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9일 월요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 (마르6,53-56)
제1독서<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1열왕8,1-7.9-13)
1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4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화답송>시편132,6-7.8-10(◎8ㄱ) ◎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 보라, 우리는 에프라타에서 소식을 듣고, 야아르 들에서 그 궤를 찾았노라. 우리 그분 거처로 들어가, 그분 발판 앞에 엎드리세. ◎
○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당신 종 다윗을 보시어, 당신 메시아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소서. ◎
복음<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6,53-56)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열왕8,1-7.9-13)
"궤 안에는 두 개의 돌 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 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9)
이것은 계약궤 안에 오로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계약을 상징하는 두 돌판, 즉 십계명을 새긴 돌판들만이 들어 있었음을 뜻한다. 사실 계약궤라는 명칭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계약의 돌판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차원에서 계약궤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영원한 증거, 즉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탈출19,5.6)는 약속의 증거로서, 이스라엘에게는 하느님 앞에서의 계약 준수 책임을 깨닫도록 하는 증표가 되었다.
신약의 히브리서 9장 4절에는 온통 금으로 입힌 계약궤 안에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와 계약의 판들이 들어 있었습니다."라고 두 개의 돌판(계약의 판들)과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열왕기 상권 8장 9절과 히브리서 9장 4절의 상충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본래 계약궤안에 '만나가 든 금항이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계약의 두 돌판'이 들어 있었지만, 모세 시대 이후 엘리 사제 시절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전쟁에 져서 계약궤를 일시적으로 빼앗겼던 시절에(1사무4,3-11)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를 유실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또 다른 견해는 본래 계약궤에는 그것을 만든 목적과 부합하게 십계명 두 돌판만 들어 있었고(탈출25,16; 40,20; 신명10,5),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는 '주님 앞에 두어'(탈출16,33) 즉 '증언판 앞에'(탈출16,34), '증언판 앞으로'(민수17,25) 있었을 뿐인데, 신약의 히브리서 저자가 정확한 고고학적 검증없이 해석에 따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전자의 견해가 히브리서의 증거와 상충되지 않고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열왕기 상권 8장 9절의 '아무 것도 없었다'라는 표현 역시 그 전에는 그 무엇이 있었음을 전제하는 표현으로 볼 수가 있어 우세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둔 것이다.'
이것은 계약궤안에 보관된 두 돌판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시기를 나타낸다. '계약을 맺으신'에 해당하는 '카라트'(karath)는 일차적으로 '자르다'(1역대19,4), '잘리다', '끊다'(1사무5,4)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계약과 관계될 때에는 '계약을 맺다'(예레34,8)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이것은 고대의 계약 체결 의식에서 계약의 당사자들이 가운데를 자른 제물 사이를 통과했던 것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이러한 계약 체결 의식을 거행했던 것은 계약을 어길 경우에 제물이 둘로 갈라진 것같이 그렇게 죽게 될 것이라는 계약 준수의 엄정한 결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계약은 단순한 약속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신뢰와 신의를 확인시키는 엄숙한 선언이었다 (창세15,17~18; 예레34,18~22).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이후에 그들과 이렇게 엄정하고 엄숙한 계약을 체결하셨다(탈출24,1~8).
그리고 이러한 계약이 체결된 후에 이스라엘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 즉 계약의 산물이 열왕기 상권 8장 9절에서 강조되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었다(탈출24,12).
따라서 솔로몬의 성전에 계약의 두 돌판을 넣어 두었던 계약궤가 안치되었다는 것은 과거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변함없이 실행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오늘 제1독서는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꿈이기도 했던 성전을 완공하고서 그곳에 주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계약 궤를 모셔 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다윗 시절에 계약 궤는 유다 바알라에 있다가 예루살렘의 다윗성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를 너무도 기뻐한 다윗이 주님 앞에서 마치 아이처럼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2사무 6장 참조).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솔로몬도 정성을 다하여 마련한 성전에 드디어 계약 궤를 모실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스러워합니다.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제물로 봉헌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주님께 드리는 장엄한 기도를 통해서(1열왕 8,22-53 참조) 솔로몬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시대의 두 임금에게서 주님을 가장 좋은 곳에 모시고자 하는 열망과 기쁨을 배웁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제 주님께서 새로운 계약을 통하여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6-17).
우리는 영성체를 통하여 다윗과 솔로몬도 누려 보지 못한 특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며 살고 있을까요?
평소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님을 모시며 생활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가장 좋은 곳에 모시려면 늘 우리 마음을 가꾸고 보살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5주간 월요일]
願하는 것이 있어 누군가를 의지하고 붙든다는 것은 나의 無力함, 希望 없음,
곧 나의 모든 것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自己否認, 버림으로 하는 것이다.
(마르6,53-56)
53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 땅에 배를 대었다. 세상에 하느님의 교회(배)를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아본 것일까? - 肉의 치유 자, 靈의 치유 자?
*사람들은 소문으로 肉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容恕를 받는 교회가 아닌, ‘나의 精誠, 열심을 드릴테니 내 뜻을 들어 주세요, 병 고쳐 주세요.’ 라고 거래하는 그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았다 하신 것이다.
(마태16,15-16) 15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속죄 제물)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병자들을 장터에 놓았는데도 치유, 용서, 구원을 받았다? - 옷자락 술(袕)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다. 곧 옷자락 술의 의미가 그들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옷자락 술만이 아닌 그 전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던(민수기, 탈출기, 레위기 등) 옷자락의 술인 것이다.
(민수15,38-39) 38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39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
= 옷자락 술의 자주색 끈을 보며 하느님을 배신하는, 즉 하느님의 마음, 그분의 뜻을 敵對하는 인간의 마음과 눈에 쏠리지 말라는 것이다. *자주색 끈의 의미는, 죄로 죽어 흘리는 피를 뜻한다.(붉은 피, 자주색 같은 것) *띠는 허리의 띠, 진리의 성령을 뜻하는데(에페6,14참조) 대속의 죽음, 그 자주색 피가 구원의 진리임을 증언하신다.
그러니까 옷자락의 술은 대속의 죽음, 피가 진리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자주색 옷을 입게 하신 것이다.(마르15,7)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피였기에 그 예수님의 자주색 피가 구원의 새 계약의 피인 것이다. 그 자주색 피로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 거룩하게 된 것, 하느님의 계명이다.
(민수15,40) 40 그래서 너희는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실천하여, 너희 하느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
=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 구원의 실천이다.(로마10,10)
오늘 병자들이 하느님의 마음, 뜻이 아닌 사람의 마음, 뜻을 위해 살았기에 온갖 잘못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배반한 죄를 지었습니다’, 라는 고백으로 용서를 청하며, ‘옷자락 술에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하는 그 의미 였을 때,....
본문 56절에 그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이 (치유가 아닌) 구원 받았다’가 되는 것이다.
(탈출30,10) 10 아론은 그 제단의 뿔에 해마다 한 번씩 속죄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 너희는 대대로 해마다 한 번씩, 속죄하려고 바치는 속죄 제물의 피로 그 제단을 위한 속죄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 이 제단은 주님(야훼)에게 바친 가장 거룩한 것이다.”
= 속죄 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새 계약의 피 이며 그분의 제물이 되어 올려지는 제단, 또한 예수님을 뜻한다. (그래서 성당 제대위에 아무나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레위6,18) 18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속죄 제물에 관한 법은 다음과 같다. 속죄 제물은 번제물을 잡는 곳, 곧 주님(야훼) 앞에서 잡는다. 이 제물은 가장 *거룩한 것이다. 20 그 고기(제물)에 닿는 것은 다 거룩하게 된다. 그 *피가 옷에 튀었을 때는, 피가 튄 데를 거룩한 곳에서 빨아야 한다.
= 속죄 제물의 제단과 제물에 닿으면 영원히 거룩해 진다. 대속으로 모든 것이 깨끗해 졌기 때문이다.
그 하느님의 규정으로 사람들이 제물과 제단이신 예수님, 그 옷자락 술에 손을 대게 해달라고 청했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 본문을 인간의 마음과 눈으로 보고 그대로 하는 것,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곧 그분의 마음을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사제들의 옷자락을 잡는 것은 용서,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대속의 죽음,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남이 하니까 따라 하는 것, 의미가 없는 잘못인 것이다. 그러나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지금은 모두 의미가 없는 헛된 것이다, 제단과 속죄 제물의 피로 거룩해 지는 것은 우리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그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어서 받는 용서, 구원을 믿지 못하고 계속 자신들의 마음과 눈으로 본 것을 고집한다. 그래서 다음 구절에 배신자들에게~
(마르7,6-9. 13)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 하느님의 마음(뜻, 말씀)을 위한 신앙을 사는지, 사람의 마음(뜻, 말 전통)을 위한 신앙을 사는지,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을 거저 받은 구원 그 진리의 신앙을 사는지! 구원의 힘이 없는 無力한 인간 스스로의 그 자기 의로움을 고집하며 그 하늘의 의로움을 헛되게 하는 신앙을 사는 것은 아닌지요~~~~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를 충만하게 하시어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하소서. 행위의 신앙이 아닌 믿음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 ~아멘. !!!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마르6,53~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시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56)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으로 번역된 '에이세포류에토'(eiweporeueto; he entered; he went)는 원형 '에이스포류오마이'(eisporeuomai) 동사의 직설법 미완료 과거 3인칭 단수로서,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를 계속적으로 이동하여 들어가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 6장 56절에서 직설법 동사가 다섯 개 쓰였는데, 그 중에서 네 개가 미완료 과거 시제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들을 계속해서 들어가고 계셨고, 사람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병자들을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끊임없이 데려다 놓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병자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계속해서 청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를 받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이렇게 예수님의 치유 행위를 계속적 동작을 가리키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 표현한 이유는, 마르코 복음 6장 56절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에서 행하신 모든 반복적인 치유 행위들을 요약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2026년 02월 09일 월요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병든 이들”(마르 6,55)은 큰 병에 걸린 몇 사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태어난 우리가 삶의 걱정과 고민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어쩌면 우리 또한 병든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보여 주신 병자들의 치유를 통하여 우리가 현실의 고민과 문제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 주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병고와 장애에도 주저앉지 않고 당신을 찾은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 아래 오늘 복음에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6,56)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눈길과 손길, 그 모든 간절함을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온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 특별한 치유를 받은 이들만 낫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옷에 손이 닿기만 해도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조차도 품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옷에 손만 닿은 이도 치유해 주셨다면, 오늘날 그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의 청은 얼마나 더 잘 들어주시겠습니까.
이러한 깨달음이 오늘 영성체송 안에서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살아가면서 갖가지 문제에 얽매여 삶이 메마를 때, ‘기도’라는 우리만의 방법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옷자락에 손을 대고자 하는 마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려는 겸손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새 계약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음을 듣는 마음을 주소서
독서(1열왕8,5-7.9-11)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야훼)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 오늘날 성전(聖殿) 감실(監室)에 해당된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ㄱ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커룹 둘이 계명(誡命)으로 심판(審判)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 있는 속죄판(贖罪板, 대속-십자가) 때문에 심판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여러번 공부했다.
9ㄴ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야훼)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야훼)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 사제(司祭)들이 할 일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창조 이전 예비(豫備)하셨던 그리스도(에페1,4), 그 하느님의 영광께서 손수 하신다는 것이다.(히브10,11-12) 그리고 궤(櫃) 안에 만나와 아론의 지팡이가 없다.
그것은 모두 계명판(誡命板), 곧 하느님의 뜻, 말씀을 뜻하기 때문이다. 만나와 아론의 지팡이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명, 말씀의 숨은 뜻은 깨닫지 못하고 만나와 지팡이를 자신들의 뜻, 소원을 위한 우상으로 섬겼기에 없애셨을 것이다.(4사무4,1-11참조)
(히브9,5) 5 궤 위에는 영광의 커룹들이 속죄판을 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 지금은 하느님의 계명, 말씀을 하느님의 영광이신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속죄판이 되셨기에 만나, 지팡이뿐 아니라 계명판, 그 옛 계약의 것을 섬길(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새 계약)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옛 계약)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 지금은 죽음인 옛 계약의 행위를 버리고 생명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진리(眞理)로 믿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복음(마르6,53-56)
53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갖지 말아야할 것을 갖는 것,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 곧 옛 계약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사는 것, 죽음으로 이끄는 병마(病魔), 곧 죄(罪)이다. 그런데 그 옷자락 술에 무슨 힘이 있기에 병자들이 치유가 아닌 ‘구원을 받았다’ 하셨을까?
그 옷자락의 술~
(민수15,37-40) 3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38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39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 40 그래서 너희는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실천하여, 너희 하느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
= 하느님의 계명(誡命)을 깨달아 기억하며 실천함으로 하느님을 배신하지 않고 거룩하게 하는 ‘옷자락 술’이다. 그런데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사람.- 없다.(야고2,8-10) 그리고 마음(눈)이 배신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일까?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욕망(慾望)을 위한 선악(善惡)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창세2,9.16-17)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아담)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선악(善惡)으로 알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창세3,1-7) 1그런데,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 앞16절에서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의 반대로 거짓으로 말한다.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 16절의 ‘모든’이 빠졌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 ‘만지지도 마라’- 하느님의 말씀에 여자도 덧붙였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 앞 17절에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의 반대로 하느님의 뜻을 배신(背信)하게 한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 ‘하느님처럼’의 교만(驕慢), 그 배신(背信)의 자리에 앉게 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선악(善惡)을 인간의 기준(基準)으로는 알 수가 없다.
6 그러나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 뱀의 거짓을 먹어 눈과 마음이 배신(背信)으로 이끌었다, 죄(罪)의 종(從)이 된 것이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 자신(自身)들의 생각을 보태고 뺀, 그 잘못된 선악(善惡)으로 판단한 그 심판의 눈이 자신부터 심판(審判)한 것이다.
(신명4,2)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 그래서 ‘어? 알몸이네!, 부끄러운 거네!, 죄네!’ 스스로 판단(判斷)한 것이다. 그래서 죄를 가리려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었지만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의 말씀을 배신한 그 큰 죄는 피조물(被造物)인 인간이 스스로의 열성으로 만들어 입은 그 행위의 옷으로는 절대 죄(罪)를 가릴(없앨) 수가 없다.
(히브9,22) 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지고,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창세3,21) 21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어린 양을 죽이시고 하느님 손수 만들어 입히신 영광(榮光)의 가죽옷’이다. 곧 당신 아드님을 손수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1코린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 새 계약(契約)의 그리스도시다.
(히브10,12.14.22)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4 한 번의 예물(속죄제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그러니까 마음과 눈으로 배신한, 곧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지 못한 그 큰 죄(罪)에서 거룩해 지는 길은, 그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시고 주시는 하늘의 용서, 그 구원의 새 계명,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의미한 것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다. 그 술에 달린 자주색 끈이다.
자주색은 ‘죽은 피’를 뜻하며 끈은 진리(眞理)를 뜻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하느님의 진리(眞理), 새 계약(契約)으로 먹지 않고 옛 계약으로 섬기는 것, 죽을 병(죄인)인 것이다. 믿는 우리는 구원(救援)을 받았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의 귀를 열어주시어 오늘 말씀을 깨닫고 믿고 듣게 하소서. 저희 모든 이들을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