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5일 목요일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열두제자 파견 (마르6,7-13)
제1독서<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1열왕2,1-4.10-12)
1 다윗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일렀다.
2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3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4 또한 주님께서 나에게 ‘네 자손들이 제 길을 지켜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성실히 걸으면, 네 자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당신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10 다윗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묻혔다.
11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이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
12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자, 그의 왕권이 튼튼해졌다.
<화답송>1역대29,10ㄴㄷ.11ㄱㄴㄷ.11ㄹ-12ㄱ.12ㄴㄷㄹㅁ(◎12ㄴ) ◎ 주님, 당신은 만물을 다스리시나이다.
○ 주님, 저희 조상 이스라엘의 하느님,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
○ 주님, 위대함과 권능과 영화가, 영예와 위엄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
○ 주님, 나라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당신은 온 세상의 으뜸, 그 위에 드높이 계시나이다. 부귀와 영광이 당신에게서 나오나이다. ◎
○ 당신은 만물을 다스리시나이다. 권능과 권세가 당신께 있으니, 당신 손을 통하여 모든 이가 힘과 영예를 얻나이다. ◎
복음<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6,7-13)
7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열왕2,1-4.10-12)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3)
열왕기 상권 2장 3-4절까지는 솔로몬이 사나이답게 굳건한 기개를 가지고 신정(神政) 왕국의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대하여 행해야 할 일들을 밝히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다윗은 솔로몬에게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명령을'로 번역된 '미쉬메레트'(mishimereth)는 '책임'(일)(민수1,53), '임무'(민수3,7)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본문처럼 '지키다'라는 뜻의 동사 '샤마르'(shamar)와 함께 쓰여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복무', '직무', '임무'나 '책임'을 수행하였음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레위8,35; 민수1,53; 3,7; 8,25.26).
그래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네 주 하느님의 직무를 지켜라'이다.
이것은 임금의 직분이 사제나 레위인의 직분처럼 하느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왕직이 하느님께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왕직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본질로 하는 다른 나라들의 왕직과는 다르게 하느님께 대한 책임 수행을 일차적 직무로 하여, 임금으로서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 여부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신정(神政) 왕국인 이스라엘의 임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일이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본문에 나오는 유언을 앞세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다윗이 솔로몬에게 교훈한 이스라엘의 왕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비결은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걷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모세 법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지키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에서 '지켜라'는 말은 '리쉬모르'(lishimor; to keep)인데, '파수꾼이 되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본래 사제나 레위인들의 임무와 관련된 표현인데(레위8,35; 18,30), 다윗은 지금 주님을 대리하는 통치자로 세워지는 솔로몬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정(神政)왕국인 이스라엘의 임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임무이다.
여기서 '규정'(huqqa; 후크카; statute; decree)은 법의 세부 규정을, '계명'(mitswah; 미츠와; command; commandment)은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사항들을, '법규'(mishipat; 미쉬파트; law; judgement)는 징벌이 내포되어 있는 객관적인 법의 판결들과 조례들을, 그리고 '증언'(eduth; 에두트; testimony; requirement)은 하느님의 신성한 선언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이 용어들은 각기 다른 대상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용어들은 유사한 어휘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한 가지 의미를 강조하는 증언법적인 표현으로서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지칭한다(신명5,31; 8,11; 시편119).
그리고 원문에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3인칭 대명사가 붙어 잇어서 '그분의 규정, 그분의 계명, 그분의 법규, 그분의 증언'으로 되어 있으며, 이 모두가 다 그분의 것 즉 하느님의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이 하느님이 어떠하심을 가장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을 바로 섬기게 하고 기쁘게 해 드리게 하며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그분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 즉 하느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다윗이 말하는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요약해서 표현하면 바로 '모세 법'이다.
'법', '율법'에 해당하는 '토라'(thorah)는 일차적으로 '교훈',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구체적으로는 광야에서 방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명령이었다.
이 '토라'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 모든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참으로 인생의 안전한 길이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축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신명8장).
과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의 성공 여부는 하느님의 '토라'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결정되었듯이,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성공와 실패 여부도 솔로몬의 '토라'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결정될 것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에게 순종과 불순종의 길을 제시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했듯이(신명30,15-20) 다윗도 동일한 선택의 길을 솔로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네가 ~ 성공할 것이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킬 것을 당부하였다. 이제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솔로몬에게 내리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성공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타스킬'(thaskil; you may prosper)은 '사칼'(sakal)의 사역형으로서 '번성하다', '형통하다', '성공하다'(2열왕18,7)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동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무조건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보다는 오히려 고난 혹은 시련 다음에 오는 궁극적 성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성공은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의 순종에 따른 축복이며(신명28,1-14; 여호1,7.8; 루카10,28), 모든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축복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는 고통을 감수한 아브라함(히브11,17), 정결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감옥에 가야 했던 요셉(창세39,7-20),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기름부음 받은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1사무26,9-10) 계속해서 사울에게 쫓기며 많은 고난을 받아야 했던 다윗 등 모두가 고난을 통해 주어지는 이러한 궁극적 성공을 경험했던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원문은 '에트 콜 아셰르 타아세'(eth kol asher thaase; in all you do)인데, 직역하면 '네가 행하는 모든 것' 이다. 그리고 '하든지'에 해당하는 '타아세'(thaase)의 원형 '아사'(asa)는 '행하다', '실행하다'는 뜻 뿐만 아니라 '만들다', '(재산을)얻다', '(열매를)맺다'라는 뜻도 갖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과 재산을 얻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 삶의 전영역에서의 활동, 범죄를 제외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어디로 가든지'
원문은 '웨에트 콜 아셰르 티프네 샴'(weeth kol asher thipneh sham; and wherever you go)이다.
여기서 '가든지'에 해당하는 '티프네'(thipneh)는 '돌이키다', '떠나다', '나오다'는 뜻을 가진 '파나'(panah)의 미완료형이다.
그리고 부사 '샴'(sham)은 새성경에서 번역은 안되었지만 '거기서'(there)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 '티프네'(thipneh)와 '샴'(sham)이 본문처럼 함께 사용되면 '거기를 향해 돌이키다', '거기를 지향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고 네가 돌이켜서 지향하는 모든 것'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장소적인 개념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의 '네가 무엇을 하든지'와 더불어 삶의 모든 행위와 인생의 방향 등 삶 전체를 가리키는 증언적 표현으로써,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가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열두 제자에게 여장을 꾸릴 때의 규칙을 일러 주십니다.
온갖 위험과 어려움이 예견되는 여행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신 까닭은 제자들이 이 길에서 하느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느님뿐이심을 기억하고 인간적인 모든 보장과 안전을 포기한 제자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다스림을 체험한 이들만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1,15)라는 복음을 누구보다 힘 있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길”은 보통 ‘제자 직분의 길’을 의미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예수님께서 “길을 떠날 때” 주신 규정은 곧 ‘제자로서 살아갈 때’ 요구되는 지침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모두에게 청빈의 삶을 권고합니다.
청빈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의탁의 표현입니다.
이 신뢰는 세상의 것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주님의 뜻을 담대히 따를 수 있게 합니다.
교회가 주님께서 이르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수행하려면, 불필요한 것들에서 가벼워져야 합니다.
움켜쥔 것이 많을수록 그 무게는 교회의 자유를 짓누르고, 그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두려움을 더욱 키울 것입니다.
교회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할 듯한 헛된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 마련하신 더 좋은 것들을 얻을 것입니다.
세상 것에 대하여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워진 교회, 그래서 주님의 숨이 부는 대로 자유롭게 길을 떠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세상에 살지만 세상이 내 안으로 들어와 하늘을 밀어내게 하면 안된다.
(마르6,7-13)
7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무시당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후, 권한을 주셨다. 복음을 선포할 때 각오하라는 의미셨고, 사람들이 자신들을 알아봐 주기(대접, 대우)를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둘씩 짝지어’-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그 둘이 아닌 선이 악을 덮어 용서로 생명을 주시는 그 하늘의 진리, 그 하나를 위해 하나(짝)로 보내신 것이다. 세상(인간)의 뜻, 욕망을 위한 생각(지혜)이 뱀의 거짓말을 먹은 더러운 영들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대속, 그 구원(생명)의 진리, 그 말씀으로 더러운 영(말)을 쫓아내라고 보내신 것이다.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어둠에 하늘의 빛을 비추라고 보내신 것이다.
(1요한2,8) 8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 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 지팡이만 준비하라 하신다. 지팡이는 牧者의 지팡이, 곧 예수님의 길을 뜻한다. 예수님의 말씀만 의지하라고 하신 명령이다.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 두벌을 껴입지 말라 -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준비한 준비물, 옷과 주님께서 주신 말씀(옷), 그 두 가지를 섞어 이용하지 말고, 오로지 주님과 그분의 말씀만 의탁하라 하시는 것이다. 신발 또한 하느님의 신발이다.
(에페6,14-17)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 진리의 성령으로 허리, 중심을 잡고, 십자가의 의로움을 입고(믿고), 하늘의 평화를 주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믿음의 영도자(완성자)이신 예수님, ‘방패가 되어 주신다’. 고 약속하신 하느님으로(창세15,1 히브12.2참조), 성경의 말씀 안에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하는 신앙생활, 전교, 기도 등은 헛것이 될 수 있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 머물러라- 돌아다니며 대접 받지마라, 먼지를 털어 버려라 하시는 것,-창조 이전의 먼지.
(창세2,7) 7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하느님의 숨이 없는, 죽은 자(먼지)로 하느님께 맡기라는 말씀이시다.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 기름을 부으면 고쳐진다?.- 기름은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을 뜻한다.
(레위24,1-4)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올리브(하느님)를 찧어서 짠 순수한 등잔 *기름을 가져오도록 명령하여, 늘 등불이 타오르게 하여라. 3 아론에게 말하여, 그것을 만남의 천막 안 증언 궤의 *휘장 밖에 차려 놓아,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님 앞에 늘 켜 두게 하여라. 이는 너희가 대대로 지켜야 하는 영원한 규칙이다. 4 그 등불들을 *주님 앞 순금 등잔대 위에 *늘 차려 놓게 하여라.”
= 교회 안에 생명을 주는,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이, 성자 하느님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요한1,4.9.12)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빛으로, 먼지(흙)의 존재가 하늘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흙의 먼지로 죽어있는 이들이 기름으로, 빛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 빛에 더러운 영의 말, 그 어둠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영의 말, 심판이 무기력해 진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의 증인이 성령이시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육의 속죄 제물로 오셔서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신 代贖이다. 그 ‘대속의 피의 새 계약’으로 얻는 하늘의 용서, 생명이다.
그 ‘새 계약의 피가 있는 곳’이 ‘하느님나라’ 라고 알려 주신다.
(히브12,22-24)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 새 계약으로 심판을 받아 완전한 의인이 되는 그 용서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다.
(루가17,20-21)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오늘 제자들에게 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구원,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라 하신 것이다. 사탄이 주겠다. 약속한 세상의 재물, 명예, 평화를 위한 길(말), 그 세상이 들어와 하늘의 평화를 밀어내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의 허리와 마음을 잡아 주시어 주님의 길, 말씀을 살아가게 하소서. 하늘의 용서, 평화,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늘 함께하여 주소서. 그래서 오늘 미사의 본기도를 실천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연중 제4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6,7-13)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7)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시어 실제로 파견하여 복음 전파의 현장에서 일하게 하신 마태오 복음 6장 7절부터 13절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기 활동이 끝나고 후기 갈릴래아 활동이 시작된다.
즉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배척당하신 이후에 복음 전파와 당신이 선택하신 열두 제자를 복음의 봉사자로 훈련시키기 위해 파견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배척당하심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복음을 전하는 스승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6장 7-13절에 나오는 제자들에게 권한을 주시어 복음 전파자에게 필요한 교훈을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부르시어'에 해당되는 '프로스칼레이타이'(proskaleitai; he called to him)의 원형 '프로스칼레오마이'(proskaleomai)는 '~을 향하여', 혹은 '~을 위하여'라는 뜻을 갖는 전치사 '프로스'(pros)와 '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칼레오'(kaleo)의 합성어로서 '~로 초대하다' 혹은 '~을 위하여 부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천국 복음의 봉사자로 파견하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로 번역된 '아포스텔레인'(apostellein; sent out)의 원형 '아포스텔로'(apostello)는 '~로부터'라는 뜻으로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와 '떠나다'는 뜻이 있는 '스텔로'(stello)의 합성어로서 '~로부터 분리되어 보내다'는 문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단어에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여 파견한다'는 뜻을 지닌다. 이 단어는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 가운데 열두 제자를 따로 분리하여 복음 전파의 봉사자로 파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포스톨로스'(apostolos)가 그리스도의 사도를 의미한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에 해당하는 '뒤오 뒤오'(dyo dyo; two by two; '둘씩 둘씩')로 보내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상호간에 도움을 주는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복음을 듣는 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한 벙법이기도 하다.
또한 6장 11절에서 등장하는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 대한 증거와 관련해서 증인의 최소 인원을 확보하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둘'은 증인의 수였으며, '둘'의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확실한 거부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민수35,30; 신명17,6; 마태18,16).
이 둘씩 짝지어 파견되는 전통은 초대 교회 선교 여행에서도 계속하여 이어져 갔다(사도15,22).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문맥으로 보아 이 권한(권세)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령을 내쫓고 거룩함을 회복시키는 권세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마귀(악령)의 특징을 더럽다고 규정하는데, '더러운'으로 번역된 '아카타르톤'(akatharton; unclean)의 원형 '아카타르토스'(akathartos)는 부정 접두어 '아'(a)와 '정결하게 하다', '속죄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카타이로'(kathairo)의 합성어로서 '정결하지 않은', '속죄되지 않은', ' 불순한' 이라는 뜻을 나타내며,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거룩한 신성(神性)과 접할 수 없는, 즉 우상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을 뜻한다(사도10,28; 1코린7,14).
특히 마르코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쫓아내야 할 '더러운 영들'은 단순히 하느님의 적대자로 존재하는 악령(마귀) 자체만이 아니라, 그러한 악령의 활동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악하고 더러운 모든 영적 현상과 인간 마음의 상태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주시고'에 해당하는 '에디두'(edidou; gave)는 원형 '디도미'(didomi)의 미완료 과거 시제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12제자들 뿐만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그러한 권한(권세)으르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부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일회성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계속해서 요청해야 하며, 또한 계속적으로 부여받아 사용해야 함을 드러낸다.
2026년 02월 05일 목요일
[연중 제4주간 목요일(아가타기념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제자들을 보내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마귀를 쫓고 병자를 고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수동적 태도에 머무를까 염려하신 것이 아닐까요?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해 주신다면,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할수록 오히려 능동성을 잃고, 점점 의존적으로 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풍족하게 마련된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 가운데 그들을 파견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제자들이 책임을 느끼며, 고난 속에서도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 또한 복음을 전하라고 세상에 파견된 이들입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요.” 또는 “먼저 저에게 기쁨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태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요?
때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부족하다며 불평하고, 복음을 전하기보다 불만을 토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물질과 세속의 기쁨에만 집중한 나머지, 주님께서 맡기신 고유한 사명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부족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제자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주님께 파견받은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사람을 착각하거나 잘못 부르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연중 제4주간 목요일]
복음은 죄에서부터 시작이다.
복음(마르6,7-13)
7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 *지팡이- 목자(牧者)의 지팡이로- ‘구원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계약의 말씀’이다.
*신발- ‘구원의 목자가 걸어가신 그 길’로 가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사람(땅)의 것을 의지하지 말고, 반드시 하느님의 것, 말씀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요한10,11-12)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 흩어버리는 사람, 목자의 말(길)인 도덕과 윤리가 아닌 (선악의 그 두벌의 옷이 아닌) 하늘로 모으는 하느님의, 목자의 말씀(길)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거저 얻는 하늘의 용서, 구원의 그 새로운 길, 새 계약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더러운 영(말)들을 쫓을 수 있는 권한이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 기쁜 소식, 곧 대속, 그 새 계약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먼지로 털어 버리라’는 말씀이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숨)으로 지어졌고(창세2,7), 말씀으로 지탱하며 존재하기 때문이다.(히브1,3) 그러니 말씀이 없는 사람은 흙일 뿐이다.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 죄를 알게 할 뿐인 율법, 곧 제사와 윤리의 그 옛 계약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제사를 완성하시고 거저 주시는 의로움, 거룩, 그 새 계약의 삶으로 돌아오라고 선포한 것이다.
*회개(메타노이아- 가던 방향에서 돌아서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 사람의 도리(율법)를 구원의 진리(길)로 가르친 그 거짓된 가르침,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 병이다. 그 ‘죽을 병’을 기름(성령)을 부어 고쳐준 것이다. 곧 성령께서 진리로 증언하시는 새 계약으로 고쳐준 것이다.(요한14,16-26 로마8,1-11 참조)
*그리고 다른 좋은 글이 있어 올린다.*
<복음은 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환자가 자각이 없으면 의사의 필요를 못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죄를 모르고 구원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며(에페2,1-3)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대속)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영 지옥으로 떨어졌을 뻔했던 자들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 이었는가에 관해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가 TV에 나와서 자기는 성경을 여러 번 읽고 깊이 공부했다면서 성경에 좋은 말들이 많으나 명심보감에 더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은 성경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성경을 잘못 공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명심보감처럼 ‘우리가 어떻게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살 수 있는가’가 적혀있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불가능한 죄인이었는가’를 구약 전체에 걸쳐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그 죄인들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 성경입니다.(요한3,16. 1요한4,10참조)
성경은 어떻게 하면 도덕적, 윤리적으로 잘 살 수 있는가에 방법이 적혀있는 책이 아닙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약 일천오백(1,500)년동안 시험을 하셨습니다. 그 시험하신 결과를 기록해 놓은 것이 구약입니다.
만약에 어벙한 민족을 택하셔서 시험을 하셨다면 나중에 다른 이들이 우리같이 뛰어난 민족을 택하셨다면 실패치 않았을 것이라는 소지를 차단하는 의미에서, ‘뛰어나다고 하는 유대인들’을 들어서 1,500년동안 율법을 주어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실패를 했습니다.
성경이 왜? ‘의인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죄인이다.’(시편14,1-3 53,4 코헬7,20 로마3,10) 라고 그렇게 강조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지 우리는 뼈속 깊이 자각(自覺)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자각이 있어야 하느님의 은총(恩惠)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러나, 그러므로” 의 신앙입니다.
(에페2,1-6.9-13)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11 *그러므로 이민족으로 태어난 여러분은 한때, 사람 손으로 몸에다 행하는 이른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로마15,7)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1코린10,31)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이 구원의 길인 하느님의 은총(은혜)에 의탁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구원의 권한인 대속, 그 새로운 길인 새 계약의 주님으로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