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면 인간성과 생명이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소생은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성을 온전히 회복시켜주신 사랑의 표현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병리적 현상과 죽음의 문화, 불신과 불의,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는 강하고 끈질긴 도전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도전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께 대한 굳건하고 항구한 믿음 뿐입니다. 

오늘도 실천하는 신앙으로 환상이 아닌 부활을 살아내는 우리이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복음(마르5,21~43)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27~28)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하늘의 수인 '3' 땅의 수인 '4'를 곱한 수로서완전을 상징한다.

마르코 복음 5장 25절에서 여자가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혈루증)을 앓았다는 것은 그 여자가 길고 긴 세월 동안 고난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고칠 수 없었던 여자의 병을 자신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게 하시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강조하는 역할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잘못된 진단과 비과학적인 진료, 또한 터무니없는 비싼 치료비의 요구 등으로 말미암아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고통을 주는 경우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 5장 26절에서 여자의 지병이 완전히 인간적 치유의 불능 상태에 빠져 있음을 마르코 복음사가는 드러내고 있다.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여기서 여자가 예수님 뒤로 올 수 밖에 었없던 이유는, 당시 사회적 관습에 의해 여자가 남자에게, 더구나 남자의 신체를 접촉하기 위해 접근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고, 정결법상 부정한 것으로 여겨진 하혈병을 앓는 여자는 대중 앞에 나와서는 안되었으며,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서는 절대로 안되었다(레위15,19~27).

 

따라서 하혈병을 앓는 여자는 자신의 신분과 상태를 숨기기 위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이용한 것이다.  하혈병을 앓는 여자는 자신이 받는 종교 율법적이고 사회적인 제약으로 말미암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오히려 군중을 이용해서 예수님의 뒤로 몰래 접근했다.

 

육체적, 종교 율법적, 사회적, 경제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구원의 희망이 전혀 없는 극한적 상황에 있었던 그 여자는 그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처지에 있었지만, 스스로는 사람들을 민감하게 의식해야 했던 것이다.

 

한편, 마태오와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사용한 '옷'이라고 번역된 '히마티온'(himation; garment; cloak)이라는 표현에 '투 크라스페두' (tou kraspedu)라는 표현을 부가해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마태9,20; 루카8,44).

 

한글 새 성경에서 마태오 루카 '옷자락 술'(the fringe of His cloak) 이라고 번역했다.

또한 '대었다'에 해당하는 '헵사토'(hepsato; and touched) 부정 과거형이므로,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 술을 계속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단 한 번만 스치듯이 옷자락 술을 만진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여자의 하혈병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 아니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마르5,28) 여자의 믿음과 그 여자를 불쌍하게 여기신 예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고쳐졌다고 할 수 있다(마르5,34).

 

마르코 복음 3장 9~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병이 낫기 위해 당신을 만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들을 피해 말씀을 전하기 위해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하신다.

이처럼 수많은 병자들이 단순히 자신의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지만, 마르코 복음 5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당신의 옷자락 술을 만진 자'를 찾으신다.

 

따라서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은 여자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옷자락 술만 이라도 만져도 자신의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간절하고도 굳은 신뢰와,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구원자 (구세주)라는 신실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사도5,15; 19,12참조).

 


  

20260203일 화요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중심 주제로 삼습니다.

독서에서는 죄인의 죽음조차 바라시지 않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복음에서는 그 자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자유롭게 흘러넘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알아차리시거나 승낙하시기 전, 오직 믿음 하나로 은총을 체험하는 복음 속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표징입니다.

특히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받으리라는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간 여인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배웁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이 설명되고, 내가 이해하고 납득이 되기에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상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가 과연 내 뜻을 주장하려는 것인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인지를 말이지요.

이렇게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이라면, 주님께서는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그렇게도 신뢰하는데, 좋으신 하느님께서 어찌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내시겠습니까?

실제로 오늘 복음에서도, 먼저 은총으로 병이 나은 다음에야, 주님께서는 누가 당신에게 손을 대었는지 물으십니다.

이른바 선조치 후보고’, ‘선은총 후판단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 이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계획의 협조자로서 주님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저에게는 이득입니다.’는 마음으로 나를 내어놓는 믿음 말입니다.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신랑이 되어 찿아오신 예수님과 한 몸이 되셨나요?. 

 

(마르5,21-43)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평안히 가거라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 25절에서 34절까지는 하혈하던 여자 치유말씀입니다.

오늘은 열두 해의 질병과 같은 의미의 열두 살의 죽음을 묵상해 봅니다.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 사람들은 죽었다. 하고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 제자 셋만 들어갑니다. 셋-3 하늘의 숫자입니다.

사람들이 죽었다 하는 그 죽음이 있는 곳에 하늘이 들어갑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들어가 다시 살리려는 모습입니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ㄱ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말씀을 생명, 빛으로 깨닫지 못하면 비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1,5) 5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사람들에게는 죽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으켜야 할 잠입니다. 말씀, 성경을 사람의 눈과 귀가 아닌 하느님의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말씀을 믿고 의탁 할 수 있습니다.

 

40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라!’는 뜻이다.

= 탈리타-어린 암양-소녀는 애칭. 쿰-서다.

쿰을 피자하면 ~ 코프+멤 코프- 파괴하고 다시 세우다. 멤- 물, 말씀을 뜻합니다.

‘일어나라’ 그 말씀 안에 ‘말씀으로 파괴하여 다시 세우다, 살리다.’ 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사람의 말을 파괴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요한3,3.5) 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하늘, 그 주님의 말씀(물)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 모두 하늘의 말씀을 뜻합니다. (요한7,39참조)

열두 해 동안 피를 흘린 여자가(27절) 예수님의 옷, 곧 진리의 말씀(옷)을 만지자(하나가 되자) 곧 피가 멈춥니다.

밖으로 흘려진 피, 생명이~ 그분의 옷, 말씀으로 멈추고 그 말씀으로 다시 살아난 것, 위로부터 다시 태어남 입니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 소녀의 나이를 왜 소개할까요? 열둘(12)은 완성된 교회의 숫자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과 혼인 할 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신부가 하늘의 물- 말씀(예수)이 아닌 땅의 물, 사람의 말(법)과 짝 해 죽었기에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부(교회-나)를 다시 살려내심을 뜻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일어나야 할, ‘ 죽어있는 신부임을 깨달아라.’ 하심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먹을 것- 사람의 말, 그 양식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 그 양식을 먹여라~입니다.

사람의 양식, 죽음이 끝인 도덕과 윤리 그 법(물)이 아닌, 다시 일어나(쿰) 주님과 짝 해 한 몸이 된 신부로 살아갈 수 있는 하늘의 진리(물) 그 십자가의 복음으로 주어라~~입니다.

 

(로마8,5-6)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 아멘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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