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7일 토요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가엾은 마음(惻隱之心) (마르6,30-34)
제1독서<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1열왕3,4-13)
4 솔로몬은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5 이 기브온에서 주님께서는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 종인 제 아버지 다윗에게 큰 자애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당신 앞에서 진실하고 의롭고 올곧은 마음으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그에게 그토록 큰 자애를 내리시어, 오늘 이렇게 그의 왕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7 그런데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8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9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10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2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13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네 일생 동안 임금들 가운데 너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화답송>시편119,9.10.11.12.13.14(◎12ㄴ) ◎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 젊은이가 어떻게 제 길을 깨끗이 가리이까? 오로지 당신 말씀 지키는 것이옵니다. ◎
○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찾나이다. 당신 계명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
○ 행여 당신께 죄를 지을세라, 마음 깊이 당신 말씀 간직하나이다. ◎
○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
○ 당신 입에서 나온 모든 법규, 제 입술로 이야기하나이다. ◎
○ 온갖 재산 다 얻은 듯, 당신 법의 길 걸으며 기뻐하나이다. ◎
복음<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마르6,30-34)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열왕3,4-13)
그 무렵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4)
기브온은 사울 당시 놉의 사제들이 죽임을 당한 이후(1사무22,11-19) 주님의 성막이 옮겨진 곳으로(1역대16,39; 21,29) 주님의 궤가 있었던 예루살렘(2사무6,17)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공동 성소(聖所)가 되었다.
이곳에는 후르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인 브찰엘이 만든 청동 제단이 주님의 성막앞에 있었으며, 그 신당의 규모도 매우 컸다. 따라서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바치기에 이 기브온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2역대1,2-6).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솔로몬이 기브온에 내려간 목적은 하느님께 제사, 즉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번제물'로 번역된 '올로트'(olloth)의 원형 '올라'(olla)는 '바치다', '올라가다'(창세49,10), '올라가다','상달하다'(탈출2,23)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알라'(alla)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동물을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창세8,20), 즉 번제(Burnt of offering)나 혹은 번제로 드려질 짐승(번제물; 레위1,4)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 자체만으로는 일천 번의 번제를 바쳤다는 표현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일천 마리의 번제물을 바쳤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솔로몬은 기브온이 당시 이스라엘에 있어서 유서깊은 성지일 뿐 아니라 그곳에 대규모의 제사를 바치기에 적합한 큰 규모의 산당이 있었기 때문에 기브온으로 갔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한몫에 제물을 바쳤다고 할지라도 본 제사는 7~8일 정도 걸리는 엄청한 규모의 제사 예식이었을 것이다.
한편 '번제'는 피를 청동 제단 사방에 뿌린 후, 가죽을 제외한(레위7,8) 제물 전체를 불살라 바치는 제사로서(레위1,5-9),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충성과 헌신을 상징한다(레위9,12-14.16).
솔로몬은 이처럼 순종과 헌신의 의미가 반영된 번제를 바침으로써, 자신을 하느님의 간택된 백성인 신정(神政) 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통치 행위가 단순히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다스림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헌신의 과정으로 바치겠다는 다짐과 더불어 이러한 자신의 통치 위에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고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1)
'장수'에 해당하는 '야밈 랍빔'(yamim rabbim; long life)은 직역하면 '많은 날들'이다. 이 '장수'는 한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신명5,33), 또는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시편91,16)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함으로써(잠언10,27) 얻을 수 있는 축복 중의 하나로서, 동서 고금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소원이다.
또한 '부를'에 해당하는 '오셰르'(osher; wealth, riches)는 '부유하다', '풍부하다'(에제27,33), '윤택하다', '좋다'(시편65,9), '부자가 되다', '부요하다'(욥기15,29)라는 뜻을 가진 '아샤르'(ashar)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재물'(창세31,16), '부귀'(부와 영광; 2역대17,5)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질이 많아져 부자가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필요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는 것과 근심이 없는 평화와 안정의 상태에 이르는 것, 그리고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까지 다 포함한다.
끝으로 '원수'에 해당하는 '오예베카'(oebeka; your enemies)는 개인적으로 원한을 갖게 된 적대자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원한을 갖고 있는 적대국을 의미하기도 한다(여호24,11; 판관16,23). 따라서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는 것'은 군사적 승리까지 포괄하는 의미이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12)
'지혜롭고'에 해당하는 '하캄'(hakam; a wise)는 이성적 명철함을 의미하는 '지혜'(신명4,6), 인생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민한 처세술을 의미하는 '영리함'(2사무13,3), 그리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기억함을 의미하는 '지각', '약삭빠름'(예레4,22)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떠한 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기지로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 또한 이성적인 탁월함, 그리고 사물의 원리를 깨닫고 기억할 수 있는 뛰어난 지능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분별하는'에 해당하는 '웨나본'(wenabon; discerning, understanding)의 원형 '삔'(bin)은 앞의 9절에도 나오지만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선과 악을 구분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선악의 진위를 깨달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이 청한대로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고 공정히 재판할 수 있는,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지적 깨달음,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지능이 겸비된 탁월한 지적 능력을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자신으로 자신하십니까? 주님으로 자신하십니까?
(마르6,30-34)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 외딴곳- 광야를 뜻합니다. 광야로 가서 쉬어라. 먹어라 하십니다. 광야의 만나를 먹고 쉬라고 하십니다.
(신명8, 3)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광야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만나, 그 주님의 말씀을, 음식- 양식으로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 양식을 먹기 위한~ 이집트에서 먹은 그 이방인의 음식을 비워내는 그 비움,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고- 오고가는 그 종교행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먹을 수 없었고, 깨달을 수가 없어 하늘의 쉼- 안식,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 예수님께서도 기도 하실 때 외딴곳으로 가시곤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하실 구원의 일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양식)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기도란-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 하느님의 뜻이 내 죄의 용서, 구원입니다.
(마태6, 10)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 에서 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역시 그 외딴 곳에서 육을 위한 빵이 아닌 영의 구원을 위한 진리의 말씀으로 먹기 위한 준비, 그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 육로- 육을 위한 길, 그 행위를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달렸으면 배(교회)를 앞질렀을까요? 대단한 열성입니다. 그러나 헛 열성이지요. 바쁘게, 열심했던 - 그러나 ‘필요한 것은 그 행위가 아니다’ 하셨던 마르타 신앙입니다. (루가10,40-42참조)
말씀을 먹지 않는, 깨닫지 못한 열성은 쉼, 안식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 말씀을 진리로 먹이는 목자가 없는 양들입니다.
본당에 온갖 단체는 많으나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배우고 나누는 단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본당 사제께 ‘그런 모임을 하고 싶다.’ 건의 드렸더니 문제가 많다며, 그 문제해결 방법은 찾지 않고 묵묵부답~~~~
도대체 성당은 왜 다녀야 하는 것인지~, 미사가 있다고, 미사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미사도 제사로만 드리고 있으니.... 그 제사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그도 쉽지는 않지요.
미사(missa)- 파견하다. 에리까리띠우스띠아- 감사제(잔치)라는 뜻입니다. 대속의 십자가 그 단한번의 제사로 우리의 구원이 ‘다 이루어 졌다’ 하셨기에(요한19,30)~~ 그 대속의 사랑, 자비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그 잔치(미사)로 다시 그 사랑, 그 자비를 깨닫고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 파견 받는 것, 미사(missa)입니다.
그 단 한번의 효과를 다시 봅시다.
(히브10, 11- 22)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제발 히브리서 10장이라도 정독을 해 보시기 부탁드립니다.
과연 이 십자가의 용서, 그 약속의 말씀을 알고 있는 신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이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먹이는 목자(사제)가 있습니까?
(요한8, 31-32 )31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없습니다. 아직 까지 저는 그런 목자(사제) 만나지 못했습니다. -(평신도 중에 한분을 만나기는 했습니다.)
육로- 그 육의 뜻을 위한 종교 행위로, 내 뜻을 위한 제사 행위의 신자로 교회가 만드니~ 언제 어떻게 말씀을 구원의 양식으로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목자(사제)들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그 하늘의 일을 하지 않는 우리들의 잘못이 더 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이 가르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요한14,26) 하느님의 말씀은 그 성령을 통해서 들어야 사람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청하고, 찾고, 두드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루가11,9-13) 그 영을 모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로마서8,9)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구원)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열심히 제사 드리고 열심히 기년일 등 온갖 전례 행위에 바쁘면~~
(이사1, 12-14)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 이미 완성된 제사를 반복하는 것, 싫다 하십니다. (히브리서 에서 보았듯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것, 그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사43,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그리고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의 백인대장의 믿음입니다. 자신의 열심, 희생으로 자기를 위해 만든 그 집의 지붕은 자격이 없음을 알고, 그거 주님의 한 말씀이면 되는, 그래서 주님께서 감탄하신 그 믿음입니다.(마태8,5-10참조)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의 열심, 그 희생, 그 어떤 행위로 얻을 수 있는 하늘의 福(바라크- 하늘의 생명력)이 아닙니다.
(에페2, 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이사64, 5)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오물, 걸레)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주님! 우리의 구원을 우리에게 맞기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완성 하셨으니 어찌 감사가 아닌 무엇을 드리오리까? 주님! 감사합니다.
♡ 아멘 -*^ㅇ^*-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전하여 줍니다.
이 모습은 올바르고 지혜로운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생각하게 합니다.
첫 번째는 ‘섬김’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부여받은 왕권이 개인적 욕심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위한 봉사직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혜와 정의로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백성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겨야’ 함을(1열왕 12,7 참조) 의미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을 위한 장수나 부나 원수들의 목숨을 바라지 않고, “당신(하느님) 백성”을 위한 지혜를 청합니다.
두 번째는 ‘듣는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부족함과 무능함을 겸손하게 고백하며 주님께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
그는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듣는 것’에서 비롯됨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다른 이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지혜의 원천입니다.
지도자는 하느님의 말씀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지혜로운 이의 올바른 조언을 겸손하게 새겨 들으며, 고통과 어려움에 놓인 이들의 호소를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세계, 국가, 교회 등 크고 작은 모든 모임의 지도자들은 솔로몬처럼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신원 의식과 듣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결정에 사리사욕이 들어가고, 다른 이의 말에 귀를 닫은 독선적인 지도자는 자신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을 섬기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선하고 지혜로운 지도자를 보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복음(마르6,30~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4)
여기서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poimena; a shepherd)는 '포이멘'(poimen; 1베드2,25)의 목적격 단수이다. 신약에서 '포이멘'(poimen)이 여기처럼 단수형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마태26,31; 히브13,20).
하지만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목자'는 예수님처럼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뜻한다. 당신 군중들을 인도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 즉 당시에 존경받던 랍비들이나 말씀을 가르친 율법학자들은 참된 의미의 목자가 아니었다.
마르코 복음 6장 34절(ㄴ)에서 동사 두 개가 하나는 직설법으로 쓰였고, 다른 하나는 분사로 쓰였다.
'목자 없는'의 '없는'에 분사로 쓰인 '에콘타'(echonta; having)의 시제는 현재이며, '같았기 때문이다'의 '같았기'에 직설법으로 쓰인 동사 '에산'(esan; they were)의 시제는 미완료 과거이다.
이것은 벳사이다 들판에 몰려든 큰 군중들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삶', 즉 참된 영적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채 목적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아 왔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들에게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은 더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군중들에 대한 예수님의 애끓는 감정을 묘사한 단어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이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he; was moved with compassion)의 원형 '스프랑크니조마이'(splagchnizomai)는 '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래서 이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상대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측은지심' (연민의 정; 동정심)의 마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루카 복음 15장 20절에서,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들임을 알아채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가 가졌던 마음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과 치유의 밑바닥에는 이같은 측은지심이 깔려 있어야 하고, 전제되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군중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다.
여기서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의 '가르쳐 주기'에 해당하는 '디다스케인' (didaskein; to teach; teaching)은 현재형으로서 그 가르침이 쉬지 않고 계속 베풀어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마르6,35).
그리고 본문과 병행 구절인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 이 가르침이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여기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목자로서의 첫번째 행위가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4장 14절에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으로 되어 있고,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는 말씀과 치유가 둘 다 언급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로서 자신을 찾아온 가엾은 양들에게 영적 양식과 육적 회복을 다 베푸셨던 것이다.
2026년 02월 07일 토요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요즘 휴대 전화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그 기능도 참으로 다양하고 정교해져서 마치 작은 컴퓨터 한 대를 들고 다니는 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휴대 전화를 쓰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충전’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기능이 있어도 배터리가 방전되면 그 모든 기능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고 마니까요.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을 갈고 닦고, 선행을 하는 등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주님 안에서 힘을 얻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이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휴식이나 여가를 허락하신 데 그치지 않습니다.
복음의 힘을 체험하고 증언한 제자들에게,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되새기고 그 근원적 힘을 다시 채우라는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자주 외딴곳으로 물러나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드러나는 결과에만 치중하기보다 그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정한 기도문을 외우기에 앞서, 성체와 십자가 앞에 나아가 “저, 충전하러 왔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머무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영성체송).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교회를 오고가는가?
독서(1열왕3,7-12)
7 솔로몬이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8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9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10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
= 좋았다- 히브리어 ‘토브’- ‘선(善)’으로 하느님께서 창조(創造) 때마다 “보시니 좋았다” 하신 그 ‘좋았다’이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백성들의 새 창조, 곧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듣는 마음’을 청(請)한 것이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신 것이다.
1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2ㄱ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예수님께서도 옳은 기도로 세상 사람들이 원(願)하는 ‘육(肉)의 장수(長壽), 복(福)을 청하지 마라’고 가르치셨다.
(마태6,7-8.33)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 하늘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를 구원(救援)의 옳음, 진리(眞理)로 찾아라, 믿어라 하신 것이다.
12ㄴ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律法)을 당신의 지혜(智慧)로 선(善)과 악(惡)을 분별(分別)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이다. 곧 인간의 뜻을 위한, 인간의 선악(善惡)의 지혜(知慧)가 아니라는 것이다.
(루가10,25-26)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 율법(律法)을 하느님의 뜻, 지혜(智慧)로 읽었느냐? 사람의 뜻을 위한 사람의 지혜(知慧)로 읽었느냐? 그 중, 어떻게 읽었느냐 물으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복음(마르6,30-34)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 교회(敎會)의 모습이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조항(條項)들을 다 지키느라 교회(敎會, 성당)를 열심히 오고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율법의 정신, 곧 제사(祭祀)와 윤리(倫理)를 십자가에서 대속(代贖)으로 완성하시고 주시는 하늘의 용서, 구원, 쉼, 안식(安息)인 그 하느님의 지혜, 사랑, 그 구원의 말씀을 교회(성당)에서 먹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쉼, 안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먹으라고, 외딴곳(에레모스-광야(廣野)으로 보내신 것이다.
(신명8,2-3)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만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하느님의 말씀(새 계약)으로 먹어야 산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 육로(陸路), 곧 사람의 길, 지혜로 열심히 달린 것이다. 배(교회)를 앞지르는 열성(熱誠)을 부린 것이다.
3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 교회(성당)에서 말씀을 하느님의 지혜(智慧)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35절 이하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 부정한 죽음의 음식을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곧 예수님께서 대신 부정함이 되시고(대속), 대신 당신의 생명을 주는 그 생명의 양식으로 바꾸어 주심으로 ‘남자만 오천명’인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신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오늘 복음(福音)의 본문을 요한은 오천명을 먹이신 뒤에 소개한다. ~
(요한6,25-26)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 ‘보다’의 4단계를 다시 복습(復習)해 본다. ①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 옵타노 마이 ② 자신의 뜻을 위해 우상삼아 보는 것- 에이돈(아이돌) ③ 생각하는 훈련의 단계- 불래보우 ④ 깨달음의 단계- 호라우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우리의 부정한 죄로 죽으시는 예수님이 우리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씀이다. 그 대속, 새 계약의 깨달음 없이 예수님으로부터 육(肉)의 목숨을 위한 것을 얻어 내려고, 교회(성당)를 열심히 오고 가고 한다면 헛된 신앙(信仰)을 사는 잘못이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온 인류(人類)의 죄(罪)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말씀, 지혜(智慧)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코린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세상사람)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솔로몬이,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지혜(知慧)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이 말씀을 ‘호라우’ 할 수 있게 하소서. 그래서 저희 모든 이들이 인간의 지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그릇된 것이며 하느님의 지혜가 구원의 옳은 선임을 깨달아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누리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